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아리아모빌' 먹튀 사태 전말

사흘간 잠시 외출? 야반도주?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아리아모빌. 국내에서 손꼽히는 캠핑카 제작 업체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공장 화재 이후 경영난에 빠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차량 출고가 60대 넘게 밀린 상황. 잔금까지 긁어모으던 대표가 돌연 사라졌다가 사흘 만에 돌아왔다. 피해자들이 이를 ‘야반도주 시도’로 규정하자, 대표는 “우연이 겹쳐 생긴 오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의도된 행보라는 증거를 계속 찾아내면서 상황은 점입가경에 빠졌다.

김모 대표와 장모 이사를 비롯한 직원들이 홀연히 사라진 것은 지난달 23일. 피해자들이 회사 겸 전시장을 찾았을 때는 이미 건물이 텅 비어버린 후였다. 전시 차와 기계·직원들은 모두 사라지고, 몇몇 집기만이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별다른 휴업 공지도 없었다.

잔금 치르고
차 못 받았다

피해자들은 임직원들의 개인번호로 700통이 넘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된 전화는 단 한 통도 없었다. 전날 오전에 차를 빼고 오후에 서류더미를 옮겼다는 목격담이 전해졌다. 피해자들은 아리아모빌이 야반도주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단체 대응을 위해 소통망을 구축하고 김 대표 행적을 수소문했다. 피해 사례를 수집하자,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이틀 만에 100명 가까이 몰려들었다. 잔금을 더 치르고도 차를 못 받았다는 사람이 속출했다.

각종 할인·서비스를 미끼로 현금 납부를 권유했다는 증언도 줄을 이었다. 지난 1월 말 일시불로 잔금을 넣으면 3월 출고를 보장하겠다는 말에 속아 넘어간 사람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모두 자신이 야반도주 직전 벌어진 ‘한탕’에 당했다고 여겼다.


피해자들에게 가해진 타격은 막심하다. 이달 첫째 주를 기준으로 피해 사실이 명확히 확인된 피해자만 70명이 넘는다. 피해액은 55억원을 넘겼다. 앞으로 더 나타날 피해자들과 거래처·하청업체 피해까지 고려하면 총 피해액이 1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행방이 묘연했던 김 대표는 사흘째 되던 날인 지난달 25일에 다시 나타났다. 임직원과 출고 완료된 구매자들만 글을 올릴 수 있는 아리아모빌 공식 카페에 입장문을 게시했다. 그마저도 댓글은 막아둔 상태였다.

김 대표는 입장문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걷잡을 수 없는 오해와 진실의 왜곡으로 돌이킬 수 없는 브랜드 이미지 실추와 타격을 입었다”며 “전 직원이 극심한 고통을 받는 실정”이라고 적었다.

이어 “지난주 코엑스 전시 이후 일주일간 임시 휴무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자물쇠가 파손되고 무단침입이 발생했다”면서 “이를 비롯해 각종 왜곡된 사실을 전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법적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입장문에서 회사를 정상화할 복안이 있었지만, 고객들의 행패와 현 사태로 방해를 받아 왔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출고 지연에 따른 일부 고객들의 협박·욕설·위력 행사로 너무나도 힘들게 업무를 이어왔다. 스스로는 극단적 선택을 할 충동까지 느낀다”며 “전시장 점거 후 영업시간 동안 고성을 지르며 ‘당사를 박살낸다’는 협박이 권리가 돼 버린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다년간의 기술력을 인정받아 작년부터 진행된 투자사와의 50억 계약을 앞둔 상황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해 너무나도 안타깝다”며 “나 역시 자금 집행이 임박해 기대와 희망에 차 있었다”고 전했다.


피해자 속출…확인된 피해액만 55억
거래처·하청업체까지 100억 관측도 

김 대표는 지난 2일 있었던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이어갔다. 김 대표는 “전날(1일) 피해자 모임 대표단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며 “돈을 들고 도망가려 했다는 의심을 거둘만한 증거들을 제시했다. 그러자 ‘법적 조치 등 대응을 잠시 유보하겠다’고 하더라”고 주장했다. 

