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사령부만 공조하다 자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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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처럼’ 윤상현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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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5선 윤상현 의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결자해지를 요구했다. 윤 의원의 정치적 실존은 정치권과 지역구에서 극과 극으로 다른 이미지를 연출한다. 윤 의원의 정치적 행적을 풀 열쇠는 스스로 언급한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에게 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지난 3일 공개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역사적 결자해지를 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사실을 밝혔다. “결자해지” 충정 편지 윤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이 날 밟고 가라는 취지의 추가 입장을 밝힐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윤 의원은 자신의 편지를 ‘충정의 편지’라고 규정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측근을 통해 ‘윤 의원의 충정을 알고 있으니 깊이 고민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 전한길씨는 윤 의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전씨는 지난 4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윤 의원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윤 전 대통령은 ‘윤 의원이 친윤(친 윤석열)이라더니, 윤 어게인을 말하는 세력과 말하지 말라는 거냐’는 생각이 들어 화가 머리 끝까지 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윤상현이란 이름 석 자를 내 전화기에서 삭제할 것”이라며 “당신을 안다는 자체가 치욕스러우니 다시는 내게 전화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윤 의원은 윤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이 이어지던 지난해 12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서울 광화문에서 주도한 탄핵 반대 국민대회 연단에 섰다. 그 당시 윤 의원은 보수단체 집회 연단에 올랐던 유일한 현역 의원이었다. 그는 “우리 당이 배출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소추를 막지 못했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파면처럼 무도한 국회 세력에 의해 무기력하게 짓밟혔다”고 주장하면서 “사죄드린다”고 바닥에 엎드려 큰절까지 했다. 지난해 1월 발생한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한 이후, 윤 의원은 “젊은이 17명이 담장을 넘다가 유치장에 있다고 해서 관계자와 얘기했다”며 “곧 훈방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애국 시민 여러분께 감사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담 넘은 17명은 훈방 조치 됐느냐”는 질문을 받자, “조사 후 곧 석방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윤 의원 측은 “경찰에 연행된 청년 17명에 대한 도움 요청을 받아 답한 것일 뿐, 이후 발생한 기물파손·침입 사건을 언급한 게 아니”라며 “윤 의원은 어떤 경우에도 폭력 사태는 일어나선 안 된다는 의견”이라고 반박했다. 윤 의원은 2010년대엔 친박(친 박근혜)계 인사로 분듀되는 정치인이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무특보를 맡았다. 당시 국회 본회의장 연설 후 퇴장 당시 좌측에 늘어선 의원들과 악수하던 박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님, 저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자, 윤 의원을 향해 돌아보면서 웃기도 했다. 윤 절연 시도에 전한길 “전화기서 삭제” 친박·친윤 활동 중 설화 속 숨은 비밀은? 윤 의원에 대해선 한동안 “박 전 대통령을 사석에선 누나라고 부른다”는 소문도 돌았고, 언론도 이를 자주 보도했다. 이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 논평이 나오자, 그는 “잘못 알려진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르는 사람은 새누리당 한선교 전 의원”이라고 반박했다. 한동안 윤 의원은 친박 성향으로부터 비롯된 설화에 휘말렸다. 지난 2016년 불거진 새누리당 공천 살생부 파문 당시 풀린 통화 녹음 파일 때문이었다. 여기엔 윤 의원이 새누리당 김무성 당시 대표를 향해 욕설하면서 “김무성·비박(비 박근혜)계를 다 죽여야 해서 전화했다”고 말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윤 의원은 “가장 먼저 그런 XX부터 솎아내 공천에서 떨어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발언을 한 사람의 정체를 공개한 인물은 다름 아닌 당시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김학용 당 대표 비서실장이었다. 그때는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 심사가 바쁘게 진행되던 시점이었는데, 윤 의원은 녹취록 파문으로 결국 공천을 받지 못했다. 결국 새누리당 탈당 후 무소속으로 인천 남구을 지역에 출마해 당선됐다. 