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옥죄는 세 가지 족쇄

네 번째 죽음이 불러온 당 대표 불가론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또 죽었다. 네 번째 죽음이다. 우연도 세 번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고 했는데, 그런 우연이 자그마치 네 번이나 겹쳤다. 이번 죽음에 그동안 꿈쩍 않던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조차 동요하기 시작했다. 민주당 이재명 의원과 관련된 ‘사건 참고인들의 죽음’ 이야기다. 유독 이 의원 관련 수사에서만 여러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이런 분위기 때문일까. 민주당 전당대회 1차 컷오프 결과가 이 의원 입장에서 최악으로 나왔다. 순항 중이었던 이 의원의 당 대표 항해에 태풍이 몰아치려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은 지난달부터 ‘김혜경씨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받아 경찰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었다.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달 26일, 사건과 관련 있던 참고인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의 죽음이 알려지자 정치권과 대중은 일제히 의심 섞인 눈초리를 이 의원에게 쏘아댔다. 왜 하필 또다시 이 의원의 수사 관련자가 죽느냐는 의심이었다. 

끄떡 않던 
지지자들도…

A씨의 죽음과 관련해 논란이 끊이지 않자 이 의원이 사건에 대해 직접 입을 열었다. 그는 지난달 30일 전당대회 선거운동 차 들린 강릉시에서 지지자들을 만나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을 특정인한테 엮는다”며 “무당의 나라가 돼서 그런지”라고 푸념했다.

이어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검찰, 경찰의 강압 수사를 견디다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게 이재명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지지자들에게 되물었다. 관계자가 죽은 지 4일 만에 나온 최초의 관련 발언이었다. 

그의 말대로 경찰 측은 수사 당시 26일 숨진 A씨가 해당 사건과 크게 관련 없는 것으로 봤었다. 수사를 맡은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사망 보도 직후 “A씨는 여러 참고인 중 한 명으로 조사를 받은 것은 맞지만 A씨에 대한 추가 조사 계획도 없었다”며 그가 주요 참고인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A씨를 주요 참고인인 배모씨의 ‘지인’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던 경찰은 오히려 그의 죽음이 ‘의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의아함은 며칠 뒤에 바로 풀렸다. A씨가 주요 참고인으로 인식될 만큼 이 의원과의 연결고리가 더러 밝혀졌기 때문이다.

세 사람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A씨와 배씨의 관계부터 알아야 한다. A씨는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성남지역 정보요원으로 활동한 기무사의 일원이었다. 이 의원이 성남시장으로 일하던 당시와 시기가 겹친다.

그는 당시 이 의원의 수행비서 역할을 하던 배씨와 이때 처음 연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배씨와 A씨는 후에 이 의원을 돕자는 뜻을 함께하며 가까이 지내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배씨는 이 의원이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부터 함께한 그의 최측근이다. 이 의원이 성남시장에 당선된 후부터는 비서실에서 일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경기도지사 시절에는 경기도청 별정직 5급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지난 수십년 동안 이 의원 곁을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김씨의 법카 횡령 사건에 A씨는 어떻게 끼어든 것일까. 연결고리는 김씨의 '법인카드 유용 방법'이었다. 김씨가 유용했다고 알려진 법인카드는 본래 한도가 걸려있는 카드다. 이 때문에 한도가 걸렸을 때 여러 애로사항이 있었는데, 김씨는 다수의 개인카드로 금액을 선결제한 뒤 취소하는 방식을 사용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취소한 뒤 한도가 풀린 법인 카드로 재결제하는 방식이었는데, 이 과정에 사용된 개인카드 중에 A씨 카드와 배씨의 카드도 섞여 있었다. 다시 말해, A씨는 법인카드를 횡령하는 데 일조한 일종의 ‘참고인’ 수준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A씨가 본인은 “카드만 빌려줬을 뿐 횡령은 모르는 일”이라 증언했다면, 수사는 더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컸던 상황이다. 실제로 여기까지가 경찰이 알고 있던 A씨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압도적인 권리당원 투표율인데…
앞으로 터질 악재들로 위태위태?

그러나 A씨의 죽음이 알려진 후, 언론 보도를 통해 이 의원과의 추가 연결고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선 A씨가 이 의원이 주재한 회의에 수차례 참석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 의원이 ‘관련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던 A씨는 2014년 12월 ‘통합방위협의회 4분기 회의’와 2016년 2월, 6월에 열린 통합방위협의회에도 참석했다. 적어도 서너 차례는 이 의원과 대면 회의를 한 사이였던 것이다.

또, 이 의원의 아들에 대한 편의를 봐줬다는 의혹도 받는다. A씨는 이 의원의 아들이 공군 기본군사훈련단 인사행정처 행정병으로 복무하던 당시에 성남 국군수도병원안에 있는 안보상담소에서 근무했다.

