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어 먹튀’ 무역사기 주의보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11.09 18:35:03
  • 호수 12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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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보고 돈 보내니 감감무소식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코로나19로 인해 진단키트에 대한 수출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 최근 외국의 한 업체가 국내 진단키트 제조업체 기술을 노린 해킹을 시도한 흔적이 드러나는 등 무역사기가 급증하고 있다.
 

▲ ⓒpixabay

 

중고물품 거래 시에만 사기를 조심해야 하는 게 아니다. 무역거래에서도 사기행위가 급증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무역사기의 경우 해외 기업이나 은행을 타깃으로 하므로 피해를 보면 회복하는 것이 어렵다. 대부분 국제 범죄 조직으로 검거가 어렵고 해외은행으로 송금한 경우 지급정지도 힘들기 때문이다. 

급증

또 무역 대금은 해외계좌로 송금된 후 다른 계좌로 이체돼 인출이나 추적이 불가능하고, 국제 공조 수사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범행에 사용된 계좌의 정보를 확인하는 데만 1년6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국내 기업 A사는 평소 거래하던 네덜란드 소재의 거래업체 B사로부터 변경된 계좌로 대금을 송금해달라는 이메일을 받은 후 바로 송금했다. 하지만 B사로부터 아직 입금되지 않았다는 내용을 전달받고 주거래 은행에 문의한 결과, 이메일 해킹에 의한 송금 사기임을 확인하고 주 네덜란드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A사는 주네덜란드 한국대사관 안내에 따라 주거래 은행을 통해 송금 취소 요청을 하고 한국 경찰청 사이버수사대로 신고 후 관할 경찰서를 방문해 진술했다.


그러면서 주네덜란드 한국대사관 대표 메일을 통해, 최종 수취 계좌가 폴란드의 C은행 계좌임을 확인하고, 해당 계좌에 송금 대금 보존 여부 확인을 요청했다.

주네덜란드 한국 대사관이 C은행에 확인한 결과, 방침상 송금 은행 혹은 경찰의 협조 요청이 없는 경우 제3자에게 은행 계좌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고 전달받았다.

지난 3일 KOTRA가 경찰청과 함께 발간한 ‘2019/2020 무역사기 발생 현황 및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KOTRA 해외무역관에 접수·보고된 무역사기 사례는 모두 166건이었다.

전년 동기에 발생한 82건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35%에 해당하는 59건은 KOTRA의 현지 조사활동으로 미수에 그쳤다. KOTRA는 서류를 위조한 바이어가 실재하는지 확인하는 노력을 통해 피해를 예방했다.

사실상 추적 불가능
계좌확인만 1년6개월

유형별로는 서류위조(27.7%), 결제 사기(22.3%)가 많았고, 이메일 사기는 지난해 19.5%에서 올해 13.3%로 비중이 소폭 감소했다. 그동안 이메일 사기 피해가 종종 발생하면서 우리 기업이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서류위조는 지난해 11%에서 27.7%로 비중이 증가했지만, KOTRA의 현지 지원으로 열번에 여덟번은 미수에 그쳤다. 주로 사업자등록증·송금증·인보이스 등의 서류를 꾸미거나 기업 담당자를 사칭하는 식으로 운송비·물품 갈취 등을 시도했다.


웹사이트에 나온 기업정보를 활용해 정교하게 서류를 위조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메일 사기는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개입하는 형태다.

거래업체 간 주고받는 이메일을 오랫동안 지켜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계좌번호가 변경됐다’며 대금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식이다. 특정 기업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범죄인 ‘스피어피싱’의 한 종류로, 수법이 정교해 사기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 규모나 바이어 소재국과 무관하게 어떤 기업이라도 타깃이 될 수 있다.

결제 거부 및 결제 사기는 기간 내 가장 많이 접수된 유형으로 상품을 선적했으나 바이어가 대금을 고의로 지급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 ⓒpixabay

동남아, 중동 및 중남미 등 신흥시장에서 자주 발생하며, 북미,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적게 일어난다. 최초 거래 기업뿐만 아니라 거래 관계를 정상적으로 유지해오던 바이어가 영업상태 악화 등의 이유를 들며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약속 미이행의 경우는 계약을 체결하고 해외업체에 송금했으나 상품을 보내지 않고 잠적하거나 불량품을 보내는 경우인데 아예 물품을 선적하지 않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동남아 업체들과 거래할 때 가장 많이 발생하는 유형이며, CIS, 중동, 유럽 등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상품을 선적하지도 않고 운송비, 로비자금, 과태료 등의 명목으로 금전을 추가로 갈취하는 경우도 있다.

“돈 보내라” 금품 사기는 사기 업체가 주로 현지 정부기관 또는 에이전트를 사칭해 프로젝트 입찰 등의 명목으로 수수료, 로비자금, 변호사 수임료 등을 요구하는 경우다.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서 많이 발생하는 사기 유형으로, 국내 기업들이 교신 중간에 무역사기임을 인지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금전적인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는 적다.

서류위조 사기는 위조한 서류를 보내 거래 기업을 안심시킨 후 운송비, 물품 등을 갈취하는 사기 유형이다. 주로 사업자등록증, 송금증, 인보이스 등을 위조한다. 동남아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다른 사기 유형과 결합해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올해 지난해 비해 2배 이상 증가
서류위조·결제사기 등 방법 다양

불법 체류가 목적인 사기는 제품이나 공장을 확인하겠다며 국내 초청장을 요구한 후, 입국 후에 잠적하는 유형이다. 비중은 낮은 편이나 매년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사기 유형으로, 처음부터 바이어로 위장한 사기업체가 불법체류를 목적으로 국내 업체에 접근한다는 특징이 있다.


KOTRA는 이 같은 무역사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5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기본정보 확인을 빼먹지 마라. 무역사기의 90% 이상은 거래 전 상대방에 대한 간단한 정보의 확인만으로 예방된다. 코트라 해외무역관, 현지 상공회의소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둘째, 평소와 다르면 이중 삼중으로 확인하라. 계좌번호 변경 등 바이어가 평소와 다른 연락을 해오면 반드시 전화를 걸어 확인하라. 최근 극성을 부리는 이메일 해킹이 방지된다.

셋째, 좋은 조건의 첫 거래를 조심하라. 일면식도 없는 바이어가 터무니없이 좋은 조건을 제시하거나 과도한 선수금을 요구해온다면 무역사기의 함정일 가능성이 크다. 철저하게 확인하고 진행하라.

넷째, 바이어 국적으로 신뢰도를 판단 마라. 선진국에서 온 편지라고 해서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 신뢰도 높은 선진국 기업을 가장한 제 3국인의 무역사기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라.

다섯째, 어려울 때일수록 무역사기에 조심하라. 무역사기는 내가 어려울 때를 노린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현혹

류재원 KOTRA 무역기반본부장은 “무역사기는 일단 발생하면 자금 회수를 비롯한 문제 해결이 어렵기에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KOTRA의 해외 수입 업체 연락처 확인 서비스 등 사전에 검증된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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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