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개구리소년 30주기 ④우철원군 아버지 우종우씨의 ‘잃어버린 30년’

“웃는 얼굴 아직도 선한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우리 애가 어린양 부린다고 아버지하고 엄마한테만 요래요래 했거든요. 품에 파고들면서 아버지, 아버지 하는데 막 녹는다 아입니까. 애가 ‘아버지!’ 하면서 저 골목 끝에서 뛰(어)오던 그 얼굴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말입니다. 달리기를 잘해서 살아 있다 카믄 운동을 했을 낀데….”
 

우철원군의 아버지 우종우씨는 개구리소년 30주기를 한 달 앞둔 지난 2월27일 대구 와룡산 세방골을 찾았다. 해당 장소는 2002년 9월26일 개구리소년 5명의 유골이 발견된 장소다. 실종 당시 철원군은 초등학교 6학년, 13세로 아이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다. 

슬픔 줄었지만

올해 일흔 세 살의 우씨는 낙엽으로 뒤덮여 발 디딜 곳도 제대로 찾기 힘든 산길을 성큼성큼 걸어 올랐다. 한 손에는 북어포와 소주 2병을 챙겨 든 채였다. 아들 철원군의 유골이 발견된 이후 우씨는 20여년 동안 그 산길을 수천 번 오르내렸다.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된 1m 깊이 골짜기 바로 옆 터에서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전미찾모) 회장의 주도로 매년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추모제를 열지 못해 현장은 28주기 때 모습을 간직한 채였다. 

2019년 걸어둔 28주기 추모제 현수막은 바람에 풀려 나무 사이에 널브러져 있었다.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과 나 회장이 보낸 근조화환은 다 시든 상태였다. 그 옆으로 누렇게 마른 꽃다발이 눈에 띄었다. 우씨는 함께 산에 오른 나 회장과 그 꽃다발을 오랫동안 이리저리 살폈다.


“나 회장, 이거 봤나. 누가 추모의 뜻으로 놓았겠지, 안 그래요? 그래도 혹시 범인이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갔을 수도 있다 아이가…. 여기 올 때마다 못 보던 꽃다발이 있으면 유심히 봅니다. 쪽지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된 골짜기는 성인 1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비좁았다. 아이들 5명은 실종된 지 11년6개월 만에 이곳에서 유골로 나타났다. 우씨는 골짜기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북어포를 놓고 소주를 뿌리면서 몇 잔을 안주도 없이 거푸 마셨다. 

트럭으로 전국 헤맨 3년6개월
경찰 수사에 대한 아쉬움 여전

“우리 철원이, 호연이, 영규, 찬인이, 종식이 전부 다 보고 싶다. 너그들 위해서 내가 묵을란다. 뭐 30년 돼버렸는데 내가 애들 왜 잘못된 건지를 확인하고 죽어야 되는데. 그때까지는 안 살겠나.”

경찰은 연인원 35만명을 동원해 탐침봉 수색 방식으로 와룡산 일대를 뒤졌다. 단일 사건으로는 국내 최대 인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등산객 2명의 신고로 발견됐다. 수색지역에 세방골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씨는 자택으로 자리를 옮겨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당시 경찰 수사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 ▲우철원군의 부친 우종우씨 ⓒ배승환 기자

“그때는 그 지역에 나무들이 다 작았어요. 3월이라 위에서 보면 바닥이 훤하게 보였다고. 애들 없어진 다음날에 헬리콥터를 타고 찾아 댕겼는데 그때는 담배갑까지 보있다 아입니까. 저쪽(세방골)까지 수색했다 카믄 애들을 좀 더 빨리 찾았을 낀데…. 경찰이 와 그기를 수색을 안 했는지를 모르겠십니더.”


금세 찾을 줄 알았던 철원이는 결국 유골로 돌아왔다. 그 이후 20여년이 흐르는 동안 슬픔은 줄어들고 분노는 사그라진 반면 사건의 진실에 대한 답답함과 아이를 향한 그리움은 더욱 커졌다. 사망 원인, 범인의 정체 등 어느 하나 명확하게 밝혀진 것 없이 의혹만 더해진 터라 아들의 실종과 죽음을 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애들이 여까지 와 왔는지는 몰라도, 집을 못 찾아온다는 건 말도 안 됩니더. 왜 못 왔겠나? 집에. 30년 지났는데도 애들이 집에 오지를 못하고 있어. 정말로 이거는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세상에 한두 명도 아니고 한꺼번에 다섯 명씩 실종되고 살해돼가 이런 험한 곳에 나타났다는 거는 어느 누구도 이해가 안 가는 짓 아입니까.” 

