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개구리소년 30주기 ①30년 아이들 쫓은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회장

“불안감 조성 위해 희생됐다”

아이는 열세 살, 아버지는 마흔세 살. 아이는 열세 살, 아버지는 일흔세 살. 아이는 평생 열세 살인데 아버지만 나이를 먹었다. 세월이 하얗게 내린 머리카락, 깊게 패인 주름은 아이 잃은 부모의 슬픔이 남긴 흔적. 1991년 3월26일 ‘도룡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선 아이들은 30년 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을 기다린다. [편집자 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 회장은 개구리소년 사건을 계기로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 그의 인생은 개구리소년 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 아이들의 흔적을 쫓아 유가족과 동행한 30년 세월은 나주봉 회장을 개구리소년 사건의 또 다른 ‘산 증인’으로 만들었다.
 

▲ 지난 13일,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회장이 &lt;일요시사&gt;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고성준 기자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이하 전미찾모)’ 회장은 매년 2~3월이 가장 바쁘다. 3월26일 개구리소년 추모제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추도사를 쓰느라 머리를 싸매는 것도 이 시기다. 매번 추모제 하루 전날 먼저 대구로 내려가 현장을 살핀다. 20여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해온 일이다.

매년 3월26일
추모제 준비

나 회장은 올해로 66세. 그중 무려 30년을 개구리소년 사건을 쫓는 데 쏟았다. 1991년 7월 인천 월미도에서 아이들을 찾던 개구리소년 유가족과 처음 만나 현재까지 연을 이어왔다. ▲아버지들이 트럭으로 전국을 수색할 때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됐을 때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을 때 등 개구리소년 사건의 중요한 순간마다 나 회장은 유가족 곁을 지켰다.

강원도 홍천 산골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모친이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뜨면서 동생들을 돌보는 일은 전적으로 그의 몫이 됐다. 아버지가 일을 나간 사이 동생들을 씻기고 먹이고 입히느라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15세 때 강원도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17세 때 이모의 소개로 인천의 중국집에서 일하다 서울로 오게 됐다.

잘 먹지도 못하고 몸을 혹사하던 중 덜컥 폐결핵에 걸렸다. 기침을 하다 피를 쏟아냈다. 나 회장은 당시 먹었던 약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카나마이신과 마이임부톨. 모두 결핵치료제로 사용되는 약이다. 먹는 건 부실한 데다 독한 약을 먹다 보니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갔다. 주변 동료들도 그를 멀리했다.

“몸은 아프고 일도 못하고, 삶의 의미가 없었어요. 사이나라고 있어요, 일명 청산가리. 시골에서 꿩 잡고 이러는 데 쓰는 거. 예전에는 약국에서도 그걸 팔았다고. 그래서 그거를 사서 ‘오늘 죽을까. 내일 죽을까’ 정하고 있었지. 근데 그때 시장에 갔다가 점쟁이를 봤어요. 쌀 뿌리고 엽전 던지고. 그중 한 사람 앞에 앉았죠.”

점쟁이는 그를 보자마자 대뜸 “달밤에 원숭이가 곡을 한다. 뗏장 이불을 덮을 운수”라고 말했다. 뗏장은 ‘흙이 붙어 있는 상태로 뿌리째 떠낸 잔디의 조각’을 의미한다. 무덤을 파랗게 만들기 위해 덮는 ‘떼’를 뜻하기도 한다.

인천 월미도에서 각설이 공연하다
전단지 나눠주던 유가족 처음 만나

점쟁이는 나 회장이 죽을 운수라고 말해준 것이다. 안 그래도 죽을 마음을 먹고 있던 그에게 점쟁이의 말은 치명타였다. 

소주 두 병과 쥐포 한 마리, 사이나 한 조각을 들고 무작정 한강다리를 걸었다. 추운 겨울 차도 없고 가로등 불빛도 희미하던 거리를 걸으며 소주 병나발을 불었다. 사이나를 삼킬 만큼의 소주만 남기고 전부 마셔버린 그는 한참 동안 강물을 바라봤다. 이미 약해진 몸에 술을 들이 붓다 보니 금세 취기가 올랐다. 
 

