<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④‘비선 장군’ 노상원 존재감

민간인이 군을 움직였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수사 기록 곳곳에 ‘노상원’ 세 글자가 빼곡하다. 오래전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사방을 들쑤셨지만 그 누구도 민간인이 개입한 이유를 묻지 않았다. 덕분에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맹신론자’를 등에 업고 나라를 쥐락펴락했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박근혜 전 정부 당시 정보사령관을 지냈다. 육군정보학장 재임 중이던 2018년 여군 교육생을 술자리 등에서 강제 추행한 혐의가 인정되면서 불명예 퇴직 처리됐다. 민간인으로 돌아가 점집을 운영하던 그가 어떻게 계엄에 사사건건 개입할 수 있었을까? 노 전 사령관의 행적을 쫓아가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이름이 나온다.

나를 따르라

두 사람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약 3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김 전 장관이 대통령 집무실을 경호하는 수도방위사령부 제55경비대대 작전과장이던 당시 노 전 사령관은 같은 경비대대서 대위로 근무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꾸준히 연을 이어가며 끌어주고 당겨주는 사이가 됐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된 이후 둘의 친분을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김용현과 자주 소통한다” “오늘도 용산에 다녀와 만났다” 등의 말이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 기록에 따르면, 지난해 11월17일 김봉규 중앙신문단장 대령은 정성욱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만남을 요청했다. 사람의 눈을 피해 트럭이 세워진 공터로 이동한 뒤 김 대령은 1장에 2쪽씩 인쇄된 A4용지 10장 분량의 문서를 주며 “노상원이 줬다”고 말했다.


10장 중 7장 분량은 부정선거 관련 내용이, 뒷부분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직원 명단과 해야 할 일 등이 기재됐다.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명단에 기재된 직원 약 30명을 잡아 선관위 내 회의실로 데리고 오라’는 내용이었다.

‘계엄이 선포되면’이라는 문구로 미뤄볼 때 비상계엄 선포를 전제로 작성된 문건인 셈이다.

닷새 뒤 문상호 정보사령관은 정 대령에게 “30명 추천자 명단 파일을 노상원 회장에게 보내라”고 지시했다. 명단은 고스란히 노 전 사령관의 손으로 들어갔다.

김용현 이름 팔아 부정선거 설레발?
“날 단장이라 불러라” 실세 놀이도

노 전 사령관은 문 사령관의 출장 일정에 간섭하기도 했다. 당시 문 사령관은 11월25일 대만으로 출국한 뒤 29일 귀국 예정이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노 전 사령관이 흥분해 화를 내며 “이 중요한 시기에 무슨 해외 출장을 가느냐. 당장 취소해라”라고 말했고 당황한 문 사령관이 “국가 대 국가로 오래전부터 약속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은 “늦어도 11월27일 밤까지는 귀국해라”라고 지시했다.

계엄이 선포되기 사흘 전인 12월1일, 이른바 ‘햄버거 회동’이 열렸다. 노 전 사령관과 문 사령관을 비롯한 정 대령, 김 대령은 경기도 안산의 한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서 비상계엄을 사전 모의했다.


이날 노 전 사령관은 구체적인 임무 지시를 내렸다. ‘버스를 보내 선관위 인원을 버스에 태워 수방사 벙커로 보내라’ ‘ 방이 여러 개 있으니 인원별로 나눠 넣고 못 나오게 해라’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내가 X지면 된다’ 등의 내용이었다. ‘애들(선관위 직원) 잡을 때 말을 안 들으면 위협해라. 케이블타이, 니퍼, 망치, 복면이나 두건, 야구방망이, 테이프를 준비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이를 전해 들은 이들은 해당 물건은 구입하지 않고 부대 내에 있던 것을 준비했다.