우씨는 다른 아버지들과 트럭 한 대로 전국을 돌았다. 트럭 뒤편에 댄 합판에 아이들의 대형 사진을 붙였다. 사람 많은 곳에서는 전단지를 나눠줬다. 끼니는 우동 같은 간단한 요깃거리로 대충 때우고 공용 화장실에서 씻었다. 군 단위 마을은 물론 작은 섬까지 뒤졌다. 그러다 제보가 들어오면 다음 목적지는 그곳이었다.

언론 꺼렸지만 그래도 감사
애들 계속 기억됐으면 바람

“시장 통로 같은 데서 보믄 다리 질질 끌고 다니는 그런 사람 있지요? 동전통 앞에 갖다 놓고 구루마 끌면서. 다리를 이래가 묶어 놓고 3개월만 있으면 못 피진다 카던대요. 애들을 잡아가서 그래 하고 있다고 캐가 거기도 찾아가 보고, 앵벌이 하는 데서 봤다고 캐가 거기도 가보고. 근데 전부 잘못된 제보였어요. 그러는 사이 시간만 자꾸 흘렀지.”

유가족의 전국 수색은 3년6개월 만에 끝났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찾지 못하고 남은 가족은 가족대로 힘든 상황이 이어지면서 아버지들은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유가족은 이제 아이들을 찾는 것은 경찰의 몫이라고 호소를 거듭했다. 남은 가족들을 돌봐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30년 세월은 유가족을 갉아먹었다. 허위제보는 물론 유가족의 집에 전화를 걸어 아이인 척하는 장난전화도 많았다. 한 교수가 종식군의 아버지인 김철규씨가 아이들을 살해하고 집에 묻었다고 주장한 일도 있었다. 포클레인으로 김씨의 집 창고 부근을 파헤치는 장면이 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당연히 아이들의 시신은 없었고 유가족은 큰 상처를 입었다. 
 

▲ ▲▲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 회장(사진 왼쪽)과 고(故) 우철원군의 부친 우종우씨 ⓒ김희구 기자

“30년 동안 신문사, 방송국에서 받은 명함만 이만큼입니다. 몇 년 전부터는 언론도 만나고 싶지 않고 다 잊고 싶다는 생각이 들대예. 예전에 KBS 방송국에서 ‘언제 제일 괴롭습니까’ 묻는데, ‘지금 이 순간이 제일 괴롭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방송 도중에. 그 사람이 당황할 거 아입니까. 피하고 싶어요, 사실은. 한두 번 하는 것도 아이고. 인자 할 말도 없고.”

우씨는 추모제도 지내고 싶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사건이 잊혀가는 것을 매년 확인하는 것이 괴롭다고 했다.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우씨의 말을 듣고 있던 나 회장도 “실제 추모제를 찾는 분들이 매년 줄어들고 있죠. 언론 보도도 그렇고요. 개구리소년이 이제 전설이나 도시괴담처럼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움 더해

그래도 우씨가 진짜로 언론을 마다한 적은 없다. 자신이 괴로운 것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애들이 잊히는 게 두려운 까닭이다. 대구시가 아이들의 유골 발견 장소 인근에 추모비 건립을 약속한 것도 희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추모비 건립을 계기로 또 다른 성과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는 중이다. 


“추모비가 생기면 누가 와서 부수지 않을까, 훔쳐가지 않을까 매일 걱정해야 해서 처음엔 원치 않았어요. 또 추모해주는 사람도 있겠지마는 ‘아직도 이 얘기를 하고 있느냐’며 싫어할 사람도 있을 테니까. 애들 이름을 돌 뒤에 넣어달라 한 것도 혹여나 나쁜 소리 들을까 봐 그리 했습니다. 그래도 인자 집하고 가까운 곳에 우리 철원이 이름 새겨진 추모비가 생겼으니 시간 날 때마다 자주 들다보고 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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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