▲ ▲▲ <일요시사>와 인터뷰 중인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회장 ⓒ고성준 기자

“사이나를 손에 꼭 쥐고 시커먼 강물만 보고 있었죠. 춥고 무섭고 눈물은 줄줄 나고. 술은 계속 오르고. 그런데 그 시커먼 강물 여울 속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이더라고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우리 엄마. 그 자리에서 바닥에 얼굴을 묻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정신을 차렸더니 먼동이 뿌옇게 오르더라고. 무슨 생각이었는지 다시 터덜터덜 걸어서 병원에 갔지.”

이후 그를 가엾게 여긴 약사가 치료를 도와주면서 폐결핵은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3년을 꼬박 앓고 나서야 완치가 된 그는 서울 청량리에 자리 잡았다. 그때가 1980년 5월, 그의 나이 26세 때였다. 노점으로 생계를 이어가려 했지만 단속이 심해지면서 연이은 실패를 맛봤다. 결국 각설이 분장을 하고 춤추면서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일에 뛰어들었다. 1991년 7월, 그가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뀐 때라고 말한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폐결핵 걸려
자살 생각도

“인천 월미도에 갔던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3명이 한 팀이어서 돌아가면서 쉬고 있는데 저쪽에서 ‘우리 아이들을 찾아주세요’ 이런 소리가 들리고 40대 정도 된 남자들이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어요. 그때는 온 바닥에 껌이 그렇게 많았는데, 어떤 여자가 그 전단지로 자기 하이힐에 붙은 껌을 떼는 거예요. 아니, 그걸 보는데 마음이 좀 이상했어요.”

1991년 3월26일 개구리소년 사건이 일어나고 아버지들은 트럭을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7월 땡볕 아래 다섯 아버지들이 아이를 찾아달라고 전단지를 돌리는 모습이 나 회장 눈에는 그렇게 안쓰러웠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들에게 다가가 전단지를 나눠주겠다며 한 묶음을 받아왔다.

이것이 바로 개구리소년 아버지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개구리소년 사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아버지들과 전단지를 나눠주는 각설이에게로 취재 요청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이후 나 회장과 아버지들은 청량리역에서 다시 만났다.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연락처를 주고받고 상황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함께 각설이 공연을 하던 사람들은 하나둘 그를 떠나갔다. 

나 회장은 그때부터 아예 대구로 내려가 아버지들과 동행했다. ‘청량리 털보 각설이’로 불렸던 나 회장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 회장이 각설이 공연을 통해 모금한 돈과 사회 각계의 후원으로 개구리소년 사건의 현상금이 마련됐다. 당시 개구리소년 전단지에 적혀있던 4200만원이라는 액수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사무실 내부에 실종 전단들이 빼곡히 붙여져 있다. ⓒ고성준 기자

“읍 단위는 빼고 군 단위 이상의 마을은 다 가봤어요. 혹시나 새우잡이배 같은 데 팔려 갔을까봐 작은 섬에도 들어가서 찾아봤죠. 그 사이에도 시장통 같은 사람 많은 곳에 가서 공연도 하고요. 다들 먹고 살기 힘든 때라 아버지들도 넉넉지가 않았어요. 어떻게든 벌어야 했죠.”

그렇게 3년6개월 동안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나 회장과 아버지들은 남은 가족들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트럭은 폐차를 해야 할 정도로 낡은 상태였다. 나 회장도 서울 청량리로 돌아와 다시 노점을 차렸다. 이전과 달라진 것이라면 노점 리어카에 실종아동의 전단지가 항상 비치돼있었다는 점. 

노점 리어카에
전단지 붙이고

“개구리소년을 찾으러 다니는 동안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님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그분들이 주신 전단지를 하나둘 받아 왔습니다. 그걸 노점 리어카에 붙였어요. 시민들이 그걸 보고 제보를 해주시더라고요. ‘어디에 봉사를 하러 갔는데 아이를 봤다’ 이렇게. 그럼 또 안 갈 수가 없는 거예요.”

나 회장이 지금까지 전국의 고아원, 기도원 등을 뒤져 찾아낸 실종아동은 수백여명에 이른다. 나 회장이 실종아동을 찾아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를 찾는 과정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폭행 전과도 잔뜩 쌓였다. 누군가는 훈장이라고 추켜세우지만 나 회장은 창피한 기록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2001년 서울시민대상과 함께 받은 상금 300만원으로 지금의 전미찾모 사무실을 만들었다. 나 회장이 시화공장에 직접 찾아가 짜온 컨테이너는 20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청량리역 2번 출구 쪽에 놓인 노란 컨테이너 벽면은 실종아동들의 전단지로 빼곡하다. 실종아동 부모들, 실종아동 문제를 개선하겠다던 정치인들, 경찰, 동네 주민 등이 전미찾모를 드나들었다. 
 

