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09.04 08:26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검찰이 ‘동남아 3대 마약왕’ 김형렬에게 징역 40년을 구형했다. 마약범이 받은 구형 중에서는 역대급이다. 그가 국내를 포함해 유통하거나 조달한 마약은 수백 kg으로 추정된다.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의 상선으로 알려진 김형렬은 자신의 범행 일부를 부인 중이다. 자신은 박왕열의 상선이 아니라는 게 핵심이다. ‘동남아 마약왕’ 김형렬은 ‘사라김’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했다. 그는 사탕수수밭 살인사건 주범으로 체포된 박왕열을 필리핀 감옥서 처음 만났다. 둘은 서로에게 마약을 공급하는 협력자였다. 상·하선 관계보다는 마약 사업을 논의하던 파트너였다는 것이다. <일요시사>는 이른바 검찰의 ‘김형렬 공소장’을 입수해 사건의 전반을 살펴봤다. 베트남 출국 거물로 성장 김형렬이 베트남으로 출국한 건 지난 2018년 10월11일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텀블러와 트위터를 통해 마약류 판매 광고를 진행하고 보안성이 높은 텔레그램 메신저를 이용했다. 그는 총 4개의 닉네임을 사용했다. 마약상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닉네임은 사라김과 염라대왕이다. 김형렬은 필로폰 등 마약류 판매를 위해 운반책(속칭 드라퍼)들에게 마약류가 숨겨져 있는 좌표를 제공하고 베트남서 구매한 마약류를 국제우편, 여행객 등을 통해 국내로 밀반입했다. 드라퍼들은 김형렬의 지시를 받고 수도권 지역 주택가 우편함, 전기단자함, 상가 화장실 등에 마약류를 은닉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김형렬의 공소장을 보면 김형렬은 같은 해 12월29일 필로폰 매수자 A씨로부터 필로폰 대금 35만원원을 B씨를 통해 관리하고 있던 계좌로 송금받았다. 이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우편함에 숨겨놓은 필로폰 사진과 주소를 A씨에게 보내 필로폰을 수거해 가는 방법으로 지난 2019년 4월 초까지 26회에 걸쳐 필로폰 대금 1219만5500원을 송금받았다. 김형렬은 마약류 판매 범행에 대한 수사 및 불법 수익의 몰수를 피하려 대포통장을 여러 차례 개설하고 마약류 매수자들에게 제3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제공했다. 그는 지난 2018년 10월12일부터 2019년 3월24일까지 마약류 매수자들에게 제3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제공한 후 약 8150만원을 받고 그중 4097만원을 현금으로 인출해 B씨에게 총 7회에 걸쳐 전달하도록 했다. 김형렬은 지난 2019년 2월23일 베트남 호치민시 푸미욘 코리아타운의 한 술집서 케타민을 투약하고 아파트에서는 필로폰을 투약했다. 김형렬은 과거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서 “베트남 호치민시에 살고 있고 박왕열의 상선이 맞다”며 “필리핀 감옥서 박왕열을 처음 만났고 탈옥한 박왕열에게 마약을 대량으로 공급해 줬다. 코로나19 문제가 해결되면 한 달 최대 50kg의 필로폰을 공급할 능력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박왕열에게 마약을 공급했다는 의혹, 텔레그램 마약방서 필로폰을 판매한 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검, 김·아들 마약 사업 동업자 판단 이례적 강경 구형…사실 박왕열 범죄? 김형렬의 마약 사업은 지난 2022년 7월17일 그가 베트남 현지서 검거되면서 마침표를 찍었다. 앞서 경찰은 지난 2019년 6월 베트남 공안과의 공조 수사를 시작해 인터폴 적색수배서를 발부받았다. 경찰청은 김형렬과 관련된 첩보를 입수하고 조사팀을 베트남에 파견하기도 했다. 검거 전날인 16일에는 베트남에 경찰청 인터폴 계장과 베트남 담당, 인천경찰청 국제공조팀원, 경기남부경찰청 수사관 등으로 구성된 검거 지원팀을 보냈다. 김형렬은 현지서 일반 교민처럼 평범하게 사는 모습을 보이며 신분을 숨겨왔다. 실제 그는 수시기관의 추적을 피하려 위조 여권을 만들어 신분 세탁까지 시도했다. 그러나 검찰은 그에게 업무방해 및 공문서위조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김형렬 사건을 수년간 수사한 한 경찰 간부는 “김형렬이 위조 여권으로 밀항했다거나 이득을 봤다는 물증을 수사기관서 확인하지 못했을 뿐”이라며 “부실하게 수사하진 않았다”고 강조했다. 수사기관은 김형렬이 박왕열의 상선이라고 보고 있다. 검찰이 그에게 징역 40년을 구형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수원지법 제13형사부(부장판사 박정호)는 지난달 30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향정)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형렬과 공범인 그의 아들 김모씨에 대한 결심공판을 열고 변론을 종결했다. 이날 검찰은 김형렬에게 징역 40년, 김형렬의 아들이자 공범인 김씨에게 징역 15년을 각각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박왕열 상선? “아니다” 주장 앞서 검찰은 김형렬과 공범 김씨에게 징역 17년, 징역 3년을 각각 구형한 바 있다. 하지만 새로운 마약 사건이 추가로 기소되면서 총 7개 사건이 병합돼 김형렬과 김씨에 대한 검찰 구형이 이날 다시 이뤄졌다. 김형렬 측 변호인은 최후변론서 “김형렬은 대체로 마약 투약 등에 대한 범행을 인정하는 상황”이라면서도 “다만 박왕열과 친분이 있어 그에게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준 것 때문에 박왕열의 범행까지 다 오해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공범 김씨에 대해서도 “아버지의 부탁으로 이 사건에 연루된 점과 아직 나이가 젊고 마약을 투약한 사실이 없는 점 등을 참작해 달라”며 ‘무죄’를 선고해 줄 것을 호소했다. 김형렬은 최후 진술서 재판부에 제출할 한 장 분량의 미리 준비한 자필 진술서를 꺼내 읽었다. 김형렬은 “재판을 받는 지난 2년 동안 단 하루도 반성하지 않은 날이 없다”면서 “너무 큰 죄를 지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아들 김씨도 최후 진술서 “유년 시절 아버지와 살지 못해 그리움이 컸는데 20살에 아버지와 연락이 되고 아버지 부탁을 안 들어줄 수 없었다”며 “아버지가 부탁하더라도 잘 판단했어야 했는데 당시 나이가 어려 생각을 잘 못했다. 평범하게만 살 수 있도록 선처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호소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추가한 새로운 마약 사건이 김형렬이 아닌 박왕열의 범죄라고 주장한다. 박왕열과 김형렬이 국내로 유통한 마약 규모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이 확인한 김형렬의 마약 유통 규모는 약 70억원이다. 박왕열이 국내에 유통시킨 마약 규모는 한 달에 60kg, 시가로 300억원이 넘는다. 검찰 기소 잘못됐다? 그러나 박왕열이 국내로 송환되지 않으면 김형렬의 정확한 범죄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왕열의 국내 송환 가능성은 0%에 가깝다. 한국과 필리핀은 형사사법공조조약과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돼있다. 필리핀서 장기간 수용 생활을 하는 한국인을 한국으로 이송하면 좋으나 현재 수용자 이송조약은 체결돼있지 않다. 법무부는 “송환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인물에 한해 이송 요청을 지속하고 있다”며 “필리핀 이민국과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법무부의 이 같은 입장은 2년 전과 다르지 않다. 시간이 가는 동안 이송조약조차 체결하지 못한 점은 한국 정부의 소극 행정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법무부는 일부 한국인 범죄자들에 관해 송환신청서도 보내지 않은 바 있다. 범죄인 인도는 국제형사사법 공조 활동 가운데 가장 고전적 수단이다. 이는 관할권으로부터 도주한 범죄인은 범죄인 소재지국보다는 범죄 행위지국서 유효·적절하게 재판 또는 처벌할 수 있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다만 범죄인 인도는 국제법상 확립된 제도가 아니다. 국제법상 의무가 아니므로 조약상 의무가 없는 한 타국의 인도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도 국제법 위반은 아니기에 각국은 인도 여부를 각 국가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다. 한국 범죄인 인도법은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와도 상호주의를 적용해 인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도 대상이 되는 범죄는 원칙적으로 청구국 영역서 발생한 범죄다. 영해나 영공서 저지른 범죄는 물론 공해상 청구국의 선박이나 항공기서 벌인 범죄도 포함한다. 여권 위조로 수사기관 추적 피해 업무방해·공문서위조 적용 빠져 범죄인은 수사 또는 재판을 받고 있거나 유죄 판결을 받고 피청구국으로 도주한 자를 말한다. 인도 대상 범죄인은 주로 청구국 국민과 제3국인이다. 