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③“계엄? 내가?” 사라진 기억

수사 뒷다리 잡는 진실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민간인 신분으로 온갖 곳을 들쑤시던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입이 굳게 닫혔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롯데리아 회동’의 취지는 물론 그 자리에서 나눈 대화, 심지어 그들과의 관계까지 부인했다. 마치 모든 기억을 잃은 듯 시종일관 ‘모르쇠’로 답변할 뿐이었다.

시치미 뚝

먼저 살펴볼 것은 ‘노상원 별동대’ 핵심으로 지목된 구삼회 전 육군2기갑여단장과의 관계다.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입수한 노 전 사령관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그는 “구삼회와 얼마나 자주 만나거나 연락하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손사래까지 치며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요, 뭐”라고 답했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구 여단장은 경찰 진술에서 “노상원은 저의 진급 관련해 수없이 통화한 적 있고 그때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너를 귀한 직책으로 쓸 것’이라고 말한 적 있다”고 밝혔다. 노 전 사령관은 여러 차례에 걸쳐 구 여단장에게 진급 관련 조언을 해줬고 지난해 10월쯤에는 “너를 장관님께 추천하고 소명하려고 한다” “내가 상품권 준비할 테니 돈은 네가 5장만 준비해서 보내면 되겠다. 준비해서 나한테 보내” 등 진급을 미끼로 금품을 요구하기도 했다.

노 전 사령관은 비슷한 시기에 정성욱 정보사 대령에게도 같은 취지로 접근했다. 하지만 노 전 사령관은 “정성욱에게 진급 관련 이야기를 한 사실이 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걔한테? 굳이 했다면 자기가 아니고 다른 애들이겠죠. 걔들은 진급 대상도 아니고 인간 정보 휴민트”라고 선을 그었다.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 롯데리아 회동 역시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1차 회동 날짜는 지난해 12월1일로 문상호 정보사령관, 정 대령, 김봉규 정보사 대령이, 2차는 이틀 뒤인 12월3일 구 여단장, 방정환 전 국방부 혁신기획관, 김용군 전 육군 대령이 자리했다.

1차 회동에서 노 전 사령관은 문 사령관에게 “인원은 준비됐냐”는 말과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가서 해야 할 일 등을 설명했다고 한다.

선관위 들어가 직원들 묶으라더니…
“안 친해” “잘 몰라” “기억 없다”

이 말을 듣던 정 대령이 “IT 전문도 없는데 뭘 하는 겁니까”라고 질문하자 노 전 사령관은 “선관위에 가면 내가 알려주겠다” “직원 30명쯤 되는데 그놈들 출근하는 거 확인해서 확보한 회의실로 데려오기만 하면 돼” “저항하는 놈은 케이블타이로 묶어놔. 선관위 홈페이지 관리자 찾아서 홈페이지에 부정선거 자수하는 글 올려”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이날은 노 전 사령관이 케이블타이·니퍼·망치·두건·야구방망이·테이프 등을 준비하라고 지시했으며 체포 명단 중에서 두 명을 특정해 “이들은 협조적일 테니 살살 다뤄라”고 언급한 날이기도 하다.

2차 회동에서는 “합동수사본부 수사단이 구성되는데 구 장군(구삼회)이 단장, 방 장군(방정환)이 부단장을 맡으면 되고 상황 종합해서 장관께 보고하는 임무를 수행하면 된다”고 말했다. 김 전 대령에게는 “당신은 팀장을 맡으면 된다”는 식으로 각각 임무를 설명했다.

1, 2차 롯데리아 회동에 자리한 이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계엄을 논의하기 위해 안산에서 군 관계자들을 불러 모은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들에게 직급을 부여하고 작전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등 사실상 계엄을 ‘지휘’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하지만 경찰 측이 “12월3일 계엄군이 중앙선관위에 간 이유가 무엇인 것 같냐”고 묻자 막상 노 전 사령관은 “여기(선관위)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시위하러 간 것”이라고 답했다.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에게 선관위를 언급한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기억은 없지만 선관위 얘기를 한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관위 들어가라’ 이런 얘기는 안 했던 것 같고 선관위 때문에 열받아서 떠들었던 거 같긴 하다. 선관위가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는 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2차 회동에서 방 전 기획관과 구 여단장에게 직책을 부여한 것에 대해서는 “그런 기억이 없고 명단에 자기 이름이 있으니까 자기가 살려고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라고 반박했다.

“자기들 살려고 내 이름 댄 것 같은데?”
빠져나갈 구멍 찾는 노, 과연 진실은?

김 전 대령에게 ‘1개 팀을 담당해라’라는 말은 ‘수사2단을 외부에서 담당하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는 말에 “그건 수사관님 생각”이라며 “군에는 지휘권이 있어야 부하를 지휘·통솔할 수 있는데 아무런 지휘 권한이 없는 김용군씨가 어떻게 저 요원들을 지휘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함께 자리한 이들에게 비상계엄 소집 명령과 장소를 지시한 이유에 대해서는 “자기들이 살려고, (내 이름을) 얘기해야 자기들이 빠져나가고 구속 안 되고 그래서 다급하게 둘러대지 않았나 싶다”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노 전 사령관은 롯데리아 회동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날 롯데리아에 모인 이유에 대해 노 전 사령관은 “김용현 장관이 전화를 걸어와 ‘김용군도 살기도 힘드니까 격려도 해주고 때가 되면 내가 직접 전화를 하든지, 여건이 안 되면 너를 통해 전화하면 임무를 맡기겠다’고 했다”며 “그래서 제가 12월3일 방정환이랑 구삼회가 저를 보러 온다고 한 김에 함께 보려고, (그래서) 제가 전화를 걸어서 (안산으로) 오라고 해서 만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질문 대부분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경찰 측이 “당시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에게 얘기했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진술해보라”라고 하자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내용까지 수사관님께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당시 생각했던 분노나 내 생각, 어떤 가능성 등을 얘기한 것 같다”면서도 “그렇지만 내가 지금 잘못 얘기했다가 김 장관께 누가 될까 봐 함부로 말을 못하겠다”고 답했을 뿐이다.

노 전 사령관은 ‘계엄 핵심’ ‘민간인 비선’으로 지목됐지만 정작 그는 상반되는 진술을 하고 있다. 특히 ‘계엄’이라는 단어와 선을 그으며 내란 혐의로부터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노 전 사령관은 “2024년 12월1일 롯데리아에서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에게 계엄을 언급한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내가? 그런 기억이 없다. 그냥 문상호한테 ‘장관이 너한테 전화가 갈 것’이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H시’라는 표현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군에서는 통상 H시라고 표현했는데 ‘어떤 명령이 떨어질 수 있다’고 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난해 11월7일 김 대령이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정 대령에게 건네줬다던 ‘부정선거 선관위 직원 명단 등이 적힌 A4용지 10장이 넘는 문서’에는 “계엄이 선포되면” 등 계엄 선포 계획이 명시적으로 기재돼있었다. 롯데리아에서 노 전 사령관은 계엄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과거 행적에 비춰봤을 때 조만간 비상계엄이 선포될 것을 암시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궁 속으로


결국 지난 7일 법원은 노 전 사령관에 대한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1심 구속 기간은 지난 9일까지였으나 노 전 사령관이 풀려날 경우 내란 혐의를 받는 공범들과 접촉하는 등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특검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노 전 사령관은 최장 6개월 동안 수감 상태를 이어가며 수사를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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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