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 사태’ 뉴진스 미래

국민 걸그룹 빚더미 앉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모회사와 자회사 대표 간의 갈등에 소속 아이돌이 끼어들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다툼처럼 보였지만 팬과 여론이 연예인 쪽에 서면서 힘의 균형이 맞춰졌다. 최근 1년여 동안 이어진 갈등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아이돌 측의 완패였다. 모든 화살이 전면에 나섰던 아이돌로 향하고 있다. 이들은 차별 피해자인가, 거짓말쟁이인가.

지난해 4월 연예기획사 하이브는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가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어도어는 하이브의 자회사로 아이돌그룹 뉴진스가 소속돼있다. 하이브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갈등은 빌리프랩, 쏘스뮤직 등 또 다른 자회사로까지 번지며 법정 공방으로 확산했다.

등 돌린 여론

이때까지만 해도 뉴진스는 갈등의 주체가 아니었다. 민 전 대표에게 힘을 싣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실제 사태 초기에는 민 전 대표가 하이브와 ‘맞다이’를 벌이는 모양새였다. 민 전 대표는 하이브의 공세에 기자회견으로 맞섰다. 특히 민 전 대표의 1차 기자회견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여론을 흔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하이브는 민 전 대표를 어도어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했고 같은 날 김주영 현 대표를 선임했다. 2019년 하이브 CBO(최고브랜드관리자)로 합류해 2021년 11월 어도어 대표가 된 지 3년 만에 자리서 내려온 것이다. 이때부터 하이브 사태에 뉴진스가 직접 참전하면서 전선이 넓어졌다.

민 전 대표는 ‘뉴진스 엄마’로 불리며 멤버들과 유대감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뉴진스 멤버들은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거나 시상식 소감 등을 통해 민 전 대표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지만 어도어나 하이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지난해 9월 뉴진스 멤버들이 유튜브를 통해 ‘기습’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크게 요동쳤다.

이들은 “저희가 원하는 건 민희진 대표가 대표로 있는 경영과 프로듀싱이 통합된 원래의 어도어”라면서 민 전 대표의 복귀를 주장했다. 이어 “데뷔 후에도 많은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점점 늘어났다. 연습생 시절 영상과 의료기록 등 사적인 기록이 공개됐다. 우리를 보호해야 하는 회사에서 이런 자료를 유출했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 됐다”고 폭로했다.

국정감사에서까지 언급된 멤버 하니의 ‘무시해’ 주장도 이때 나왔다. 하니는 이날 라이브 방송 중 하이브 건물서 자신을 무시하라고 한 매니저의 발언을 들었다고 주장하면서 “상상도 못한 일을 당했는데 사과는커녕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지켜주는 사람도 없는데 은근히 따돌림받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하니는 지난해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하이브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데뷔 초반부터 어떤 높은 분을 많이 마주쳤는데 인사를 한번도 안 받으셨다”며 “직업을 떠나서 인간으로서 예의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하니는 해당 인물을 정확하게 밝히진 않았지만 방시혁 하이브 의장으로 추정됐다.

뉴진스가 라이브 방송, 국감 출석 등을 통해 언급한 내용은 고스란히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대표이사직에서는 해임됐지만 사내이사직은 유지하고 있던 민 전 대표가 지난해 10월 어도어를 완전히 떠난 이후부터다. 당시 민 전 대표는 어도어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하이브가 변하지 않아 시간 낭비라는 판단으로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시작은 내용증명이었다. 뉴진스 멤버들은 지난해 11월13일 민 전 대표 복귀, 하이브 내부 문건 속 뉴진스를 부적절하게 언급한 것에 대한 조치, ‘무시해’ 발언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러면서 2주 안에 이런 요구사항이 시정되지 않으면 전속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어도어 제기한 가처분 소송서 완패
그룹명 바꾸고 독자활동 꾀했지만…

하이브 내부 문건으로 알려진 ‘음악산업리포트’ 내용 중 ‘뉴아르(뉴진스·아이브·르세라핌)’를 언급하며 ‘뉴 버리고 새로 판 짜면 될 일’이라는 문구를 문제 삼은 것이다. 연예기획사와 아이돌의 동향 및 평판 등을 적나라하게 기재한 음악산업리포트는 국감서 공개돼 큰 논란을 일으켰다.

