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요 대중매체는 물론이고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사한 신종 범죄의 위험성이 부각되고 있다. 연애를 빙자해 벌어지는 이른바 ‘연애사기(‘Romance Scam’ ‘Romance Fraud’)’가 바로 그것. 연인이란 가면을 쓰고 벌이는 각종 연애사기는 전 세계에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실제로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해 미국인 7만여명이 연애사기로 무려 13억달러를 잃었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연애사기에 각별하게 주의할 것을 당부했고, 넷플릭스는 ‘데이트 앱 사기가 당신을 노린다’는 내용을 담은 <The tinder swindler>를 방영해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했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피해 금액도 더 커지고 있다.
국내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온라인 사기 중 연애사기를 포함하는 기타 유형으로 분류된 사기가 2017년 1만7073건서 지난해 4만7087건으로 5년 사이에 4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기타 유형이 연애사기를 뜻하는 건 아니지만, 그 증가폭은 무서울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연애사기를 표현할 때 ‘Scam’은 대체로 온라인서 벌어지는 연애를 빙자한 신분 위조범의 사기행각을 주로 의미한다. ‘Fraud’는 오프라인서 신분을 속이거나 과장하면서 접근해 금전적 요구나 사기를 벌이는 것을 일컫는다.
연애사기는 기만적인 이득을 위해 연인관계로 추정되는 관계를 맺으려 하는 ‘사회적 공학(Social Engineering)’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피해자의 신뢰를 얻을수록 피해자로부터 금전을 뽑아낼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수작을 획책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물론 처음부터 피해자에게 금전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대신 의사소통하고 신뢰를 쌓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재정적 지원을 요구하는 이유가 피해자에게 그럴듯하고 타당한 것으로 보일 시점이 돼야 가해자는 상당 액수의 금전을 요구하곤 한다.
이 기간을 흔히 ‘그루밍 기간(Grooming Period)’라고 일컫는다. 첫 접촉서 첫 금전 전송, 전달까지의 시간적 간격이 길수록 가해자에게 넘어가는 금액이 커진다.
연애사기에 노출된 피해자는 금전적 손실이 크지만, 종종 피해를 부정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범죄 신고율이 낮다. 따라서 재범율도 높고, 반복 피해자화도 개연성이 높아진다.
한 예로 2019년 2월, 50대 영국 여성 피해자가 “마치 남편을 잃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심정을 밝힌 데서 이런 특성을 잘 엿볼 수 있다. 사기꾼이 그녀의 마음을 망가뜨렸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은행 계좌까지 비웠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연애사기는 왜 빈번하게 발생할까? 초기에는 관계를 형성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다하고, 소액의 금전을 빌려도 신속하게 갚는 등 신뢰를 쌓는다. 여기에 혼인을 약속하는 등 피해자에게 ‘가스라이팅’ 전략을 활용한다. 가스라이팅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심리적 허점을 악용하는 데 한몫한다.
가스라이팅으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신뢰하게 되면 그 신뢰를 확신으로 만들고, 위조된 은행 잔고나 허위 신분으로 피해자의 의심을 차단함과 동시에 더 확신하게 만든다. 가해자는 사기를 위해 잠재적 피해자를 표적으로 삼아 오랜 시간 동안 상당한 노력을 하는 반면, 피해자는 무방비로 노출된 취약한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