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뉴진스 엄마’ 민희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4.29 11:19:03
  • 호수 14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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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볼모로 밥그릇 싸움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모회사 하이브와의 대립각 속에서 “뉴진스를 이용하지 말라”는 부정 여론에 휩싸였다. 뉴진스 멤버들이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 쏘스뮤직 출신으로 드러나면서다. 앞서 하이브는 뉴진스 프로듀서 민희진에 대해 경영권 탈취 시도 의혹을 제기했다. 민희진은 갈등의 본질이 하이브 신생 그룹 아일릿의 ‘뉴진스 베끼기’라고 받아쳤다.

뉴진스의 소속사 어도어(ADOR)와 모 회사인 하이브(HYBE) 간의 분열 사태는 봉합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어도어는 하이브와의 경영권 갈등 관련 감사 질의서 시한인 지난 24일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어도어 측은 “하이브가 제기한 경영권 탈취 모의 등 사실관계를 묻는 감사 질의서와 관련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빼앗기?
베끼기?

이를 두고 일각에선 각 조직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체제의 부작용으로 해석하고 있다.

2022년 그룹 뉴진스를 탄생시킨 민희진은 직접 멤버 5명의 캐스팅부터 트레이닝·음악·퍼포먼스·매니지먼트 시스템까지 전 과정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진스 엄마’ 민희진은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소녀시대를 최고의 걸그룹으로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2002년 SM에 공채로 입사한 민희진은 그룹 소녀시대, 샤이니, 레드벨벳, 엑소 등의 콘셉트 제작을 담당해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17년 SM 등기이사가 됐다.


2000년대 초 SM에 신입사원이었던 그는 소녀시대의 그룹명이 정해지자 당시 SM 총괄 프로듀서였던 이수만에게 콘셉트에 대해 직접 프레젠테이션했다는 후문이다.

소녀시대 ‘Gee’의 스키니진, 레드벨벳 ‘빨간맛’ 등은 모두 민희진의 손에서 탄생했다. 잘나가던 민희진은 등기이사 승진 약 2년 만인 2018년 말 SM서 퇴사했다. 번아웃 증후군 때문이라고 밝힌 그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20~30대를 일에 바쳤다고 생각한다”며 “자학과 자기 검열이 너무 심했다”고 털어놨다.

2019년 하이브의 CBO(최고브랜드관리자, Chief Brand Officer)로 돌아온 민희진은 하이브 신사옥 공간 디자인까지 맡을 정도로 감각을 인정받았다. 박지원 하이브 대표이사(CEO)의 연봉 5억900만원보다 많은 5억2600만원 연봉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4대 기획사 중 연봉 5억원 이상을 받은 유일한 여성이었다.

이후 민희진은 하이브 자본으로 2021년 11월 레이블 어도어를 설립한 뒤, 2022년 그룹 뉴진스를 탄생시켰다. K팝 업계서 수십년간 내공을 쌓은 민희진에 대한 기대감은 있었지만, 뉴진스의 데뷔 후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뉴진스는 명품 브랜드 구찌, 디올 등의 홍보모델로 발탁될 정도였다. 이외에 스마트폰, 금융 등 전 분야의 광고까지 휩쓸며 영향력을 과시했다. 뉴진스는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행복은 길지 않았다. 뉴진스 흥행 2년 만에 민희진은 ‘경영권 탈취 의혹’에 휘말리며 반역자로 몰린 상황이다.

뉴진스 멤버 전원 쏘스뮤직 출신
“네꺼? 내꺼!” 박 터지는 집안싸움


앞서 민희진은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제가 가진 18%의 지분으로 어떻게 경영권 탈취가 되겠느냐”며 “80% 지분권자인 하이브 동의 없이 어도어가 하이브로 독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일을 도모했다는 하이브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번 갈등의 본질은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인 빌리프랩(BELIFT LAB)이 지난 달 데뷔시킨 걸그룹 ‘아일릿’의 ‘뉴진스 베끼기’라는 주장을 내놨다.

지난 22일 어도어 측은 “뉴진스가 이룬 성과는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브에 의해 가장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며 아일릿을 뉴진스의 아류라고 표현했다. 이어 “어도어는 하이브나 빌리프랩 등 어느 누구에게도 뉴진스 성과를 카피하는 걸 허락하거나 양해한 적이 없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들은 “하이브 방시혁 의장이 아일릿 데뷔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았다”며 “하이브가 단기적 이익에 눈이 멀어 성공한 문화 콘텐츠를 아무 거리낌 없이 카피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저격했다.