뉴진스 멤버들은 지난해 11월28일 기자회견을 통해 어도어와의 전속계약을 해지한다고 밝혔다. 하이브와 어도어가 개선의 여지를 보여주거나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게 배경이었다. 당시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계약 해지가 가능한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어도어는 법적 대응으로 맞섰다. 지난 1월 광고계약 체결금지 및 기획자 지위보전 가처분을 신청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광고뿐만 아니라 뉴진스의 작사·작곡·연주·가창 등 모든 음악 활동과 그외 부수적 활동까지 금지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뉴진스 멤버 부모들이 만든 SNS를 통해 알려졌다.

그 사이 뉴진스는 공모를 통해 결정된 ‘NJZ’라는 새로운 그룹명을 공개하고 독자 활동에 나섰다. 홍콩서 열리는 콘서트에 출연해 신곡을 공개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거침없던 뉴진스의 행보는 최근 나온 법원의 판결에 제동이 걸렸다. 법원이 가처분 소송서 어도어의 손을 들어주면서 뉴진스는 독자 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지난 21일 “현재까지 제출된 뉴진스의 주장과 자료만으로는 어도어가 전속계약상의 중요한 의무를 위반함으로써 전속계약 해지 사유가 발생했다거나 그로 인해 전속계약의 토대가 되는 상호 간의 신뢰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됐다는 점이 충분히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뉴진스 측이 주장한 11가지의 전속계약 해지 사유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어도어는 뉴진스에게 정산 의무 등 전속계약 상 중요한 의무를 대부분 이행했다”며 오히려 “뉴진스의 일방적인 전속계약 해지 통보로 어도어가 매니지먼트 업무를 수행하지 못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어도어는 매우 높은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무명의 연습생이었던 뉴진스의 성공적인 연예 활동을 위해 오랜 기간 전폭적 지원과 노력을 하고 대규모 자금까지 투자했다”며 “데뷔 후 대중의 인기를 얻는 데 성공한 뉴진스가 전속계약 체결 후 2년여 만에 일방적으로 전속계약 관계서 이탈한다면 어도어로서는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다”고 덧붙였다.

뉴진스는 판결 이후 홍콩서 열린 콘서트에 참석해 무대를 진행한 뒤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어도어와 ‘끝까지’ 가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됐다. 가처분 인용 결과에 대한 이의 신청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진스의 팬덤인 ‘팀버니즈’는 끝까지 멤버들을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뉴진스의 앞길이 그다지 밝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여론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점이 뉴진스 입장에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그동안 뉴진스가 대형 연예기획사인 하이브, 어도어와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은 팬덤과 여론의 전폭적인 응원이었는데 이번 가처분 판결 이후 지지세가 꺾이고 있다.

뉴진스의 행보에 비판을 가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뉴진스가 <뉴욕타임즈>와 진행한 인터뷰가 기름을 부었다. 뉴진스가 인터뷰서 한 “K-pop(팝)에서는 회사가 아티스트를 제품처럼 취급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마치 한국이 우리를 혁명가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다” 등의 발언에 “선을 넘었다”는 말이 나왔다.

가시밭길


법조계는 뉴진스가 본안 소송서 이길 가능성을 낮게 점쳤다. 뉴진스가 주장한 바가 단 하나도 법원서 인정되지 않은 만큼 판을 뒤집을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결과는 그대로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뉴진스가 현 상황서도 하이브나 어도어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면서 일각에서는 천문학적인 ‘위약금 엔딩’을 언급하는 목소리도 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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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