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치부 덮기’ 건국대-교육부 커넥션 의혹

똑같은 판결에 엿가락 판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건국대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교육부가 관리·감독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사이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지적이다. 더 나아가 교육부가 건국대의 ‘치부’를 암묵적으로 덮어주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 건국대학교 ⓒ고성준 기자

민주노총 산하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가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학교법인 건국대의 사모펀드 투자에 대한 교육부의 종합감사와 검찰 고소·고발을 촉구했다. 건국대는 학교법인의 수익 사업체인 더클래식500이 임대보증금 일부를 옵티머스자산운용에 투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육부의 현장조사를 받았다.

잦은 논란
부처 책임도

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학교법인에 대한 비판과 함께 “교육부의 허술한 관리·감독으로 건대법인이 임대보증금과 임대료, 학교와 병원 등 산하 비영리법인의 고유 목적 사업 준비금 등을 마치 자기 돈처럼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방치한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허술한 조사로 또 다시 이사장과 법인에 면죄부를 주지 말아야 하며 철저한 감사를 통해 법 위반 사실에 대한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교육부는 건국대 관련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함께 자주 언급됐다. 특히 현재 서울동부지검에서 수사 중인 ‘건국대 임대보증금 393억원 사건’이 교육부의 부실한 관리·감독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은 끊이질 않고 있다. 


2017년 3월 감사원의 기관운영 감사에서 건국대의 임대보증금 문제가 불거지기 전, 교육부는 2014년 4월 ‘대학 교육 역량 강화시책 추진 실태’ 특정감사에서 같은 문제로 ‘주의 조치’를 받은 바 있다. 건국대 임대보증금 논란에서 교육부 책임론이 불거지는 이유다.

최근에는 교육부가 2015년 대학 구조개혁평가에서 B등급으로 정원 감축 권고를 받은 건국대를 ‘자율감축’으로 구제해줬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의 정원 감축 권고는 이행하지 않을 경우 페널티가 있지만, 자율감축은 말 그대로 대학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대학 구조개혁평가는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하고 교육의 질 하락을 막기 위한 일종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이다. 2014년 교육부는 2023년까지 대학 정원을 16만명 감축해 40만명까지 줄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평가 결과에 따라 대학을 A~E등급으로 분류하고 A등급은 자율감축, 그 외 등급은 비율에 따라 대학의 정원을 줄이도록 권고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전임 이사장 확정 판결
교육부 “정원 줄여라”

2015년 9월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 구조개혁평가 결과에 따르면 건국대 서울 캠퍼스는 A등급, 충주 글로컬 캠퍼스는 D등급을 받았다. 당시 평가대로면 건국대 서울 캠퍼스는 정원 감축 비율을 따로 정하지 않은 자율감축 대상으로 정원을 줄일 필요가 없었다.

반면 충주 캠퍼스는 10%의 정원을 줄여야 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7년 11월30일 교육부는 건국대에 서울 캠퍼스의 등급을 당초 A등급에서 B등급으로 1단계 하향 조정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따라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김경희 전 건국대 이사장의 횡령 혐의 등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확정 판결이 나왔다는 게 그 이유였다. 

교육부는 지난 2014년 1월 종합감사 결과를 발표한 뒤 242억원의 업무상 배임, 회계비리, 수억원의 재단 자금 횡령 등의 혐의로 김 전 이사장과 김진규 전 건국대 총장을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 ⓒ건국대학교

김 전 이사장은 판공비와 업무추진비 등의 횡령 혐의와 재단 소유 아파트를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출장비로 가족여행을 하고 판공비로 딸의 대출금을 갚았다는 혐의를 받았다. 

2017년 4월 대법원은 업무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이사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 판결했다. 이에 따라 김 전 이사장은 금고 이상의 형량을 받은 사람은 임원으로 재직할 수 없도록 한 사립학교법에 따라 이사장직을 잃었다. 

교육부는 건국대 전임 이사장을 직접 고발한 사건의 결론이 나오자 후속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A등급에서
등급 하향

교육부의 조치에 따라 건국대는 2013학년도 입학정원 대비 4%를 2020년까지 감축하고 2019~2020년 정원 감축 이행 계획을 제출해야 했다. 교육부는 건국대의 이행에 따라 1주기 평가 정원 감축 미이행으로 인한 감점은 적용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건국대는 2017년 12월 재고를 요청한다며 교육부에 선처를 요청했다. 그러면서 “전임 총장의 과오로 1주기 대학 구조개혁평가에서 감점을 받았지만 대부분 평가항목에서 우수한 실적과 역량을 인정받아 A등급을 받았다”며 “등급 하락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청산했고, 이 과정에서 촉발된 구성원 간의 갈등 역시 해소됐다”고 호소했다. 

이어 “전임 경영진의 잘못이 결과적으로 이와 전혀 관계없는 학생들의 자긍심과 교육여건에 큰 상처를 주게 돼 대단히 우려스럽다. 또 2016~2017년 PRIME사업과 LINC+사업 등 재정지원 사업에서 이미 예산감축 제재를 받은 바 있기에 이번 정원 감축이라는 추가 제재는 가혹한 처분”이라고 덧붙였다.

건국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정원 감축은 등록금 수입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학교에 재정적으로 타격을 준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대학 이미지, 명예의 실추다. 단순히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명문 종합대학의 입학정원 기준을 3000명으로 잡는다. 건국대의 경우 그 숫자를 계속 유지해왔는데, 교육부의 정원감축 권고로 그 마지노선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건국대의 호소에 ‘불수용’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2015년 대학 구조개혁평가 기본 계획’ ‘부정·비리 대학과 평가 결과를 연계한 제재 방안’에 따라 각 등급별로 정해진 조치를 적용한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또 대학 구조개혁평가와 재정지원 사업은 독립적으로 운영되기에 부정·비리에 대한 제재 조치도 별도로 실시된다고 설명했다.


