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04.27 05:39
최근 어느 종교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다시 한번 극단적 선택 문제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극단적 선택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건 비단 우리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만 해도 2019년 4만7000명 이상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등 전체 사망 원인 중 10번째였다고 한다. 특히 10~34세 사이의 청장년층에서는 2번째 사망 원인이었고, 35~44세 장년층에서는 4번째로 높은 사망 원인이었다. 비록 극단적 선택을 예측하는 건 쉽지 않지만, 사회적·문화적·환경적 위험요소를 해소함으로써 예방할 수 있다. 안타까운 건 잘못된 통념과 오해가 극단적 선택에 관한 사람들의 신념과 태도를 형성하게 하고, 이 신념과 태도가 도움을 구하는 데 주요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몇몇 사람은 극단적 선택을 할 위험이 높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오히려 그 사람의 극단적 선택을 부추긴다고 생각한다. 현실은 이와는 반대다.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사람과 묻고 이야기하는 것은 불안을 낮추고, 소통을 열고, 충동적 행동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 또 다른 통념은 흔히 극단적 선택을 언급하는 사람은 그냥 관심을 추구할 뿐이지,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 선
공공 분야, 민간 분야를 막론하고 효과성 그 이상의 효율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민간 분야는 이익이나 이윤을 높여서 자원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도 있겠지만, 거의 전적으로 예산에 의존하는 공공 분야는 그 예산 자원에 언제나 우선순위가 있고 당연히 그에 따라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치안 예산은 국가 예산서 최상위 순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만큼 경찰 예산이란 자원은 한계가 명확하다. 그래서일까? 최근 예산이나 경찰 자원과 관련된 두 가지 흥미로운 사건이라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하나는 경찰 예산을 절감했다는 포상으로 특별승진이 있었다는 소식이고, 나머지 하나는 예산·인력 상 어려움으로 치안센터를 대대적으로 폐쇄할 계획이라는 소식이었다. 사실 예산 절감은 자원의 한계에 민감할수록 중요한 일이고, 그 보상으로 특별승진까지 주어질 정도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막무가내식 예산 절감은 오히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절감되는 예산이라면 포상이 아니라 처벌의 대상이어야 한다. 예산 절감이 중요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치안센터의 폐지는 훨씬 더 깊은 고
최근 초등학교 교사들의 의문의 사망과 관련한 가해자, 또는 원인 제공자라고 추정되는 사람들에 대한 신상 털기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형태의 신상 털기는 결국 일종의 ‘사적 제재’로 작용하기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사적 제재를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법적 절차 없이 사적으로 내리는 형벌이다. 법치주의 국가서 사적 제재는 엄연히 금지되고 있다. 사적 제재 문제는 비단 국내에 국한된 게 아니며,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펜데믹을 계기로 마스크 미착용자를 향한 일종의 사적 제재가 유행병처럼 번지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사적 제재 행위를 ‘공개적 수치심 주기(Public Shaming)’ ‘공개적 망신 주기(Public Humiliation)’ 등으로 부르고 있다. 거의 모든 민주주의 법치국가서 사적 제재를 금지하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오판의 위험이다. 잘 짜인 체계를 갖춘 국가서도 무고한 사람이 억울하게 처벌을 받는 오판 사건이 적지 않게 발생하는 마당에, 사적 제재가 광범위하게 벌어진다면 오판의 위험은 훨씬 더 커지기 마련이다. 국가기관이라면 다양한 검증 장치가 있지만, 사적 제재에는 아무런 검증 장치가 없다. 국가에 의한 오
