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세 가족’ 경찰 조직은 지금…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12.21 11:55:25
  • 호수 13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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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빌빌거리는 사이 ‘차곡차곡’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른 경찰개혁이 이뤄졌다. 이번 개혁에 따라 경찰 조직은 ‘국가경찰’ ‘수사경찰’ ‘자치경찰’ 등 세 조직으로 나뉜다. 이로 인해 ‘치안체계에 혼란이 빚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함께 나오고 있다. 
 

▲ 서울지방경찰청

이른바 ‘권력기관 개혁 3법’으로 불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과 경찰법·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를 통과하면서 주요 권력기관 중 체질이 가장 많이 달라질 곳은 경찰이다. 당장 올 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1차 수사 종결권을 확보한 데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도 가져오게 되면서 힘이 세졌다. 

국·자·수
세 분야 공존

이에 따른 경찰 권한을 분산할 필요성도 높아졌다. 그 장치로 자치경찰제가 도입되고 국가수사본부가 출범된다. 내년부터 국가·자치·수사 경찰이 공존하는 ‘한 지붕 세 가족’ 체제로 바뀌게 된 것이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경찰개혁 법안 국회 통과와 관련해 지난 16일 “앞으로 정책의 수립·집행·점검 전 과정에 걸쳐 공개 행정을 더욱 강화해 법 집행의 투명성을 높여 나가겠다”며 “경찰의 비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정법이 시행되면 국가·자치·수사 사무별 지휘·감독기구가 분리되고, 그동안 경찰청장에게 집중됐던 권한이 각 시·도, 국수본으로 분산되면서 사실상의 분권 체계가 갖춰지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던 치안업무를 국가와 시·도가 같이 책임지는 형태로 바뀌게 된다”며 “시·도지사에 치안 책임이 부여돼 그에 맞는 예산과 인사 권한이 이양된다”고 덧붙였다.

내년 1월부터 경찰 조직이 국가·자치·수사 사무별로 지휘·감독기구가 분리되면서 몸집이 커진다. 당장 서울지방경찰청은 ‘넘버2’인 차장이 1명에서 3명으로 늘어나 3차장 체제로 바뀔 전망이다.

국가사무는 1차장이, 수사사무는 2차장이, 자치사무는 3차장이 맡는 방식이다. 공식명칭도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서울특별시경찰청으로 바뀐다.

국가·경찰·수사 세분화
업무 혼선·비효율 등 우려

수사국 내에는 수사부·형사부·사이버수사국이, 보안국에는 안보수사국이 확대 개편될 것으로 보인다. 2년 단임 임기제인 국수본부장은 임용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일단 공석으로 출발할 것으로 보인다. 

지방청도 개편되는데 우선 명칭이 시도경찰청으로 변경된다. 자치경찰제가 도입됨에 따라 서울청은 3차장가, 나머지 지방청은 3부장 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수사·자치 사무를 각각의 차장과 부장이 담당하는 것이다.

김 청장은 “기획재정부에서 최종적으로 확정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될 것”이라며 “경정 이하에 대해선 승진을 제외한 나머지 인사 권한이 시도 자치경찰위원회나 시도지자체장에게 위임돼 인사권도 분산되는 효과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하는 내용이 담긴 국가정보원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으면서 새롭게 바뀔 경찰의 모습도 확정됐다. 경찰은 국가정보원법과 경찰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과 관련해 “안전과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 김창룡 경찰청장

기존엔 경찰청장이 경찰 전체를 지휘·감독했다면, 앞으로는 수사·국가·자치 사무 등까지 지휘·감독해야 하는 이른바 ‘한 지붕 세 가족’ 체계로 변하게 됐다. 이로써 수사 구조개혁의 목적으로 검찰과 국정원의 기능은 축소되고 경찰의 권한은 대폭 커졌지만,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장치는 부족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 경찰법 전부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하면서 문재인정부의 권력기관 개혁입법도 마무리됐다. 경찰은 앞으로 국가경찰, 수사경찰, 자치경찰로 나뉘게 된다.