이 당시에는 이 의원 아들의 국군수도병원 특혜 입원 논란이 있던 시기와도 겹친다. 겹치는 시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A씨가 이 의원의 아들 입원 문제에도 개입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장소는 세 사람 간 연결고리의 화룡점정이다.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장소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위치한 한 빌라였는데,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이곳을 매입한 소유주는 배씨였다.

최근까지 A씨가 이 의원의 최측근인 배씨 소유의 빌라에서 생활했었고, 그곳에서 수사받던 중 그곳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배씨와 이 의원, 그리고 A씨가 아직도 관련됐다는 의혹이 재점화되는 부분이 여기다. 

A씨와 이 의원이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여권에서는 속으로 하던 의심을 겉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의원의 기운이 참 어둡다. 주변에 자꾸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며 "가까운 사람들도 그렇고, 같이 일했던 사람들도 수사과정에서 유독 죽는 분이 많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속되는 참고인의 죽음에 민주당 지지자들 또한 하나둘 의심을 싹틔우기 시작했다.

지난 2일 민주당사에서 <일요시사>와 만난 한 지지자는 “지난 대선에서 이 의원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운동했었지만, 지금은 그(이 의원)가 대표되는 것을 반대한다”며 “그런 의심(참고인의 연이은 죽음)이 드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좀 무섭다”고 말했다.


압도적 선거 결과에도
동요되는 당심과 민심

지난해와 올해 초에 이 의원과 관련된 주요 참고인 세 명이 더 숨진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12월10일에는 대장동 개발사업자 선정 1차 심사위원이었던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이 세상을 떠났고, 같은 달 21일에는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 1처장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김 전 처장 또한 민간사업자를 선정하는 평가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인물이다. 올해 1월에는 이 의원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최초 제보자인 시민단체 대표 이씨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대선 때까지 세 명, 또 전당대회에 앞서 한 명이 추가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 의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도 점점 달라져간다. 대선 전까지는 ‘우연이겠지’ 치부하던 일들이 주요 선거를 앞두고 다시 벌어지니 ‘우연이 아닌가’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지속되는 관련 ‘참고인의 죽음’에 이 의원의 표는 계속 떨어져나가는 중이다.


민주당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 본선에서는 대의원 30%, 권리당원 40%, 일반 국민 여론조사 25%, 여론조사 5%를 반영한다.

권리당원 30%는 이 의원의 대세가 변화 없이 굳혀지는 분위기지만, 투표권이 센 대의원을 포함한 나머지 70%는 여론의 동향에 많이 휘둘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의원은 전당대회가 한창인 셋째 주에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라는 대형 악재를 앞두고 있다. 경찰이 발표하겠다고 공언한 사건은 김씨의 법카 횡령 의혹인데, 여기서 치명적인 결과가 나온다면 국민 여론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이 의원은 지난 컷오프 때도 ‘압도적인’ 표 차는 기록하지 못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민주당 비대위 내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에서 “정확한 표 차이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1위와 2위의 표 차가 생각보다 크게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구체적인 순위와 득표율은 당헌·당규상 밝힐 수 없다고 했지만, 1위가 예상되는 이 의원과 2위의 유력 후보 박용진 의원과의 표 차가 많이 나지 않았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했다.

박주민 의원
탈락은 왜?

가뜩이나 차이가 적게 난 선거에서 ‘경찰 수사 결과’라는 악재가 덮칠 경우 뒤집힐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게 야권 내부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한창 진행 중인 전당대회에서 ‘비명(비 이재명)계’에 유리한 몇 가지 변수가 더해지면 ‘어대명’ ‘확대명’이라는 친명(친 이재명)계 지지자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비명계 측에서 가장 크게 기대하고 있는 유리한 변수는 당 대표 후보들끼리의 단일화다. 지난달 28일 있었던 1차 컷오프 발표 현장에서 이 의원 측은 마냥 웃을수만은 없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 의원의 예비 경선 통과는 기정사실이었으나 같이 통과된 후보 중 의외의 인물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재선의 강훈식 의원이다.

강 의원은 당초 낮은 인지도와 옅은 계파 색깔로 1차 컷오프 통과가 기대되던 인물은 아니었다. 여의도에선 2강·2박의 ‘97그룹’ 의원들 중 박용진 의원과 박주민 의원의 통과를 점치고 있었다. 당내 영향력이나 인지도를 고려하면 이 둘의 통과 가능성이 가장 컸었기 때문이다.

모두의 예상대로 박용진 의원은 컷오프를 통과했으나, 박주민 의원은 강 의원에 밀리며 탈락했다. 여기에는 최근 입장을 ‘모호하게’ 튼 박주민 의원의 노선이 한몫했다고 전해진다. 

