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개구리소년 30주기 ②풀리지 않는 의혹

왜 산에서 눈 감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아이들 5명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각각 한 살 터울의 동네 친구들은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가겠다며 집을 나선 뒤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오라 엄마 품에’를 외치던 유가족과 전 국민의 바람에도 아이들은 결국 유골로 발견됐다. 용의자도, 목격자도 특정하기 어려운 전대미문의 사건은 30년째 의문형이다.
 

▲ 세방골 유골 발견 장소 ⓒ고성준 기자

인적이 드문 대구 와룡산 뒤편, 낙엽으로 뒤덮인 산길을 5분 정도 오르면 약 1m 깊이의 움푹 파인 골짜기가 나온다. 2002년 9월26일 이곳에서 개구리소년 5명의 유골이 발견됐다. 1991년 3월26일 아이들이 실종된 지 꼭 11년 6개월 만이었다. 아이들이 사라진 날은 30년 만에 부활한 기초의원 선거일로, 전국은 투표 열기에 들썩였다.

누가 죽였나

우철원(당시 13세)·조호연(12세)·김영규(11세)·박찬인(10세)·김종식(9세) 등 5명의 아이들은 실종 당일 오전 와룡산에 올랐다.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는 와룡산 불미골 입구. 주변에는 선원지라는 연못과 사격장이 있었다. 도롱뇽 알을 잡고 탄피를 주울 수 있는, 아이들에겐 놀이터나 다름없는 장소였다. 

경찰은 아이들의 실종 이후 연인원 35만명을 동원해 와룡산 일대를 샅샅이 수색했다. 유가족은 아이들을 찾기 위해 트럭을 타고 전국을 헤맸다. 당시 유가족과 동행한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전미찾모)’ 회장은 “군 단위 이상의 지역은 모두 가봤다”고 말할 정도.

경찰의 대대적인 수색과 유가족의 노력에도 찾을 수 없었던 아이들은 뜻밖의 장소에서 나타났다. 도토리를 주우러 갔던 등산객 2명은 와룡산 세방골에서 아이들의 유골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세방골은 높이 299m 와룡산의 4부 능선 지점으로,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불미골에서 동쪽으로 채 1㎞도 떨어져 있지 않다.


우철원군의 아버지 우종우씨는 “평소 아이들이 야생마처럼 뛰어놀았다”고 회상했다. 실제 아이들 5명 중 4명이 태권도장에 다니고 있었다. 당시 항공사진 판독 결과 유골 발굴 지점에서 고속도로와 민가의 불빛을 충분히 볼 수 있었다는 추정도 나왔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끝내 산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무성한 추측만 있을 뿐 사건의 진실은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수수께끼다.

1991년 실종됐던 5명
2002년 유골로 발견돼

당시 경찰은 아이들이 산에서 길을 잃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부검을 맡았던 경북대 법의학팀은 일부 아이들의 두개골에 남은 인위적 손상 흔적 등을 근거로 ‘명백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발굴된 김영규군의 옷에 남은 매듭도 타살의 근거로 제시됐다. 김군의 상의는 뒤로 묶여 있었고, 하의 역시 묶인 상태로 발굴됐다. 경찰은 추위를 느낀 아이가 옷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스스로 매듭을 지었다는 주장을 내놨지만 유가족은 강제로 묶인 것이라고 반박했다.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범인의 정체, 유골에 남은 흔적을 만든 흉기, 살인 이유 등에 관심이 집중됐다. 
 

▲ ▲개구리소년 전단지

개구리소년 사건은 현재까지도 용의자가 전혀 특정되지 않았다. 개구리소년 사건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미제사건으로 불렸던 ‘화성연쇄 살인사건’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과 가장 결이 다른 지점이다. 화성연쇄 살인사건은 수감 중인 이춘재가 진범으로 확인됐고,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은 유력 용의자가 존재했다. 


개구리소년 사건은 가설만 무성한 상태다. 유골 발굴 과정에서 탄피가 함께 발견되자 인근에 위치한 육군 50사단의 총기 오발사고로 인한 사망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이들 가운데 1명이 도사견에 물려 사망하자, 이를 감추기 위해 개 주인이 나머지 4명을 전부 살해했다는 가설도 있었다. 

우군의 아버지 우종우씨는 “아이들이 산에서 봐서는 안 될 무언가를 봤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군의 소행은 아닌 것 같다. 군이 이런 사건을 저질렀다면 지금보다 완벽하게 처리했을 것”이라며 “군에는 그런 장비들이 갖춰져 있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나주봉 회장은 당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아이들이 희생된 것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그는 “당시 정부 지지율이 낮아 레임덕 상태였다. 아동 실종사건으로 사회적 불안감을 조성해 레임덕 극복을 노린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며 “많은 전문가들이 사건 해결에 매달렸지만 끝내 미제로 남은 점도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더욱 특이할만한 부분은 아이들의 유골이 한자리서 발견됐다는 점이다. 사망 후 시신이 옮겨졌다는 의견과 유골 발견 지점이 사망 장소라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지만, 5명이 함께 있다가 사망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거의 없는 상태다. 아이들이 살해됐다면 1명 혹은 그 이상의 범인이 5명을 한 자리에서 통제했다는 뜻이다. 

용의자·흉기도 특정 안 돼
30년간 추측·소문만 무성

당시 아이들 모두 초등학생이었지만, 이 가운데 3명은 4~6학년의 고학년이었다. 아이들을 한꺼번에 제압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한 누리꾼은 아이들 모두에게 강제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생님’을 용의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폭력성이 매우 높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위해를 끼쳤다는 주장이다. 

흉기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경북대 법의학팀은 “두개골 손상 흔적을 분석한 결과, 아이들은 ‘ㄷ자’ 모양의 예리한 흉기와 발사체에 의해 타살됐다”고 발표했다. 실제 일부 아이들의 두개골에서 뾰족하게 찍힌 흔적과 넓게 깨진 흔적이 함께 발견됐다. 그런 흔적을 만들 수 있는 흉기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지만 ‘공업용 망치’로 추정됐을 뿐 정확하게 특정되진 않았다. 
 

▲ ⓒ고성준 기자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개구리소년 사건을 ‘1990년대에 일어난 21세기형 범죄’라고 분석했다. 당시 국내에선 단어조차 생소했던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범인이 아이들을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살해했다는 주장이다. 정신이상자의 소행으로 보기엔 상당히 침착하고 어느 정도 규칙성을 띤 공격 패턴을 근거로 들었다.

지난 2019년 당시 민갑룡 경찰청장은 개구리소년 28주기 추모제에 참석해 “사건을 원점에서 재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의 DNA 분석으로 화성연쇄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특정된 때였다. 그는 “화성연쇄 살인사건 사례처럼 개구리소년 사건에 남겨진 유류품, 현장 증거물 등을 첨단과학기술을 활용해 면밀하게 재조사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왜 죽였나


개구리소년 사건의 공소시효는 지난 2006년 3월25일로 이미 만료됐다. 범인을 잡아도 처벌할 수 있는 시한을 넘긴 지 오래라는 뜻이다. 그래도 우종우씨는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된 장소를 찾을 때마다 그곳에 놓인 꽃다발을 유심히 살핀다. “혹시라도 범인이 쪽지를 써놓고 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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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