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월클 손흥민 키워낸 손웅정

유력한 차기 국대 감독?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말씀 중에 죄송하다. 흥민이 절대 월드클래스 아니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이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해당 영상은 영상은 조회 수가 300만회를 넘었고, 이를 코믹하게 패러디한 영상들도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심지어 손 감독이 현역 시절 프로축구 선수로 활약한 옛 모습이 담긴 영상도 조회 수가 200만회를 넘었다. 아들이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라고 평가받고 있음에도 손 감독의 겸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해외 매체와 유명 축구 감독들의 극찬도 끊이지 않을 정도다.

손웅정 감독은 오래전부터 방송과 강연, 언론사 등 인터뷰 요청을 여러 차례 받아왔으나 대부분 거절해왔다. 본인이 운영하는 축구 아카데미에서 열린 행사나 운영 등으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기본서 시작

손 감독의 주변인들은 손 감독이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철학이 몸에 밴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신이 맡은 일을 끝내지 않으면 외부 일정조차 함부로 잡지 않는 인생을 수십년간 지켜왔다는 설명이다.

손 감독의 인생관은 그의 자전 에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10월 출간한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는 지난 5월부터 다시 판매량이 3~5배씩 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각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역주행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일 손 감독의 사인회가 열렸는데 팬층은 어린이부터 중년·노년층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했다. 1시간 정도로 예정된 사인회는 1시간을 훌쩍 넘겨서 끝났다. 그의 에세이를 본 팬들은 “철학과 내공이 대단하다” “한 명의 수도승을 만난 느낌”이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지난 12일에는 신경호 강원교육감이 “춘천에 손흥민 거리가 조성됐으면 한다”고 제안하자 손 감독은 “몇 년 전부터 그런 얘기가 있었지만 그건 아니다”라고 단호히 선을 그으며 “은퇴하면 누가 이름이나 불러줄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는 왜 이렇게 몸을 사릴까. 손 감독의 지인들은 “원래 지나칠 정도로 겸손함이 몸에 밴 사람에다 아들에게 폐 끼치는 걸 극도로 경계한다”며 “‘손흥민 아빠라며 나댄다’는 말을 듣는 것을 가장 꺼린다”고 입을 모았다. 어느덧 60대지만 어딜 가든 90도로 깍듯이 인사하는 모습도 축구팬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된다.

손 감독의 끝없는 겸손과 저자세는 단순한 겉치레나 리스크 회피가 아닌 삶을 지탱하는 철학이다. 그가 말하는 삶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인파출명저파비’다. ‘사람은 이름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팬들은 “월드 스타가 된 손흥민이 한결같이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다 이런 아버지의 철학 덕분”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한 문화평론가는 “조금이라도 유명해지면 그 유명세로 돈이나 인기를 얻으려는 풍토가 강하지 않으냐”며 “손 감독과 손흥민의 겸손한 행보는 이와는 정반대인데다 그런 태도가 한결같이 이어지다 보니 더 큰 호응을 얻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아직 아니다” 겸손이 만든 레전드
“인성이 기본…흥민이 더 노력해야”

손 감독은 1962년 충청남도 서산군 안지면 산동리 도비산 자락에 있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마을을 “하루에 버스가 단 한 번 오는 궁벽한 곳”이라고 표현했다.


손 감독이 강조하는 지독한 성실과 노력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 축구를 시작한 만큼 정말 잘하고 싶다는 욕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학창 시절 별명이 ‘숙소 귀신’ ‘연습벌레’였을 정도로 다른 친구들이 방과 후 친구도 만나고 여가를 누릴 시간에 본인은 오로지 훈련과 숙소에서의 휴식에만 매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축구를 시작해 상무 축구단, 현대 호랑이(현 울산 현대), 일화 천마(현 성남 FC)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했다. 프로 통산 37경기 7골. 자신의 현역 시절에 대해 손 감독은 “삼류 선수” “천둥에 놀라 뛰는 개처럼 두서없이 뛰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축구계 평가는 다르다. 제38회 청룡기쟁탈 전국 중·고교 축구선수권대회에 춘천고 선수로 출전한 손 감독은 영광고와의 시합에서 생애 첫 공식 해트트릭이자 대회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1m72㎝에 63㎏. 축구선수로는 비교적 단신이지만 문전에서의 순발력과 슈팅 처리, 드리블이 고교 정상급인 반면, 100m를 12초로 뛰는 스피드를 순간적으로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흠”이라고 평가했다.