박주민 의원이 속한 97그룹은 젊은 의원들이 당의 쇄신을 책임질 개혁파로서 인식돼 계파색을 굳이 따지자면 비명계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박주민 의원은 지난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캠프의 총괄본부장을 지낸 이력이 있다. 본선에서 ‘억지로’ 이 의원의 대선을 도운 것이 아니라 경선 과정부터 그의 곁을 지켜온 셈이다.

경선 때부터 이 의원을 도운 다수의 의원들은 보통 ‘친명계’로 인식된다. 친명계로 인식되던 박주민 의원이 개혁파로 분류되기 시작한 건 지난 지방선거 때부터다.

그는 서울시장 후보에 뛰어들며 당시 예비후보였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에게 쓴소리를 하는 등 점차 비명계의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서울시 의원 20명이 모여 송 전 대표의 출마를 반대하는 성명을 낼 때도 박주민 의원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 전 대표는 친명계의 좌장격 인물로, 그에게 쓴소리를 낸다는 것은 곧 친명 전체와 등을 지겠다는 것과 똑같은 의미였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그가 전당대회를 앞두고 다시금 친명계 노선을 탄다는 의심을 보내고 있다. 97그룹 중 3명의 의원이 일찌감치 당 대표에 입후보하고 선거운동을 펼칠 때, 박주민 의원만은 끝까지 고심하며 전대 출마를 미뤄왔다.

컷오프 결과 친명계에 최악
최고위 컷오프도 ‘비등비등’

후보 마감 며칠을 앞두고 박주민 의원이 후보 등록을 하자 정계에서는 ‘이재명의 페이스메이커를 위해’라는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는 박 의원이 그동안 이 의원을 옹호하는 발언을 지속적으로 해왔던 탓이다. 그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재명 한 사람에게 (선거)패배의 책임을 돌리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며 “주된 초점은 왜 우리가 176석을 얻고도 지난 2년 동안 할 것이라고 기대받았던 걸 하지 못했나”라고 이 의원을 두둔했다.

또 지난달 12일에는 라디오 인터뷰에 나와서 “(이 의원과)둘이서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고 발언해 둘이 가까운 사이인 것을 대중에게 재확인시켰다.

친명 측에서는 그런 박 의원이 컷오프를 함께 통과한 뒤 당 대표 선거 중간에 이 의원과 단일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따라서 이 때문에 친명계 입장에서는 강 의원의 컷오프 통과가 매우 뼈아픈 결과다. 강 의원은 박주민 의원처럼 ‘포섭 가능한’ 후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박용진 의원과의 단일화 가능성이 더 높은 비명계 의원이다. 당 대표로의 길이 뚜렷했던 이 의원에게 박주민 의원의 컷오프 탈락은 의외의 변수였다.

최고위원 컷오프 결과 또한 친명계의 입맛대로 되지 않았다. 이번 전당대회 최고위원 예비 경선에는 역대 최다 인원인 17명이 출마했다.

원내 10명, 원외 7명이었는데 모두가 주목하고 있었던 후보군은 원내서 나온 10명의 의원들이다. 그동안 원외서 컷오프를 통과한 사례가 극히 적기 때문에, 10명의 의원 중 몇 명의 친명계 의원이 통과될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친명계로 알려진 최고위원 예비후보는 정청래·양이원영·이수진·서영교·박찬대·장경태 의원이었다. 당초 전원 통과 예상과는 달리 이·양이 의원은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친명계에선 총 4명이 통과한 것이다.

비명계 측에에서도 고민정·윤영찬·송갑석·고영인 의원의 동수가 통과했다.

대세로 알려진 ‘친명계’의 세가 예상만큼 두드러지지 못한 셈이다. 4:4로 비등비등한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비명계 측은 안도의 한숨을 돌렸고, 친명계 측은 씁쓸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총 5명이 입성하게 될 지도부에 비명계 4명 전원이 들어가는 것도 아예 배제할 수 없는 경우의 수이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 결과 발표, 박주민 의원의 컷오프 탈락, 최고위원에서 압도적이지 못한 승리는 이 의원의 당 대표행을 방해하는 악재들이다. ‘이기는 민주당’을 만들겠다던 이 의원은 사실 그동안 이겼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또 지면
3연패

그가 진두지휘한 선거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늘 지기만 했다. 이번 전대서조차 패배한다면 이 의원은 회복할 수 없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동안 정치적 타격을 수차례 경험한 이 의원이 이번에도 ‘정면돌파’를 택하며 이겨나갈 수 있을지, 끝내 당 대표에 탈락하며 다시 한 번 ‘선거 패배’의 아이콘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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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