인도가 허용되는 범죄는 청구국과 피청구국의 법률로 모두 처벌 가능한 범죄여야 한다. 인도 요청을 거절하는 사유는 의무적 거절 사유와 재량적 거절 사유로 나눌 수 있다. 피청구국서 청구 범죄에 대해 이미 확정 판결을 받은 경우도 의무적 거절 사유다. 박왕열의 경우 2016년 10월 필리핀 한 사탕수수밭서 한국인 3명을 총으로 쏴 살해한 혐의로 필리핀 대법원서 ‘다량 살인’ 혐의로 단기 57년4개월, 장기 60년의 징역형을 확정받아 의무적 거절 사유에 해당한다. 김형렬을 비롯한 동남아 마약왕급 사건을 수년간 수사한 경찰들은 김형렬이 유통한 규모 70억원은 확인된 양일 뿐 확인하지 못한 양은 몇 배가 될지 알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한 경찰 간부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김형렬이 마약을 판매한 금액으로 100억원대 비트코인을 구매했다는 정보도 있었다. 그 돈을 불려서 도박사이트에 이용했을지 더 많은 마약을 유통했을지 알 수 없다”며 “확실한 건 박왕열보다 유통한 마약의 양이 훨씬 많았다는 게 주된 얘기였다”고 강조했다. 이 간부는 “분명 동남아에 숨겨둔 자금이 있을 것이다. 김형렬의 목적은 최대한 형량을 낮게 받아 동남아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과거에 저질렀던 행위를 다시 키우려는 게 그의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정보기관 관계자도 “첩보를 수사기관에 넘긴 후 확인된 내용만 공소장에 담긴다. 동남아 마약왕 사건 관련 내용 중 유통량이 300kg 이하인 경우는 없었다. 300kg은 동시 투약량으로 따지면 600만~700만명이 맞을 수 있다. 김형렬은 명백한 마약왕급 거물이고 그의 아들은 자금을 관리하던 동업자”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김형렬을 잘 아는 측근들은 그가 박왕열의 상선일 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김형렬과 마약을 함께 판매했던 한 마약상은 “박왕열에게 마약계 큰손을 알려준 중개인이었던 것뿐 박왕열에게 마약을 공급하면서 거물이 된 건 아니다. 과장된 사실”이라고 말했다. 확인 못한 ‘수백 kg’ 필리핀 비쿠탄에 수감된 한 재소자도 “텔레그램 서버가 달랐다. 김형렬이 박왕열보다 유통 규모 자체가 적었다. 그가 박왕열의 상선이라는 한국 언론 보도를 보면서 경찰과 검찰이 사건의 진상을 잘못 파악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 재소자는 “김형렬이 박왕열의 상선이라기보다는 박왕열이 김형렬의 아이디를 쓰면서 유통망을 키운 것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유난히 길었던 늦더위의 열기가 완전히 가셨다. 바깥서 활동하기 좋은 계절이 오자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비롯한 야당이 덩달아 분주해졌다. 저마다 장외 투쟁을 예고하면서 광장 곳곳이 소란스럽다. 2016년 그 겨울이 재현될지 이목이 쏠린다.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가 20% 초반까지 떨어졌다. 취임 이후 역대 최저치다. 용산이 터질 듯한 둑을 온몸으로 막고 있지만 ‘김건희’ 세글자만 나오면 어김없이 무너진다. 이번 공략 대상은 아무래도 영부인인 모양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이 지난날은 뒤로하고 우군으로 뭉치면서 대열 재정비에 나섰다. 어게인 지민비조 지난달 치러진 10·16 재보궐선거서 두 당은 날카로운 신경전을 보였다. 호남과 부산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이뤄졌는데 결국 혁신당이 한 석도 얻지 못하면서 관계가 삐걱거렸다. 혁신당 황현선 사무총장은 지난달 18일 국회 본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 결과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개선해야 할 점이 충분히 드러났다고 보고 부족함을 메워나가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서 패배하자 당 내에서 ‘혁신당 책임론’ 나오는 것에 불편하단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황 사무총장은 “민주당이 ‘공성’보다 ‘수성’에 더 큰 공을 들인 것 같다”며 “우리는 조국 대표와 이재명 대표가 손잡고 금정구를 돌면 부산 판세가 바뀔 것이라고 (민주당에)제안했는데 민주당은 거절했다”고 말했다. 앞서 민주당과 혁신당은 금정구청장 보선서 여론조사를 통해 민주당 김경지 후보로 단일화를 결정했다. 단일화로 후보를 양보했음에도 국민의힘과 크게 격차가 벌어진 것을 두고 혁신당 일각서도 ‘민주당 책임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보선 참여를 계기로 민주당 일부 인사 또는 지지자들의 혁신당 조롱과 공격이 거칠어지고 있다”며 심정을 드러냈다. 조 대표는 “민주당 안팎서 ‘보선서 왜 지민비조(지역은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 기조를 버렸냐’고 비난한다”며 “지민비조라는 선택은 민주당과 혁신당을 모두 키우기 위한, 깨어있는 시민들의 집단 지성의 결과였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같은 조 대표의 발언을 두고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은 크게 분노하며 혁신당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사이가 틀어지나 싶더니 민주당이 ‘김건희 규탄 범국민대회’를 예고하면서 단박에 기류가 바뀌었다는 평이 나온다. 제1야당이 처음으로 장외 투쟁을 선포하자 “혁신당은 우군” “같은 적을 물리치기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 등 여론이 형성되면서 대오 정비에 나선 것이다. ‘도이치 불기소’에 뿔난 여론 “롱패딩 준비” 장외 투쟁 예고 재보선으로 쏠려 있던 시선이 다시 국회로 집중되면서 야당은 김 여사 리스크를 정조준했다. 지난달 17일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된 김 여사를 불기소 처분한 것을 신호탄으로 발언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불기소 처분 다음날인 18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서 이 대표는 “오늘은 완전히 거꾸로 한번 해보자”며 민주당 송순호 최고위원을 첫 번째 모두 발언자로 지목했다. 송 최고위원은 “어제 검찰의 김건희·최은순 모녀의 불기소 결정은 검찰 스스로의 사망 선고이기에 삼가 심심한 애도의 뜻을 전한다”며 운을 뗐다. 그는 “국민들은 이미 심리적으로 윤 대통령을 탄핵했으며 여론조사 결과서도 국민 10명 중 6명이 윤 대통령 탄핵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의 탄핵, 이것이 민심”이라며 탄핵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의 유일한 선택지는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하야다. 기다리고 응원하겠다”고 비꼬았다. 민주당은 당 소속 의원 전원 명의로 성명을 내고 “김건희씨는 불소추특권을 누리는 실질적인 대통령이 됐고 검찰은 김씨가 물라면 물고, 놓으라면 놓는 개가 됐다”며 검찰과 정부를 직격했다. ‘김건희 규탄 범국민대회’를 예고하며 롱패딩을 준비하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다가오는 겨울 동안 장외 투쟁을 이어나가겠다는 것으로 ‘탄핵’ ‘정권 퇴진’ 등에 대한 입장을 에둘러 피하던 민주당이 김 여사 불기소를 기점으로 한층 압박 수위를 높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 2일 “김건희 정권에 대한 성난 민심을 확인시켜 드리겠다”며 규탄 대회를 열었다. 김 여사의 불기소 처분에 따른 국민의 분노를 대변하기 위해 집단 행동에 나선 것이다. 혁신당은 이보다 앞선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윤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장외 집회를 열었다. ‘검찰독재 정권 조기종식’을 내걸고 총선에 뛰어들었던 만큼 민주당보다 한발 앞서 탄핵의 깃발을 올린 것이다. 혁신당이 선도적으로 정권 퇴진 분위기를 주도하면 거야인 민주당이 무게감 있게 움직이는 등 역할을 나눠 따로, 또 같이 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여권 덮친 트라우마 11월에 접어들자 민주당·혁신당·진보당·사회민주당 등 야4당이 일제히 움직임에 나섰다. 광장으로 향하는 길목은 다르지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김 여사의 국정 개입과 각종 의혹’을 규탄하겠다는 하나의 목표로 이어진다. 앞서 조 대표는 ‘3년은 너무 길다’ 특별위원회 회의서 “김 여사의 대통령 놀이를 끝장내겠다”며 “검찰청 앞에 모여 불의하고 무능하고 무도한 윤 대통령을 끌어내리자”고 말했다. 황운하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 임기 반환점에 접어드는 9일 전후로 혁신당 차원서 자체 마련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공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원내 정당 가운데 처음으로 탄핵을 당론으로 채택한 진보당도 동참에 나섰다. 