또 그의 자전 에세이와 축구계 인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손 감독의 말은 과한 겸손이라고 한다.

손 감독은 초등학교 시절 교회 대항 축구대회에 출전하면서 처음 그라운드를 밟았는데, 당시 맹활약해 단박에 학교 축구부 감독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미 탓에 학교 진학과 소속팀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럴 때마다 손 감독의 재능과 성실함을 높게 사는 지도자들이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1990년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심각한 부상으로 결국 28세 젊은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후로 다시 지독한 가난을 겪어야 했다.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활체육시설 헬스 트레이너를 하고, 그걸로도 벌이가 충분치 않아 주말에는 공사판에 나갔다. 방과 후 체육교실 강사, 학교시설 관리 등 네 식구가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손 감독은 ‘가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축구 이상에 미치지 못한 현역 시절을 합리화하는 대신 처절한 성찰을 통해 아들에게는 철저히 기본기를 중시하는 축구 교육을 시켰고, 그 결과 손흥민은 세계 최고 반열의 선수로 성장했다.

지독한 가난
혹독한 훈련

손흥민은 “나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손 감독은 자신의 에세이를 통해 “지고 메고 공사판 비계를 오르면서 처음에는 누가 알아볼까 봐 내심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프로선수로 뛰던 손웅정이 막노동판에서 일한다’고 수군대는 소리도 들려왔다”면서도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남들이 하는 소리에 잠깐이나마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졌다”고 회상했다.

이어 “날 때부터 프로선수였던 것도 아닌데, 프로로 좀 뛰었다고 그런 마음을 품다니 우스웠다. 일이 창피한 게 아니라 그걸 창피해했다는 것이 창피한 거였다. 살아가는 길이 하나뿐인 것도 아닌데, 왜 당당하고 떳떳하지 못했나. 내가 삶에 교만하고 오만하다는 증거였다”고 술회했다.


손 감독의 일정은 손흥민을 지원하는 것 외에는 운동, 축구, 청소, 책읽기가 전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철학 중 또 다른 핵심은 ‘무욕’과 ‘행복’ ‘자기 주도적 삶’이다.

손 감독은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길 바랐다. 그 길에 돈이 따라오면 좋은 것이고, 안 따라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 문제로 호되게 고생도 해본 나”라며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속에서 미리 걱정만 하고 전전긍긍하는 삶은 온전한 삶이 아니다. 주도적으로 내 삶의 방향을 세우고, 돈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 나만의 시간도 벌면서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운동선수에게 승패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승패에 연연하는 마음을 초월할 수 있다”며 “오늘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해도 오늘 축구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할 수 있는 선수, 오늘 경기가 잘 풀렸다면 그 행복감을 만끽하는 선수, 돈과 명예를 떠나 공을 찰 수 있음에 감사와 행복을 느끼는 선수, 멀리 봤을 때 나는 이것이 답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의 일에 실패란 없다. 오직 경험만이 있을 뿐”이라고 전했다.

손흥민의 수입에 대해서도 굉장히 엄격한 태도를 보인다. 손 감독은 “흥민이가 번 돈에 대해서도 철저히 선을 긋는다. 내가 자식이 번 돈을 가져다 쓰면 자식에게 떳떳할 수 있겠느냐”며 “내가 왜 자식 눈치를 보며 살겠는가. 흥민이가 어렵게 번 돈은 통장에 잘 넣어놓고 항상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노력한 것들이 흔적이 되고 자국으로 남을 수 있도록 보호해줘야 한다. 그래야 동기 부여가 된다”고 밝혔다.

