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대담> 황우여 위원장 비상대책을 말하다

“지금 비대위는 당무형”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비상대책위원회는 관리형도, 쇄신형도 아니다.”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은 언론서 분석했던 현재 비대위의 두 가지 성격에 대해 모두 부인했다. 황 비대위원장은 “우리 비대위는 당무형”이라는 입장이다. 지금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지지치 않고 뚜벅뚜벅 당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시도 중이다. 

국민의힘은 비상 상황이다. 당 대표 체제로 이끌지 못하고 걸핏하면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문제는 당의 위기에 나서는 이가 딱히 없었다는 점이다. 혼란한 상황 속 구세주 같은 존재로 떠오른 인물이 바로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이다. 황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의 큰 어른이다. 그런 그는 고심 끝에 비대위원장직을 맡아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쉴 틈 없이
강행군

77세의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실제로 마주한 그에게선 이팔청춘 느낌이 강했다. 에너지가 넘쳐 흐르며, 당을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팔팔 끓었다. <일요시사>는 황 비대위원장을 만나 당내 상황 등을 물었다.

황 비대위원장의 정치경력은 30년이다.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정치를 해왔다. 최근 그는 말 그대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쉴 틈도 없이 하루에도 여러 개의 일정을 소화 중이다. 비대위원장을 맡은 기간은 두 달여로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 안에 다양한 당내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런 만큼 스스로 느꼈을 부담감도 컸을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했다.


황 비대위원장은 “사실 부담을 잘 느끼진 않는다. 고민은 많았지만, 그냥 덜컥 맡았다. 옛말에 ‘노마식도’라는 말이 있다. 경험이 많으면 그 일에 능숙하다는 뜻인데, 앞이 깜깜할 때 늙은 말을 풀어놓는 전법”이라며 “병사들은 길을 몰라도 늙은 말은 이미 갈 길을 다 알고 있다. 당이 나를 부른 게 그런 취지라고 생각한다. 지혜를 모아 당에 기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명암에 유불리를 따지지 않기 위해 일을 맡았다”고 말했다. 

그는 총선서 참패한 국민의힘을 다시 정상궤도로 올려놓기 위해서는 독이 든 성배를 마실 각오까지 마쳤다. 총선 결과 국민의힘은 ‘영남당’이 돼버렸다. 수도권서 패배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그중 ‘수도권 민심이 곧 전국 민심’이라는 말처럼 국민의힘이 전국적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 패배의 주요 원인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황 비대위원장은 “수도권은 1~2%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결국 수도권 민심에 부응하지 못한 게 크다. 수도권에는 전국 각지서 모여든 호남, 충청권 사람들이 많다. 결국 국민의힘이 충청과 호남 민심을 등에 업지 못해 패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거론했다.

이어 “나는 인천 사람인데 인천 인구는 27만명서 현재 300만명까지 늘었다. 이런 식으로 수도권에 이주한 사람이 많다. (이들이)수도권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전국 민심을 아우르는 선거 정책 개발과 선거전략을 펼쳐어야 했는데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야당은 선거 구조상 현 정부의 지난 과오를 꺼낼 수밖에 없다. 반면 여당은 전통적인 선거 구도상 미래 담론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번에는 민주당의 정권 심판론이 그대로 먹혀들었다.

여당은 현 정부가 추진해나갈 수 있는 사안을 디테일하게 제시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여당이 야당의 전략에 말려든 대목이다. 정책은 실종됐고, 이조(이재명·조국) 심판에 혈안이 됐다. 결국 국민의힘은 간신히 개헌 저지선을 지켜내는 데 그쳤다.

“수도권 민심은 전국 민심…못 읽었다”
“전대 룰? 치열한 논의 후 결정할 것”


그렇다고 여당의 선거전략이 꼭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윤석열정부의 3년을 위해서는 총선 승리는 절실했다. 

황 비대위원장은 “민주당과 야당이 심판론을 들고 나오면서 국민의힘서 이조 심판론으로 맞불 작전을 펼치다 보니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빠졌다”며 “선거를 끝낸 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저출산 대책, 연금개혁 같은 사안을 어떻게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했어야 했다. 미래의 꿈을 심어 미래 VS 과거의 구도로 선거전을 펼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평가했다. 

총선 패배의 여파는 상당했다. 국민의힘은 여전히 총선 책임론을 가지고 다투는 중이다. 현재 국민의힘 내부에선 총선 참패의 원인으로 한 전 비대위원장과 윤 대통령이 거론된다. 양측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이다. 이런 탓에 총선 백서의 작성 작업도 쉽지 않다.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이 단장을 맡았지만, 한 전 비대위원장의 책임으로 적시될 방향성이 제기되자 당내가 시끄럽다.