잔금 납부 종용에 대해서는 “회사 운영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며 “직원들에게 내가 최대한 돈을 받아 오자고 지시한 게 맞다”고 인정했다. 아리아모빌의 부채는 지난해 최대 120억원에 달했으며, 지금도 80억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불거진 다른 의혹들은 대부분 부인하며 “오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피해자들은 김 대표의 이 같은 주장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반발했다. “모든 책임을 피해자 일부에게 돌리고 피해자들을 갈라치려는 것”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피해자 모임 대표 J씨는 “김 대표 주장을 다 반박하고도 남을 만큼 많은 제보와 증거가 모였다”며 “법적 대응을 유보하기로 했다는 말도 사실무근이다. 왜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일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김 대표를 위시한 아리아모빌 임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고객 기만을 일삼았다고 주장한다. 출고를 볼모로 잔금 종용·차대번호 돌려막기·저당차 팔이 등 다양한 수법으로 돈을 끌어모으고, 현재 회사를 고의 부도낸 다음 다시 세울 회사의 기반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이외에도 횡령·거짓 해명·법적 책임회피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양측 주장이 정면충돌하는 모양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피해자들은 주장을 입증할 만한 물적증거를 대거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 당사자끼리 사례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나온 게 대부분이며, 관계자들의 제보 역시 증거 확보에 상당한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아리아모빌은 차대번호 돌려 막기 수법으로 피해자들을 셀 수 없이 속였다. 차대번호란 자동차별로 존재하는 고유번호로, 사람으로 치면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한 개념이다.

아리아모빌은 진행 상황을 궁금해하는 피해자들에게 차대번호를 찍은 사진과 캠핑카 내부 시공 사진을 제시하며 안심시켰다. 이를 믿은 피해자들은 잔금을 추가 입금하거나 항의를 보류했다. 문제는 같은 사진을 여러 피해자에게 똑같이 전송하면서, 차 하나를 여러 대로 둔갑시켰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은 이 점을 들어 아리아모빌에게 적극적인 기망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의도된 행보?
갑자기 잠수

심지어 돌려 막기가 현장에서 탄로 난 경우도 있었다. 한 피해자는 “우리는 차대번호를 찍어놓고 기다렸는데도 (차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며 “‘제작 중이던 차에 문제가 생겨 다시 공장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빈손으로 돌아가려는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에게 이미 차가 넘어간 상황이었다. 직원들은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캐피탈 대출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다. 아리아모빌은 차량 출고가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피해자 명의로 대출을 일으켰다. 이후 차량 등록이 이뤄지지 않자, 담보를 확보하지 못한 캐피탈은 피해자들에게 최고장을 발송했다.

한 특장업체 대표는 “이 경우는 아리아모빌이 신뢰에 기반한 업계 관행을 악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차량이 출고될 때마다 별개로 절차를 밟는 것은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라며 “꽤 오래 거래를 이어온 경우에는 차대번호 등록 등의 절차를 한 달에 한 번 정도 일괄적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이 시차를 이용해 대출금만 챙기고 변제 의무는 피해자에게 떠넘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김 대표는 “일부 고객들이 예상하지 못한 피해를 봤다는 소식은 들었다”며 “캐피탈 관계자들과 지속적으로 대화하면서 구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해명했다.

아리아모빌이 잡힌 담보나 저당이 고객 피해로 번진 경우도 나왔다. 한 피해자는 차량등록까지 마쳤음에도 차를 인도받지 못했다. 아리아모빌에게 대금을 받지 못한 하청업체가 안전점검 차 들어온 해당 차량을 담보로 대금 지불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피해자는 아리아모빌에 8000만원을 주고 전시 차를 구매했지만 명의변경이 이뤄지지 않았다. 아리아모빌이 그 차량에 걸린 7000만원짜리 저당권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김 대표가 아리아모빌을 부도내고 다른 회사 뒷선 경영을 준비하는 정황도 포착됐다. 

제보에 따르면 김 대표는 지난해 12월20일, 경기도 광주 소재의 아리아모빌 공장에 새 업체가 들어온 것으로 꾸몄다. 업체 대표로는 지인이자 아리아모빌 폐기물 처리를 담당하던 회사 대표를 내세웠다. 아리아모빌 직원들이 자주 드나들면서 피어나는 의심은 “직원들이 나와서 회사를 새로 세운 것”이라는 핑계로 잠재웠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7월까지 회삿돈 4억원가량을 들여 구비한 CNC 기계 4대는 자연스럽게 해당 업체에 넘어갔다.

김 대표는 관련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기계를 넘긴 건 “채무 변제 목적이었다”고 해명했다.