손 감독과 손흥민 모두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선 ‘기본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손 감독은 “캄캄한 방 안에서도 밥숟가락이 저절로 입에 들어가는 경지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손흥민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졸업 때까지 드리블, 리프팅 등 철저하게 공을 다루는 기술 위주로 훈련을 시켰다. 오른발잡이였던 아들이 왼발도 잘 쓸 수 있도록 양말을 신거나 바지를 입을 때, 축구화 끈을 묶을 때도 왼쪽부터 하도록 유도했다.


손흥민은 독일 함부르크 시절, 아버지의 지도로 현재의 슈팅 기술을 완성했다. 2011년 여름엔 매일 1000개씩 슛 연습을 했다. 위치를 옮겨가면서 오른발로 500번, 왼발로 500번씩 때렸던 덕분에 이젠 왼발 슈팅이 더 편하게 느껴질 정도가 됐다.

“돈 벌라고
가르친 거 아냐”

손 감독은 “불 꺼진 방 안에서 밥숟가락이 입으로 들어가는 경지. 그런 경지에 이르러서야 축구선수는 공을 좀 다룬다 말할 수 있다. 흥민이는 기본기를 채우기 위해 7년의 세월이 걸렸다. 365일 쉬지 않았다. 방학 때 친척집에 놀러 가는 일도 없었다. 죽을 때까지 놓지 말아야 하는 가치가 ‘겸손’과 ‘성실’”이라고 했다.

이 같은 ‘기본기 강조’ 때문이었을까. 손흥민은 2021~2022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에 오르면서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럴 만한 것이 EPL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축구 무대로 꼽힌다. 720명의 선수는 각국의 대표선수급으로 이들 중에서 득점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다.

손 감독은 손흥민이 축구선수로서 기본기를 다지는 것 외에 흔들림 없이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손흥민이 2008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유소년팀에 입단했을 때 일이다. 혼자 독일로 간 손흥민이 한동안 향수병에 시달려 힘들어하자 손 감독은 아들을 위해 독일로 날아갔다. 그는 손흥민의 팀 훈련 전, 매일 새벽에 웨이트트레이닝을 시키면서 함께 훈련했다.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지금도 손 감독은 여전히 아들과 함께 영국 런던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손 감독은 아들이 점점 이름을 알리고 유명해질 때도 엄격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2018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손흥민은)절대 월드 클래스가 아니다. 그래서 흥민이한테 많이 강조하는 게 겸손이었다”고 언급했다.

또 손흥민이 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데뷔전에서 최연소 골을 터뜨리자 “아들이 하루만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손 감독은 아들이 첫 골로 감정에 휘둘릴까 봐 주변 평가를 보지 못하게 노트북도 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손 감독의 엄격함은 아들에게 절제를 가르쳤을 뿐 아니라 한결같이 자기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팬들은 손 감독의 매력으로 ‘솔선수범 리더십’을 꼽는다. 손 감독은 어린 손흥민을 가르칠 때도 항상 시범을 먼저 보이고 훈련을 똑같이 했다. 그가 손축구아카데미 선수들에게 팔굽혀펴기를 시키면서 자신도 똑같이 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에는 “살면서 저런 스승은 본 적이 없다” “정말 존경한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려있다.

손 감독은 책에서 “아이들과 ‘함께’ 운동하는 게 나의 훈련 철칙이다. 아이들에게만 시키고 팔짱 끼고 서 있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손흥민도 어린 시절 혹독한 훈련에 대해 “아버지가 옆에서 똑같이 훈련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아킬레스건 부상…28세 현역 은퇴
아내·자녀 먹여 살리려 노동 감행

손 감독은 “흥민이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축구를 하면서 축구선수로 성공하거나 프로선수가 돼서 어느 정도 돈을 벌 것이라는 생각은 결단코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들을 엄하게 가르친 이유가 결코 자신의 욕심이나 부모로서의 욕심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보다 “축구선수로 경기장에서 제 기량을 마음껏 뽐내는 게 가장 큰 행복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하게 가르쳐 제대로 된 선수가 돼야 축구선수로서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훈련 때는 엄한 아버지였지만 부자 사이가 돈독한 이유에 대해 손 감독은 “혼을 내고 반드시 사후 수습을 했기 때문”이라며 “감정에 휘둘려 혼내거나 인격을 훼손하지 않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것들을 지키려 노력했다”고 했다.

