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월클 손흥민 키워낸 손웅정

유력한 차기 국대 감독?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말씀 중에 죄송하다. 흥민이 절대 월드클래스 아니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이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해당 영상은 영상은 조회 수가 300만회를 넘었고, 이를 코믹하게 패러디한 영상들도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심지어 손 감독이 현역 시절 프로축구 선수로 활약한 옛 모습이 담긴 영상도 조회 수가 200만회를 넘었다. 아들이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라고 평가받고 있음에도 손 감독의 겸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해외 매체와 유명 축구 감독들의 극찬도 끊이지 않을 정도다.

손웅정 감독은 오래전부터 방송과 강연, 언론사 등 인터뷰 요청을 여러 차례 받아왔으나 대부분 거절해왔다. 본인이 운영하는 축구 아카데미에서 열린 행사나 운영 등으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기본서 시작

손 감독의 주변인들은 손 감독이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철학이 몸에 밴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신이 맡은 일을 끝내지 않으면 외부 일정조차 함부로 잡지 않는 인생을 수십년간 지켜왔다는 설명이다.

손 감독의 인생관은 그의 자전 에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10월 출간한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는 지난 5월부터 다시 판매량이 3~5배씩 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각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역주행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일 손 감독의 사인회가 열렸는데 팬층은 어린이부터 중년·노년층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했다. 1시간 정도로 예정된 사인회는 1시간을 훌쩍 넘겨서 끝났다. 그의 에세이를 본 팬들은 “철학과 내공이 대단하다” “한 명의 수도승을 만난 느낌”이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지난 12일에는 신경호 강원교육감이 “춘천에 손흥민 거리가 조성됐으면 한다”고 제안하자 손 감독은 “몇 년 전부터 그런 얘기가 있었지만 그건 아니다”라고 단호히 선을 그으며 “은퇴하면 누가 이름이나 불러줄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는 왜 이렇게 몸을 사릴까. 손 감독의 지인들은 “원래 지나칠 정도로 겸손함이 몸에 밴 사람에다 아들에게 폐 끼치는 걸 극도로 경계한다”며 “‘손흥민 아빠라며 나댄다’는 말을 듣는 것을 가장 꺼린다”고 입을 모았다. 어느덧 60대지만 어딜 가든 90도로 깍듯이 인사하는 모습도 축구팬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된다.

손 감독의 끝없는 겸손과 저자세는 단순한 겉치레나 리스크 회피가 아닌 삶을 지탱하는 철학이다. 그가 말하는 삶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인파출명저파비’다. ‘사람은 이름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팬들은 “월드 스타가 된 손흥민이 한결같이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다 이런 아버지의 철학 덕분”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한 문화평론가는 “조금이라도 유명해지면 그 유명세로 돈이나 인기를 얻으려는 풍토가 강하지 않으냐”며 “손 감독과 손흥민의 겸손한 행보는 이와는 정반대인데다 그런 태도가 한결같이 이어지다 보니 더 큰 호응을 얻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아직 아니다” 겸손이 만든 레전드
“인성이 기본…흥민이 더 노력해야”

손 감독은 1962년 충청남도 서산군 안지면 산동리 도비산 자락에 있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마을을 “하루에 버스가 단 한 번 오는 궁벽한 곳”이라고 표현했다.


손 감독이 강조하는 지독한 성실과 노력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 축구를 시작한 만큼 정말 잘하고 싶다는 욕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학창 시절 별명이 ‘숙소 귀신’ ‘연습벌레’였을 정도로 다른 친구들이 방과 후 친구도 만나고 여가를 누릴 시간에 본인은 오로지 훈련과 숙소에서의 휴식에만 매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축구를 시작해 상무 축구단, 현대 호랑이(현 울산 현대), 일화 천마(현 성남 FC)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했다. 프로 통산 37경기 7골. 자신의 현역 시절에 대해 손 감독은 “삼류 선수” “천둥에 놀라 뛰는 개처럼 두서없이 뛰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축구계 평가는 다르다. 제38회 청룡기쟁탈 전국 중·고교 축구선수권대회에 춘천고 선수로 출전한 손 감독은 영광고와의 시합에서 생애 첫 공식 해트트릭이자 대회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1m72㎝에 63㎏. 축구선수로는 비교적 단신이지만 문전에서의 순발력과 슈팅 처리, 드리블이 고교 정상급인 반면, 100m를 12초로 뛰는 스피드를 순간적으로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흠”이라고 평가했다.