노 전 사령관은 자신을 ‘단장’이라고 부르게 시켰다. “나중에 선관위 직원을 수방사로 이동시키고 나면 전부 내가 지시할 테니 내 말만 따르면 된다”며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 전 사령관의 뻔뻔한 행보는 비상계엄 선포 당일 정점을 찍었다. 문 사령관은 진술서를 통해 오전 10시경 노 전 사령관이 전화해 “금주 중 야간에 임무가 있을 수 있다. 1개 팀 준비시켜라. 각별히 보안을 유지해라”고 신신당부했다. 점심 무렵에는 “2개팀 편성하고 오후 9시30분경 소집해 대기해라”라고도 말했다.

내란중요임무 종사자로 지목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노 전 사령관의 번호를 전달하기도 했다.

“말한 거 준비해” 니퍼, 망치, 복면…
외부인 한마디에 일사불란 ‘착착’

정 대령이 “정보 사령관에게 연락이 왔다”고 말하자 여 사령관이 “걔는 또 뭐야, 뒷번호 뭐야”라고 한 뒤 “이 사람 아니야. 내가 알려준 번호 적어봐. 노상원 장군이야”라고 말했다. 여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이 사전에 접촉한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 사령관은 검찰 진술에서 당시 상황을 인정하며 “비상계엄이 선포된 이후 김 전 장관이 저에게 ‘선관위에 나가는 사람에게 노 전 사령관을 연결하라’고 했다”며 “그 말을 듣고 ‘노상원이 왜 나오나’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단순히 김 전 장관과 노 전 사령관이 잘 아는 사이니 막연히 지시를 따랐다는 것이다.

이날 노 전 사령관과 정 대령 간의 통화에는 “아이X 너네 아직도 출발 못한 거야? 너네가 와서 빨리 받아” 같은 이야기가 오갔다. 서너 번 통화가 오간 뒤 노 전 사령관은 “우리가 여기(선관위) 확보했으니 와서 포렌식 떠”라고 말했다.

정 대령은 추후 법적 문제를 걱정해 “우리가 무슨 능력이 있어 포렌식을 하냐”고 말하자 노 전 사령관은 “너희가 할 수 있다던데? 오면 카피(복사)해서 분석할 거라는데?”라는 말을 반복했다.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그 누구도 노 전 사령관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문 사령관이 “김 전 장관의 지시”라고 말하니, 당연히 노 전 사령관이 적법한 절차를 걸쳐 부정선거 의심 사실 확인 업무를 돕고 있다고만 생각한 것이다.

김 대령 역시 진술을 통해 “민간인이 현직 사령을 돕게 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문 사령관이 같은 지시를 하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노 전 장관이 진급을 미끼로 사람들을 꿰어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장군으로 진급할 수 있다는 등 이야기를 하며 “도움을 주겠다”는 말을 수차례 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진급 미끼로

비상 계엄이 해제된 12월4일 새벽, 이들은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않았다. 김 전 장관이 노 전 사령관에게 전화해 “상원아, 이제 어떡하냐”라는 말을 들었다는 진술이 전부다.

노 전 사령관은 ‘단장’ 대신 ‘비선 장관’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든든한 뒷배로 여겼던 이들도 몽땅 수사 대상에 올랐다. 지난 2월 첫 공판 재판서 노 전 사령관 측은 “내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오랫동안 준비해 온 노 전 사령관의 행보에는 흔적이 남아 있다.

비공개로 이뤄지는 재판은 현재 진행형이다. 민간인 신분으로 나라를 발칵 뒤집은 대가를 기다릴 일만 남았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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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발’ 국힘 파멸 시나리오