최근 주요 대중매체는 물론이고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사한 신종 범죄의 위험성이 부각되고 있다. 연애를 빙자해 벌어지는 이른바 ‘연애사기(‘Romance Scam’ ‘Romance Fraud’)’가 바로 그것. 연인이란 가면을 쓰고 벌이는 각종 연애사기는 전 세계에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실제로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해 미국인 7만여명이 연애사기로 무려 13억달러를 잃었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연애사기에 각별하게 주의할 것을 당부했고, 넷플릭스는 ‘데이트 앱 사기가 당신을 노린다’는 내용을 담은 <The tinder swindler>를 방영해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했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피해 금액도 더 커지고 있다. 국내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온라인 사기 중 연애사기를 포함하는 기타 유형으로 분류된 사기가 2017년 1만7073건서 지난해 4만7087건으로 5년 사이에 4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기타 유형이 연애사기를 뜻하는 건 아니지만, 그 증가폭은 무서울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연애사기를 표현할 때 ‘Scam’은 대체로
이태원 참사, 묻지마 범죄 등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느냐에 관한 물음이 부각되곤 한다. 그때마다 경찰은 조직과 구조 개혁을 내세우곤 했지만, 눈높이를 맞추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경찰이 추진하는 개혁이 ‘찻잔 속의 바람’이 아니라 ‘태풍의 눈’이길 원하는 시민에게는, 그들이 내놓은 자구책이 그리 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경찰은 시민의 바람을 몰라서였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지각변동을 일으킬만한 개혁적 변화를 원치 않았던 걸까?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게 관료제라지만, 국민을 보호할 사명을 가진 경찰이라면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경찰개혁의 필요성을 논하는 많은 사람은 기형적인 조직구조를 타파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찰은 순경서부터 경찰청장인 치안총감에 이르기까지 무려 11개 계급이 있고, 조직 형상은 철탑형, 항아리형, 피래침형 등으로 표현된다. 조직이 커질수록 업무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역할에 보다 많은 인력이 투입된다. 이는 곧 내근 인력의 증가로 이어지고, 일선 현장 인력의 부족을 초래한다. 도둑을 잡는 경찰보다, 그 경찰을 관리·감독하는 경찰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경찰은 부채꼴 모
경찰은 전통적으로 범죄를 통제하며, 그만한 책임과 역할이 있다고 여겨져왔다. 그리고 거의 모든 경찰이 안전의 중심에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더 안전해지기보다 범죄로부터 더 위험하고 두려운 ‘잔인한 세계 증후군(Mean World Syndrome)’에 노출돼있다. 이 같은 현실의 이면에는 범죄예방과 관련된 경찰의 역할에 관한 오해와 과신이 있다. 안전과 보안에 관한 전통적 접근은 ‘범죄와의 전쟁(War on crime)’으로 대표되는 ‘범죄에 대한 강경 대응(Tough on crime)’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 같은 접근법이 사회 안전에 끼친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최선의 범죄대책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지만, 그간 경찰은 범죄 발생 이후 대응법에 집중했던 게 현실이다. 질병을 치료하려면 비용, 고통, 시간 등을 투입해야 한다. 게다가 치료하더라도 질병에 걸리기 전보다 몸 상태가 좋아진다고 확신하기도 어렵다. 범죄 역시 마찬가지다. 질병을 예방하려면 병의 원인을 진단하고 진단에 따라 사전조치를 해야 하듯이, 범죄도 예방을 위해서는 범죄를 유발하거나 초래하는 저변의 근본적 원인을 찾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근
얼마 전 ‘살인’이나 ‘흉기 난동’을 예고하는 다수의 글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우리 사회를 불안에 떨게 했다. 당시 글을 게시한 사람들 대다수가 청소년이었다는 점과 그들의 활동 무대가 주로 SNS였다는 점이 부각됐다. 해당 사건은 비단 국내로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수년 전 미국에서는 10살이 채 되지 않았던 두 어린이가 친구를 숲속으로 유인해 흉기로 19회나 찌른 사건이 발생해 논란이 된 적 있다. 그 이유를 묻자 이들은 ‘인터넷 밈(Meme)’인 ‘슬렌더맨(Slenderman, 가공의 호러 캐릭터)’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고 진술했다. 그들 말대로라면 인터넷이 범행을 교사한 공범이라고 봐야 할까? 그들의 온라인 활동이 살인 미수의 범행을 하도록 현실과 허구의 구분을 흐리게 했다고 보는 게 타당한가?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언론폭력에 노출된 환경이 소비자의 폭력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미국 심리학회는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폭력적 비디오 게임 노출과 현실 세계 폭력 행동의 잠재적 관계의 존재를 재검토했다. 검토 결과 폭력적 비디오 게임은 공격 행위의 증대, 복합 공격성 점수의 증가, 공격적 인지의 증대와 관련이 있다는 것
