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속질주 '이재명 흔들기' 친문의 한계

대어 잡으려다 피라미 도망갈라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차기 대권을 앞두고 집안싸움을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당내 주류 '친문'과 여권 1강 '이재명 경기도지사' 구도다. 이 지사는 야권 최대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맞수로 평가받는다. 그런 이 지사를 두고 민주당에서 대권 다툼이 벌어지는 이유는 뭘까.

차기 대통령 선거가 10개월여 안으로 다가오면서 대선 정국이 도래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재보선 참패 이후 정권 재창출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모양새다. 여권 대선주자들은 몸집을 불리면서 발언 빈도를 늘리고 있다. 조기 흥행을 위해 일찌감치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들도 있다.

차기 대선
10개월…

여권 유력 대선주자는 3명으로 압축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다. 이들의 출마 시기는 '5말6초'로 예상됐다. 하지만 당초 전망됐던 출마 시기보다 더 늦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름 아닌 '대선 경선 연기론'이 대두돼서다.

대선 경선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친문 진영 일각에서 제기된 바 있다. 공론화까지는 아니었지만, 경선 일정이 다가오면서 부상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경선 연기론은 중앙 정치로 옮겨졌다.

민주당 전재수 의원은 지난 6일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연기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 의원은 '국민의힘보다 두 달 먼저 대선 후보를 내는 점’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웠다.


민주당은 당헌에 따라 대선 180일 전까지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 대선은 내년 3월9일로 오는 9월10일까지는 후보 결정해야 한다.

전 의원의 주장은 대선 120일 전인 11월인 것으로 풀이된다. 전 의원의 주장이 모두 11월에 걸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에서는 대선 후보를 11월에 결정하게 된다. 또 정부는 11월에 코로나19에 대한 집단면역을 목표로 두고 있다.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는 원론적 입장을 내세웠다. 반면 이 지사 측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지난 7일 "우리 당 두 분 선배 의원께서 내년 대통령 후보 경선 연기를 주장한다"며 운을 뗐다. 앞서 대선주자로 꼽히는 민주당 김두관 의원 역시 경선 연기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민 의원은 전 의원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경선 연기 들고 나온 친문계
이 측 즉각 반발 "원칙대로"

야당 경선 시기에 대해선 '두 달 앞서 시민의 마음을 얻는 작업'이라고 밝혔다. 국민들의 코로나19 피로감에 대해서는 '민주당 경선은 시끄러운 싸움판이 아닌 미래 비전을 놓고 경합하는 성장 과정'이라고 반박했다. 민 의원의 발언은 이재명계의 첫 공개 발언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이 지사 측 입장에서는 예정된 일정에 따라 경선을 치르는 것이 유리하다. 이 지사는 차기 여권 대선 주자 가운데 1강을 유지하고 있다. 2위와의 격차는 더블스코어 이상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큰 변화는 없었다. 현재 지지율로만 살펴봤을 때, 이 지사는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계 좌장 격인 민주당 정성호 의원도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정 의원은 지난 7일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다"며 대선 경선 연기론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 의원은 이날 TBN 라디오에서 "특정인을 배제하기 위한 또 다른 후보를 키우기 위한 시간 벌기"라며 "이런 프레임에 말려 들어가고 본선에서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일갈했다.

대결 구도는 '친문 대 이 지사'로 접어드는 형국이다. 대선 경선 연기론에 군불을 지핀 전 의원의 발언은 '친문 진영이 본격적으로 이재명을 끌어 내리려 한다'는 해석으로 비춰졌다. 이 지사는 비문으로 분류된다.

이 지사 스스로 '비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친문에서는 그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친문 진영에서는 친문 후보를 차기 대선 주자로 내세워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유가 뭘까.

노의 기적
이번에도?