2014년 12월 교육부에서 내놓은 ‘2015년 대학 구조개혁평가 기본 계획’에는 최근 3년간(2012~2015년) 고등교육법에 따른 행·제정 제재, 감사에 따른 교육부 처분을 받은 부정·비리 발생 대학은 사안의 경중에 따라 구조개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등급의 하향 조정 여부를 결정한다고 명시돼있다. 

이메일 민원
다른 대학은?

결국 건국대는 2018년 3월 교육부에 ‘1주기 대학 구조개혁평가 결과 등급 하향 조정에 따른 후속 조치 계획’을 제출했다. ‘2020학년도 모집단위별 정원 감축 계획(안)’에는 3000명 정원의 4%인 120명을 줄인다는 계획을 담았다.

공과대학 기술융합공학과를 없애고(26명 감축), 사회과학대학 글로벌비즈니스학과에서 16명을 줄이는 등 총 2880명만 모집하겠다는 내용이다. 
 

▲ ▲건국대학교 ⓒ고성준 기자

그로부터 1년 뒤인 2019년 3월 교육부는 건국대에 조치한 4% 정원 감축 권고를 자율감축으로 변경했다. 2019년 2월 전자메일을 통해 대학 구조개혁평가 결과 조치 관련 민원이 접수된 지 한 달 만이었다. 2015년 대학 구조개혁평가 결과가 처음 나오고 이후 4년 동안 총 3차례에 걸쳐 건국대에 대한 조치가 바뀐 것이다. 

한 건국대 관계자는 “정원 감축 권고 조치를 재고해달라고 총장 명의로 공문을 보냈을 때도 ‘불수용’을 외쳤던 교육부가 불과 1년 만에 이메일로 들어간 민원에 조치를 변경했다. 다른 대학에도 이런 경우가 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부는 1주기 대학 구조개혁평가의 대상 기간인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전임 보직자의 비리 행위가 없었기에 정원감축 조치를 취소했다고 해명했다. 다시 말해 김 전 이사장의 대법원 확정 판결 결과 유죄는 인정됐지만, 2012~2015년 사이 비리 행위로 유죄를 받은 사안은 없다는 점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교육부 고등교육정책과 관계자는 “당초 평가를 진행할 때 2012~2015년 사이에 발생한 비리에 대해서만 문제로 삼는다는 계획을 밝혔다. 김 전 이사장의 경우 2012년 이전에 발생한 사안들만 유죄로 인정됐다. 그래서 감점을 취소했고, 건국대의 등급이 다시 A등급으로 올랐다”며 “정원 감축은 등급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정원 감축 권고도 자율감축으로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1심 판결문에 따르면 김 전 이사장은 건국대로부터 출장비 명목으로 수령한 돈을 임의로 사용해 업무상 횡령 혐의를 받았다. 1심 재판부는 김 전 이사장이 2007년 7월31일부터 2011년 8월3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출장비 총 5320만원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업무상 횡령을 했다고 판단했다.

갑자기 자율감축으로
보이지 않는 손 영향?

이사장 판공비를 업무상 횡령했다는 혐의 역시 2007년 4월12일부터 2011년 10월26일까지 사용된 부분만 유죄로 인정됐다. 1심 재판부는 김 전 이사장이 2012년 2월에 사용한 업무추진비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의 판결은 항소심과 상고심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석연치 않은 점은 교육부가 2017년 건국대의 등급을 하향 조정하는 근거로 김 전 이사장의 대법원 확정 판결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확정된 판결을 두고 2017년과 2019년 교육부의 판단이 달랐던 셈이다.

이렇다 보니 일부 건국대 관계자들은 교육부의 ‘태세전환’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게 아닌지 의심을 품고 있다.
 

▲ ▲ 교육부 공문 ⓒ고성준 기자

정원 감축 권고가 자율감축으로 바뀔 무렵 교무처장을 맡고 있던 원모 교수가 교육부의 조치 변경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9월 교학부총장이라는 요직을 맡게 된 것도 그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의혹도 추가로 나왔다.

한 건국대 관계자는 “해당 교수가 교육부의 결정을 ‘자신의 공’이라고 말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공교로운 점은 원 교수가 받고 있는 의혹이 이것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8년 4월 교육부는 사립대학들에 ‘교수 논문에 자녀 공저자 등록’에 대한 철저한 검증 및 결과 보고 요청 공문을 내려보냈다.

당시 교수인 부모가 본인이나 동료 교수의 논문에 자녀를 공저자로 올리는 사안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커질 무렵이었다.

원 교수는 2013년 자신의 논문에 자녀를 공저자로 올렸고, 2018년 교육부의 조사가 시작되기 전 자녀의 이름을 삭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원 교수의 자녀로 추정되는 인물은 당시 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논란 교수
요직 승진

건국대 홍보실 관계자는 “원 교수는 해당 사안(정원 감축)에 대해 교무처장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이번에 교학부총장이 된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고 설명했다. 원 교수의 논문 의혹과 관련해 교수들의 연구윤리를 담당하는 교육부 학술진흥과 관계자는 “민원이 들어온 사안”이라며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고 답했다. 논문과 관련해 원 교수의 입장을 들으려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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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