대체로 강도나 절도와 같은 전통적 범죄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로부터의 공격과 범죄를 두려워한다. 살인은 놀랍게도 낯선 사람보다 아는 사람 사이서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범행의 상황, 동기 등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를 살인에 대한 첫 번째 통념이라고 한다. 학자들의 연구결과나 공식 범죄통계는 살인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면식관계, 즉 서로 아는 사이가 많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물론 살인이라고 모두가 이런 통념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강도 살인, 강도 강간과 같이 물질적 취득이나 기타 마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살인을 학문적으로 ‘도구적(Instrumental) 범죄’라고 한다. 도구적 범죄로서의 살인은 서로 알지 못하는 관계서 일어날 확률이 더 높다. 치정이나 보복 등을 목적으로 하거나 다수의 증오범죄를 포함하는 범죄 그 자체가 목적인 범죄를 이른바 ‘표출적(Expressive) 범죄’라고 한다. 다수 살인범죄는 표출적 범죄에 해당되는데 대부분이 면식 관계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살인은 왜 우리의 상식적 사고와는 사뭇 다를까? 그 이유는 살인을 포함하는 대부분의 폭력범죄의 특성 때
흉기 난동, 묻지마 살인, 이상 동기 등 흉폭한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는 가운데,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제 앰네스티서 실질적인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된 한국서 무기징역만으로 사형을 대신하기에는 피해자 가족의 양형 불만족이 크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부각시킨 배경으로 작용한 모습이다. 실제로 가석방으로 풀려난 장기 수형자나 무기수가 흉악한 재범을 범하는 사건이 꾸준히 발생하면서 이른바 법과 그 집행의 현실과 시민의 법 감정 사이에는 큰 괴리가 생기고, 이는 곧 법과 형사사법, 나아가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는 우려에서 나온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 그럼에도 법원행정처를 비롯한 일부 전문가 집단에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개진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기존의 가석방 없는 종신형 제도를 폐지하고 있으며,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그야말로 사형을 대신하는 최소한의 범위서 마지막 수단이어야 함에도 확대되고 남용될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논란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면 우리가 기대하는 목적은 무엇이며, 그 효과는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이와 유
코엔 형제가 감독한 2007년 미국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는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영화는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인 코맥 매카시가 2005년에 선보인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제목서 언급된 노인이란 생물학적으로 늙은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지혜를 가진 현명한 생각의 소유자’라고 한다. 영화는 그래서 이런 현명한 노인의 경험과 지혜대로 예측이 가능하도록 흘러가는 사회가 아님을 보여준다. 또 영화와 원작에선 세상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이 변하고 험악해져서 노인인 자신이 살아갈만한 나라가 아님을 드러낸다. 첨단기술이 편리함을 가져다줬지만, 이로 인해 세대 간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 즉 정보의 격차가 커지면서 첨단 과학기술에 익숙하지 못한 노인들에게는 더 불편하고 힘든 세상이 됐다는 것이다. 영화 속 ‘노인’과 현실의 ‘범죄 피해자’는 어쩌면 닮은 면이 많다. 아니나 다를까? 물론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범죄 피해자를 위한 나라는 없어 보인다. 극단적으로 보면 온통 ‘피의자를 위한 나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릴 적 교과서로 배