이들의 기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선 승리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내에서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2%에 불과했다. 당시에는 '이인제 대세론'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에서 국민 참여경선을 최초로 도입하면서 기적이 발생했다. 만년 꼴찌였던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 광주 지역 경선에서 37.9%의 득표율로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이인제 후보는 31.3%, 한화갑 후보는 17.9%에 그쳤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대선 경선 최종 결과를 알리는 서울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결정됐고, 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특정 지지층의 기대에 현역 친문 의원의 공개 발언으로 민주당 집안싸움이 사실상 공식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친문이 당내 주류라 하더라도, 민주당이 대선 경선을 연기한다면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한다.


우선 대선 경선 연기론이 친문 진영에서 비롯된 만큼, 현실로 다가온다면 '친문의 힘'이 확인되는 셈이다. 앞서 민주당에서는 재보선 참패 이후 '친문 일변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이후 '민심이냐 당심이냐'를 두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치열한 이견이 이어졌다.

민주당 초선 5적 논란과 강성 지지층의 문자 폭탄 등이 대표적이다.

재보선 참패 이후 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고, 곧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도로 친문당이 되느냐 여부를 두고도 이목이 집중됐다.

우선 원내대표에 친문 강성 윤호중 의원이 당선됐지만, 당 대표에 비문 송영길 대표가 당선되면서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다만 송 대표가 친문 민주당 홍영표 의원에 0.59%포인트라는 근소한 격차로 승리한데다가, 최고위원에 친문 의원들이 줄줄이 당선되면서 도로 친문당에 대한 우려는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았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심이냐 당심이냐를 두고 민주당에서 이견이 뚜렷했다"며 "친문 쪽에서 제기한 대선 경선 연기가 현실이 된다면 민심이 등을 돌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 우려를 표했다.

대선 경선 연기를 위해 당헌을 들여다 봐야 한다는 점도 민주당에 부담이다. 앞서 민주당은 '박원순·오거돈 사태'에 따른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에서 당헌을 수정해 박영선·박영춘 서울, 부산 시장 후보를 배출했다.


민주당은 문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시절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을 정립한 바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재보선을 위해 이를 수정했고, 서울·부산 시장 선거에서 모두 참패했다. 민주당은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헌 또
건드리나

물론 대선 경선 연기를 위해서는 당헌을 수정하지 않을 수 있다. 민주당 당헌에 따르면 '상당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당무위원회의 의결로 (대선 후보 선출 시기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대선 경선 연기가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는 이유다.

하지만 '상당한 사유'가 설득력을 얼마나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치권 관계자는 "원팀도 모자랄 판에 벌써부터 사분오열 조짐을 보인다"며 "민주당 당헌에 적시된 예외 사항을 지금의 상황에 적용시킬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여권 관계자는 "전재수 의원의 발언을 살펴볼 때, 이미 당 주류인 친문 의원들 사이에서 경선 연기를 위한 그림을 다 그려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친문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대선 경선 연기론이 필요하다는 의중이 모인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경제>에 따르면 김종민 의원은 "(경선 연기와 관련해서는)당 지도부가 의원들 의견을 취합해야 할텐데, 재보궐 선거가 끝나고 나서 '이대로(현재 경선 일정대로) 가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다수를 이룬다. 선거 전과는 달라졌다"고 전했다.

여론이 달라진 이유를 두고는 "코로나19도 있고, 저 쪽(국민의힘) 일정과 맞지 않기 때문에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불리하다는 것이다. 누가 유리하고 불리하고를 떠나서 당 차원에서 바람직한 방향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이 인식하고 있는 당내 여론이며, 본인의 입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 다른 민주당 중진 의원도 통화에서 "경선 연기 주장에 일리가 있다"면서 "코로나19로 국민들이 고통 받고 피로감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정치 일정을 치른다는 것이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했다. 그는 "야당과 일정을 맞추는 것도 필요하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의원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당사자인 이 지사의 입장은 어떨까. 이 지사는 대선 경선 연기론에 대해 초기에는 "상식과 원칙에 따라서 하지 않겠느냐. 당이 정하면 우리가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지사는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비주거용 부동산 공평과세 실현 정책 토론회에 참석한 뒤 '당내에서 경선 연기론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원칙대로 하면 제일 조용하고 합당하지 않나"라고 답했다.