또 그의 자전 에세이와 축구계 인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손 감독의 말은 과한 겸손이라고 한다.

손 감독은 초등학교 시절 교회 대항 축구대회에 출전하면서 처음 그라운드를 밟았는데, 당시 맹활약해 단박에 학교 축구부 감독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미 탓에 학교 진학과 소속팀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럴 때마다 손 감독의 재능과 성실함을 높게 사는 지도자들이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1990년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심각한 부상으로 결국 28세 젊은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후로 다시 지독한 가난을 겪어야 했다.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활체육시설 헬스 트레이너를 하고, 그걸로도 벌이가 충분치 않아 주말에는 공사판에 나갔다. 방과 후 체육교실 강사, 학교시설 관리 등 네 식구가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손 감독은 ‘가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축구 이상에 미치지 못한 현역 시절을 합리화하는 대신 처절한 성찰을 통해 아들에게는 철저히 기본기를 중시하는 축구 교육을 시켰고, 그 결과 손흥민은 세계 최고 반열의 선수로 성장했다.

지독한 가난
혹독한 훈련

손흥민은 “나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손 감독은 자신의 에세이를 통해 “지고 메고 공사판 비계를 오르면서 처음에는 누가 알아볼까 봐 내심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프로선수로 뛰던 손웅정이 막노동판에서 일한다’고 수군대는 소리도 들려왔다”면서도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남들이 하는 소리에 잠깐이나마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졌다”고 회상했다.

이어 “날 때부터 프로선수였던 것도 아닌데, 프로로 좀 뛰었다고 그런 마음을 품다니 우스웠다. 일이 창피한 게 아니라 그걸 창피해했다는 것이 창피한 거였다. 살아가는 길이 하나뿐인 것도 아닌데, 왜 당당하고 떳떳하지 못했나. 내가 삶에 교만하고 오만하다는 증거였다”고 술회했다.


손 감독의 일정은 손흥민을 지원하는 것 외에는 운동, 축구, 청소, 책읽기가 전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철학 중 또 다른 핵심은 ‘무욕’과 ‘행복’ ‘자기 주도적 삶’이다.

손 감독은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길 바랐다. 그 길에 돈이 따라오면 좋은 것이고, 안 따라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 문제로 호되게 고생도 해본 나”라며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속에서 미리 걱정만 하고 전전긍긍하는 삶은 온전한 삶이 아니다. 주도적으로 내 삶의 방향을 세우고, 돈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 나만의 시간도 벌면서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운동선수에게 승패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승패에 연연하는 마음을 초월할 수 있다”며 “오늘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해도 오늘 축구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할 수 있는 선수, 오늘 경기가 잘 풀렸다면 그 행복감을 만끽하는 선수, 돈과 명예를 떠나 공을 찰 수 있음에 감사와 행복을 느끼는 선수, 멀리 봤을 때 나는 이것이 답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의 일에 실패란 없다. 오직 경험만이 있을 뿐”이라고 전했다.

손흥민의 수입에 대해서도 굉장히 엄격한 태도를 보인다. 손 감독은 “흥민이가 번 돈에 대해서도 철저히 선을 긋는다. 내가 자식이 번 돈을 가져다 쓰면 자식에게 떳떳할 수 있겠느냐”며 “내가 왜 자식 눈치를 보며 살겠는가. 흥민이가 어렵게 번 돈은 통장에 잘 넣어놓고 항상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노력한 것들이 흔적이 되고 자국으로 남을 수 있도록 보호해줘야 한다. 그래야 동기 부여가 된다”고 밝혔다.