얼마 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시의회는 경찰의 과잉 대응으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자, 경찰에 예산을 배정하지 않고 해체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자 시민들은 그러면 질서는 누가, 어떻게 지킬 것인지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조금은 혁명적이기도 한 개혁으로서 경찰의 민영화(privatization)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경찰뿐 아니라 거의 모든 공공분야, 심지어 교도소와 전기 등 사회의 핵심 기반산업까지도 민영화가 자리잡았고, 경찰 분야의 민영화도 그 역사가 꽤 오래됐기에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흉악범죄를 계기로, 정부와 경찰에서는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그만큼 늘어나게 될 치안 일선 현장 인력의 수요는 어떻게 충족할 것인지가 관건이 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현장에서는 인력이 현저히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결코 절대 치안 인력이 부족한 것도 아님에도 현장 인력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내근 인력이 지나치게 많은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겠지만, 여기에 더해 경찰이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되거나, 오히려 민간 분야에 맡겨도 되는 분야도 여전히 경찰이 맡고 있고, 또 제복 입은 경찰
최근 ‘묻지마’식 흉기 난동이 이어지자 급기야 경찰청장은 경찰에 ‘특별치안활동’을 주문하고 나섰다. 특별치안활동은 경찰공무원의 일상적인 치안활동으로는 국민의 안전과 공공의 질서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될 때 경찰청장이 경찰인력과 장비를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재량적 조치다. 이 같은 특별조치는 대형 강력범죄가 발생해 국민의 불안감이 고조될 때 이에 대한 긴급대책으로 나오곤 한다. 가용 경찰 자원을 최대한 동원해 특정지역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고, 모방범죄를 집중적으로 단속하는 게 기본 골자다. 이번 특별치안활동은 신림역과 서현역 등에서 강력사건이 발생한 데 따른 조치다. 순찰 강화를 위해 형사인력이나 기동대를 취약지역에 배치해 거점근무를 서고, 경우에 따라 경찰특공대의 무력순찰도 강화된다. 경찰 장갑차가 등장하고 경찰 특공대원들이 배치된 이유다. 특별치안활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여름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에 따른 여성 안전 특별치안활동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경찰의 특별치안활동은 원래 목적 그대로 시민이 안전하다고 느끼게 하고자 위함이다. 특별치안활동으로 “경찰이 항상 어디에나 있다(omni-presence)”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범행 동기
최근 특정 SNS 영상과 게시글이 여러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해할 수 없다는 의아함과 더 나아가서는 화를 나게 하고 있다. 바로 ‘정당방위’ 문제다. 영상 속의 사람은 자신을 흉기로 공격하는 사람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나름의 방어행위를 했다고 생각했으나 오히려 폭력 행위의 피의자로 소환됐다고 언급했다. 우리의 형법은 21조에서 ‘정당방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현재 상당한 법익 침해 행위가 있을 것 ▲자신과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한 목적으로 방어한다는 의사를 가진 상당한 이유가 있는 방어행위여야 할 것 ▲도발하지 않을 것 ▲먼저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 ▲가해자보다 더 심한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 ▲상대가 폭력 행위를 그친 뒤에는 폭력을 사용하지 말 것 ▲상대의 피해 정도가 본인의 피해보다 심하지 않을 것 ▲전치 3주 이상의 상해를 입히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지나치게 엄격한 조건을 다 충족시킨다고 해서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이 전치 3주 정도면 어느 정도 폭력이고 피해인지, 일단 폭력을 멈췄다고 또 다시 폭력을 가할지 않을지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약자가 과연 흉기를 사용하지