진보당은 ‘윤석열정권 퇴진 운동 본부’를 중심으로 전국 곳곳서 벌이고 있는 정권 퇴진 운동을 이어갈 방침이다.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는 “선출되지 않은 김건희 이름 석 자 앞에 법치가 무너지고 있는데 어떠한 공적 시스템으로도 이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며 “이제 남은 것은 범국민적 힘을 모아 윤석열·김건희 정권을 퇴진시키는 길뿐”이라고 밝혔다. 사회민주당 역시 지난 9월 가칭 ‘윤석열 탄핵준비 의원연대’에 동참해 힘을 실었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야4당의 각개전투가 아닌 ‘공동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장외 투쟁이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 시위’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갈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 박 전 대통령을 규탄하기 위해 시민이 광장에 모인 건 2016년 9월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비선 실세였던 최순실(개명 뒤 최서원)씨의 ‘국정 농단’ 의혹이 드러나면서다. 당시 매일같이 새로운 의혹이 터져 나왔고 언론에서는 앞다퉈 단독 보도를 쏟아냈다. 국정감사 역시 ‘기승전 국정 농단’으로 국회 곳곳서 난타전이 벌어졌다.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면서 2016년 10월29일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가 광화문 광장으로 쏟아졌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시위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 집회 20회 만에 박 대통령의 탄핵 인용이 결정됐다. 이날까지 누적 인원은 주최 측 기준은 1658만1160명이다. 집회의 관건은 얼마나 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나서는지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탄핵은 국회가 아니라 국민이 하는 것”이라며 “윤정부 취임 이후 정권 퇴진 운동은 꾸준히 있었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민이 거리로 나올 ‘한 방’이 없다”며 “‘최순실 태블릿 PC’ 같은 결정적 원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결정적인 한 방’에 대해 “서울-양평고속도로, 채 상병, 명품가방 수수 등 모든 의혹의 세기가 ‘강 강 강’”이라면서도 “법적으로 따져봐야 할 부분이 있어 (의혹을)화약고에 채우고만 있다. 흔히 말하는 ‘탄핵 트리거’가 될 만한 것이 터지거나 민심이 극에 달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영부인 블랙홀 국민의힘은 1심 선고를 앞둔 이 대표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한 “방탄용 탄핵”이라며 맞불을 놨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장외 투쟁에 대해 “이 대표를 지키기 위해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무모한 행동을 즉각 중단하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지난달 22일 “대한민국 시스템 파괴의 종착지는 대통령 탄핵”이라며 “예상했던 대로 이 대표의 11월 1심 판결이 다가오면서 야당의 대통령 탄핵 선동 수위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미 매주 주말마다 서울 도심서 정권 퇴진 집회를 벌이고 있는 좌파 진영과 손잡고 본격적인 ‘제2촛불 선동’을 일으키겠다는 심산”이라며 “부디 이성을 되찾아 국민의 삶을 보살피고 대한민국 안정과 발전을 위한 길로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민주당이 11월 장외 투쟁에 나선 배경에는 이 대표와 그의 부인인 김혜경씨의 1심 선고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 사건 1심과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선고가 각각 14일 15일로 예정돼있다. 오는 25일엔 이 대표 위증 교사 사건 1심 선고가 열릴 예정이다. 아울러 민주당은 오는 14일에 본회를 열고 공천 개입 의혹이 포함된 ‘김건희 특검법’을 또다시 상정할 방침도 세웠다. 11월 장외 투쟁서 더 나아가 특검법까지 꺼내든 것을 두고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리스크를 밀어내기 위한 민주당의 ‘노림수’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보다 선명하게 탄핵을 외치는 혁신당은 오히려 진보 진영 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이 여전히 민주당을 경쟁 상대로 인식하고 있어 집회가 자칫 ‘경쟁’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지난 재보선 패배는 조 대표에게 오점으로 남았다. 선거 이후 민주당 강성 지지층과 진보 유튜버를 중심으로 혁신당에 강한 질타가 쏟아지면서 한차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재보선 패배를 지워내기 위해서는 지지층의 눈길을 광장으로 돌려 분위기를 반전시키겠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법리스크 ‘이’ 재보선 패 ‘조’ 여당 맹공격에도 “기승전 김건희” 야4당이 광장으로 향했지만 민주당은 ‘탄핵’ ‘정권 퇴진’과는 다소 거리를 두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 민주당은 김 여사를 규탄하기 위해 광장으로 나섰지만 혁신당의 목표는 뚜렷하다. 앞서 혁신당 황 원내대표가 당 산하의 ‘탄핵소추안 준비위원회’서 본격적인 탄핵소추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힌 만큼 정권 퇴진 운동 성격이 짙게 드러난다. 민주당 중진 의원도 “민주당 지도부 차원서 탄핵을 이야기한 적은 없다”며 의원 개개인의 발언이자 행동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장외 투쟁의 구호 역시 “윤석열 탄핵”이 아닌 김 여사의 행동을 규탄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로서는 야당이 각개전투에 나섰지만 집회 분위기가 과열되면 이들이 한 몸으로 움직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민주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지난 총선과 재보궐선거 때 혁신당 민주당이 조금 껄끄러워지긴 해도 올 연말에는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여기에 진보당, 사회민주당 그리고 시민연대가 힘을 더해준다면 결국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혁신당이 각자의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탄핵 선동’을 유도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김 여사 리스크가 더욱 큰 탓에 여론전서 밀리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의 부정 평가 원인으로 김 여사가 지목된 만큼 여당서도 더 이상 손쓸 도리가 없다는 분위기도 전해진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2∼24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율은 직전 조사보다 2%p 하락한 20%로 집계됐다. 부정 평가 이유로는 ‘김건희 여사 문제’가 1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대한민국 영부인이 현 정권의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된 것이다. 해당 조사는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다. 조사는 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12.4%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최요한 평론가는 이번 장외 투쟁이 “정권을 흔들 수는 있지만 무너트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6년 박근혜정권이 무너진 이유는 진보가 아닌 보수가 움직였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위태위태 와르르∼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현재 우리나라 정치 구조상 보수가 움직여야 탄핵이 가능한데 진보는 계엄 트라우마가, 보수는 탄핵 트라우마가 있다”며 “이 트라우마 때문에 보수가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들이 움직여야 퇴진 운동에 폭발적으로 불이 붙고 탄핵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장외 투쟁이 국민에게 상당 부분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각종 특검을 거치면서 이 정권의 문제점이 드러난다면 그때 다시 불이 붙을 수도 있다. 