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십자포화 맞은 백종원

탈탈 털리는 ‘장사의 신’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국내 대표 외식업체 ‘더본코리아’가 연이은 논란에 휩싸이며 위기를 맞고 있다. 한때 ‘믿고 먹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던 기업이 식품 위생 문제부터 직원 관리 논란까지 다양한 이슈로 도마 위에 올랐다. 백종원 대표가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가 무너지면서 더본코리아에는 치명적인 오점이 남았다.

최근 출시된 ‘빽햄’의 가격 및 품질 논란을 시작으로 식품 위생 문제, 원산지 표시 위반 혐의, 직원 관리 논란 등이 연달아 불거지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소비자들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서 이번 논란들이 브랜드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백선생의
양파 까기

논란은 더본코리아의 신제품 ‘빽햄’의 품질 문제를 필두로 시작됐다. 설 명절을 앞두고 더본코리아는 빽햄 선물세트를 출시했다. 빽햄은 백종원 대표가 운영하는 부대찌개 브랜드인 ‘백’s 부대찌개’서 사용하던 햄을 가정서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제품으로, 출시 초기부터 소비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출시 이후, 제품의 성분과 가격이 공개되면서 소비자들의 반응은 급격히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더본코리아는 빽햄을 정가 5만1900원에서 2만8500원으로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며 가성비를 강조했지만, 돼지고기 함량이 주요 경쟁 제품인 ‘스팸’보다 낮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커졌다. 빽햄의 돼지고기 함량은 85.4%로, 스팸의 함량 91.3%보다 낮았다.


햄 제품은 보통 고기 함량이 높을수록 품질이 좋다고 평가되는데, 빽햄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였다.

이를 두고 소비자들은 “고기 함량이 낮은데 가격은 오히려 더 비싸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논란이 커지자 백 대표는 “빽햄은 부대찌개용으로 특화된 제품이라 일반 햄과 비교하기 어렵다. 조미가 추가돼 고기 함량이 낮아졌지만, 조리 시 풍미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빽햄이 논란에 휩싸이면서 과거 ‘사과당’에 대한 그의 비판도 재조명 됐다. 백 대표가 2023년 충청남도 예산시장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때였다. 예산시장은 충남지역 경제의 중심지 중 하나지만, 상권이 쇠퇴한 이후 백 대표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관심을 끌었다.

백 대표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예산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당시 백 대표는 예산시장 근처에 새로 입점한 사과파이 전문점 사과당을 언급하며 “가격이 비싸다” “내 이름을 이용한 홍보를 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사과당은 지역 특산물인 사과를 활용한 고급 사과파이를 판매하는 가게였으며, 한 개당 약 5000~6000원 정도의 가격이 책정돼있었다. 이 발언 이후 사과당은 소비자들 사이서 논란이 됐다. 일부 소비자들은 “시장 활성화를 위해 가격이 낮아야 하는데, 너무 비싸게 책정됐다”며 백 대표의 의견에 동조하는 여론을 형성했다.

이후, 더본코리아는 예산시장 내에 자체적인 사과파이 전문점 ‘애플양과점’을 오픈했다. 백 대표의 브랜드서 만든 사과파이는 한 개당 2500원으로, 사과당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판매됐다. 이로 인해 ‘사과당 죽이기’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소비자들과 상인들은 “백종원 대표가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기존 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브랜드 파워를 활용해 작은 가게를 밀어내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했다.


빽햄부터 예산시장까지…줄줄이 도마에
‘가성비’ 강조하던 백선생 품질 논란도

일부 누리꾼들은 이번 빽햄 논란에 백종원의 과거 발언을 언급하며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사과당 가격이 비싸다고 지적하던 백종원이 정작 본인이 비싼 제품을 팔고 있다”며 “자기 기준으로 남을 평가해놓고 자기 제품은 예외라는 태도가 문제”라며 비판을 가하고 있다.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백 대표가 충청남도 예산군서 진행한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운영된 된장 공장이 농업진흥구역 내에서 불법 운영됐으며, 이 과정서 수입산 원료를 사용한 된장을 생산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논란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예산시장은 백 대표가 ‘전통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수년간 공들인 프로젝트의 중심지였으나, 이번 논란으로 인해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명분과 실제 사업 운영이 충돌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예산군은 백 대표의 고향이자, 그가 직접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한 곳이다. 2022년부터 시작된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는 백 대표가 개인적으로 추진한 지역경제 활성화 사업으로 ▲예산시장의 음식점 및 전통시장 환경 개선 ▲더본코리아의 프랜차이즈 입점 및 신메뉴 개발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식품 개발 및 판매 등이 주요 내용이다.

