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아리아모빌' 먹튀 사태 전말

사흘간 잠시 외출? 야반도주?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아리아모빌. 국내에서 손꼽히는 캠핑카 제작 업체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공장 화재 이후 경영난에 빠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차량 출고가 60대 넘게 밀린 상황. 잔금까지 긁어모으던 대표가 돌연 사라졌다가 사흘 만에 돌아왔다. 피해자들이 이를 ‘야반도주 시도’로 규정하자, 대표는 “우연이 겹쳐 생긴 오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의도된 행보라는 증거를 계속 찾아내면서 상황은 점입가경에 빠졌다.

김모 대표와 장모 이사를 비롯한 직원들이 홀연히 사라진 것은 지난달 23일. 피해자들이 회사 겸 전시장을 찾았을 때는 이미 건물이 텅 비어버린 후였다. 전시 차와 기계·직원들은 모두 사라지고, 몇몇 집기만이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별다른 휴업 공지도 없었다.

잔금 치르고
차 못 받았다

피해자들은 임직원들의 개인번호로 700통이 넘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된 전화는 단 한 통도 없었다. 전날 오전에 차를 빼고 오후에 서류더미를 옮겼다는 목격담이 전해졌다. 피해자들은 아리아모빌이 야반도주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단체 대응을 위해 소통망을 구축하고 김 대표 행적을 수소문했다. 피해 사례를 수집하자,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이틀 만에 100명 가까이 몰려들었다. 잔금을 더 치르고도 차를 못 받았다는 사람이 속출했다.

각종 할인·서비스를 미끼로 현금 납부를 권유했다는 증언도 줄을 이었다. 지난 1월 말 일시불로 잔금을 넣으면 3월 출고를 보장하겠다는 말에 속아 넘어간 사람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모두 자신이 야반도주 직전 벌어진 ‘한탕’에 당했다고 여겼다.


피해자들에게 가해진 타격은 막심하다. 이달 첫째 주를 기준으로 피해 사실이 명확히 확인된 피해자만 70명이 넘는다. 피해액은 55억원을 넘겼다. 앞으로 더 나타날 피해자들과 거래처·하청업체 피해까지 고려하면 총 피해액이 1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행방이 묘연했던 김 대표는 사흘째 되던 날인 지난달 25일에 다시 나타났다. 임직원과 출고 완료된 구매자들만 글을 올릴 수 있는 아리아모빌 공식 카페에 입장문을 게시했다. 그마저도 댓글은 막아둔 상태였다.

김 대표는 입장문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걷잡을 수 없는 오해와 진실의 왜곡으로 돌이킬 수 없는 브랜드 이미지 실추와 타격을 입었다”며 “전 직원이 극심한 고통을 받는 실정”이라고 적었다.

이어 “지난주 코엑스 전시 이후 일주일간 임시 휴무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자물쇠가 파손되고 무단침입이 발생했다”면서 “이를 비롯해 각종 왜곡된 사실을 전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법적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입장문에서 회사를 정상화할 복안이 있었지만, 고객들의 행패와 현 사태로 방해를 받아 왔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출고 지연에 따른 일부 고객들의 협박·욕설·위력 행사로 너무나도 힘들게 업무를 이어왔다. 스스로는 극단적 선택을 할 충동까지 느낀다”며 “전시장 점거 후 영업시간 동안 고성을 지르며 ‘당사를 박살낸다’는 협박이 권리가 돼 버린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다년간의 기술력을 인정받아 작년부터 진행된 투자사와의 50억 계약을 앞둔 상황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해 너무나도 안타깝다”며 “나 역시 자금 집행이 임박해 기대와 희망에 차 있었다”고 전했다.


피해자 속출…확인된 피해액만 55억
거래처·하청업체까지 100억 관측도 

김 대표는 지난 2일 있었던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이어갔다. 김 대표는 “전날(1일) 피해자 모임 대표단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며 “돈을 들고 도망가려 했다는 의심을 거둘만한 증거들을 제시했다. 그러자 ‘법적 조치 등 대응을 잠시 유보하겠다’고 하더라”고 주장했다. 

