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살인사건으로 본 국내 사제 총기의 세계

60대 아버지는 어떻게 총을?
유튜브 보면 누구나 만든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05년 설립된 유튜브는 20년 만에 전 세계를 장악했다. ‘온라인 동영상 공유 플랫폼’으로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뛰어난 접근성과 영상을 통해 전달되는 다양한 콘텐츠를 무기로 인간 삶의 구석구석에 파고들었다. 문제는 화려한 빛 뒤에 가려진 이면이다.

인천 송도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20일 인천 연수구 송도동 아파트에서 A씨가 아들 B씨를 총으로 살해했다. 이날은 A씨의 생일로 B씨와 그의 아내, 자녀, 지인 등이 함께했다. 생일 파티는 축하 노래를 부르는 등 화기애애하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자의 비극
범행 동기는?

비극은 A씨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면서 시작됐다. 편의점에 다녀오겠다고 자리를 물렸다가 다시 돌아온 A씨는 아들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가방에서 쇠파이프를 꺼내 겨눴다. A씨가 직접 만든 총기였다. 아들을 향해 한 발 발사한 A씨는 곧바로 총신 역할을 하는 쇠파이프를 교체한 뒤 두 발을 더 쐈다.

아들은 세 발 중 두 발을 오른쪽 가슴과 왼쪽 옆구리에 맞았다. A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아들의 지인을 향해서도 두 번이나 방아쇠를 당겼으나 다행히 불발됐다. A씨는 며느리에게도 총을 겨눴다. B씨의 아내는 자녀 둘을 방으로 피신시킨 뒤 남편을 구하기 위해 나왔다. A씨는 그런 며느리에게 소리를 지르며 위협했다.

B씨의 아내는 A씨가 총을 재정비하는 사이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B씨의 아내가 경찰에 신고하자 A씨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공영주차장에 뒀던 렌터카를 타고 도주했다. 이후 A씨는 범행 3시간 만인 지난 21일 오전 12시20분경 서울 서초구 방배동 인근 도로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국내에서 사제 총기를 이용한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그 배경을 두고 궁금증이 일었다. 특히 A씨의 아내가 국내 유명 피부미용 기업 대표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갖가지 추측들이 쏟아져 나왔다. 실제 경찰에서도 프로파일러를 투입하는 등 A씨의 범행 동기를 밝히기 위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성공한 전처에 대한 분노, 경제적·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본인에 대한 자괴감이 쌓이다가 폭발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유가족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아들이 생활비를 끊은 것에 분노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유가족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쇠파이프로 만들어
폭발물도 제작했다

A씨의 범행 동기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으면서 유가족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은 입장문을 내고 “남편(B씨)의 억울한 죽음이 왜곡되지 않고 아이들이 이 고통을 딛고 살아갈 수 있도록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A씨의 전 아내도 “저는 피의자와 이혼한 뒤에도 자식들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사건과 관련된 내용은 모두 진술할 예정이니 제발 부탁하는데 더는 추측성 보도를 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사건을 맡은 인천경찰청은 “프로파일링 결과를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A씨는 사제 총기를 만들어 발포했고 또 폭발물도 제작해 집에 설치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서울 도봉구 자택에 인화성 물질과 발화 타이머를 설치했다고 진술했다. 경찰특공대가 출동해 주민 105명을 대피시킨 후 폭발물을 제거했다. A씨가 설치한 폭발물은 실제 폭발 가능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이 충격적인 점은 A씨가 범행 도구를 직접 만들었다는 데 있다. A씨가 만든 사제 총은 쇠파이프를 잘라 만든 총신에 발사기 역할을 하는 손잡이를 단 형태다. 플라스틱 탄피 안에 비비탄 크기의 쇠구슬이 든 산탄이 장전돼있었다. 폭발물은 시너 14통과 타이머가 결합된 형태였다.


A씨는 유튜브를 통해 총기 제작법을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유튜브에는 수천 건이 넘는 총기 제작 영상이 업로드돼있다. 총기 제작을 위한 물품도 전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말 그대로 시간과 돈만 있으면 누구라도 A씨처럼 사제 총과 폭발물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각종 추측에
유가족 고통

경찰의 유튜브 영상 삭제 요청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단속이 영상의 제작, 확산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총기 제작 등 사제 무기를 제작하는 영상이 퍼지고 접근성이 좋아지면 모방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전 차단 조치와 법적,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도 제언했다.