특히, 백 대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강조하며 “국내산 농산물을 적극 활용해 지역 농가와 상생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은 그의 이러한 발언과 사업 운영 방식이 충돌하는 문제를 드러냈다.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더본코리아는 예산군에 ‘백석공장’을 설립했다. 백석공장은 예산시장서 판매되는 일부 식품의 가공 및 유통을 담당하는 곳으로, 된장, 간장 등 장류 제품을 생산하며 지역 특산물과 연계된 식품을 개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문제가 된 것은 백석공장이 위치한 부지가 농업진흥구역이라는 점이다.

농업진흥구역은 농업 활동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설정된 구역으로, 해당 지역 내에서는 비농업용 건축물의 신축 및 변경이 엄격히 제한된다. 백석공장은 이 구역 내에서 농업 관련 시설로 등록되지 않은 상태서 불법 운영된 정황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은 “농업진흥구역서 식품 가공 공장을 운영하는 것은 명백한 법 위반”이라며 “백 대표가 예산시장 활성화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지역 농업 보호 원칙을 어긴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비싸다더니
비싸게 팔아

더본코리아는 일부 제품이 원산지 표기법을 위반한 혐의로 형사 입건되기도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에 따르면, 더본코리아는 특정 제품의 원재료 원산지를 국내산으로 표기했으나, 실제로는 수입산 원료를 사용한 정황이 포착됐다.

원산지 표기법에 따르면, 식품의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하거나 오인할 수 있도록 표기하는 행위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특히, 소비자들에게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강조해 온 백 대표의 브랜드서 이 같은 위반 사례가 발생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번 원산지 문제가 더욱 논란이 된 것은, 백 대표가 그동안 방송과 유튜브 콘텐츠서 ‘국내산 원재료 사용’을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자영업자들에게 “국내산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상생을 강조했던 데 반해, 더본코리아가 정작 자사 제품의 원산지를 허위로 표기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배신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된장 공장 운영 논란과 함께 백석공장 부지 내 비닐하우스를 창고로 불법 사용한 정황도 드러났다. 비닐하우스는 원래 농산물 재배 목적으로 사용돼야 하지만 더본코리아는 이를 제품 보관 창고로 활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농업진흥구역에서는 비농업적 용도로 비닐하우스를 사용할 경우 위법에 해당하며, 해당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원상복구 명령 및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더본코리아는 “비닐하우스를 원상 복구했으며, 더 이상의 위법 사항은 없다”고 해명했다. 농업 관계자들은 “소상공인이나 개인 농민들은 농지법을 어길 경우 강력한 제재를 받는데, 대기업이 이런 편법을 사용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가라앉기도 전에, 더본코리아의 공식 유튜브 채널서 공개된 영상이 새로운 논란을 불러왔다. 문제의 영상에서는 직원이 농약 분무기에 넣은 사과주스를 바비큐용 고기에 뿌리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이 장면이 공개되자 소비자들은 위생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설마 실제로 농약을 담았던 분무기를 재사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더본코리아는 공식 입장을 내고 “해당 장비는 농업용이 아니라 식품 조리에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식품을 다루는 기업이라면 이런 논란이 나오지 않도록 처음부터 철저히 관리했어야 한다”며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식품 기업이 조리 도구를 사용할 때는 위생 기준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며, 기업의 내부 관리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비닐하우스
불법 사용

이와 함께 바비큐 조리에 사용된 그릴이 공사장서 사용되는 철재 자재처럼 보인다는 지적도 나왔다. 소비자들은 “전문적인 식재료와 식기 관리가 부족한 것 같다”고 평가하며, 외식업체로서의 신뢰도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더본코리아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카페 ‘빽다방’서도 식품 안전 논란이 발생했다. 일부 매장서 플라스틱(PET) 용기에 담긴 제품을 전자레인지에 가열해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PET는 높은 온도서 변형될 가능성이 크며 특정 화학물질이 용출될 가능성도 있어, 식품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전자레인지 가열을 피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 사실은 한 소비자가 SNS를 통해 제보하면서 확산됐다.