잔금 납부 종용에 대해서는 “회사 운영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며 “직원들에게 내가 최대한 돈을 받아 오자고 지시한 게 맞다”고 인정했다. 아리아모빌의 부채는 지난해 최대 120억원에 달했으며, 지금도 80억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불거진 다른 의혹들은 대부분 부인하며 “오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피해자들은 김 대표의 이 같은 주장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반발했다. “모든 책임을 피해자 일부에게 돌리고 피해자들을 갈라치려는 것”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피해자 모임 대표 J씨는 “김 대표 주장을 다 반박하고도 남을 만큼 많은 제보와 증거가 모였다”며 “법적 대응을 유보하기로 했다는 말도 사실무근이다. 왜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일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김 대표를 위시한 아리아모빌 임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고객 기만을 일삼았다고 주장한다. 출고를 볼모로 잔금 종용·차대번호 돌려막기·저당차 팔이 등 다양한 수법으로 돈을 끌어모으고, 현재 회사를 고의 부도낸 다음 다시 세울 회사의 기반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이외에도 횡령·거짓 해명·법적 책임회피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양측 주장이 정면충돌하는 모양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피해자들은 주장을 입증할 만한 물적증거를 대거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 당사자끼리 사례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나온 게 대부분이며, 관계자들의 제보 역시 증거 확보에 상당한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아리아모빌은 차대번호 돌려 막기 수법으로 피해자들을 셀 수 없이 속였다. 차대번호란 자동차별로 존재하는 고유번호로, 사람으로 치면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한 개념이다.

아리아모빌은 진행 상황을 궁금해하는 피해자들에게 차대번호를 찍은 사진과 캠핑카 내부 시공 사진을 제시하며 안심시켰다. 이를 믿은 피해자들은 잔금을 추가 입금하거나 항의를 보류했다. 문제는 같은 사진을 여러 피해자에게 똑같이 전송하면서, 차 하나를 여러 대로 둔갑시켰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은 이 점을 들어 아리아모빌에게 적극적인 기망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의도된 행보?
갑자기 잠수

심지어 돌려 막기가 현장에서 탄로 난 경우도 있었다. 한 피해자는 “우리는 차대번호를 찍어놓고 기다렸는데도 (차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며 “‘제작 중이던 차에 문제가 생겨 다시 공장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빈손으로 돌아가려는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에게 이미 차가 넘어간 상황이었다. 직원들은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캐피탈 대출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다. 아리아모빌은 차량 출고가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피해자 명의로 대출을 일으켰다. 이후 차량 등록이 이뤄지지 않자, 담보를 확보하지 못한 캐피탈은 피해자들에게 최고장을 발송했다.

한 특장업체 대표는 “이 경우는 아리아모빌이 신뢰에 기반한 업계 관행을 악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차량이 출고될 때마다 별개로 절차를 밟는 것은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라며 “꽤 오래 거래를 이어온 경우에는 차대번호 등록 등의 절차를 한 달에 한 번 정도 일괄적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이 시차를 이용해 대출금만 챙기고 변제 의무는 피해자에게 떠넘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김 대표는 “일부 고객들이 예상하지 못한 피해를 봤다는 소식은 들었다”며 “캐피탈 관계자들과 지속적으로 대화하면서 구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해명했다.

아리아모빌이 잡힌 담보나 저당이 고객 피해로 번진 경우도 나왔다. 한 피해자는 차량등록까지 마쳤음에도 차를 인도받지 못했다. 아리아모빌에게 대금을 받지 못한 하청업체가 안전점검 차 들어온 해당 차량을 담보로 대금 지불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피해자는 아리아모빌에 8000만원을 주고 전시 차를 구매했지만 명의변경이 이뤄지지 않았다. 아리아모빌이 그 차량에 걸린 7000만원짜리 저당권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김 대표가 아리아모빌을 부도내고 다른 회사 뒷선 경영을 준비하는 정황도 포착됐다. 

제보에 따르면 김 대표는 지난해 12월20일, 경기도 광주 소재의 아리아모빌 공장에 새 업체가 들어온 것으로 꾸몄다. 업체 대표로는 지인이자 아리아모빌 폐기물 처리를 담당하던 회사 대표를 내세웠다. 아리아모빌 직원들이 자주 드나들면서 피어나는 의심은 “직원들이 나와서 회사를 새로 세운 것”이라는 핑계로 잠재웠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7월까지 회삿돈 4억원가량을 들여 구비한 CNC 기계 4대는 자연스럽게 해당 업체에 넘어갔다.

김 대표는 관련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기계를 넘긴 건 “채무 변제 목적이었다”고 해명했다.