손 감독과 손흥민 모두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선 ‘기본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손 감독은 “캄캄한 방 안에서도 밥숟가락이 저절로 입에 들어가는 경지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손흥민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졸업 때까지 드리블, 리프팅 등 철저하게 공을 다루는 기술 위주로 훈련을 시켰다. 오른발잡이였던 아들이 왼발도 잘 쓸 수 있도록 양말을 신거나 바지를 입을 때, 축구화 끈을 묶을 때도 왼쪽부터 하도록 유도했다.


손흥민은 독일 함부르크 시절, 아버지의 지도로 현재의 슈팅 기술을 완성했다. 2011년 여름엔 매일 1000개씩 슛 연습을 했다. 위치를 옮겨가면서 오른발로 500번, 왼발로 500번씩 때렸던 덕분에 이젠 왼발 슈팅이 더 편하게 느껴질 정도가 됐다.

“돈 벌라고
가르친 거 아냐”

손 감독은 “불 꺼진 방 안에서 밥숟가락이 입으로 들어가는 경지. 그런 경지에 이르러서야 축구선수는 공을 좀 다룬다 말할 수 있다. 흥민이는 기본기를 채우기 위해 7년의 세월이 걸렸다. 365일 쉬지 않았다. 방학 때 친척집에 놀러 가는 일도 없었다. 죽을 때까지 놓지 말아야 하는 가치가 ‘겸손’과 ‘성실’”이라고 했다.

이 같은 ‘기본기 강조’ 때문이었을까. 손흥민은 2021~2022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에 오르면서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럴 만한 것이 EPL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축구 무대로 꼽힌다. 720명의 선수는 각국의 대표선수급으로 이들 중에서 득점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다.

손 감독은 손흥민이 축구선수로서 기본기를 다지는 것 외에 흔들림 없이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손흥민이 2008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유소년팀에 입단했을 때 일이다. 혼자 독일로 간 손흥민이 한동안 향수병에 시달려 힘들어하자 손 감독은 아들을 위해 독일로 날아갔다. 그는 손흥민의 팀 훈련 전, 매일 새벽에 웨이트트레이닝을 시키면서 함께 훈련했다.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지금도 손 감독은 여전히 아들과 함께 영국 런던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손 감독은 아들이 점점 이름을 알리고 유명해질 때도 엄격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2018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손흥민은)절대 월드 클래스가 아니다. 그래서 흥민이한테 많이 강조하는 게 겸손이었다”고 언급했다.

또 손흥민이 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데뷔전에서 최연소 골을 터뜨리자 “아들이 하루만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손 감독은 아들이 첫 골로 감정에 휘둘릴까 봐 주변 평가를 보지 못하게 노트북도 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손 감독의 엄격함은 아들에게 절제를 가르쳤을 뿐 아니라 한결같이 자기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팬들은 손 감독의 매력으로 ‘솔선수범 리더십’을 꼽는다. 손 감독은 어린 손흥민을 가르칠 때도 항상 시범을 먼저 보이고 훈련을 똑같이 했다. 그가 손축구아카데미 선수들에게 팔굽혀펴기를 시키면서 자신도 똑같이 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에는 “살면서 저런 스승은 본 적이 없다” “정말 존경한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려있다.

손 감독은 책에서 “아이들과 ‘함께’ 운동하는 게 나의 훈련 철칙이다. 아이들에게만 시키고 팔짱 끼고 서 있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손흥민도 어린 시절 혹독한 훈련에 대해 “아버지가 옆에서 똑같이 훈련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아킬레스건 부상…28세 현역 은퇴
아내·자녀 먹여 살리려 노동 감행

손 감독은 “흥민이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축구를 하면서 축구선수로 성공하거나 프로선수가 돼서 어느 정도 돈을 벌 것이라는 생각은 결단코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들을 엄하게 가르친 이유가 결코 자신의 욕심이나 부모로서의 욕심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보다 “축구선수로 경기장에서 제 기량을 마음껏 뽐내는 게 가장 큰 행복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하게 가르쳐 제대로 된 선수가 돼야 축구선수로서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훈련 때는 엄한 아버지였지만 부자 사이가 돈독한 이유에 대해 손 감독은 “혼을 내고 반드시 사후 수습을 했기 때문”이라며 “감정에 휘둘려 혼내거나 인격을 훼손하지 않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것들을 지키려 노력했다”고 했다.