사실상 대선 경선 연기론에 대해 쐐기를 박았다는 평가다.

여권 1강 흔들기? 대세론 계속?
친노·친문 이 캠프 대거 합류

하지만 이 지사 입장에서는 당 주류인 친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 지사가 친문과 전략적으로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이 지사의 행보를 보면 이를 엿볼 수 있다.

이 지사는 지난 4일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경기도 모처에서 만났다. 양 전 원장의 귀국을 축하하는 자리였다고 전해진다. 양 전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평가가 다분한 인물이다. 지난 2017 대선 과정에서 이 지사는 대선 경선 출마에 대해 양 전 원장과 상의한 바 있다.

당시 양 전 원장은 이 지사에게 출마를 강하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사는 지난 6일에는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찾았다. 당시 이 지사는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와 함께 참배했다. 눈길이 가는 대목은 곽 변호사가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의 참배 당시에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지사가 친노·친문 쪽으로 발을 넓히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이 지사가 지난 11일 발족한 대선 캠프 '민주평화광장'을 살펴보면, 이 지사의 스펙트럼이 어느 정도 넓혀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지사의 대선캠프 민주평화광장은 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의 연구재단인 '광장'을 흡수해 재편한 단체다. 이 전 대표는 친노·친문의 좌장이자 지난 2018년 강성 친문 당원들의 '이재명 탈당'을 일축한 바 있다.

이 지사 캠프에 합류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 지사가 친노·친문 진영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민주평화광장 공동대표는 이해찬계 조정식 의원과 참여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전 장관이 맡는다. 또 이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이 대거 뛰어들었다. 이 전 대표의 측근 김성환·이해식 의원과 이해찬 대표 체제 당시 지명직 최고위원이었던 민주당 이수진(비례)·이형석 의원, 그리고 청년·대학생위원장이었던 장경태·전용기 의원이 참여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도 이름을 올렸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 지사는 여권 1위를 기록 중이다.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8∼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110명을 조사한 결과, 윤 전 총장과 이 지사의 양자 대결에서 윤 전 총장은 40.2%, 이 지사는 37.4%의지지 응답을 얻었다.

'지지 후보가 없다'는 응답은 18.7%, '잘 모름·무응답'은 3.8%였다.