제보자는 <일요시사>에 “생긴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은 회사인데, 그 사이 채무를 지고 납부 압박을 받아 기계를 대신 줬다는 설명은 납득이 어렵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김 대표가 이 회사는 파산 예정이니 이제 출근하지 마라’고 말했다는 내부고발도 확보했다. 일련의 과정이 모두 사전에 준비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의 횡령 의혹도 불거졌다. “그동안 별개 업체라고 주장해온 AS업체 자재 대금을 아리아모빌이 대납해왔다”는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오해일 뿐?
법적대응 준비 

김 대표 입장에서는 횡령 의혹을 부인하려면 AS센터가 별개 업체라는 기존 주장을 뒤집어야 하고, 인정하면 횡령(배임) 혐의가 추가될 수 있으므로 수세에 몰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외에도 불리한 문서를 작성할 때만 고의적으로 법적 효력을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의혹, 고객별로 차량 출고 순서나 혜택 제공에 차등을 뒀다는 의혹 등이 속속 제기됐다. 

피해자 모임 대표들은 지난 1일, 김 대표를 대면한 자리에서 이 같은 의혹 대부분을 따져 물었다. 김 대표는 <일요시사>에 “납득할 수 있도록 해명했다”고 밝혔던 것과 다르게, 불리한 내용이 나올 때마다 ‘추후에 알아보겠다’며 즉답을 회피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현장을 찾았던 피해자 P씨는 “‘120대 출고했다’는 주장은 증빙자료를 확인했다”며 “그런데 ‘그렇게 출고가 많이 됐는데도 왜 2020년 계약이 아직도 출고 안 된 사례가 있나’라거나 ‘미출고 차량 대다수가 현금 납입 건인데 우연의 일치인가’ 등을 추궁했을 때 납득할 만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피해자 대표들에게 “수습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 받기로 한 투자금을 통해 재기에 나서겠다는 계획으로, 피해자들이 지분을 가지고 회사 경영에 직접 관여하는 형태를 제안했다. 

P씨는 “김 대표가 이익구조를 공개하면서 ‘우리는 월급만 받고 일할 테니, 나머지 이익은 다 가져가라. 대표자도 피해자들이 결정해서 세워라’고 말했다”면서 “일견 나쁘지 않은 제안으로 보이지만, 미수금이 잔뜩 쌓여있는 저 회사를 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피해 모임 “고의 부도내려다 덜미”
회사 측 “전혀 그런 적 없다” 대립

우선 피해자들은 이른 시일 안에 단체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현재 51명이 참여한 1차 소송인단이 한 법무법인에 관련 자료를 제출한 상태다.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거래처도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져야 할 법적 책임이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박경수 법무법인 지름길 변호사는 “법정에서 김 대표에게 사기죄와 업무상 배임죄를 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박 변호사는 “차를 약속한 때 지급하지 못할 상황임을 알면서도 계속 돈을 받아 낸 것은 기망행위”라며 “피해자와 피해 시기가 다양해서 검사 재량에 따라 상습사기범으로 분류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타사 자재 비용을 대납해주고, 회사 기계를 넘겨준 것은 업무상 배임”이라며 “회사 대표로서 회사에 피해를 준 것이므로 횡령보다는 업무상 배임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김 대표 행보가 재판에서 유리한 정황을 만드는 포석으로 읽힌다’는 지적에는 “재판에서 최근 행보를 참작 사항으로 들고 나오기는 할 것”이라며 “다만 재판부가 그것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라고 짚었다.

그는 “일부 피해자들과 합의하거나 일부 채무를 변제했다는 사실로 실형을 면할 의도라면 최소한 전체 3분의 2 이상을 해결해둬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피해자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은 단순히 금전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피해자 대부분이 현재 가장 고통스러운 점으로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꼽는다. 캠핑카를 사는 목적이 대부분 가족과의 시간 보내기에 있는 경우가 많아 더욱 그랬다.

이번 일이 터지면서 가족들에게 즐거움 대신 걱정을 줬다는 죄책감이 피해자들을 옥죄고 있다.

특히 아픈 어머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니려고 계약했다는 딸의 사연, 퇴직금으로 캠핑카를 구매했다는 장년층의 사연 등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J씨 역시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캠핑카는 계약 전부터 가족들과 함께 가서 고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아이와 함께 가서 계약했다”며 “아이에게 ‘이 차 타고 어디를 가자’고 말도 다 해놨는데, 아이 볼 낯이 없다. 우리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나”하고 하소연했다.

양측 충돌
누가 거짓말?

아울러 J씨는 피해자들이 갖은 고통을 겪은 만큼, 아리아모빌 관계자들이 확실하게 처벌받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J씨는 “아리아모빌 사태는 대표부터 말단 영업직원까지 합심해서 벌인 집단 사기극이다. 보이스피싱과 다를 바 없다”며 “본인들은 책임이 없다는 일부 직원들의 주장에는 일리가 없다. 망할 것을 알고도 잔금 수급에 열을 올렸으니, 최소 미필적 고의에 의한 공범”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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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