기존 경찰의 지휘·감독체계는 경찰청장을 정점으로 한 ‘톱다운’ 방식이었다. 톱다운이란 최고 지도자가 직접 결정한 대로 일선 경찰들이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즉 최고 결정권자가 먼저 결정을 하고 그 다음 실무자들이 나머지 사항들을 조율해 나가는 방식을 의미한다. 

대공수사 이관
국정원과 협력

하지만 바뀐 지휘 체계는 각각 경찰청장, 국가수사본부장, 시도 경찰위원회가 나눠 맡게 된다. 경찰청 관계자는 “수사 구조개혁에 따른 경찰권 비대화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급격한 변화로 인해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는데 경찰 사무를 3등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혼선이 오고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찰청장의 권한은 줄었지만 비대해진 수사권을 그대로 넘겨받은 국가수사본부(국수본)의 정치적 독립·중립성을 어떻게 확보할지도 관건이다. 

경찰의 한 축이 될 자치경찰이 시·도지사를 포함한 지자체 정치권력 입김에 휘둘릴 수 있지 않겠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통과된 경찰법 전부개정안에 따르면 내년부터는 한 경찰서 안에 세 종류의 경찰관이 함께 근무하게 된다. 수사를 담당하는 수사경찰과 담당 지역 내 생활 안전·교통·경비·일부 수사를 담당하는 자치경찰이 있고, 그 외 국가경찰 사무를 담당하는 국가경찰이 있다.

당장 일선 경찰들은 경찰 사무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런 방식을 두고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한다.

한 수도권 경찰청 직장협의회 관계자는 “성폭력 범죄는 자치경찰이 수사하게 돼있는데 수사 도중 국수본 관할의 다른 범죄 혐의를 인지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어려운 사건은 떠넘기려 할 것이고 실적에 도움이 될 만한 사건은 서로 가져가려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복잡한 지휘계통도 문제다. 예컨대 자치경찰은 시·도지사 소속의 시·도경찰자치위원회(이하 자치위)의 지휘를 받지만 성폭력·학교폭력 범죄 등 자치경찰 관할의 일부 수사는 자치위가 아닌 국수본부장의 지휘를 받는다. 
 

이훈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대로 자치경찰제를 시행하려면 수사 기능까지 지자체로 모두 넘겨줘야 하는데, 알짜배기 수사 권한은 국수본 형태로 국가경찰 내에 남겨두려다 보니 기형적인 안이 탄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자체 사무가 경찰에 전가될 것이란 우려도 여전하다.

몸집은 
커진다

서울의 한 경찰관은 “지금도 명도집행처럼 명백한 지자체의 사무임에도 경찰 출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일이 부지기수”라며 “지자체 사무를 경찰에 떠넘기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경찰청은 통과된 개정안에서 자치경찰제 사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사무 전가 우려를 최소화했다는 입장이다. 노숙인·주취자·행려병자 보호조치 등이 기존 안에 포함됐다가 일선 경찰의 반발로 삭제됐고, 지나치게 넓게 해석될 수 있는 표현들은 명확하게 다듬었다.

경찰청은 오히려 지자체와 지방경찰 간 업무 중복으로 인해 발생했던 비효율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 예를 들어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 시 면허증은 경찰서에 반납하고 교통비는 지자체에 지급하던 것이 한곳에서 통합 처리되는 식이다.

경찰 안팎의 관심은 새로 생길 국수본부장자리에 쏠리고 있다. 국수본부장은 1차 수사종결권 확보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로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경찰 수사권을 경찰청장에게서 넘겨받게 돼있다. 경찰청장 권한을 분산하려는 조치인데, 일각에선 3만명 규모의 수사경찰을 지휘하는 막강한 자리를 하나 더 만든 셈이라는 시각도 있다.


경찰은 일단 국수본부장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본적 장치는 법 조문에 담았다는 입장이다. 국수본부장이 헌법·법률을 위반한 때는 국회 탄핵소추 대상이 되도록 규정하고 있고, 경찰청장은 원칙적으로 개별 사건을 지휘·감독할 수는 없지만 ‘긴급하고 중요한 사건 수사’에 있어서는 예외를 뒀다.