지금으로서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 보인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가 공개됐다. 난데없이 사건의 중심으로 끌려 나온 27명의 정치인들은 저마다 대응에 나섰다. 대통령과 보수 쪽 인사를 넘어 야당까지 휘감으면서 여의도 전체가 들썩였다. 추가 폭로가 예고된 만큼 여야 모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을 제기한 강혜경씨 측이 명태균씨와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정치인 27명의 이름을 공개했다. 명단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윤상현·윤한홍·안홍준·김진태·김은혜·이준석·오세훈·홍준표·이주환·박대출·강민국·나경원·조은희·조명희·오태완·조규일·홍남표·박완수·서일준·이학석·안철수·강기윤·하태경·(야당)이언주·김두관·여영국 등 전·현직 정치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보다 못해 나섰다 강씨는 명씨가 운영하던 여론조사 기관 ‘미래한국연구소’ 직원 출신이다. 공천 개입 의혹에 연루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의 회계 책임자이자 보좌관을 지낸 인물이기도 하다. 강씨는 지난 2021년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당시 명씨가 윤 대통령 측에 미공표 여론조사 결과를 81차례에 걸쳐 무료로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그 대가로 김 전 의원이 2022년 6월 재보궐선거서 공천을 받았고, 이 과정서 김 여사가 개입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지난 21일 강씨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 직접 설명에 나섰다. 증인으로 나선 이유에 대해 강씨는 “김 전 의원이나 명태균 대표, 이분들은 절대 정치에 발을 디디면 안 될 것 같다”며 “하는 말마다 거짓말이어서 국정감사에 출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국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 비용 청구를 했나”라고 질문했다. 이에 강씨는 “명씨가 돈을 받아온다고 해 이후 내역서를 만들어 건넸고 3월21일 (명씨가)비행기를 타고 돈을 받으러 갔다”면서도 정작 명씨는 비용을 받지 않았다고 답했다. 대신 그는 “며칠 뒤 명씨가 창원·의창구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고 해서 투입됐고 김 전 의원이 공천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경상남도 창원시에 위치한 의창구는 김 전 의원 지역구다. ‘누가 김 전 의원 공천을 줬느냐’는 질문에는 “김 여사가 줬고 당시 당 대표였던 이준석 의원과 당시 윤상현 공천관리위원장이 힘을 합쳐 의창구를 전략공천 지역으로 만들고, 김 여사가 김 전 의원 공천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대선 당시 명씨가 윤 대통령에게 조언했다고도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유력 대권주자였던 시절 캠프 대변인을 맡았던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갑작스레 사퇴한 배경에는 명씨의 설득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강씨는 “(명 대표가)두 사람이 많이 부딪힐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김 여사가)바로 사퇴하도록 만들었다”며 “명 대표에게 그렇게 들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언론은 김 여사의 육성 파일을 갖고 있다, 안 갖고 있다 하는 것을 중요시하던데 그 녹취는 명씨가 갖고 있을 것”이라며 “나는 김 여사 육성은 갖고 있지 않다. 명씨가 김 여사와 일을 했다는 이야기를 수시로 했기 때문에 공천과 관련해 김 여사의 힘이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고 다시 한번 설명했다. “명 대표가 김 여사 녹취록을 갖고 있다고 말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정청래 법사위원장의 물음에 강씨는 “(명씨가)육성을 스피커폰으로 해서 들려줬다”고 답했다. 국회 찾은 강혜경 명단 뿌린 노영희 “내 이름이?” 해명에도 질긴 꼬리표 다만 이날 국감에서는 명씨가 주요 사안을 윤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를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강씨의 증언 대부분이 명씨의 전언으로 이뤄진 만큼 명씨가 어떤 입장을 밝히느냐에 따라서 진실공방으로 이어질수 있다. 민주당은 강씨의 증언이 “상당히 객관적”이라는 평이다. 민주당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국정감사대책회의 직후 취재진과 만나 “강씨 진술서 중요한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강씨의 주장이 객관적이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쳤다기 보다 본인이 들은 것에 한해 선을 지켜 답했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의힘은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국회 법사위 위원인 국민의힘은 주진우 의원은 “강씨가 김 여사의 육성을 직접 들은 것은 단 한 차례, 한마디뿐이고, 대통령의 육성은 듣지 못했다고 한다”며 “명씨 말을 듣고 증인이 판단한 것이기에 오류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의 명태균 리스트는 강씨가 증언을 마친 지난 21일 늦은 저녁이 돼서야 공개됐다. 강씨의 변호인인 노영희 변호사가 국회 출입기자단에 “(명씨와)일한 사람들의 명단으로 이것 말고 더 있다고 한다”며 27명의 이름을 전송했다. 이로 인해 여의도가 발칵 뒤집혔다. 이름이 호명된 여야 전·현직 의원들은 앞다투어 해명에 나섰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하거나, 공천에 도움받은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며 “명단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여론조사 의뢰자가 아니라 의뢰자와 경쟁관계에 있어 여론조사 대상인 사람들을 포함한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른바 ‘명태균 사태’의 핵심은 여론조사를 통한 여론조작과 공천 대가 여부를 밝히는 것이다. 모든 사실이 국민께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제대로 엮였다 같은 당 나경원 의원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며 “나는 명(태균)에게 어떤 형태든 여론조사를 의뢰한 적이 없다. 오히려 명의 주장에 의하면 2021년 서울시장 경선과 당 대표 경선서 명씨에 의해 피해를 입은 후보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라디오를 통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명씨가 운영하는 업체에)여론조사 의뢰한 사람이 있을 테지만 나는 아니다”라며 “어떤 기준으로 골랐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 관계가 있는데 빠진 분도 있더라. 자의적인 명단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야당 정치인들도 즉각 선을 그었다.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정의당 여영국 전 의원은 “명씨와 창원대학교 산업비지니스학과 동기”라며 “10여년 전쯤 경남도의원 할 때 미공표 여론조사를 명씨가 대표인 ‘좋은날리서치’에 한번 맡긴 적이 있다. ‘리스트’ 운운하며 보도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밝혔다. 경남 양산을이 지역구였던 김두관 전 의원의 측근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김 전 의원이 명씨와 만난 기록을)찾아보니 2021년 5월29일 차담이라 적혀있었다고 말씀하셨다”며 “여론조사를 의뢰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실 관계자 또한 “여론조사를 의뢰한 적이 없다”며 “2021년 부산 재보궐선거 당시 박형준 후보의 상대가 이 의원이었는데 아마 이 부분 때문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리스트가 공개된 이후 이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관계없는 정치인을 리스트에 올려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지 말길 바란다. 누가 좋아하겠나”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들 대부분은 ‘본질 흐리기’라며 선을 그었다. 