경찰이 눈에 잘 띄는 제복을 입고, 눈에 잘 보이는 색상과 경광등을 갖춘 자동차로 순찰을 하는 것은 시민들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함이다. 경찰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잠재적 범죄자의 범죄 동기와 범행을 억제하고, 사람들은 보호받고 있어서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경찰 활동의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강조되곤 한다. 이를 학자들은 ‘경찰의 가시성(police visibility)’이라고도 하며 경찰은 자신의 가시성을 가급적 극대화하려고 한다. 심지어 경찰이 특정 시간에는 순찰을 하지 않았음에도 범죄자가 경찰이 어디엔가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범행을 머뭇거리게 한다는 것이다. 최근 연이어 ‘묻지마 범죄’ ‘이상동기 범죄’ 등이 발생하고 이에 편승한 ‘살인 예고’ 등 일련의 협박성, 경고성 글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등장하면서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은 테러리스터들이 노리는 테러의 목적이기도 하다. 즉, 시민들을 최대한 불안과 공포에 빠지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당국에서는 특별경찰활동이라는 이름으로 경찰 활동을 강화했다. 지하철역이나 백화점 주변, 도심 한복판에 경찰의 장갑차가 등장하고, 중무장한 경찰
언론 보도에 있어서 범죄 관련 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실정이다. 분명 범죄 보도는 범죄의 예방이라는 측면서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된다. 하지만 언론의 범죄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적잖은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범죄 관련 정보를 언론의 보도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면 사람들은 범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언론의 범죄 보도나 묘사가 때로는 대중의 정확하지 않거나 잘못되거나 왜곡된 범죄 인식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언론이 범죄 실상을 묘사하는 방식에 따라, 사람들은 범죄를 평면거울이 아니라 볼록 거울 또는 오목 거울을 보듯 받아들이게 된다. 일부 노상 범죄는 지나치게 강조돼 볼록 거울로 보듯 과장되고, 경제 범죄나 화이트칼라 범죄는 오목 거울로 보듯 과소평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범죄가 전체 범죄서 차지하는 비중은 2% 수준에 불과하지만, 성범죄가 전체 범죄 보도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이른다고 한다. 한 연구에서는 전체 범죄 중 폭력 범죄는 7%에 불과했지만, 언론의 범죄 보도 절반을 폭력 범죄가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왜곡된 인식은 효과적이지 못한 값비싼 공공정책을 양산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연이어 발생한 ‘묻지마 범죄’가 사회를 불안과 공포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 ‘살인 예고’라는 해괴한 ‘묻지마 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심지어 제1야당 대표에게 폭탄 테러를 예고하는 협박 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전국의 모든 경찰관들이 경계 태세를 갖추고, 폭탄 테러나 살인 예고 글에 일일이 출동해 확인하는 엄청난 사회적 손실을 야기하고 있다. 당연히 모든 시민은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이런 사상 초유의 사태에 호들갑을 떨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경찰은 특별 경찰 활동을 벌이겠다, 검찰은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핵심 대책은 강력한 처벌이라는 사후 대응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 세상의 모든 범죄에 대한 최선의 대책은 사전 예방이다. 범죄는 한 번 발생하면 반드시 피해자와 피해가 발생하기 마련이고, 일단 발생한 피해는 그 회복이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회복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고통과 노력과 자원을 필요로 한다. 이뿐이랴. 무차별 범죄는 온 국민을 범죄의 간접 피해자로 만들게 된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원하는 시간에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해 직장과 사회, 가정생활까지 제약을 받게 돼
최근 신림동서 ‘묻지마 범죄’가 발생하자 많은 사람이 불안과 공포를 호소하고 있다. 최근 몇몇 사람들은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겠다는 생각으로 각종 호신용품을 구입한다고 한다. 국가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국민들은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라고 세금으로 자원을 제공하고, 필요한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권한을 위임받은 국가가 제 할 일을 못해 선량한 시민을 범죄의 피해자로 내몰자, 이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 특히 범죄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이 호신용품을 구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여성들이 자기 무장에 주목하는 현상은 비단 국내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캐나다서도 최근 한 여성의 성폭행 피해를 계기로 여성들의 호신용품 구입이 폭증했다고 한다. 