일종의 견제 장치인 셈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정권의 성향·코드와 상관없이 정확하고 중립적인 수사를 할 수 있는 인물을 (국수본부장으로)뽑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중립적 수사 가능한 인물 
해당기관과 관계설정 주목

자치경찰을 지휘·감독하게 될 자치위 역시 마찬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자치위는 총 7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시·도의회에서 2명, 교육감이 1명, 자치위 위원추천위원회에서 2명, 시·도지사가 1명, 국가 경찰위에서 1명을 임명하게 돼있다. 같은 지자체 내에서 선거로 선출되는 시·도의회와 교육감 구성이 시·도지사와 같은 정치적 이해를 할 가능성이 큰 만큼 시·도지사의 입김이 강하게 미치는 자치위원이 과반을 차지할 수 있다.

곽 교수는 “지방 토호세력을 비롯해 지방자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경찰 업무에도 영향력을 끼치려 할 수 있다”며 “시범운영 기간에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수처가 등장하고,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폐지되면서 경찰이 해당 기관과 어떻게 관계 설정을 해 나갈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우선 공수처는 고위 공직자 비위를 수사 대상으로 두고 있는 만큼 경찰과는 서로 견제하는 관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공수처 수사 대상에는 경무관 이상 고위 경찰공무원과 그 가족이 포함돼있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수사를 진행하던 중에 고위 공직자 범죄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즉각 공수처에 통보하게 돼있다. 이후 공수처장이 사건 이첩을 요구하면 경찰은 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두 수사기관이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국정원과 경찰은 기본적으로 협력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원이 강점을 가진 대공 정보권이 그대로 유지되는 만큼 경찰의 대공 수사는 어느 정도 국정원의 협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청장은 국정원법 개정안이 통과된 지난 13일 “3년의 유예기간 동안 안보수사 역량을 높이고 관계 부처와 협력 체계를 공고히 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국정원의 정치 개입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5·18, 세월호, 댓글 사건, 민간인 사찰 같은 국정원 관련 의혹이 두 번 다시 거론되지 않도록 진상규명에도 끝까지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치안 혼란?
떠넘기기?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에 대해선 “대공수사권도 정보 수집과 수사 분리의 대원칙을 실현해 인권 침해 소지를 없앴다”며 “국가안보 수사에 공백이 없도록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전담 조직 신설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공수사권은?

대공수사권이란 간첩 등 국가보안법 위반 범죄에 대한 수사 권한을 가리킨다.

국가정보원뿐만 아니라 경찰·검찰도 갖고 있지만, 그동안 국정원의 전유물처럼 인식됐다. 

원래 이 조항은 중앙정보부 설립 직후(1961년 6월)에 공포된 중정법에 포함됐다.

당시 법률은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국내외 정보사항 및 범죄수사와 군을 포함한 정부 각부 정보수사 활동을 조정 감독하기 위해 중앙정보부장, 지부장 및 수사관은 소관 업무에 관련된 범죄에 관해 수사권을 갖는다’고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게다가 ‘검사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는 문구까지 포함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이 조항은 1963년 12월 중정법 개정 당시 ‘형법 중 내란죄·외환죄, 군형법 중 반란죄, 이적죄, 군사기밀누설죄, 암호부정사용죄,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에 규정된 범죄의 수사’라고 구체화 된 뒤 지금까지 골격을 유지해왔다.

과거 국정원의 대공수사는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몬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에는 한 기업의 홍콩 주재원이었던 윤태식씨가 1987년 1월 부인 김옥분(일명 수지김)씨를 살해한 사건을 ‘여간첩이 남편을 납북 기도한 사건’으로 조작해 발표했다가 2000년 언론 보도로 전모가 폭로되기도 했다. 

또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모느라 증거를 조작했다가 거꾸로 국정원 직원들이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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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