누가 명씨와 엮여있는지가 아닌 사태의 본질, 즉 김 여사가 공천에 개입했는지 밝혀내는 것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명태균발 살생부?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노 변호사는 자신의 SNS에 “국감서 언급된 27인 명단과 관련해 알려드린다”며 “해당 명단은 소위 명씨가 언급한 ‘25인 명단’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앞서 명씨는 언론 인터뷰 등에서 공표용 여론조사와 함께 후보자 전략 참고용 자체조사를 다수 진행했으며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력 정치인이 25명가량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변호사는 “(명단에)이름이 언급된 분 중에는 여론조사를 의뢰한 분들도 계시지만 아닌 분도 있고 당시 미래한국연구소서 의뢰를 받거나 의뢰자의 경쟁자거나 자체적으로 여론조사를 했던 명단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명단은 명씨와 접촉해 정치계서 자리를 잡고 싶어하던 사람 중 강씨가 알고 있는 인사로 “김진태, 박완수, 김영선 이런 사람들은 명씨의 도움을 받아 여론조사도 여러 번 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 작업들을 조금 했던 사례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명태균 리스트에 대해서는 “당내에선 공식 입장이나 의견이 나올지 확인한 건 없다”며 “강씨가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도 출석할 예정이기 때문에 더 질의할 것은 운영위서 다루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이번 리스트를 공개한 사람은 강씨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명씨가 (자신의 덕을 본 정치인으로)자신 있게 말하는 2명이 (개혁신당)이준석 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이었다”며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리스트에 언급된 정치인들 대다수가 명씨와의 관계를 극구 부인하면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진다. 실제로 연관됐는지를 떠나 “명태균과 엮여봤자 좋을 게 없다”는 말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저마다 선 긋기에 나선 것이다. 진보·보수 합심해 “신빙성 떨어져” 오므리기 나섰지만…예고된 추가 폭로 명씨가 해당 리스트와 상이한 입장을 내놓으면서 진실공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명씨는 지난 22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명태균 리스트와 관련한 질문에 “저는 얼굴도 본 적 없는 분들도 여러 명이 들어가 있다”며 “그분들한테 정말 죄송하고 미안하고 그분들 얼마나 황망하셨겠나. 저도 똑같은 입장”이라고 말했다. 결국 강씨 측이 리스트를 공개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번 리스트로 인해 사건의 본질이 흐려졌다는 지적만 남았다. 개혁신당 이기인 최고위원은 이번 사태를 놓고 “정치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본인이 명단이라고 뿌려놓고 자체조사하거나 조사를 의뢰한 의뢰인의 경쟁자 등을 연관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강씨는 잘 모르겠지만 노 변호사는 이 이슈를 얼마나 진지하지 않게 다루는지, 그리고 얼마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리스트 외에도 각종 의혹이 쏟아지는 만큼 명씨는 강씨의 증언을 하나씩 반박했다. 우선 명씨는 김 여사에게 도움을 요청해 특정 정치인들의 공천 부탁을 들어줬다는 의혹에 대해서 전면 부인했다. 명씨는 “강씨 발언이 제가 볼 때는 70% 정도 사실에 근거한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며 “민주당에 있는 분들이 옆에서 도와주면서 내용이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뀌고 있다.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김 여사와 영적인 대화를 했다는 강씨의 주장에 대해서는 “민주당서 주술적인 부분이나 그런 여러 가지 프레임을 많이 짜는 것 같다. 김 여사가 윤석열 검찰총장 사모님이었을 땐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 비용을 받는 대신 김 전 의원의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에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명씨는 “나는 대선 기간 동안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며 “강씨는 매일매일 자료를 갖고 ‘(명씨가)김해공항서 서울로 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증거가 될)비행기표가 하나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삼천포로 빠졌다 강씨와 명씨의 입이 동시에 열리면서 장기간 폭로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서 더 많은 정치인의 이름이 언급될 가능성도 덩달아 커졌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제 말과 오늘 말이 바뀌는 상황서 오히려 혼란만 가중했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굳이 리스트를 만들어 공개할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며 “사건의 핵심은 김 여사가 공천에 개입했는지인데 ‘명태균과 접촉한 사람’을 색출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강혜경’ 또 다른 키맨? 강혜경씨가 검찰 조사에 앞서 “대한민국 검사들을 믿기 때문에 진실을 꼭 밝혀주실 거라 믿는다”고 밝혔다. 지난 23일 창원지검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 강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에 나섰다. 강씨는 지난 2022년 6·1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치른 이후 같은 해 8월부터 매달 김 전 의원의 세비 절반을 명씨에게 보내는 등 혐의를 받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25차례에 걸쳐 총 9000만원을 건넨 혐의를 받는다. 앞서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강씨와 명씨 간의 통화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도 확보했다. 이날 강씨의 소환조사는 검찰이 확보한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부른 것으로 해석된다. <박>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외국인 노동자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현장서도 가장 밑바닥에 존재한다. 특정 현장에서는 이들이 없으면 업무가 진행되지 않을 정도로 의존도가 높지만 사고나 사건이 일어나면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우리나라서 외국인 노동자가 처한 현실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졸지에 가족을 잃은 유족은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스피커’를 찾아 헤맨다. 국회 국정감사는 스피커가 필요한 이들에게 기회로 여겨진다. 정치인의 입을 빌려 책임자를 향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창구가 되는 것이다. ‘반짝’ 관심에 그쳤던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한다. 조용하다가 국감서 반짝 지난 6월24일 오전 10시30분께 경기도 화성시 소재 아리셀 공장 3동 2층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날 화재로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사망자 가운데 5명은 한국인, 나머지 18명은 외국인이었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30년 이주노동자 역사에서 가장 큰 참사”라고 말했다. 당시 공개된 CCTV에는 화재를 발견한 노동자들이 불을 끄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하지만 1분도 안 되는 사이 불길은 2층 전체를 삼켜 버렸다. 화마에 휩싸인 이들은 어디로 피하지도 못한 채 숨졌다. 누구도 대피하라고 하지 않았고 누구도 구조하러 달려가지 못했다. 대형 참사였다. 사고 난 다음날부터 책임 공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쟁점이 된 부분은 화재로 사망한 이들의 소속이 어디였냐는 점이다. 