최근까지 민희진이 밝힌 입장은 경영권 욕심보다 스스로 지켜온 ‘독립성’ ‘독창성’을 하이브가 해치고 있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민희진은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은 각 레이블이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한 체제이지, 계열 레이블이라는 이유로 한 레이블이 이룩한 문화적 성과를 다른 레이블들이 따라가는 데 면죄부를 주기 위한 체제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뉴진스의 문화적 성과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항의가 어떻게 어도어의 이익을 해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인지, 어떻게 어도어의 경영권을 탈취하는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의도가 있다고 보인다”고 토로했다.

멀티 레이블
구조적 결함

일각에선 민희진이 온전한 ‘뉴진스 엄마’가 아니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뉴진스 멤버 전원은 쏘스뮤직 소성진 대표가 발굴했다는 것이다. 

먼저 뉴진스 멤버 민지가 쏘스뮤직에 입사한 건 2017년이고, 하니는 2019년에 들어왔다. 빅히트와 쏘스뮤직이 주최한 글로벌 오디션에 합격한 것이다. 해린과 다니엘은 2020년 연습생 계약을 맺었다. 마지막 주자는 온라인서 발굴한 혜인이 오디션을 통과해 쏘스뮤직과 도장을 찍었다.

이들 모두 2021년 하반기까지 쏘스뮤직서 연습생으로 지냈다는 결론이다. 

민희진이 하이브로 이적한 시기는 2019년이다. 그의 롤은 브랜드 총괄 CBO. 하이브 관계사 전반에 대한 브랜드를 지휘하는 역할이었다. 민희진은 쏘스뮤직 데뷔조를 준비해야 했지만 독자적인 레이블의 수장을 원했고, 어도어 탄생의 배경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훗날 민희진은 쏘스뮤직서 연습생을 선발했고, 현재 뉴진스 멤버를 구축했다. 대신 쏘스뮤직에는 그동안의 트레이닝 비용을 전달했다. 민희진이 뉴진스를 만든 건 맞지만, 뉴진스 멤버는 쏘스뮤직서 발굴한 인재로 골랐다는 것이다. 

민희진의 보상도 재조명됐다. 하이브 이사회는 2023년 1분기,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대신, 어도어의 주식(구주)을 저가에 살 수 있게 했다. 민희진은 어도어 지분 18%(57만 3,160주)를 보유, 2대 주주로 올라섰다. 

민희진이 주식을 받았을 당시 어도어는 적자 기업에 비상장사였다. 2022년 매출은 186억원, 영업적자 40억원이었다. 민희진이 스톡옵션을 받았다면, 취득 시점에 45%에 달하는 세금을 내야 하지만 적자기업 주식을 받음으로써 세금도 아꼈다. 이를 통해 민희진이 하이브 시스템의 수혜자라는 해석도 나왔다.

하이브는 지난 22일, 민희진과 측근 A씨가 투자자를 유치하고자 대외비인 계약서 등을 유출, 하이브의 어도어 주식을 팔도록 유도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는 이유로 감사에 착수했다. 또 A씨가 어도어 독립에 필요한 비공개 문서와 영업비밀 등을 어도어 측에 넘겨줬다고 의심했다.

조금만 
잘나가면···

하이브는 확보한 전산 자산 등을 토대로 필요하다면 법적 조처에도 나설 방침이다. 


이날 하이브는 본사에서 어도어 측이 쓴 것으로 보이는 ‘빠져 나간다’는 의향과 해외 펀드에 주식을 매각하는 방안 등이 적힌 문건을 찾아냈다고 전했다. 해당 문건이 하이브가 감사의 명분으로 제기한 ‘경영권 탈취’의 물증이 될 수 있을지 이목을 끌었다.

하이브는 문건 확보를 계기로 경영진 교체를 위한 주주총회 소집 절차에 속도를 냈다. 지난 23일 가요계에 따르면, 하이브가 전날 어도어 전산 자산을 확보하면서 찾아낸 문건은 최소 3개다. 이 문건은 민희진의 측근 A씨가 지난 3월23일과 29일 각각 작성한 업무 일지다. 23일자 문건에는 ‘아젠다’(Agenda)라는 제목 아래 ‘1. 경영 기획’ 등 소제목, 그 아래 ‘계약서 변경 합의’ 같은 세부 시나리오가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문건에는 ‘외부 투자자 유치 1안·2안 정리’라는 항목으로 ‘G·P는 어떻게 하면 살 것인가’ 하는 대목과 내부 담당자 이름도 적시돼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브는 G는 싱가포르 투자청(GIC), P는 사우디 국부펀드(PIF)로 보고 있다.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 일부를 싱가포르 투자청이나 사우디 국부펀드에 매각하게 하는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이 문건에는 또 ‘하이브는 어떻게 하면 팔 것인가’ 하는 문장과 또 다른 담당자 이름이 쓰여 있었다. 하이브를 모종의 방법으로 압박해 현재 80%인 하이브의 어도어 지분을 팔도록 하겠다는 고민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민희진이 “아일릿이 뉴진스를 따라 했다”는 비판 역시 ‘압박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하이브는 해석했다. 민희진은 최근 하이브 내부 면담 자리서 “아일릿도 뉴진스를 베끼고, 투어스도 뉴진스를 베꼈고, 라이즈도 뉴진스를 베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29일자 문건에는 ‘목표’라는 항목 아래 ‘궁극적으로 빠져나간다’ ‘우리를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한다’ 등의 내용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문제를 제기해 하이브를 압박하고 궁극적으로 빠져나가는 방안이 정리된 문건”이라고 귀띔했다.