손 감독의 매서운 인상 탓에 일부에선 손웅정·손흥민 부자를 권위적인 관계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훈련할 때 한정이다. “축구를 벗어나면 두 사람은 서슴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절친한 친구 같은 모습”이라는 게 두 사람을 지켜본 주변인들의 얘기다.

축구계에서는 “두 부자의 성격적 케미가 좋다”는 평가가 있다. 손 감독이 매사 진지하고 엄격한 반면, 손흥민은 낙천적이고 붙임성이 좋아 서로 성장의 시너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손 감독을 두고 팬들은 “무서워 보이지만 아들밖에 모르는 ‘츤데레’ 같다”고 입을 모은다. 손 감독은 늘 경기에 나서는 아들을 안아주며 “오늘도 마음 비우고 욕심 버리고 승패를 떠나서 행복한 경기를 하고 오라”고 말한다.

한국 축구는 과거 우수한 자질의 유소년을 어린 시절 때부터 망가뜨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뼈와 근육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서 당장 이기기 위한 소모품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가령 주력이 빠른 선수는 측면을 파고들어 크로스를 올리고, 키가 크면 헤딩으로 골문을 노리도록 분업화하는 경우다.

손 감독이 손흥민을 학교 운동부에 보내지 않고 직접 가르친 것은 본인이 부상으로 일찍 프로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던 아픔에서 나왔던 것으로 해석된다. 트래핑·패스·킥·드리블을 나중에 훈련시키고, 유럽 무대에 진출해서는 체격이 큰 선수들과 대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웨이트 훈련을 한 것도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면 과거보다는 축구 훈련 방식이나 환경이 많이 나아졌다. 대한축구협회는 초등학교 경기 방식을 8대8로 바꿨다. 개인 능력과 기본기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경기나 대회 출전을 위한 훈련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말 리그와 전국대회 등 경기에 초점을 두게 되면 아무래도 기본기 훈련은 소홀할 수밖에 없다.

해외 축구 유학을 돕기 위해 과거 대한축구협회 설명회에서 “현지 적응을 위해 어학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학부형들한테 아이디어를 준 사례가 있다. 당시 조언에 따라 어려운 형편에도 독일어 강사를 수소문해 아들에 붙여준 학부모는 손 감독이 유일했다.

축구를 잘하기 위해서라면 항상 꼼꼼하게 준비하고 대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손흥민을 훈련시키는 과정은 스파르타식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손 감독처럼 특별한 아버지 아래서 축구를 배울 수 있는 선수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요즘에는 아이들을 강하게 훈련시키기도 힘들다. 이런 측면에서 이들의 신뢰와 존경의 관계는 특수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손 감독은 “아이들을 정말 혹독하게 키운 데 대해 변명할 생각은 없다. 다만 공 차겠다는 아이들을 위해 내 깜냥 안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했을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큰 울림을 남겼다.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장은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 최종 38라운드 노리치시티전에서 터트린 감아차기 골은 감각에서 나온 것”이라며 “손흥민이 그 지역에 들어가면 공을 잡은 순간부터 슈팅까지 자동적으로 연결된다. 그것은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이며, 그 바탕 위에서 창조적 플레이가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기본에 충실할 때 잠재력이 폭발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축구 세계가 열린다는 설명이다.

한국 축구
새로운 기준?

김대길 해설위원은 “손흥민의 아버지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축구 문화에서 기본기에 절대적인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줬다. 말 뿐이 아니라 현실화할 수 있도록 축구협회부터 지도자, 학부모까지 절실한 과제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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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