피해자 대부분은 인력 공급업체를 통해 아리셀 공장서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해당 인력 공급업체가 무허가였다는 점이다. 경찰, 고용노동부 등이 수사에 나섰다. 그 결과 다수의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현장서 일어날 수 있는 총체적인 문제가 발견됐다. 외국인 노동자가 처한 열악한 노동 환경과 안전 문제가 다시 한번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김 대표는 “죽을 수밖에 없는 노동 조건과 환경이었다”고 한탄했다. 지난달 24일 수원지검 전담수사팀은 박순관 아리셀 대표를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산업재해치사), 파견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또 박 대표의 아들인 박중언 총괄본부장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상, 파견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방해, 건축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여기에 아리셀 임직원 등 6명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아리셀 등 4개 법인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박 대표는 아리셀 사고와 관련해 유해·위험요인 점검을 이행하지 않고 중대재해가 발생할 것을 대비해 매뉴얼을 구비하지 않는 등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혐의를, 박 총괄본부장 등은 전지 보관 및 관리(발열감지 모니터링 미흡)와 화재 발생 대비 안전관리(안전교육·소방훈련 미실시)상 주의 의무를 위반해 대형 인명사고를 일으킨 혐의를 받고 있다. 사망자 23명 가운데 18명 외국인 비전문취업(E-9) 비자는 없었다 박 대표와 박 총괄본부장 등은 2021년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무허가 파견업체 소속 근로자 320명을 아리셀 직접 생산 공정에 허가 없이 불법 파견받았다. 불법 파견업체서 나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숙련되지 않은 상태였고 고위험 전지 생산 공정에 투입되면서도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다. 실제로 사망한 23명의 피해자 가운데 20명이 파견근로자였고 대부분이 입사 3~8개월 만에 사고를 당했다. 또 아리셀은 안전·보건 예산을 최소한으로 편성·집행하고 담당 부서 인력도 감축했다. 안전보건 관리자가 퇴사한 이후에는 4개월 동안 자리를 채우지 않았다. 또 이후 전지에 대한 기본지식도 없는 직원을 형식적으로 안전보건 관리자로 임명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번 사고를 예고된 인재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관련자가 재판에 넘겨지는 등 사고에 대한 후속조치가 이뤄지고 있는 것에 반해 ‘본질’에 대한 목소리가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 사고로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이 또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났음에도 국민은 물론 정부의 관심도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은 지난해 12월 기준 250만7584명으로 나타났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공개한 <2023년 12월 통계연보> 자료에 따르면, 이 수치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89%에 이른다. 통상 한 나라의 외국인 비율이 5%를 넘는 경우 다문화사회로 본다는 점을 참고하면 우리나라는 다문화사회 진입을 앞둔 셈이다. 이 가운데 외국인 노동자는 약 130만명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비전문취업(E-9) 외국인 입국자는 16만8775명으로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15만1116명)보다 많았다. 지난 8월까지 12만6557명이 입국하면서 연말까지 20만명에 가까운 인력이 들어올 것으로 전망된다. 시민단체 유족 요구 E-9은 일정 자격이나 경력 등이 필요한 전문 직종이 아닌 제조 업체, 건설공사 업체, 농업, 축산업 등 비전문 직종에 취업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발급되는 비자다. E-9 비자로 입국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코리안 드림’을 꿈꾼다. 우리나라서 바짝 돈을 벌어 고향의 가족에게 송금하고 사용자와 원만한 관계를 맺어 체류 기간을 늘리는 게 이들의 바람이다. 이 때문에 ‘돈’과 ‘고용 안정’은 외국인 노동자를 옭아매는 족쇄로 작용하곤 했다. 노동 현장서 사고가 일어나도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는 ‘악’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숨죽였다. 김달성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 때마다 ‘산재 은폐율’을 강조했다. 2021년 한국노동연구원 김정우 전문위원이 발간한 <노동조합은 산업재해 발생과 은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게재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산재 은폐율은 66.6%에 이른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이 연구가 노동자 3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라는 점이다. 김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는 대부분 50인 미만 사업장서 일한다. 실제 현장에 가보면 내국인 노동자의 산재 은폐율도 연구 결과보다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인 노동자는 어떻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1년에 프레스 기계로 절단된 외국인 노동자의 손가락이 열두 가마니라는 말이 있다”며 “그 정도로 원시적인 산재가 아직도 현장서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서 비롯된 사건‧사고는 E-9 비자로 입국한 이들에게 집중됐다. 영하 17도 혹한의 날씨에 비닐하우스서 동사한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 속헹씨 사건이 대표적이다. 속헹씨는 E-9 비자로 입국한 농업 노동자였다. 열악한 환경 현주소 드러나 그의 죽음이 산재로 인정받기까지 수년이 걸린 점은 E-9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한다. 하지만 아리셀 사고서 사망한 피해자들 가운데 E-9 비자로 입국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18명의 사망자 가운데 재외동포(F-4) 비자가 11명, 방문 취업 동포(H-2) 비자가 4명, 결혼 이민(F-6) 비자와 영주권(F-5) 비자가 각각 2명, 1명이었다. F-4는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가 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비자다. 비교적 자유로운 국내 활동이 가능하고 취업에도 큰 제약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류 기간은 3년 단위로 연장돼 무기한 체류도 가능하다. H-2 비자는 외국 국적 동포에게 발급된다는 점에서 F-4 비자와 비슷하지만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구소련지역 6개 국가의 국적을 보유한 18세 이상의 외국 국적 동포에 한정된다. F-4 비자와 비교해 취업에 제한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비자는 곧 신분과 같다. 실제 지난 7월 아리셀 측은 피해자의 국적과 비자 종류에 따라 보상액을 차등 산정해 유족의 반발을 불렀다. F-4나 H-2 비자로 입국했다가 이번 사고로 사망한 경우 국내 체류 기간(7년)은 내국인 기준으로 일실수입을 적용하고 이후 65세까지는 중국 현지 근로자 임금으로 일실수입을 적용했다. F-4 비자로 입국하면 단순 노무직으로 취업할 수 없어 이번 사고로 사망자가 불법 취업한 사실이 적발된 이상 생존했더라도 비자 연장은 불가능하므로 7년 이후는 중국 임금을 기준으로 한다는 종전 판례를 적용했다는 것이다. 