이를 두고 인물이 아닌 진짜 총선 참패의 원인이 무엇인지 규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만큼 현재 국민의힘은 많이 갈라져 있다. 황 비대위원장도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전략적인 부분과 똘똘 뭉치지 못한 부분을 꼬집었다. 

그는 “선거는 미래를 위한 하나의 축제이자 투자다. 여당은 과거를 심판하고 앉아 있으면 안 된다. 프레임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힘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머리에 남는 게 없다. 이런 부분이 제대로 담겨야 한다. 지금 국민의힘은 보수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정통성을 확고히 하겠다는 게 필요하다. 다시 뭉쳐야 하고, 동지애도 절실하다”고 짚었다. 

야당에
동지애

이런 명분하에 탄생한 게 황 비대위원장을 필두로 한 황우여 비대위다. 정치색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인사들과 접촉하고 있는 그는, 지난 23일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광폭 행보를 보이며 동지애를 펼치고 있는데, 중도층을 포섭하기 위한 전략으로 읽힌다.

야당에 대한 적극적인 동지애를 통해 국민에게 한층 더 가깝게 다가가겠다는 의도다. 대외적으로 이런 전략은 일정 부분 인정받는 분위기다. 다만 비대위가 출범하고 시간이 어느 덧 흘렀지만, 도대체 비대위의 콘셉트가 뭐냐는 질문이 계속 쏟아진다.

언론에서는 관리형으로 보고 있지만, 황 비대위원장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황 비대위원장은 “(비대위는)당무형이다. 나에게 부여되는 권한을 어떤 특정인이 부여한 게 아니다. 비대위는 당헌·당규에 어떻게 하라는 식으로 규정돼있다. 당은 전당대회(이하 전대)서 할 일이 있으면 준비해야 하고, 쇄신할 것이 있으면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쇄신이냐, 관리냐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자칫 큰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나는 당무를 집행할 뿐이다. 비대위 발족 때 목적을 정해줬으며 이후에 포괄적인 비상 대권이 부여되는데, 그걸 고친 게 나”라고 설명했다. 


비대위는 이제 당내 문제도 논의를 착수할 시기다. 대표적인 문제가 전대 룰 수정 문제와 개최 시기다. 국민의힘은 직전 전대서 기존의 룰을 바꾸면서 당심 100% (당원)투표로 선거를 치렀다. 최근에는 여러 곳에서 민심을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친윤(친 윤석열) 세력은 당심 100%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비윤(비 윤석열)계는 민심이 필수라는 주장을 견지하고 있는데, 전대 룰에 따라 후보 간 유불리가 갈리는 상황이다.

황우여 비대위는 이런 환경 속에서 전대 룰을 손봐야 한다. 비대위는 지난 20일, 상임고문단을 만나 전대 룰과 관련한 부분도 청취했다. 아직까지 황 비대위원장의 입장은 여러 의견을 모아보겠다는 정도다. 

이와 관련해 황 비대위원장은 “전대 룰과 관련한 의견은 노코멘트다. 개인적인 생각이 있지만 이것을 이야기하는 순간에 당헌·당규 개정 문제가 발생한다. 관리자 신분인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순간 자격에 문제가 생긴다”며 “일각에선 바꾼다고도 이야기하는데, 결정된 부분은 없다.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지켜봐야 안다”고 말을 아꼈다. 

당우도
신경 써야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우리나라의 헌법 개정 절차가 있듯이 국민의힘에는 개정 절차가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어떤 말에도 휩쓸리지 않고 내부서 치열한 논의를 한 뒤에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탓에 당 내부 일각에선 혁신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나온다. 지금껏 국민의힘은 여러 번의 비대위를 거쳐왔다.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분란이 이어져 왔고, 여전히 내분이 쉽게 잦아들지 않고 있다. 혁신 문제 역시 그동안 계속해서 제기돼 왔다.

이번마저 기회를 날려 버린다면 국민의힘은 스스로 설 기회를 영영 잃을 수도 있다. 

황 비대위원장은 “(비대위는)비판받아도 어쩔 수 없고, (내가)말할 수 있는 권한도 별로 없다. 비대위원장이 여러 말을 할 수 있다는 당헌·당규 해석이 나오면 할 수 있는데, 비대위는 충실하게 집행하는 데 그쳐야 한다. 전대 룰에 관한 부분은 양론이 있다. 당 대표는 당원만 뽑아야 한다는 것은 전통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대신 그는 당우(당원이 아니면서 밖에서 당을 돕는 사람)를 신경써야 할 문제라고 봤다. 즉 교육자, 공무원, 소상공인, 경제인 등 입당을 하지 못하거나 입당을 꺼리는 상당수의 의견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을 포용할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는 게 황 비대위원장의 견해인데, 이 문제 역시 당헌·당규의 개정 문제가 걸려 있다. 그는 출마자 5(당원) 대 5(당외) 당의 대표자는 7(당원) 대 3(당외) 방식을 택해야 이색적인 선택이 유입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친윤·비윤 간 분란…당의 건전한 에너지”
“차기 당 대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길”