경찰청은 2020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5년간 온라인상 총기 제조법 불법 게시물 8893건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 삭제·차단을 요청했다. 지난 5월 한 달에만 3264건에 대한 삭제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방심위는 경찰청 등 소관 기관의 요청에 따라 총포·화약류 불법 게시물에 대한 심의를 진행한다. 방심위의 불법 무기류 관련 정보 시정 요구 의결 건수는 2021년 744건에서 2022년 5610건으로 8배가량 급증했다. 이후에도 매년 수천 건 이상이 심의되고 있다.

유튜브 측은 총기를 판매하려는 의도로 제작됐거나 시청자에게 총기와 탄약 특정 액세서리의 제조 방법을 안내하거나 액세서리의 장착 방법을 안내하는 콘텐츠는 허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신고가 접수되면 내부 검토를 거쳐 삭제나 채널 정지 등의 조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튜브 특성상 영상이 장기간 노출되거나 재업로드 되는 경우가 있어 이를 전부 막진 못하는 실정이다.

법도 있긴 하지만 허술하긴 매한가지다. 현행 총포·도검·화학류 등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총포화약법)은 총기나 폭발물의 제작 방법·설계도 등을 인터넷 등에 게시하거나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모의 총포 등 유사 위협 장치의 게시·판매 행위도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 대상이다.

인터넷 널린
총기 제작법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이 총포화약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섰다. 사제 총기 제작 행위를 명확히 불법으로 규정하고 관련 정보의 게시·유포에 대해 형사 처벌 및 삭제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 골자다.

여기서도 유튜브 같은 해외 사업자가 운영하는 플랫폼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처벌을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IT업계에서는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수 있는 플랫폼 규제안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유튜브의 뛰어난 접근성과 빠른 확산 속도가 역설적으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최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유튜버들이 늘어나면서 경쟁이 심해졌고 이 과정에서 자극적인 영상이 여과 없이 시청자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조회 수가 곧 수익과 직결되는 만큼 시청자를 유인할 요소로 도를 넘는 내용의 콘텐츠를 제작해 업로드하는 유튜브 채널은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다. 과도한 신상 털기, 박제 등으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낙인을 찍는 사례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면서 실제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사례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지난해 6월 한 유튜버가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라면서 일반인의 신상을 공개해 사회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은 2004년 12월 경남 밀양 지역 고교생 44명이 울산 여중생 1명을 밀양으로 불러내 1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다.

일단 유포되면 못 막아
가짜 뉴스 진원지 역할

당시 가해 학생 가운데 30명은 소년원 송치 처분 또는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고 14명은 합의 등으로 인해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졌다. 아무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민의 공분을 샀던 사건이다.

‘집행인’이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던 C씨는 가해자의 얼굴과 이름 등 신상을 공개하는 영상을 2차례 올린 혐의로 기소됐다. C씨가 영상을 올릴 때마다 누리꾼은 언급된 인물의 신상을 털었고 SNS에 악플을 달거나 회사로 전화를 거는 등의 방식으로 반응했다. 이 과정에서 엉뚱한 인물이 언급돼 피해를 입는 사례도 생겼다.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C씨는 지난 4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유튜브나 SNS를 통해 가짜 정보를 관망하는 현상에 대해 이제는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엄벌을 통해 최소한의 신뢰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유튜브가 가짜 뉴스의 ‘진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 됐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나온 유명인 관련 루머가 유튜브를 통해 확산하고 언론 보도로까지 이어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과거보다 짧은 영상을 선호하는 대중의 입맛에 맞게 등장한 1분 이내의 ‘쇼츠’는 퍼지는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태,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대형 이슈가 발생하면서 유튜브의 위력이 다시 한번 만천하에 드러났다. 심지어 전직 대통령조차 유튜브를 즐겨보면서 정치에 적용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 여러 차례 자신을 지지하는 쪽 유튜버를 향해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접근성 높고
확산 빠르고

더 큰 문제는 유튜브 영상의 휘발성이다. 누리꾼은 유튜브 영상을 소비한 이후 그대로 흘려버린다. 자신이 접한 영상이 잘못된 정보라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또한 유튜브 측의 제재도 미미하다. 누군가에게는 유튜브가 배움의 터전이고 놀이터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범죄를 위한 교재이자 타인에 대한 공격의 시발점일 수 있다. 유튜브의 두 얼굴인 셈이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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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