윤 의원의 설화는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2024년 12월 이후에도 이어졌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윤 전 대통령 탄핵 소추 1차 표결에 집단 불참했다. 이들 중 김재섭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도봉갑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당시 윤 의원은 배승희 변호사의 개인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 의원이 자신에게 조언을 요청한 내용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김 의원은 윤 의원에게 “나는 형을 따라가고 있는데, 지역구에서 엄청 욕을 먹으니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자문을 구했다. 그러자 윤 의원은 “나도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해서 끝까지 갔다”며 “그때 욕을 많이 먹었지만, 1년이 지나면 무소속으로 출마해도 다 찍어준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은 욕먹을 수 있지만, 내일·모레·1년 후면 국민은 달라진다”고 말했다. 윤 의원이 대화 내용을 공개하면서 해당 발언은 국민 비하 발언으로 인식됐다. 실제로 “무소속 출마했는데도 당선시켜 준 지역구 주민도 비하한 것 아니냐”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김 의원도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지역구 특성을 고려할 때, 강경한 성향의 윤 의원은 적절한 조언을 듣기 위한 상대라고 보기 어렵다”는 비판을 들었다. 윤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도 설화를 일으켰다. 그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긴급 현안 질의에서 박성재 당시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비상계엄엔 동의하지 않는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비상계엄은 고도의 정치·통치 행위”라고 주장했다. 국민 비하? 주민 비하? 이어 “대법원 판례는 고도의 정치 행위에 대해선 대통령의 권한을 존중하면서 사법적 판단을 자제해 위헌성을 심판한다”고 강조했다. 윤 의원은 이 발언 이후 적잖은 비판을 받았다. 대법원·헌법재판소 모두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따른 국가 작용이더라도,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된다면 사법 심사 대상”이라는 판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통치 행위 이론은 20세기 독일의 법학자 칼 슈미트로부터 비롯됐다. 칼 슈미트는 “주권자는 예외 상태를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정치적 규범·합리적 절차보다 주권자의 결단을 우선시하는 결단주의 헌법관을 집대성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르면, 헌법·법률은 주권자가 예외 상태에서 법적 질서를 창출하는 순수한 정치적 결단의 표현이다. 통치행위는 비상 상황에서 법을 정지시키면서 공동체의 질서를 형성하는 주권자의 의지로 표현된다. 칼 슈미트의 사상은 독일 나치당이 당수 아돌프 히틀러에게 모든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성립된 지도자 원리 이론의 밑바탕이 됐다. 따라서 통치 행위를 긍정하면 자유민주주의 헌법 체제의 틀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사법기관은 현실적으로 통치행위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됐다면 사법 심사 대상이 된다는 한계를 그었다. 결단주의 헌법관은 제1차 세계대전 때문에 태동했다. 20세기 초까지 세계를 지배했던 주요 사조는 이성을 중시하는 자연과학과 합리주의였다. 이는 법 체계에도 반영돼 법조문을 있는 그대로 현실에 반영하는 법실증주의로 이어졌다. 그런데 주요 강대국이 모두 참전해 엄청난 규모로 장기간 진행된 제1차 세계대전은 합리주의에 대한 믿음을 무너트렸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합리주의는 “몇 명을 죽여 얼마의 영토를 늘릴 수 있느냐”는 의문에 대한 해답으로 직결됐다. 결국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상징하는 독가스·참호전으로 이어졌다. 합리주의에 대한 회의는 법실증주의의 지배력을 무너트렸고, 이어 찾아온 사조가 결단주의였다. 체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선 법을 현실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지도자의 결단이 중요해진 것이다. 하지만 결단주의는 나치 독일의 태동과 제2차 세계대전이란 비극으로 이어졌다. 현대의 주류 헌법관인 통합주의는 이에 대한 반성으로 태동했다. 한편 윤 의원은 언론 인터뷰·기고를 하면서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주장을 인용했다. 윤 의원은 지난 2023년 YTN 라디오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당시 여성 비하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던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을 비판했다. 당시 윤 의원은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다. 최 전 의원이 그런 발언을 한 것은 그 수준을 나타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어는 존재의 집 <서울경제>에 ‘정치인의 언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하면서 다시 최 전 의원을 비판했다. 윤 의원은 “정치인의 언어는 우리 사회의 의식·수준을 반영한다”면서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발언을 다시 인용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언어는 내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도구가 아니다. 