그에 따르면 여러 분야의 사람을 흡수하기 위해 전대 룰을 바꿀 여지는 충분히 존재한다. 다만 비대위원장이 “어떻게 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한 표밖에 되지 않는 만큼 크게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황 비대위원장은 “잘못하면 나만 의심받고 공정하게 이걸 수행하는 점에서 큰 문제가 생긴다. 우리의 의견을 수렴하고 협의를 통해 정리해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 절차가 있는 과정서 개정하라고 당이 원하면 하는 것이고, 아니라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전대 룰과 함께 문제가 되는 것은 계파간(친윤과 비윤)으로 나뉘어 아직도 싸우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총선을 통해 내부 상황은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됐지만, 국민의힘은 21대 국회가 끝나기 전까지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다.

당의 세력 보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만큼, 정리하고 가야 할 부분임에는 자명해 보인다. 특히 비대위 자체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면서 황우여 비대위에게는 상당한 압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황 비대위원장은 “이 부분(압박)을 오히려 좋은 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윤상현 의원이 쇄신하지 않고, 널브러져 있냐는 식으로 나를 엄청 공격했고, 홍준표 대구시장도 짧은 기간에 쇄신할 부분이 어딨냐는 식으로 비판했다”며 “관리나 잘하라는 식이었는데, 오히려 고마웠다. 이 부분을 즐기려 한다. 당을 자꾸 억압하고 눌러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분란을)당의 건전한 에너지로 본다”고 제시했다.

국민의힘은 차기 당 대표가 누가 될 지가 초미의 관심거리다. 당 대표에 따라 당의 정체성과 방향성 모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당권주자로 나경원 당선인,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차기 당 대표는 지방선거는 물론, 대선도 신경써야 한다는 점에서 물밑 싸움이 치열하다.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후보들은 저마다 세를 불리기 위해 각자 활동 중이다. 