손 감독의 매서운 인상 탓에 일부에선 손웅정·손흥민 부자를 권위적인 관계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훈련할 때 한정이다. “축구를 벗어나면 두 사람은 서슴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절친한 친구 같은 모습”이라는 게 두 사람을 지켜본 주변인들의 얘기다.

축구계에서는 “두 부자의 성격적 케미가 좋다”는 평가가 있다. 손 감독이 매사 진지하고 엄격한 반면, 손흥민은 낙천적이고 붙임성이 좋아 서로 성장의 시너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손 감독을 두고 팬들은 “무서워 보이지만 아들밖에 모르는 ‘츤데레’ 같다”고 입을 모은다. 손 감독은 늘 경기에 나서는 아들을 안아주며 “오늘도 마음 비우고 욕심 버리고 승패를 떠나서 행복한 경기를 하고 오라”고 말한다.

한국 축구는 과거 우수한 자질의 유소년을 어린 시절 때부터 망가뜨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뼈와 근육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서 당장 이기기 위한 소모품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가령 주력이 빠른 선수는 측면을 파고들어 크로스를 올리고, 키가 크면 헤딩으로 골문을 노리도록 분업화하는 경우다.

손 감독이 손흥민을 학교 운동부에 보내지 않고 직접 가르친 것은 본인이 부상으로 일찍 프로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던 아픔에서 나왔던 것으로 해석된다. 트래핑·패스·킥·드리블을 나중에 훈련시키고, 유럽 무대에 진출해서는 체격이 큰 선수들과 대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웨이트 훈련을 한 것도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면 과거보다는 축구 훈련 방식이나 환경이 많이 나아졌다. 대한축구협회는 초등학교 경기 방식을 8대8로 바꿨다. 개인 능력과 기본기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경기나 대회 출전을 위한 훈련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말 리그와 전국대회 등 경기에 초점을 두게 되면 아무래도 기본기 훈련은 소홀할 수밖에 없다.

해외 축구 유학을 돕기 위해 과거 대한축구협회 설명회에서 “현지 적응을 위해 어학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학부형들한테 아이디어를 준 사례가 있다. 당시 조언에 따라 어려운 형편에도 독일어 강사를 수소문해 아들에 붙여준 학부모는 손 감독이 유일했다.

축구를 잘하기 위해서라면 항상 꼼꼼하게 준비하고 대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손흥민을 훈련시키는 과정은 스파르타식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손 감독처럼 특별한 아버지 아래서 축구를 배울 수 있는 선수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요즘에는 아이들을 강하게 훈련시키기도 힘들다. 이런 측면에서 이들의 신뢰와 존경의 관계는 특수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손 감독은 “아이들을 정말 혹독하게 키운 데 대해 변명할 생각은 없다. 다만 공 차겠다는 아이들을 위해 내 깜냥 안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했을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큰 울림을 남겼다.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장은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 최종 38라운드 노리치시티전에서 터트린 감아차기 골은 감각에서 나온 것”이라며 “손흥민이 그 지역에 들어가면 공을 잡은 순간부터 슈팅까지 자동적으로 연결된다. 그것은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이며, 그 바탕 위에서 창조적 플레이가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기본에 충실할 때 잠재력이 폭발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축구 세계가 열린다는 설명이다.

한국 축구
새로운 기준?

김대길 해설위원은 “손흥민의 아버지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축구 문화에서 기본기에 절대적인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줬다. 말 뿐이 아니라 현실화할 수 있도록 축구협회부터 지도자, 학부모까지 절실한 과제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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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