아리셀 측의 입장에 한 유족은 “돈으로 보상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사측에서는 내·외국인 따지지 말고 다 같은 인간으로 공정하게 보상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법 파견에 군납 비리 의혹까지 대표 구속되고 관계자 극단적 선택 한 노동계 관계자는 이 같은 현실에 대해 “E-9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그보다 나은 조건인 이들의 노동 환경도 열악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만큼 외국인 노동자 처우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나마 최근 박순관 대표의 국감 출석 문제로 아리셀 사고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지난 7일 ‘경기도 전지공장 화재 사고의 조사와 회복을 위한 자문위원회’는 “올해 국정감사에서 이 사건의 책임자인 박순관을 증인으로 채택하고 취약한 노동자의 인권 문제를 철저히 파헤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화재 참사에 대한 경기도 차원의 대응과 예방책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동 중이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아리셀 참사는 현재 이 순간 한국 사회서 등장하고 있는 안전관리와 위험 문제의 핵심을 보여주는 사고”라며 “여러 지점서 한국의 산재 위험이 변화하는 역사의 변곡점에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고민을 검토해봐야 하는 참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의 국감 증인 채택을 촉구했다. 유족들의 절절한 요구도 이어졌다. 국회 환노위는 지난 17일 박 대표를 종합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박 대표가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그는 사유서에서 “진행 중인 재판, 수사와 직접 관련된 만큼 답변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국회서의 답변 내용이 향후 수사 및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진행 중인 경찰 수사와 관련해 회사 소속 기술책임자가 구속영장 심사를 앞두고 자택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했다”면서 “이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만큼 심각한 심적 불안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6일 에스코넥 관계자 A씨가 자택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에스코넥과 아리셀의 군납비리 사건 관련 피의자로 수원지법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그는 에스코넥과 아리셀이 수년간 국방기술품질원 검사자가 미리 선정해 봉인한 ‘샘플 시료전지’를 관계자들이 별도 제작한 ‘수검용 전지’로 몰래 바꿔 통과토록 하는 등 비리를 저질러 온 사건 관련자다. 후속 대처 이어질까 국회 환노위는 지난 22일 박 대표의 불출석 사유서에도 동행명령장을 발부하는 등 그를 국감장에 세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국회 증언‧감정법은 동행명령을 거부하거나 고의로 동행명령장 수령을 회피할 경우 ‘국회모욕죄’로 보고 5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환노위원장인 민주당 안호영 의원은 “증인은 국감에 반드시 출석해 아리셀 화재 사고에 대해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명백히 전하고 향후 피해보상 및 회복에 대한 진지한 노력을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표명할 의무가 있다”고 동행명령장 발부 배경을 밝혔다. 박 대표는 끝내 국감에 불참했다. <jsjang@ilyosisa.co.kr>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도이치모터스 사건이 사실상 종결됐다. 항고가 남았으나 기소가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건희 여사에게 면죄부를 던져준 꼴이다. 심우정 검찰총장은 특수통이 아닌 기획통 중심의 연말 인사를 단행할 전망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갑작스러운 물갈이가 검사 ‘줄사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브리핑도 그렇고 결론 자체가 참담하다.” 서울중앙지검 한 검사의 말이다.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사건에 연루된 김건희 여사를 무혐의 처분한 것에 대해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김 여사의 핸드폰과 주거지 압수수색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나 법원이 기각했다며 거짓말 논란을 자초했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수사 결론을 내놓은 데 이어 내부에 균열이 생기는 분위기다. 4년 넘게 맹탕 수사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에 연루된 김 여사를 수사한 건 4년6개월이 넘는다. 증거와 법리를 따져 불기소 처분했다는 입장이지만 면죄부를 던져줬다는 비판은 현재진행형이다. 검찰은 김 여사가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의 주가조작 범행을 간접적으로도 인식하지 못했다고 봤다. 그러나 관련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서 증거 확보 타이밍을 놓치고 엇갈리는 진술 등으로 인해 판단이 어려워졌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거세다. 이번 수사에 관여한 서울중앙지검 전·현직 검사장은 4명이다. 또 수사 실무를 총괄하며 일선 수사팀을 지휘한 부장검사도 4명이다. 이 사건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4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행에 김 여사 등이 가담했다’는 고발장이 접수되면서 시작됐다. 김 여사는 현직 검찰총장의 부인이었다. 같은 해 9월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이 검찰에 출석해 고발인 조사를 받았고, 이후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에서 반부패수사2부로 재배당됐다. 이듬해 8월, 수사팀이 재정비되면서 수사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직을 내놓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 그해 6월,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확정된 것은 11월이다. 검찰은 2021년 12월 권 전 회장 등 일당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기며 사건을 일단락했다. 처분 대상서 빠진 유력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 여사에 대해 검찰은 “주가조작 가담 여부를 계속 수사하고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지난 4월 총선서 야권이 압승하고 김 여사에 대한 소환조사 필요성이 연일 거론되면서 수사가 진척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 7월20일 김 여사에 대한 대면 조사가 이뤄졌지만, 최종 처분은 권 전 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재판 선고 이후로 또다시 밀렸다. 앞서 김 여사는 검찰청사가 아닌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대통령 경호처 부속청사서 비공개 방문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서 서울중앙지검이 이원석 전 검찰총장에게 사후 보고한 점이 알려져 ‘패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수사팀은 경호와 보안상 문제로 제3의 장소서 조사를 진행하게 됐다고 해명했으나 여타 사건의 피의자들과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는 점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4년6개월 수사하고 김건희 성역 인정한 꼴 “압수수색영장 법원 기각” 대놓고 거짓말 당시 검찰 안팎에서는 “사법부의 판단을 두고 보면서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건 정권 눈치 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검찰이 참고하겠다고 밝힌 서울고법 항소심 재판부는 김 여사와 유사한 ‘전주(錢主)’ 역할을 한 인물에게 주가조작 방조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특히 김 여사가 주식거래로 인한 손실 금액 상당인 4000여만원을 1차 주포에게 입금받은 내역, 2차 주포인 김모씨가 도피 중에 또 다른 사건 관계자에게 보낸 편지서 김 여사를 언급한 정황 등이 알려진 바 있다. 이 같은 상황서 일각에서는 수사 결과의 공정성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처분 전 수심위를 열어 외부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수사팀은 수심위 없이 차·부장급 검사, 일부 평검사 15명으로 구성된 레드팀의 검토를 거쳐 결론을 내렸다. 