돌고 돌아
결국 손잡나

여야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로 넓혀봤을 때도 윤 전 총장이 26.2%, 이 지사가 24.4%로 윤 전 총장이 근소하게 앞섰다. 이어 이 전 대표(13.0%),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6.8%), 무소속 홍준표 의원(6.2%), 정 전 총리(4.3%) 순이었다.
해당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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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밥도 아닌 트럼프 따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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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을 밑바탕 삼아 용꿈을 현실화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장 대표에게 영감을 준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화당 장악·대권 도전 과정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30년 넘게 이어진 미국의 문제점과 유권자의 불만을 꿰뚫었다. 장 대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빙글빙글 정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난 6일 광주를 방문해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려고 했다. 그러자 광주전남촛불행동 등 광주 시민단체 회원들과 일부 시민들은 장 대표 일행의 참배를 막았다. 결국 장 대표 일행은 추념탑 앞에서 5초 동안 묵념한 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같은 콘셉트 다른 행보 장 대표의 참배 시도엔 ▲국민 통합 ▲호남 구애 및 지역 현안 해결 ▲강경 보수 이미지 희석 등 이유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장 대표의 이후 행보는 참배를 시도했던 이유에 대한 의문을 자아낼 가능성이 있다. 광주북부경찰서는 장 대표 등의 참배를 막은 시민들에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재물손괴 등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의힘 광주시당은 지난 18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일 집회는 신고되지 않은 불법 시위였고, 각종 욕설과 모욕으로 일관된 폭언·폭력이 난무한 아수라장이었다”며 “시민을 가장한 과격 단체와 특정 인사들이 국민의힘 당 대표의 참배를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12일 내란 특검에 체포됐다가 이틀 후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돼 석방된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두둔했다. 황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라. 대통령 조치를 정면으로 방해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체포하라”는 내용의 비상계엄 동조 게시글을 올리는 등 행동으로 말미암은 내란 선전·선동 혐의를 받고 있다. 장 대표는 국회에서 대장동 항소 포기 규탄대회를 진행하던 중 황 전 총리 체포에 대해 “전쟁이다. 우리가 황교안이다. 뭉쳐 싸우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황 전 총리가 활발하게 부정선거론을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비판이 이어지자, 장 대표는 지난 13일 의원총회에서 부정선거론에 선을 그으면서 “전략적으로 한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장 대표·황 전 총리의 행적을 되새겨보면,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구호는 미국 정치 드라마 <웨스트윙>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대사 “나는 민주당원이다”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웨스트윙>에선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매튜 산토스가 상대 후보 에릭 베이커의 약점을 감싸는 연설을 한다. 에릭 베이커는 부인의 만성 우울증을 숨겼다. 이 때문에 논란이 발생하자, 매튜 산토스는 “어차피 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는데, 아닌 척 위선을 할 뿐”이라며 “지도자에게 완벽하다는 환상을 요구하면, 이는 단지 거짓을 종용하는 것”이라고 연설했다. 이어 “완벽한 후보·특혜를 줄 후보가 아니라 이상·희망·꿈을 공유하는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면 우린 자랑스럽게 ‘나는 민주당원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광주 방문 시도 이어“우리가 황교안이다” 트럼프 당선엔 30년 밑밥…어설픈 표절? “나는 민주당원이다”는 상대의 약점을 감싸면서 정치의 본질을 호소하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상징으로 통한다. 하지만 황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의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를 두둔하면서 폭력적인 정적 숙청을 요구했다. “우리가 황교안이다”는 “나는 민주당원이다”와 극단적으로 대비될 수밖에 없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9월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동혁 대표에 대해선 충청도에서 몇 안 되는 용꿈을 꾸는 분이란 평이 있었다”며 “그 용꿈을 망상에 가깝다고 보기엔 유연하게 정치를 한 분”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대표 취임 후 김도읍 정책위의장 임명 등 중도 보수 성향 유권자를 의식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그에게서 ▲장외 집회 집착 ▲황 전 총리 두둔 ▲한 전 대표 퇴출 시도 등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좋아할 만한 행보가 더욱 두드러졌다. 이 때문에 그는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광주 5·18 민주묘지 참배와 황 전 총리 두둔이란 극단적인 행보를 불과 며칠 사이에 보인 것도 장 대표 특유의 빙글빙글 정치를 상징한다. 