제보자는 <일요시사>에 “생긴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은 회사인데, 그 사이 채무를 지고 납부 압박을 받아 기계를 대신 줬다는 설명은 납득이 어렵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김 대표가 이 회사는 파산 예정이니 이제 출근하지 마라’고 말했다는 내부고발도 확보했다. 일련의 과정이 모두 사전에 준비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의 횡령 의혹도 불거졌다. “그동안 별개 업체라고 주장해온 AS업체 자재 대금을 아리아모빌이 대납해왔다”는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오해일 뿐?
법적대응 준비 

김 대표 입장에서는 횡령 의혹을 부인하려면 AS센터가 별개 업체라는 기존 주장을 뒤집어야 하고, 인정하면 횡령(배임) 혐의가 추가될 수 있으므로 수세에 몰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외에도 불리한 문서를 작성할 때만 고의적으로 법적 효력을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의혹, 고객별로 차량 출고 순서나 혜택 제공에 차등을 뒀다는 의혹 등이 속속 제기됐다. 

피해자 모임 대표들은 지난 1일, 김 대표를 대면한 자리에서 이 같은 의혹 대부분을 따져 물었다. 김 대표는 <일요시사>에 “납득할 수 있도록 해명했다”고 밝혔던 것과 다르게, 불리한 내용이 나올 때마다 ‘추후에 알아보겠다’며 즉답을 회피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현장을 찾았던 피해자 P씨는 “‘120대 출고했다’는 주장은 증빙자료를 확인했다”며 “그런데 ‘그렇게 출고가 많이 됐는데도 왜 2020년 계약이 아직도 출고 안 된 사례가 있나’라거나 ‘미출고 차량 대다수가 현금 납입 건인데 우연의 일치인가’ 등을 추궁했을 때 납득할 만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피해자 대표들에게 “수습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 받기로 한 투자금을 통해 재기에 나서겠다는 계획으로, 피해자들이 지분을 가지고 회사 경영에 직접 관여하는 형태를 제안했다. 

P씨는 “김 대표가 이익구조를 공개하면서 ‘우리는 월급만 받고 일할 테니, 나머지 이익은 다 가져가라. 대표자도 피해자들이 결정해서 세워라’고 말했다”면서 “일견 나쁘지 않은 제안으로 보이지만, 미수금이 잔뜩 쌓여있는 저 회사를 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피해 모임 “고의 부도내려다 덜미”
회사 측 “전혀 그런 적 없다” 대립

우선 피해자들은 이른 시일 안에 단체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현재 51명이 참여한 1차 소송인단이 한 법무법인에 관련 자료를 제출한 상태다.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거래처도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져야 할 법적 책임이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박경수 법무법인 지름길 변호사는 “법정에서 김 대표에게 사기죄와 업무상 배임죄를 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박 변호사는 “차를 약속한 때 지급하지 못할 상황임을 알면서도 계속 돈을 받아 낸 것은 기망행위”라며 “피해자와 피해 시기가 다양해서 검사 재량에 따라 상습사기범으로 분류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타사 자재 비용을 대납해주고, 회사 기계를 넘겨준 것은 업무상 배임”이라며 “회사 대표로서 회사에 피해를 준 것이므로 횡령보다는 업무상 배임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김 대표 행보가 재판에서 유리한 정황을 만드는 포석으로 읽힌다’는 지적에는 “재판에서 최근 행보를 참작 사항으로 들고 나오기는 할 것”이라며 “다만 재판부가 그것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라고 짚었다.

그는 “일부 피해자들과 합의하거나 일부 채무를 변제했다는 사실로 실형을 면할 의도라면 최소한 전체 3분의 2 이상을 해결해둬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피해자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은 단순히 금전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피해자 대부분이 현재 가장 고통스러운 점으로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꼽는다. 캠핑카를 사는 목적이 대부분 가족과의 시간 보내기에 있는 경우가 많아 더욱 그랬다.

이번 일이 터지면서 가족들에게 즐거움 대신 걱정을 줬다는 죄책감이 피해자들을 옥죄고 있다.

특히 아픈 어머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니려고 계약했다는 딸의 사연, 퇴직금으로 캠핑카를 구매했다는 장년층의 사연 등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J씨 역시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캠핑카는 계약 전부터 가족들과 함께 가서 고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아이와 함께 가서 계약했다”며 “아이에게 ‘이 차 타고 어디를 가자’고 말도 다 해놨는데, 아이 볼 낯이 없다. 우리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나”하고 하소연했다.

양측 충돌
누가 거짓말?

아울러 J씨는 피해자들이 갖은 고통을 겪은 만큼, 아리아모빌 관계자들이 확실하게 처벌받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J씨는 “아리아모빌 사태는 대표부터 말단 영업직원까지 합심해서 벌인 집단 사기극이다. 보이스피싱과 다를 바 없다”며 “본인들은 책임이 없다는 일부 직원들의 주장에는 일리가 없다. 망할 것을 알고도 잔금 수급에 열을 올렸으니, 최소 미필적 고의에 의한 공범”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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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