캐나다 CBC 방송서 여성 500명에게 무장 여부를 물었는데 응답자의 2/3가량은 무장했다고 응답했고, 나머지 여성들도 무장을 고려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안전 전문가들은 호신용품의 휴대와 그 사용이 또 다른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즉, 여성들이 무장한다는 것은 호신용품 휴대를 의미하지만, 이 단순한 노력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유발할 수 도 있다는
증오범죄는 편견의 범죄, 편견이 동기인 범죄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의 FBI는 편견(Bias)이라는 추가적인 요소를 갖는 살인, 방화, 기물파손과 같은 전통적 범행으로 규정한다. 증오 그 자체는 당연히 범죄가 아니지만, 편견으로 동기가 지어진 범죄를 범하는 것을 증오범죄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증오범죄는 인종, 종교, 정치적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을 표적으로 하는 범죄가 대부분이었다. 서구인들의 동양인에 대한 범죄, 나치의 유태인 학살 등이 증오범죄의 틀에 부합한다. 일반적 범죄는 피해자가 소유한 뭔가가 범법자에게 범죄를 범하게 하는 동기로 작용한다. 그러나 증오범죄는 피해자가 어떤 사람인지가 범죄를 범하는 동기가 되곤 한다. 그래서 증오범죄는 개인의 인종이나 민족, 종교, 성적 지향성, 무능력함 등에 기초한 적대감이나 편견으로 동기 지어지는 것으로 인식되는 모든 범죄라고 한다. 당연히 증오범죄는 신체적 폭력, 언어적 학대, 증오의 선동 등이 가장 보편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증오범죄가 특별하게 더 중요한 것은 심각하고 광범위한 범위의 영향을 그 피해 당사자는 물론이고 피해자가 속한 집단이나 사회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증오범죄의 피해자는 심
CIS 시리즈를 비롯한 미국의 대중적인 범죄 쇼와 드라마는 물론이고, 국내서도 인기 많은 범죄영화나 TV 드라마를 보면 거의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시청자로 하여금 범인의 검거에 법의학적 증거 분석이 그 열쇠라고 믿게 만든다. 이런 영화나 드라마서처럼 과연 법의학적 증거가 그토록 믿을만한 것인가? 유전자 증거, 교흔, 혈흔 분석, 지문 등 보편적 형태의 법의학 증거가 엄격한 검토와 조사 대상이 됐고, 일부는 영화나 드라마서처럼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곤 한다. 과학계서 신뢰를 얻지 못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경찰과 검찰서 활용되고 있는 교흔 분석에 근거해 33년의 무고한 옥살이를 한 오심 피해자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교흔뿐 아니라 다른 법의학적 분석기법들도 과학계에서는 의문시되고 있으나 여전히 검·경의 중요한 무기의 하나로 이용되고 있다. 문제는 바로 그런 기법들이 누군가에게 유죄 평결을 내리는 너무나도 확실한 대못이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중들은 과학계의 이 같은 우려를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심지어는 부정하고 싶어 한다. 심지어 가장 확실한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 분석도 표본의 오염 등 처리 과정이나 절차상의 문제 또는 기술
‘범법자 프로파일링’을 근심거리라고 털어놓은 누군가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 ‘프로파일링’이란 용어가 너무나 문제가 있고, 그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데 얽매여 있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프로파일링은 심리학자와 기타 행동 과학자나 사회 과학자가 법 집행에 기여하는 모든 것을 함축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대중적 통념(myths)의 커다란 긍정적인 결과는 대학은 물론이고 일반 대중과 사회서도 범죄, 범죄학, 그리고 범죄심리학, 법심리학 등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시장과 산업의 성장이다. 범죄에 관한 실화와 논픽션 영화나 드라마가 텔레비전 방송시간표를 장악하고, 범죄 사실이 뉴스 시간을 차지하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악당, 범인의 마음속으로 들어선다면 ‘프로파일러’란 인물을 자연스럽게 따를 것이다. 이 인물은 보통 사람들은 할 수 없는, 범죄를 해결하는 인물로 묘사되곤 한다. 그래서 범죄 프로파일링은 영화나 드라마서 아주 매력적으로 미화돼 초현실적인 지각, 감각 능력을 갖는 것처럼 묘사되고, 종종 사건 해결의 열쇠로 묘사되곤 한다. 오늘날 하나의 과학으로서, 프로파일링은 아직도 여전히 개념 정의와 경계가 별로 정해지지 않은 상대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