대청소
마무리

황 비대위원장은 “새로운 당 대표는 내년 보궐선거를 신경써야 하고, 다음은 지방선거다. 대선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인물이 필요하다. 특히 지방선거서 이겨낼 인물이 적합하다고 본다. 4년 내내 선거가 있어서 당 대표가 스타트를 잘 끊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비대위 관리만 하면 반대서 정신 차리라는 이야기를 하는 만큼 청소의 뒷마무리를 한다든지, 당의 필요한 부분을 빨리 처리해 나가려고 한다. 매듭 지을 수 있는 부분은 빨리 짓고, 쇄신 문제도 가열차게 처리해 임기를 잘 마쳐 후임 대표가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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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5000만원 관봉권’ 출처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은 대통령실 특활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씨는 그저 ‘기도비’라고 진술 중이다. 검찰이 김건희씨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점을 보면 전씨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가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김씨의 소환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일가를 향한 수사는 그간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로비 사건은 중앙지검이 아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포문을 열었다. 전씨는 통일교와 캄보디아 사업 및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았다. 윤석열 일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수상한 증거들 남부지검은 전씨를 수사하기 이전에 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근 정식 부서로 신설된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해 7월 ‘퀸비코인(QBZ)’ 관계자 이모씨 외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사업 진행 능력이 없음에도 허위 자료를 제출해 스캠 코인을 상장했다. 1만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300억원에 육박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과정서 퀸비코인 관계자 이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모씨를 전씨와 연결한 정황 및, 이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정씨는 전씨 법당을 찾아 1억원을 건넸다. 이 사실을 파악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법당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달여 전에는 경기 성남의 카카오 판교 서버를 압수수색해 전씨의 카카오톡 기록까지 확보했다. 전씨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그의 처남으로 알려진 ‘찰리’ 김모씨도 전씨와 같이 활동했다. 전씨는 김건희씨가 운영하던 전시기획회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씨의 딸도 잠깐이지만 코바나컨텐츠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과 김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실제 전씨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부지검은 지난달 30일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모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찍혔는데…통상 정부 예산 활용 금융권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없다” 일축 검찰이 지난 3일 전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남부지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김씨를 대선 직전에 소환조사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목걸이와 명품백을 잃어버렸다. (김 여사가 잘 받았다는 문자는) 거짓 문자”라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씨 측도 “전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윤씨가 전씨에게 윤석열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추진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윤 전 대통령과 독대했고 국가 단위 ODA 연대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3월 윤씨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김씨를 인수위서 만난 뒤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일교는 같은 해 메콩강 핵심 부지에 ‘아시아태평양유니언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윤씨는 훈센(Hun Sen)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도 이 사업을 논의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씨는 2022년 5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3월 22일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독대를 하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는 비영리기구(NGO)가 펀딩 가능하고 국가가 지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가 제4차 한-캄보디아 ODA 통합 정책협의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한 점을 주목했다. 한도액이 늘면 중기후보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ODA 사업 수주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던 6000만원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와 관련해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는 전씨에게 “김 여사에게 빌리지 말고 하고 다니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씨 명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했다. 이 중 1대는 김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서 나오면서 보안 비화폰(안보폰)을 반납한 뒤 개통한 휴대전화다. 나머지 2대는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사실상 공기계로 알려졌다. 자택 압색 그 이후… 검찰은 100여개에 달하는 압수 대상에 윤씨 선물 명목으로 전씨에게 제공했다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도 적시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씨의 청탁이 성사됐거나 윤씨와의 직무 관련성 등이 입증된다면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톡 기록과 전달됐거나 전달되려 했던 물품들은 이미 수사팀이 확보했으니 김씨가 대면 조사를 피하긴 힘들다”며 “남부지검서도 성역 없이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직무 관련성 입증이 관건”이라며 “입증만 된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5만원권 3300매(1억6500만원)를 확보했는데, 이 중 5000만원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전씨에게 이 관봉권의 출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관봉권은 ‘제조권’과 ‘사용권’ 두 종류로 나뉜다. 제조권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은이 받아온 신권으로 돈다발에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 압축한 형태다. 사용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서 회수한 돈을 검수해 낡은 돈은 폐기하고 사용하기 적합한 돈만 골라낸 것이다. 발견된 돈다발 김씨와 전씨 사건서 등장하는 관봉권은 모두 사용권이다. 전씨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 돈다발은 한은이 적힌 비닐로 포장돼있었고, 비닐엔 기기 번호와 담당·책임자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씨 측이 옷값을 치를 때 썼던 관봉권은 비닐 없이 띠지만 둘러져 있는 돈다발 형태였다. 관봉권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에 필요한 특수활동비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 특활비가 로비 자금으로 악용됐다. 한은은 전국에 16개 지역 본부를 두고 금융기관에 관봉권을 보낸다. 서울엔 남대문 본점 및 강남본부 등 두 곳이 있다. 이 중 강남본부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 등에 예산 조달을 담당해 왔다. 다만 민간인의 집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대개 일반 정부 예산은 관봉권 형태가 아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전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천만원 상당의 관봉권이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건 영수증 내역도 남지 않는 특활비”라며 “통상 정보와 사정기관이 ‘돈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도 전씨의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 강남본부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이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돼있다. 윤 전 대통령 취임일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주로 돈은 ‘기도비’ 명목으로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받은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은 방문 이후 전씨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에 적힌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발권국 항목 등의 의미를 확인했다. 기기번호의 뜻은 정사기(검수기) 기기번호와 기기호수를 뜻하고, 발권국 정보에는 정사 업무를 담당하는 발권국 화폐관리1팀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MB 때 국정원 ‘입막음·로비’ 용도로 사용 검·정보 “이번엔 아니다”…남은 건 용산 포장지에 적힌 ‘2022년 5월13일 오후 2시5분59초’는 한은이 검수를 마친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한은은 개별 사용권이 어느 시점에 어느 금융기관으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기관서 화폐를 요청하는 경우 ▲지급한 금융기관명 ▲지급일자 ▲권종 ▲금액 등만 기록할 뿐, 어떤 사용권 묶음을 제공했는지는 별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지난 대선 기간 전씨가 운영했던 윤 전 대통령 선거캠프 운영비일 수 있다고 보고 금융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초 당시 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있던 오을섭씨를 소환조사하면서 양재동 캠프의 운영비 출처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관봉권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특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한은 뭉칫돈은 대부분 특활비”라며 “특활비라면 한은 검수 이후 수천만원 상당의 돈이 필요한 곳은 보통 사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예산은 뭉칫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사정기관 담당자들을 불러 확인해봐야 하는데 정보기관에서는 특활비 활용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확인도 어려울 것이다. 출처 규명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와 접촉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정원 특활비’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정원은 관봉 형태의 특활비 5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 ‘입막음비’로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청와대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장 전 주무관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출처 어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특활비와 흡사해 보이지만 2022년 이후의 특활비 활용이나 대통령실을 통해 쓰인 ‘국정원 특활비’ 등에 대해서 들여다봤을 때 불법적이거나 위법하게 쓰인 사실이 없다. 한 개인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못 박았다. 검찰 관계자도 “남부지검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검찰 특활비는 아니다. 남부지검 수사팀도 검찰과는 상관없는 관봉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