한 소비자는 빽다방서 PET 용기에 담긴 ‘크림빵’ 제품을 주문했는데, 직원이 이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우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이 소비자는 해당 장면을 촬영한 후, 온라인 커뮤니티에 “전자레인지 사용이 가능한 용기인지 걱정된다. 식품 업체라면 기본적인 안전 기준은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용기에서 유해 물질이 나올 수도 있는데, 소비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이렇게 제공하는 게 맞는 거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 글이 퍼지면서 논란이 확산됐고, 다른 소비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며 추가 제보가 이어졌다. 이로 인해 더본코리아 식품 안전성 문제가 불거졌으며, 소비자들은 “안전 기준조차 모르는 직원이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비난했다.

더본코리아 측은 해당 사례가 ‘신입 직원의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더본코리아 관계자는 “빽다방에서는 PET 용기를 전자레인지에 사용하도록 교육한 적이 없으며, 이번 사례는 직원이 실수로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전국 모든 매장에 해당 내용을 공유하고, 직원 교육을 강화해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더본코리아의 또 다른 프랜차이즈 새마을식당도 ‘직원 블랙리스트’ 논란에 휩싸였다. 내부 직원들의 제보에 따르면, 더본코리아가 특정 직원들의 명단을 공유하며 채용에 제한을 뒀다는 주장이 나왔다.

새마을식당 가맹점주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비공개 온라인 카페서 ‘직원 블랙리스트’ 라는 게시판이 운영됐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시작됐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해당 게시판은 2022년경 개설됐으며, 점주들 간에 문제가 있는 직원들의 정보를 공유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위기의 더본, 하다 하다…
원산지 표기법 위반 입건

게시판 운영 방식에 대한 제보에 따르면, 특정 직원이 퇴사한 후 점주들이 해당 직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공유하며 성격, 태도, 업무 능력 등에 대한 기록을 남겼고, 새로 채용할 점주들에게 참고 자료로 제공됐다고 주장했다.

일부 직원들은 해당 게시판에 기록된 후 더본코리아 계열 매장 재취업이 어려워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정황이 드러나면서, 더본코리아가 본사 차원서 직원 관리를 위한 블랙리스트를 운영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논란에 더본코리아는 “본사는 블랙리스트를 운영한 적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더본코리아 관계자는 “가맹점주들이 개별적으로 운영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서 직원 관련 정보를 공유한 것은 맞지만, 본사 차원서 이를 관리하거나 개입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현재 해당 게시판은 운영되지 않고 있으며,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점주들에게도 공정한 고용 관행을 준수하도록 안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일부 가맹점 관계자들은 본사와 무관하다는 해명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본사가 운영하지 않았다면 왜 블랙리스트가 특정 계열 매장에서만 적용됐는지, 점주들이 개인적으로 운영한 것이라지만 본사와 연결된 직원 평가가 공유된 것은 사실이 아닌지에 대해 추가 해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더본코리아는 “내부 조사를 진행 중이며, 사실로 확인될 경우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확산되면서 더본코리아의 기업 이미지도 직격탄을 맞았다. 일부 브랜드들은 논란이 불거진 이후 백종원을 광고모델서 제외하기 시작했으며, 더본코리아는 주가가 급락했다. 상장 이후 최저가를 기록하며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계속된 논란에 백종원 대표는 두 차례에 걸쳐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법규를 철저히 준수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점이 있었다. 소비자들에게 실망을 끼쳐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상장사로서 주주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전사적 혁신과 성장을 이끌어가겠다”고 약속했다.

해당 사과문에 누리꾼들은 “주주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냐”며 비난을 이었다.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자, 백 대표는 2차 사과문을 발표하며 재차 고개를 숙였다.

백 대표는 “최근 발생한 논란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내부 시스템을 철저히 점검하고 개선할 것을 약속드린다”며 “더본코리아는 고객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지속적인 변화를 통해 보다 나은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거듭된 사과문에도 소비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2차 사과문조차 “형식적인 입장 표명에 불과하다”며 “구체적인 개선책이 없다”는 반응이 나오면서 논란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깊이 반성”
재차 고개 숙여

연이은 논란과 법적 문제, 소비자 신뢰 하락이 겹치면서 더본코리아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때 ‘장사의 신’ ‘골목식당 해결사’로 불렸던 백 대표가 연이은 논란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식품 전문가들은 “원산지 문제는 소비자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라며, “이 같은 사안으로 기업의 이미지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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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