수사팀과 서울중앙지검의 지휘라인 모두 이 사건은 수심위를 열기에 적절치 않다는 일치된 의견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최종적으로 김 여사에게 면죄부를 던져준 셈이다. 사건 처분 지연 이유를 묻자 수사팀은 “수사 종결을 위해 김 여사에 대한 대면조사가 반드시 필요했다”며 “여러 차례 출석을 요구했지만, 지난 7월 가까스로 대면조사가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권오수 전 회장을 비롯한 핵심 관련자들은 일사천리로 기소했는데 유일하게 김 여사에 대해서만 소극적으로 일관했다. 수십명의 검사들이 투입돼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했다는 게 겨우 대면조사”라며 “과연 최선을 다한 수사였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검찰이 시간을 끌어온 게 제일 문제”라고 비판했다. 검찰이 시간을 끈 것보다도 언론 브리핑을 진행하면서 거짓말을 한 사실도 문제로 떠올랐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관계자는 지난 17일 브리핑서 “코바나컨텐츠와 도이치모터스 수사가 같이 진행돼 압수수색영장 같은 것에도 함께 범죄사실을 적었는데, 2020년 11월 김 여사 주거지, 사무실,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청구가 기각됐다”고 설명했다. 모르고? 알고도? 기각된 영장 혐의를 묻자 “코바나 사건이 주되긴 했지만 결국 코바나와 도이치는 같이 수사 중이었다. 압색영장에도 범죄 혐의가 같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도이치 사건으로도 영장 청구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지난 18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김 여사 영장이 청구됐다가 기각된 건 코바나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논란이 일자 “전달 과정의 오해였을 뿐 거짓 내용을 브리핑한 적 없다”고 해명했다. 브리핑서 ‘김 여사는 기본적으로 계좌주’라고 전제한 후 “계좌주 중 압색영장을 청구한 사람이 없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각된 영장에 도이치 사건 혐의는 없었다’고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던 만큼 브리핑이 부정확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김 여사의 자본시장법 혐의에는 한 차례도 강제수사를 시도하지 않은 것이라 수사 의지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수사팀은 “10년 지난 사건이고 실효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재경지검 한 부장검사는 “수사팀 입장서 ‘거짓말 논란’은 억울했을 수 있다. 그러나 도이치모터스 사건과 관련해 김 여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지지 않은 건 수사가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소극적 수사로 꼽힐 수 있는 뼈아픈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검 한 검사도 “수사팀 내에서도 기소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었다. 코바나컨텐츠 영장이 기각되지 않았으면 도이치모터스 관련 추가 물증을 확보할 수 있었을 거라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애초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 소극적으로 수사한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이 김 여사에게 지난해 7월 2차 서면 질의서를 보내고 지난 7월 답변을 받기까지 1년이 걸린 점도 의구심을 키웠다. 수사팀 관계자는 “서면 답변을 안 주면 (검찰이)어떻게 하느냐”고 했지만 대응이 미온적이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용산 갈등 후 이원석 배제 검찰의 판단으로 논란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명품백 사건의 경우 고발인인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 등이 검찰 불기소 결정에 불복하는 항고 의사를 밝혔다. 도이치모터스 사건의 경우도 고발인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이 항고장을 접수한다는 계획이다. 또 공수처 수사와 야당 측의 김 여사 특검 발의 등은 아직 진행 중이다. 공수처는 지난달 ‘국민의힘 공천 개입’ 의혹과 ‘명태균씨 여론조사 비용 부담’ 의혹을 수사4부(이대환 부장검사)에 배당했다. 아울러 민주당은 도이치모터스 사건과 명품백 사건, 명씨 여론조작 등 총 13개 의혹에 대한 특검법을 발의했다. 다만 검찰 항고가 통계적으로 인용되는 비율이 10%로 매우 낮다는 점 등으로 볼 때 명품백 사건과 도이치모터스 사건의 불기소 결론이 서울고검 등 이후 단계서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법조계는 내다보고 있다. 공수처가 인력 부족 등의 문제를 겪고 있는 점도 고려해 봐야 한다. 또 약 15년 전 벌어진 도이치모터스 사건을 새롭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물리적인 한계도 안고 있다. 심우정 검찰총장이 연말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단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어그러진 조직 내부를 점검하고 분위기 전환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현재 공석인 광주고검장과 부산고검 차장검사 등 지휘부 재편이 목적일 수도 있지만 특수통이 아닌 기획·관리에 능한 검사 위주로 조직을 꾸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앞서 심 총장은 취임 직후 이뤄진 인사에서 신봉수 고검장이 광주고검장서 대구고검장으로, 임승철 검사장이 부산고검 차장서 광주고검 차장으로 각각 이동시켰다. 검찰 내부에서는 고위 간부보다 중간 간부 인사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5월 단행된 인사에서 사법연수원 38기 검사들의 부장검사 승진이 보류됐다. 올해를 넘기면 38기부터 1년씩 승진이 유예되는 탓에 인사 적체를 우려하는 검사들이 많다. 연말 고위 간부 인사 정권 수사 힘 빼기? 특수 지고 기획통 주류로…녹슨 칼 되나 명품백 사건과 도이치모터스 사건 수사팀 소속 검사들은 지난 인사에서 잔류해 이들의 승진·전보 인사 요인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단행된 검찰 인사 기조를 보면 특수통은 좌천되거나 주류서 제외됐다. 지난 5월 검찰 인사에서 특수통으로 꼽히는 송경호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부산고검장으로 전보됐고, 기획통에 가까운 이창수 검사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됐다. 심 총장 취임식 당일 발표된 인사에서는 전국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에 기획통으로 불리는 구승모 검사장이 임명됐다. 향후 인사에서도 이런 ‘관리형 인사’ 기조가 반영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 안팎에서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나 이 전 검찰총장과 가까웠던 정통 특수통들이 인사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심 총장의 연말 인사 전후로 사직서를 던지는 중간 간부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이미 사직서를 쓰겠다고 말한 부장급 간부도 있다. 특수통 외면은 이미 6개월 전부터 시작됐다. 특수통이 외면받게 된 이면에는 대통령실 및 김 여사 관련 수사에서 힘을 빼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한마디로 정권에 위협이 될 만한 칼을 미리 부러뜨리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이 전 총장과의 갈등 직후 특수통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게 복수의 검찰 관계자의 말이다. 구권력 신권력 윤 대통령과 같이 근무한 인연이 있는 한 변호사는 “여권이 친한(친 한동훈)과 친윤(친 윤석열)으로 나뉜 것처럼 검찰 내부도 구권력과 신권력 간의 충돌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난다. 중앙지검이 김 여사를 불기소하면서 불만이 쌓인 검사들이 상당히 많다”며 “지금 상황서 특수통을 중용하는 건 당연히 좋은 선택이 아니다. 심 총장이 고위 간부와 중간 간부 대부분을 기획과 정무 감각이 뛰어난 이들로 꾸릴 것으로 본다. 그렇다고 차후 있을 인사에서 내치면 반골 기질이 있는 특수통들이 가만히 있겠나. 특수통들은 항시 정권의 심장을 겨눠왔다. 지금 용산이라고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