강경 보수에 더욱 치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 대표의 행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과정과 비교할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과정엔 미국 민주당에 모여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리버럴 엘리트들에 대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반발이 큰 역할을 했다. 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은 지난 12일 유튜버 감동란의 개인 방송에 출연해 같은 당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알려진 김 의원은 윤 전 대통령 탄핵 표결 당시 찬성표를 던졌고, 특검법 3개에도 모두 찬성했다. 박 대변인은 “김 의원은 눈 불편한 것 빼고는 기득권인데, 장애인이라서 배려받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장애인에게 너무 많은 할당을 하는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 전 대표가 김 의원을 일종의 에스코트용 액세서리 취급을 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지난 17일 박 대변인을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박 대변인에게 엄중하게 경고할 뿐, 징계는 하지 않았다. 박 대변인의 발언과 장 대표의 미지근한 대응은 김 의원에게 강한 반감을 갖는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를 의식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시각장애인이자 여성이란 김 의원의 정체성과 그에 대한 박 대변인의 공격은 미국에서 만성 구조화된 정치적 올바름 논쟁의 흐름과 정확히 일치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쟁취는, 진보 진영이 신자유주의·정치적 올바름을 추진하면서 민주당이 월스트리트와 강하게 연계하자 국민이 여기에 반감을 갖게 된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딕 체니 전 부통령·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부 장관으로 상징되는 네오콘에 대한 반감도 큰 역할을 했다. 드라마 대사 표절?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강하게 추진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산업 패러다임은 제조업에서 금융업으로 바뀌었다. 월스트리트의 힘이 더욱 막강해졌고, 미국 내 제조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로 이전하는 흐름이 가속화됐다. 지난 2008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 내 중산층 몰락에 쐐기를 박았다.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막대한 세금을 대외 전쟁에 쏟아부었던 네오콘도 유권자의 큰 반감을 사서 몰락했다. 고립주의를 선호하는 미국 보수의 전통적인 흐름과 달리, 네오콘은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어 미국의 가치를 퍼트리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그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는다”는 것 때문에 네오콘은 오래 지나지 않아 몰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엔 미국 특유의 고보수주의가 함축됐다. 미국의 역사는 이주·개척의 역사다. 지금과 같은 세계 경찰의 위상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확보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엔 지역 강국 정도의 위상을 가졌고, 현재의 미국 영토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주로 얻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서부 개척 시대를 다룬 영화가 흔하게 제작된다. 미국인이 광적으로 열광하는 시리즈 <스타트렉>과 <스타워즈>도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은유해 제작됐다. 건국 신화가 따로 없는 미국에선 이 양대 시리즈가 신화로 통한다. 미국 고보수주의의 핵심은 다른 나라의 전쟁·정치 개입에 반대하는 외교 정책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인위적으로 고립시켜 대륙 내 미국의 기득권을 지키자는 것이다. 미국의 국력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19세기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미국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 전 대통령은 1823년 “유럽은 아메리카에 새 식민지를 만들지 말고, 미국은 유럽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먼로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어 ‘명백한 운명’이란 구호하에 서부 개척에 몰두했다. 트럼프 대통령·JD 밴스 부통령은 지난 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왜 감사하단 말을 하지 않느냐”고 몰아붙였다. 미국이 지난 2022년 2월 이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지원 규모는 약 820억달러(약 113조4880억원)이고, 전비는 670억달러(약 98조4591억원) 규모로 확인된다. 미국 상원은 지난해 4월 608억달러(약 89조3480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첨단 무기 등 대규모 군사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지지자들을 달랠 거대한 쇼가 필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상징 중 하나는 제1기 행정부 당시 멕시코 국경에 설치한 거대한 장벽이다. 미국 내 블루칼라들이 갖는 불만 중 하나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미국·멕시코 접경지역에선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를 실질적 효과와 정치적 이벤트를 모두 거둘 수 있는 일거양득 상황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로망의 정치화 트럼프 대통령의 고보수주의 성향은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우리에게 방위비 분담금 100억달러(약 14조6942억원)를 요구했다. 