‘전한길발’ 국힘 파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에 입당하자, 국민의힘은 또 내홍 속에 빠져들었다. 국민의힘의 극우화 징후가 더욱 짙어지는 가운데, 당내 친한계와 안철수 의원의 걸음도 바빠졌다. 전씨는 역설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을 돕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면서 강경 보수의 떠오르는 별이 된 전한길씨(본명 전유관)가 국민의힘에 입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국민의힘 정점식 사무총장은 지난 17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전한길씨가 입당한 날은 지난달 9일이고, 입당을 거부할 수 있는 제도는 없다”고 설명했다. 한·안 반대 반발 이어져 정 사무총장은 “온라인으로 입당했기 때문에 중앙당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다”며 “시·도당으로 입당하므로, 시·도당에서 확인 후 먼저 논의했어야 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전씨가 본명으로 입당했기 때문에, 사전에 확인하기 어려웠다는 후문도 있다. 전씨의 입당 사실이 알려지자, 친윤계(친 윤석열)와 대립하는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냈던 김용태 의원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전씨를 즉각 출당하라”며 “극단적 정치 세력과 절연하는 게 국민 보수를 재건하는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한동훈 전 대표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부정선거 음모론과 윤석열 어게인의 아이콘을 국민의힘에 입당시키는 것을 국민께서 어떻게 보실지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의원도 “이제 친길계(친 전한길)를 만들 거냐”며 “친길 당 대표·친길 원내대표를 탄생시켜, 당을 내란당·계엄당·윤어게인당으로 완전히 침몰시킬 생각이냐”고 비판했다. 계파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 지적을 이어가는 윤희숙 혁신위원장도 “개인의 목소리를 크게 증폭시키는 건 정치인의 몫”이라며 “그런 행위가 우리 당을 점점 위태롭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윤 위원장은 “전씨를 초청한 토론회를 열거나 참여했다”는 이유로 국민의힘 송언석 비대위원장과 윤상현·장동혁 의원을 인적 쇄신 대상으로 지목했던 바 있다. 반발이 이어지자, 송 비대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개인의 입당을 놓고 호들갑 떨 것 없다”며 “국민의힘의 자정 능력을 믿어주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판 여론은 잦아들지 않았고, 송 비대위원장은 지난 18일 의견을 바꿨다. 그는 “전씨에 대한 여러 의견을 경청·수렴하고 있다”며 “전씨의 언행을 확인하고, 당헌·당규에 따른 적절한 조치 방안 검토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친한(친 한동훈)계 소속으로 알려진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같은 날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지금이라도 당원 자격 심사를 하면 된다”며 “방법을 찾으면, 얼마든 할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최수진 수석대변인은 “당원 자격 심사는 입당 신청 후 7일 이내에 해야 한다”며 “기간이 이미 지났고, 시·도당이 모든 사람을 일일이 조치할 순 없다”고 해명했다. 전 입당하자 김 환영…삼각동맹 급 탄생? 이재명의 중도보수 전략 돕는 1등 공신들 실제로 국민의힘은 전신 자유한국당 시절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진행자 중 1명인 김용민씨가 지난 2017년 2월 입당하자, 신속하게 제명했던 전례가 있다. 당시 김씨는 자유한국당 경기도당을 통해 입당원서를 제출해 자동으로 입당 처리됐다. 이를 파악한 경기도당은 “김씨가 당을 조롱할 목적으로 입당했다”고 판단한 후 긴급 윤리위원회를 개최해 김씨를 입당 후 8시간 만에 제명했다. 전씨가 본명으로 입당해 사실 확인이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김씨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너무 달랐기 때문에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해지고 있다. 전씨는 입당 후 순식간에 당 대표·최고위원 출마설로까지 거론되는 등 국민의힘 내 뜨거운 감자가 됐다. 전씨는 지난 18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번 전당대회에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 후보가 없으면, 내가 직접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당헌·당규상 전씨는 전당대회에 출마할 수 없다.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만이 출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당대회 후보 등록일은 오는 30일부터 2일 동안이고, 전씨는 다음 달 10일부터 책임당원이 될 수 있다. 전씨의 입당 목적은 국민의힘을 좌지우지할 실질적 영향력을 얻는 것이다. 전씨는 지난 16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TV’를 통해 “전한길을 품는 자가 당 대표가 될 것”이라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입당 목적임을 공표했다. 