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묻지마 범죄 등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느냐에 관한 물음이 부각되곤 한다. 그때마다 경찰은 조직과 구조 개혁을 내세우곤 했지만, 눈높이를 맞추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경찰이 추진하는 개혁이 ‘찻잔 속의 바람’이 아니라 ‘태풍의 눈’이길 원하는 시민에게는, 그들이 내놓은 자구책이 그리 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경찰은 시민의 바람을 몰라서였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지각변동을 일으킬만한 개혁적 변화를 원치 않았던 걸까?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게 관료제라지만, 국민을 보호할 사명을 가진 경찰이라면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경찰개혁의 필요성을 논하는 많은 사람은 기형적인 조직구조를 타파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찰은 순경서부터 경찰청장인 치안총감에 이르기까지 무려 11개 계급이 있고, 조직 형상은 철탑형, 항아리형, 피래침형 등으로 표현된다.
조직이 커질수록 업무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역할에 보다 많은 인력이 투입된다. 이는 곧 내근 인력의 증가로 이어지고, 일선 현장 인력의 부족을 초래한다. 도둑을 잡는 경찰보다, 그 경찰을 관리·감독하는 경찰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경찰은 부채꼴 모형의 ‘평편한 조직(Flat organization)’이 돼야 한다. 현장 인력을 관리·감독하는 인력은 최소로 줄이고, 현장 인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계급을 줄일 필요가 있다.
평편해지는 형상으로 경찰 조직이 바뀌어야 과도한 내근 비율을 조금이나마 낮출 수 있다. 사무실 내근 비중은 낮아져야 현장 인력이 그만큼 많아진다.
경찰관 선발 및 임용 문제 역시 조직구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경찰관은 경험을 먹고 자란다. 훌륭한 경찰관은 책, 또는 시험을 통해 배우고 터득하는 게 아니라 현장서 직접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당연히 유능한 경찰이 되려면 순경으로 시작해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은 어떨까? 순경·경장·경위·경감·경정 등 다양한 계급으로 경찰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만약 3계급 이상 건너뛰고 경찰을 시작한다면 순경·경장·경사가 하는 일선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없지 않을까? 이런 경험이 없다면 우리는 그를 ’경찰관‘이 아니라 ’경찰행정관‘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미국의 모든 경찰관이 우리나라의 순경에 해당되는 ’순찰관(Patrolman)’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시사점이 크다.
경찰관에게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업무의 ‘매뉴얼’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매뉴얼이란 다른 말로 업무수행, 법 집행의 표준화(standardization)라고 할 수 있는데, 경찰 활동은 열이면 열, 백이면 백이 다 다르기 때문에 표준화가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경찰 업무는 책·강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경험을 통해 익혀야 한다. 경찰 임무를 긴급성·즉시성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경찰관을 거리의 재판관이라고도 한다. 이는 경찰관의 재량적 판단을 요하기 때문이고, 그 판단은 가급적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판단력은 결국은 경험서 우러난다.
현장 경험이 없이 사무실서 머릿속으로만 정책을 판단하면 아마도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을 받게 될 우려가 생긴다. 시민에게 최상의 치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경찰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우수한 자원을 선발하고 임용하는 것이 전제일 것이고, 이런 변화가 경찰관의 업무 만족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