▲ 개구리소년 30주기 추모비

정신없이 바쁜 나날 중에도 나 회장은 개구리소년 사건을 잊지 못했다. 나 회장은 지난 2~3월 3번에 걸쳐 진행된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개구리소년 사건에 대해 ‘정말 아이러니하다’ ‘이상한 사건’ ‘의문 투성이’ 등이라고 표현했다.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유가족 이상으로 훤히 꿰고 있지만 끝내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모습이었다. 

실제 사망원인 등에 있어서는 나 회장과 유가족의 생각이 다르기도 하다. 나 회장은 정치적 상황이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적 불안감 조성을 위해 개구리소년 사건을 만들어냈다는 의견이다.

반면 우철원군의 아버지 우종우씨는 아이들이 봐서는 안 될 무언가를 봤고, 그래서 죽임을 당했다고 보고 있다. 

실종아동들 대부로 인생 바뀌어
고아원·기도원서 수백명 찾아내

30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같은 상황을 보고 들은 나 회장과 유가족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릴 만큼 개구리소년 사건에 의문점이 많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나 회장은 개구리소년 사건을 놓을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큰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사회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개구리소년 추모비 건립을 추진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유가족들은 당초 추모비 건립을 반대했다고 한다. ‘아직도 개구리소년 사건에 매달려 있느냐’ ‘지들(아이들)이 산에 가서 죽은 거 아니냐’는 등 유가족과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말이 쏟아질까 두려웠다.

하지만 나 회장은 오래 전부터 개구리소년 추모비 건립을 밀어붙였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서 잊혀 가고 있는 개구리소년 사건이 추모비 건립으로 다시 주목받을 수 있다고 여긴 것. 나 회장은 지난달 27일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된 대구 와룡산 세방골과 추모비 건립 예정 장소를 찾아 묵념하고 소주를 뿌렸다. 2001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김철규(김종식군 아버지)씨도 추모했다.

김씨는 아들의 유골을 보지 못했다. 
 

▲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사무실 전경 ⓒ고성준 기자

“철원아, 호연아, 영규야, 찬인아, 종식아. 너희가 땅속에 오랜 세월 묻혀 있다 뭍으로 나왔는데, (그동안)너희들 이름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이제 며칠 후면 너희 5명의 이름을 새겨 넣은 아담한 추모비를 마련할 것이다. 그동안 어두운 곳에서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만 이제부터 너희들의 이름을 알리고 범행의 실체가 밝혀지는 그날까지 너희들 아버지와 아저씨가 열심히 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도와주거라. 그리고 종식이 아버지, 우리 지켜봐 주시고 당신 몫까지 우리가 힘을 합쳐서 범인을 꼭 잡아서 처벌하는 그런 시간이 되도록 만들어 주세요.”

나 회장은 생이 끝나는 그날까지 개구리소년 사건을 쫓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제 인생에서 개구리소년 사건을 빼면 나주봉 자체가 사라지는 겁니다. 명확한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계속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개구리소년 사건의 범인을 향해서도 말을 남겼다. 

범인 본다면
“꼭 알려주길”

“혹시라도 범인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우리 아이들을 왜 죽여야 했는지, 그 이유라도 알려 주십시오.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겠습니다. 공소시효가 이미 끝났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다섯 아버지들 가운데 한 분은 돌아가셨고 세 분은 병석에 누워 있고 이제 활동하시는 분은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이분들이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도록 꼭 알려 주십시오. 정말 답답하고 울분이 터집니다. 꼭 좀 알려 주십시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개구리소년 30주기 추모제 ‘추모비 공개된다’

오는 26일 대구 와룡산 선원공원에서 ‘개구리소년 추모제 및 기원비 제막식’이 열린다.

3.5m(가로)×1.3m(세로)×2m(높이)의 화강석 재질로 제작된 조형물은 ‘엄마의 품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감싸주는 포근함, 보호막, 안식처’ 등을 상징한다.

꽃바구니 안의 꽃송이 5개는 개구리소년 5명을 의미한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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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