“경영권 탐낸 거 아니냐”
어쩌다···방시혁과 대립

결국 민희진 측은 지난 24일까지 기한이었던 하이브의 감사 질의서에 답변하지 않으면서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다. 그는 어도어에 대한 하이브의 감사권 발동 관련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 사태’라고 규정하며 “모방 의혹에 대한 문제를 제기를 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경영권 탈취와 관련한 사실을 부인해 왔다. 

민희진은 하이브의 회사 정보자산 반납 요구에도 공식적으로 응하지 않았다. 당초 반납 시한은 지난 23일 오후 6시까지였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브 측이 어도어 이사진을 상대로 오는 30일 이사회 소집을 요구했으며 대표 사임을 요구하는 서한도 발송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가요계에서는 하이브가 산하 레이블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멀티 레이블 체제’의 부작용이 드러났다는 해석도 내놨다.

지난 2005년 2월 빅히트엔터테인먼트로 설립된 하이브는 소속 그룹 방탄소년단로 금자탑을 세웠다. 이 과정서 쏘스뮤직(2019년), 플레디스(2020년), 이타카 홀딩스(2021년), 빌리프랩 지분 51.5%(2023년), QC 미디어 홀딩스·엑자일 뮤직(2023년) 등을 잇따라 인수해 멀티 레이블 체제의 기틀을 잡았다.

이는 전통적인 엔터테인먼트 방식 운영보다 더 많은 가수와 음악을 동시다발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이브가 방탄소년단의 완전체 활동이 잠시 멈춘 2022년 이래 르세라핌, 뉴진스, 아일릿 등 신인 그룹을 짧은 기간에 대거 데뷔시킬 수 있던 것도 멀티 레이블 체제의 덕이 컸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통해 일부 레이블 대표가 독자 행보를 도모할 수 있다는 약점도 드러났다. 하이브가 80%라는 압도적인 지분을 보유한 레이블 어도어서 잡음이 빚어졌다는 사실은 단순 ‘지분 문제’ 이상의 구조적 결함을 지녔다는 것이다. 

하이브와 어도어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각각 김앤장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세종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해 대응하고 있다. 

결국
법정으로?

문화계에서는 하이브와 어도어의 갈등이 결국 양측의 법적 대응을 통해 매듭지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어도어 측이 하이브가 요구한 이사회 소집을 거부할 경우 하이브는 곧바로 임시주주총회 개최를 위한 가처분 신청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의 가처분 신청 판단은 통상 2개월여 소요된다. 이어 현재 양측이 맞부딪히고 있는 쟁점들에 대한 소송전이 열리고 상급심까지 가게 되면 분쟁이 끝나는 시점은 예상하기 어렵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기고발당한 민희진, 왜?

어도어 경영진을 상대로 감사를 펼친 하이브는 민희진 대표를 수사기관에 고발하기로 했다. 

지난 25일 하이브는 산하 레이블 어도어에 대해 감사를 진행한 결과 문건과 경영권 탈취 계획 등이 담긴 메시지앱 대화록 등의 정보자산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 하이브는 정보자산에 담긴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민희진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하이브에 따르면 민희진은 어도어 부대표 등 경영진에게 “하이브가 보유 중인 어도어 지분을 매각하도록 하이브를 압박할 방법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실제 하이브가 이날 공개한 민희진과 부대표가 나눈 메시지앱 대화록에는 ▲2025년 1월2일 풋옵션 행사 엑시트(Exit) ▲어도어는 빈 껍데기 됨(권리침해소송 진행) ▲재무적 투자자를 구함(민 대표님+하이브서 어도어 사오는 계획) ▲하이브에 어도어 팔라고 권유 ▲ 적당한 가격에 매각 ▲민 대표님은 어도어 대표이사+캐시 아웃(Cash Out)한 돈으로 어도어 지분 취득 등 경영권 탈취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하이브는 지난 22일부터 감사를 실시해 ‘하이브의 죄악’ ‘프로젝트 1945’ 등 경영권 탈취 계획 내용이 담긴 여러 문건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하이브는 감사를 통해 얻은 물증을 근거로 민희진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키로 한 것이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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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