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한동훈 컴백 시나리오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4.12.24 10:10:15
  • 호수 15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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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다시 돌아온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사실상 축출돼 사퇴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는 2개의 타이머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이다. 2개의 타이머가 모두 멈추면, 한 전 대표는 부활할 수 있을까?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지난 16일 사퇴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3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거론됐던 피해자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지난 14일 가결되자, 그는 당내 다수인 친윤(친 윤석열)계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이날 인요한·김민전·김재원·장동혁·진종오 등 선출직 최고위원 5명이 전원 사퇴하자, 한동훈 체제는 곧바로 무너졌다. 

잘못한 선택

국민의힘 당헌에 따르면,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이 사퇴하면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체제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의원총회서도 참석자 93명 중 73명이 지도부 총사퇴에 찬성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오후 10시28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한 전 대표는 그로부터 18분이 지난 오후 10시46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튿날 오전 12시24분엔 “군이 국회에 진입했다”며 “반헌법적 계엄에 동조·부역해선 안 된다”며 추가 입장을 내놨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회 본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국회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원래는 들어갈 수 없었다. 비상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기관은 오직 국회뿐이었던 데다, 한 대표도 체포 대상에 포함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양해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국민의힘 내 친한(친 한동훈)계·중립 성향 의원들과 야당 의원 190명이 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을 전원 만장일치 가결시키면서 오전 1시1분 비상계엄이 해제됐다.

한 전 대표는 오전 3시27분 “민주당과 윤 대통령 탄핵 논의 관련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전 대표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처음 언급한 시점이었다. 같은 날 오후 8시 한덕수 국무총리, 국민의힘 추경호 당시 원내대표와 윤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그는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비롯한 정치인 체포 시도에 대해 강한 항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의 입장은 요지부동이었고, 한 전 대표와 윤 대통령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후 한 전 대표의 입장은 오락가락을 거듭했다. 5일 오전엔 “혼란으로 인한 국민 피해를 막기 위해 탄핵안은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면서 탄핵소추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6일 오전엔 ‘조속한 직무 집행 정지’를 언급했다. 이유는 “윤 대통령이 여인형 당시 방첩사령관에게 주요 정치인 체포를 지시했고, 과천의 수감 장소에 수감하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7일 윤 대통령의 제3차 대국민 담화 이후에도 “윤 대통령의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대통령의 조기 퇴진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탄핵이 아니라 조속한 직무 집행 정지와 조기 퇴진을 언급했기 때문에, 한 전 대표를 의심하는 시선이 있었다. 

직무 정지·조기 퇴진 꺼내다
번복 후 돌연 탄핵 표결 불참

그 의심은 적중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7일 제1차 탄핵소추 표결을 집단 퇴장하는 방식으로 무력화시켰다. 한 전 대표는 지난 8일 한 총리와 함께 “대통령을 사실상 직무서 배제하고, 질서 있는 퇴진을 시킬 것”이라며, “총리가 당과 긴밀히 협의해 주 1회 회동하면서 국정 공백을 막겠다”는 과도 체제를 발표했다.


그러나 과도 체제가 실제로 가동되는 일은 없었고 한 전 대표는 추락했다. 

한 전 대표는 각계각층서 격렬한 비판에 직면했다. 강경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탄핵’이라는 두 글자는 언급하지 않았고, 그의 주장은 헌법과 맞지 않는 체제였기 때문이다. 집권여당 대표인 그가 홍준표 대구시장으로부터 ‘너’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결국 한 전 대표는 하루도 못 가서 “당 대표는 국정 권한을 행사할 수 없고, 총리와 함께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은 좀 어폐가 있다”고 말을 바꿨다. 이어 “비상시국에 당이 조금 더 적극적이고 세심하게 총리와 협의하겠다는 의미로 보시면 될 것”이라며 “오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순간 잘못 굴린 ‘잔머리’로 인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당내서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여론의 뭇매까지 맞는 지경에 몰린 셈이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과 검찰서의 오랜 인연을 계기로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됐고, ‘소통령’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지난해 12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한 후 지난 4월 제22대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이미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 여론이 상당해 총선 전망이 어두운 상황이었다.

당시 그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심판 대상으로 삼아 프레임을 전환하려고 했던 ‘이조심판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위기에 빠진 당의 비상 상황과 총선을 한꺼번에 책임져야 할 비대위원장이 제기할 총선 구호로선 부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아울러 국민의힘 김경율 전 비대위원을 마포을에 출마시키려고 했던 것에 대해 대통령실과 친윤 그룹서 비판을 제기하면서 윤 대통령과의 관계도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윤 대통령과 한 전 대표는 갈등의 연속이었다. 이 갈등은 ‘윤한 갈등’이라는 표제로 꾸준히 언론과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윤 대통령의 ‘격노’를 불러온 결정적 계기는 그 유명한 ‘문자 읽씹’ 논란이었다.

김건희 여사가 한 전 대표에게 “자신의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할 의사가 있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한 전 대표가 이 문자를 읽었음에도 답장하지 않아 입길에 올랐다. 이로 인해 윤 대통령은 욕설을 곁들이면서 한 전 대표에 대한 ‘격노’를 숨기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경율 공천으로 시작
체포 대상 되기까지…

한 전 대표는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직서 사퇴했지만, 지난 7월 진행된 전당대회서 가볍게 승리해 당대표로 취임했다. 윤 대통령과 결별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7·23 전당대회서 총 62.8%를 득표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갈등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 전 대표를 따르는 친한계도 현역 의원 20명 안팎으로 구성된 소수 계파였기 때문에 당내 갈등은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직전까진 “한 전 대표의 아내 진은정 변호사가 당원 게시판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해 윤 대통령 부부를 비난했다”는 ‘당게 의혹’까지 불거져 있었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19일, 관련 질의를 하려던 기자들로부터 도주해 ‘런동훈’이라는 별명까지 붙는 굴욕을 감수하면서도 의혹에 대한 해명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명태균 게이트 관련 녹취록이 공개되자, 윤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이 앙금을 잊지 않은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후 한 대표도 체포 대상으로 지정했다.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을 떠났지만, 여전히 유력한 국민의힘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뉴스1>이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지난 12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 전 대표는 7%의 지지를 얻었다. 홍 시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각각 5%와 4%의 지지를 얻었다.

홍 시장과 오 시장은 명태균 게이트 연루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된다. 명태균씨는 검찰에 황금폰을 제출했다. 검찰과 명씨의 선택에 따라, 두 사람은 한순간에 무너질 위험이 있다. 국민의힘의 4선 이상 중진 중엔 안철수 의원만이 4%의 지지를 얻은 것이 확인된다.

하지만 안 의원은 공개적으로 탄핵 찬성 의사를 밝혔고, 제1차 표결 당시에도 이탈하지 않았다. 한 전 대표 못지않게 윤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기 때문에, 친윤 입장에선 안 의원도 ‘만만한 대권주자’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이대로 끝?


한 전 대표가 윤 대통령과 결별한 상황서도 62.8%의 지지를 얻어 당 대표로 당선됐던 것은 여전히 의미심장하다. “친윤이 다수인 의원들의 생각과 다르게 당원 민심은 따로 돌아간다”고 해석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는 사퇴 당시에도 “이재명 대표 재판의 타이머는 멈추지 않고 가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타이머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한 전 대표는 2개의 타이머가 모두 멈추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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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