그는 친윤계 의원으로 알려진 윤상현·장동혁 의원이 주최한 행사에도 참석했다. 또 윤 전 대통령 구속적부심 심사가 진행되던 서울중앙지법 근처에서 진행된 집회에 참여해 “우리가 국민의힘을 차지해서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후보를 당 대표로 선출하자”고 주장했다.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서울 여의도에서 윤 전 대통령을 두둔하는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손 목사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대규모 강경 보수 집회를 주도하는 양대 축이다. 전·손 목사 집회 양대 축 전씨가 차기 전당대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면, 사실상 손 목사와 전씨가 함께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양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는 지난 21일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수십만 규모의 ‘우파 개딸(이재명 대통령의 여성 팬)’을 만들 생각도 있다”며 “전한길TV 시청자 10만명이 당원으로 가입했고, 더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10만명까진 아니더라도, 상당한 수의 추종자들이 국민의힘에 입당할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면, 전당대회 결과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아울러 이들의 경쟁자로 알려진 전 목사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과 함께 자유통일당을 창당하는 등 정치적 야심을 오래전부터 드러냈다. 전 목사가 이들의 활약으로부터 자극받아 국민의힘으로 들어올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이들이 국민의힘의 외부 행보를 실질적으로 좌우할 가능성도 있다. 윤 의원과 장 의원은 이미 전씨와 행보를 함께 하고 있다. 국민의힘 인요한 의원도 지난 21일 YTN 라디오 <뉴스파이팅 김영수입니다>에 출연해 “전씨의 입당은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다 환영하고, 다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전씨를 일컬어 “강한 우파”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친윤계 의원들은 탄핵 정국에서 이들의 거대한 동원 능력을 확인했다. 이들이 각각 여의도와 광화문에서 개최한 집회엔 최소 수만 인파가 몰렸다. 국민의힘은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김건희 여사·채 상병·내란)을 방어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대응할 수단이라고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이 장외 집회엔 두 목사와 전씨가 동원하는 인파로 채우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세 특검 모두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서로 명분과 실리를 골고루 챙길 수 있다. 친한계와 쇄신파 의원들이 전씨의 입당을 비판하는 것과 달리, 친윤계가 이 때문에 침묵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아울러 지난 21일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김 전 장관은 “전씨의 입당 절차엔 하자가 없다”며 “여러 사람이 열린 대화를 하는, 더 높은 수준의 단합을 이루는 용광로 같은 조직이 국민의힘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대선후보 교체 시도 당시 전 목사의 지원을 받은 김 전 장관이 손 목사와 전씨의 지원까지 얻으면, 가장 유력한 당 대표 후보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씨의 입당은 ▲언더 찐윤 ▲김 전 장관 ▲손 목사 등을 실 하나로 꿸 수 있는 결정적인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국민의힘을 주도하기 위한 삼각 동맹이라고 할 수 있다. 쌍권을 쌍전으로? 물론 김 전 장관과 친윤계는 지난 5월 발생한 대선후보 교체 시도 이후 좋은 관계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되던 과정과 같이 조직이 필요하다. 친윤계는 “윤석열정부를 망친 원흉”이란 비난을 듣고 있고, 대선후보 교체를 주도했던 쌍권(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을 대신할 새 얼굴이 필요하다. 친윤계 의원 중 국민의힘의 텃밭인 영남·강원을 지역구로 두고,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채 실질적으로 당을 주도하는 의원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한다. 언더 찐윤으로선 이미 효용 가치를 다한 쌍권을 ‘쌍전(전광훈·전한길)’으로 교체해서 나쁠 게 하나도 없다. 대중 동원 능력이 없는 쌍권과 달리, 쌍전은 대중 동원 능력까지 갖췄다. 언더 찐윤의 새 얼굴이 되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극우 정당 득세 과정과 똑같아서 큰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극우 정당은 전통적인 기득권과 대중 앞에서 광대 노릇을 할 포퓰리스트가 결합해 득세한다. 