내년에 우리가 부담해야 할 방위비 분담금은 1조5192억원이다. 지난 14일 공개된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엔 주한미군에 대한 330억달러(약 48조4948억원) 규모의 종합적 지원 내용이 담겨있다. 또 우리는 오는 2030년까지 미국산 군사 장비 구매에 250억달러(약 36조7385억원)를 지출해야 한다. 일본도 지난 5월부터 미국으로부터 주일미군 분담금 인상 압박에 시달려 매년 증액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부터 캐나다·그린란드·파나마 등 아메리카 대륙과 그 인근 지역으로 사실상 영토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미국인에겐 영국·멕시코 등과 전쟁하면서 중·남부로 영토를 확장했던 19세기의 재림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보수주의 성향은 각국에 안기는 관세 폭탄에서도 잘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그린란드 주민이 투표를 통해 미국 편입·독립을 결정한 상황에서 덴마크가 이를 방해하면 덴마크에 고액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세를 군사·외교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단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에 대해 “포퓰리즘”이란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는 관세 폭탄에서 잘 드러난다. 공화당은 지난 6일 진행된 뉴욕시장·버지니아 주지사·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참패했다. 선거의 핵심 쟁점은 생활비 부담이었다. 뉴욕시에선 주거비가 급등했고, 뉴저지주에선 전기요금이 연 20% 상승했다. 특히 버지니아주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방정부 인력 감축 방침과 셧다운 여파로 공무원들이 급여를 받지 못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커피·바나나·쇠고기·견과류 등 생활필수품에 대한 상호 관세를 면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방침 이후 생활필수품 물가가 급상승한 여파로 선거에서 패배하자 뒤늦게 상호 관세를 면제한 것이다. 특히 쇠고기는 미국 축산농가의 반발을 무시하면서 관세를 면제했다. 장 대표는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겉’만 빌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990년대 이후 미국 정치권이 주도한 변화의 여파로 서민의 삶이 악화한 흐름을 날카롭게 찌르면서, 이들의 바람을 선동적 언어로 표현해 대권을 거머쥔 것이다. 불만 조직화한 트럼프 지지율↓ 원인 장동혁 30년 넘게 진행된 신자유주의·개입주의에 대한 반감 때문에 강경 보수가 대규모 조직화한 영향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도전에 날개를 달아줬다. 하지만 국내에선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전한길씨 등이 주도하는 강경 보수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매우 크다. 이들의 언행은 강경 보수의 틀을 벗어나면, 조롱 대상이 될 뿐이다. 아울러 미국에선 민주당이 신자유주의 질서를 주도했다. 이 때문에 공화당은 미국 특유의 고보수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시장경제·기업 경영의 자유 등 신자유주의 질서를 지지하는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부터 신자유주의 성향의 경제 정책을 유지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양당의 의견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양당은 특히 젊은 남성들이 민감하게 여기면서 비판하는 각종 검열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셧다운제 도입 ▲확률형 아이템 규제 ▲게임물관리위원회 검열 논란 등 검열 논란은 정당을 불문하고 꾸준히 일어났다. 미국에선 민주당과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정치적 올바름 논쟁이 영화계로 이어져 <백설공주>와 <인어공주> 등 영화에 유색인종 주인공이 발탁돼 큰 논란으로 확산했다. 이런 논란을 주도하면서 서민을 훈계한 대표 세력은 월스트리트·각계 엘리트·언론이었다. 이 논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도전 과정에 큰 영향을 줬다. 국민의힘은 각종 검열 논란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과 별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처럼 젊은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유인하기가 쉽지 않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세력 중엔 불법 이민을 통해 미국에 입국한 멕시코인을 경계하는 기존 유색인종 유권자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흑인 중 8% ▲히스패닉 중 28% ▲아시아계 중 27% 등 득표율을 보였다. 지난해 대선에선 ▲흑인 중 13% ▲히스패닉 중 46% ▲아시아계 중 40%가 그에게 투표했다. 반면 장 대표는 지난 6일, 광주에서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지 못했고 국민의힘은 장 대표를 비난하는 시위를 한 시민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을 완전히 장악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장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더 찐윤(진짜 친윤)’에 의해 옹립된 재선 의원에 불과하다. 국민의힘은 장 대표 취임 이후에도 지지율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이는 전주보다 2% 낮아진 수치며, 지지율 42%를 기록한 민주당보다 18% 낮다. 심지어 전통적인 표밭 대구·경북에서도 지지율 42%를 얻는 데 그쳤다. 표밭도 위험하다 어설픈 표절은 죽도 밥도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여년 동안 누적된 미국의 문제점과 유권자의 불만을 꿰뚫은 후 유권자들이 향수를 느끼는 옛 로망을 자극해 대권을 거머쥐었다.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을 투표로 연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진정한 ‘트럼프 벤치마킹’은 아닐까? 장 대표는 꾸준히 정체되고 있는 국민의힘의 지지율에서 뭘 보고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