언어가 있어야 존재를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존재는 언어라는 집에 살면서 그 감각을 드러낸다. ‘대통령’이란 언어가 있어야 그가 대통령임을 알 수 있고, ‘국회의원’이란 언어가 있어야 그가 국회의원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언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언어가 인간을 통해 말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태어나면 말을 한 후 글을 배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언어를 지배하는 게 아니며 언어라는 집에 살면서 말하고 쓰면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다. 당시 윤 의원은 최 전 의원의 여성 비하 발언을 민주당·최 전 의원이 사는 ‘집’으로 규정했다. 여성 비하 발언을 최 전 의원 그 자체로 규정한 철학적 수사라고 할 수 있다. 정치 상황을 짚으면서 정적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하이데거의 발언을 인용한 것은 슈미트의 철학적 흐름과 비슷하다. 하이데거도 친나치 행적이 뒤늦게 밝혀져 많은 비판을 받았다. 슈미트에 따르면 ‘정치는 적과 동지의 구분’이며, 정적은 공동체의 존재 방식을 위협하는 수준 낮은 타자로 설정된다. 수준 낮은 타자를 공동체에서 배제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들을 배제하는 이유는 공동체의 순수성·안전이다. 윤 의원은 제20대·제21대 총선에 연이어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심지어 제22대 총선에선 국민의힘 심판 바람이 강하게 불었던 데다 국민의힘에선 수도권은 통상 험지로 분류되는 데도 5선에 성공했다. 정치권에선 윤 의원의 5선 달성을 성실한 지역구 관리를 꼽는 분위기다. 실제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윤상현 의원이 저희 엄마한테도 누님이라고 하고, 동생 결혼식에도 와서 정말 징글징글하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어 “친척으로부터 윤 의원이 동네 주민의 이름을 다 알고, 경조사도 챙긴다고 들었다”는 글도 게재됐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해독 열쇠 윤 이후 지향할 윤의 새 실존은? 5선에 성공했던 지난 2024년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했던 그는 “제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는 5만5000개가 넘는다”며 “이 5만5000명 중엔 지역 유권자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지역·해외 거주자도 있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제21대 총선 당시에도 “제20대 국회의원 재임 당시 공약 완료율은 89.6%였다”며 “인천 내 국회의원 중 1위”라고 주장해 홍보 효과를 누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지역구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수도권 1호선 급행열차 운용과 관련이 있다. 윤 의원은 지난 2016년 지역구 내 제물포역이 급행열차 정차역으로 지정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인천시와 남구는 국토교통부·코레일에 급행열차의 제물포역 정차를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제물포역의 이용 승객이 적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윤 의원은 “급행열차의 제물포역 정차 문제를 경제적 논리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고 꾸준히 주장했다. 제물포역이 수도권 1호선 급행열차 정차역으로 지정된 이후 윤 의원은 인천 남구 숭의4동 통장자율회·주민자치위원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그의 지역구 관리도 하이데거의 철학과 맞물린다. 하이데거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돌보는 것을 ‘심려’라고 규정했다. 쉽게 말해 다른 사람을 걱정하고 마음 쓰는 것을 말한다. 윤 의원의 마음을 확인한 지역구 주민은 윤 의원에게 투표해서 관계를 이어간다. 이런 상황을 두고, 하이데거는 “실존은 현존재의 존재 자체”라고 설명했다. 이는 “사람은 미리 정해진 본질이 없어서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결정해 만들어나가면서, 외부에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자신을 던진다”는 의미가 있다. 윤 의원은 정치권·지역구란 상반된 현장에서 관계에 주력한다. 그가 맺는 두 관계는 상반된 평가로 이어진다. 실생활의 이익 중심 관계로 형성되는 지역구 내 관계는 윤 의원에게 5선이란 결과를 안겨줬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정치적 명분·정당성이란 평가 기준이 작용한다. 이 때문에 윤 의원의 장기인 관계 맺기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강경 보수 성향 지지자들로부터는 지지·성원을 얻는 반면, 다른 이념을 지향하는 유권자의 강한 비판을 받는다. 아울러 윤 전 대통령에게 “역사적 결자해지해 달라”는 요구를 하는 등 관계 변화를 시도했고, 이는 우호 관계였던 전씨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는 이유가 됐다. 관계 맺기 이면 득실 대한민국 유권자는 당파성과 정치적 신의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당파성이 강한 유권자일수록 정치적 신의를 중시한다. 친윤 핵심이었던 윤 의원은 윤 전 대통령에게 역사적 결자해지를 요구하면서 새로운 실존을 지향한다. 윤 의원이 지향하는 새로운 실존은 유권자에게 어떤 이미지로 연출될까? 그리고 그는 어디로 나아갈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