독일의 나치당도 독일 전통 귀족 융커와 대중선동에 능한 아돌프 히틀러가 “배후에서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게 만든 유대인·공산당을 몰아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뭉쳐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프랑스의 극우 정당 국민연합도 부유층과 저소득층을 지지 기반으로 두고 있고, 장마리 르펜이란 선동가가 창당해 차근차근 키운 이후 돌풍을 일으켰다. ▲언더 찐윤 ▲보수 성향의 전통 지지 기반 ▲대중 선동에 능한 쌍전의 결합 등도 위 사례들의 흐름으로 연결되지 않으리라 보장은 하기 어렵다. 이들의 결합이 국민의힘의 비극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이재명 대통령이 발표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18일 선언으로부터 비롯된다. 당시 이 대통령은 유튜브 채널 ‘새날’에 출연해 “민주당은 진보가 아니다”라며 “중도 보수 정도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보수가 아니다”라며 “앞으로 대한민국에선 민주당이 중도 보수 정권으로 오른쪽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6년 후 3연속 총선 패배 극우 10만명 입당이 해결책? 이후 진보 진영 내에선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을 극우로 규정하는 기사와 칼럼이 다수 나오고 있다. 작가 박권일씨는 <한겨레21> 기고 칼럼들을 통해 이 의원을 “극우 엘리트주의자”라고 규정했다. 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고 칼럼을 통해 “새 정부는 이 의원과 같은 극우 정치인을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김상욱 의원도 지난 15일 <일요시사>와 만나 “이 의원은 사회 갈등과 혐오에 기반해 선동한 후 자기 세력을 만드는 극우 정치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강경 페미니즘 세력과 격렬하게 다투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이 의원의 행보를 매개로 “이 의원은 극우 정치인”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선 다양한 찬반 의견이 나온다. 이 의원 지지자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반대하고, 국민의힘에서 각종 극단주의 세력과 다퉜던 이 의원이 왜 극우 정치인이냐”고 반발한다. 이 움직임을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선언과 맞물려 판단해보면,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을 한 데 묶어 극우로 규정한 후, 민주당이 전통적인 보수 영역을 차지하고, 진보 진영의 외연도 함께 확대하려는 장기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시각에 따라선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이 그 빌미를 제공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런 흐름을 강하게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한 전 대표는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극우 컬트 정당으로 어떻게 이재명정부를 견제할 수 있겠느냐”며 “이대로 가면 보수 정치가 완전히 무너져 민주당이 일본 자민당 같은 입지를 차지하는 1.5당 체제가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한 전 대표는 같은 날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을 만났고, 전날인 19일엔 안 의원을 만났다. 당의 극우화를 막기 위한 ‘반 극우연대’ 논의를 위한 만남으로 해석되고 있다. 안 의원도 지난 24일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나 같은 취지의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의 극우화 징조와 언더 찐윤의 부각은 3연속 총선 참패로부터 비롯된다. 국민의힘은 새누리당이었던 지난 2016년 이후 진행된 3번의 총선에서 모두 참패했고, 의석도 나날이 줄었다. 특히 치명적인 것은 수도권 참패였다. 이로 인해 국민의힘 내 수도권 기반 정치인의 힘이 약해졌고, 전통적 지역 기반에서 조용히 기득권을 누리는 의원들은 ‘언더 찐윤’으로 조직화했다. 이들과 다퉈왔던 친한계 의원들과 안 의원은 수도권에 기반을 두고 있다. 국민의힘에서 이들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중도 보수’ 선언을 했던 지난 2월은 국민의힘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전 대통령을 겉으로만 비판할 뿐 체포 저지를 시도하고,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도 겉으로만 반대하는 상황이 일어난 이후였다. 점점 짙어지는 극우화 징조 이 대통령과 민주당·진보 진영으로선 국민의힘이 현실적 자정 능력을 사실상 잃었음을 파악한 후 “자신 있게 동진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진 전략은 영남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지리적 차원의 전략이었다. 반면 이 대통령의 동진 전략은 이념적 차원의 전략이다.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해 김 전 장관·언더 찐윤과 손잡고, 전당대회를 좌지우지하려고 한다. 만약 이 대통령과 민주당·진보 진영의 동진 전략이 성공한다면, 쌍권과 쌍전이 1등 공신으로 역사에 남을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