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탐사기획> ‘만들어지는’ 학종의 두 얼굴 ③풀어야 할 숙제

정시는 정답을? 학종은 해답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학생부종합전형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다. 획일적인 입시제도를 다양화하고 학생들의 창의성을 키우려는 학종의 취지에는 공감도가 높다. 하지만 공정성과 투명성이 결여돼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학종을 폐지하거나 운영 방식을 전면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요시사>는 학종의 도입과 현황, 문제점 그리고 대안을 살펴봤다.
 

현재 중학교 3학년이 입시를 치르는 2023학년도까지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위주의 정시모집 비율이 40% 이상 확대될 전망이다. 교육부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비롯해 서울 소재 16개 대학을 대상으로 정시 확대를 권고하기로 했다. 건국대·경희대·광운대·동국대·서강대·서울시립대·서울여대·성균관대·숙명여대·숭실대·중앙대·한국외대·한양대 등이 그 대상이다.

수능 위주
비율 높아져

지난달 28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서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에 대한 손질 내용도 발표했다. 비교과 영역과 자기소개서는 2024년 완전히 폐지된다. 그 전까지 단계적 축소작업도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학종의 비교과 영역과 자기소개서는 부모의 영향력에 따라 좌지우지 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특히 자율활동·동아리·봉사·진로활동 등 이른바 ···이 도마에 올랐다. 교육부는 자율활동을 제외한 나머지 활동을 현재 중학교 2학년부터 대입서 축소 반영하기로 했다.

자기소개서는 기재 금지사항의 검증을 강화하고 문항과 글자수는 20222023학년도 4개 문항 5000자서 3100자로 줄였다가 2024년에 완전히 없앤다. 교사추천서는 2022학년도부터 폐지,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 입시를 치르는 2021학년도부터는 기재 금지사항 검증을 강화한다.


20202021학년도(현재 고등학교 23학년) 입시에는 모든 교내 수상경력을 기재할 수 있는 반면 20222023학년도(중학교 3학년~고등학교 1학년) 입시에는 학기당 1(3년간 6)만 반영된다. 2024학년도 입시에는 수상경력이 반영되지 않는다.

독서활동도 사라진다. 독서활동은 이미 2017학년도에 한 차례 손질을 거쳤다. 2017학년도 이전 독서활동은 책 제목과 저자, 책을 통해 학생이 느낀 점과 배운 점까지 기재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후 책 제목과 저자만 쓰도록 간소화됐다. 교육부는 2023학년도 입시까지 이 방식을 유지하다가 2024학년도 입시 때 없애기로 했다.

문 정시 확대 언급에 교육부 부랴부랴
2023학년도부터 정시 40% 이상 확대돼

교육부의 발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입제도 전반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지난 91일 이후 89, 1022일 국회 시정연설서 정시 확대를 언급한 지 38일 만에 나온 것이다. 앞서 문 대통령이 8월 말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후보자로 지명했을 때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입시비리 의혹이 학종 불신, 정시 확대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교육부의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학종을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종배 공정사회를위한모임 대표는 정부는 학종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삭제의 방식을 사용해왔다. 그 결과 학종은 교사가 적는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 항목만 남았다. 명목만 남은 셈이다. 존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 수학능력시험 중인 수험생들 ⓒ사진공동취재단

학종의 운영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충인 입학사정관협회 회장은 ···, 창의적 체험활동과 자기소개서 등 학종의 핵심사항이 전부 없어졌다. 이는 정말 무식한 처사라며 정시는 하나의 답, 즉 정답을 찾는 것이고 학종은 다양성 평가를 통해 해답을 찾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하나의 답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경우가 없다. 역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선 교사들이나 교육단체 등 교육계에선 우려 목소리가 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지난달 6수능 중심의 정시 확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10년 전으로 퇴행시키는 동시에 교실 붕괴를 예상케 하는 반교육적인 공교육 포기 선언이라며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버리고 수능 문제집을 풀이하는 학교는 정상이라 할 수 없다고 정시 확대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앞서 지난달 4일에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인 김승환 전북도교육감과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경제학자 우석훈씨 등 각계 인사와 교사, 학부모 등 1503명이 정시 확대에 반대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이들은 수능 위주의 정시 확대는 미래교육 관점서 매우 부적절하다”며 정시 확대 방침을 즉각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답 찾기
다양성 평가

반면 국민 여론은 줄곧 정시 확대 쪽으로 쏠렸다. CBS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025일 전국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입 전형에서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비율이 63.3%로 나타났다. 모든 지역, 연령, 이념성향, 정당 지지층에서 정시 확대 요구가 거셌다. ‘정시 확대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22.3%에 그쳤다.

연령별로는 30(72.7%), 40(70.8%)70% 이상이 찬성을 표했고, 50(66.9%), 20(62.8%), 60세 이상(49.4%) 순으로 나타났다. 중도층, 진보층, 보수층 등 이념 성향에 상관없이 60% 이상이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고 답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지난해 국가교육회의 공론화위원회가 시민참여단 49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서도 정시 확대안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은 바 있다. 수능 전형(정시)45% 이상으로 확대하는 1안과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꾸는 2안이 각각 1, 2위를 차지한 것. 또 조사결과 분석을 통해 시민참여단이 적절하다고 본 수능 위주 전형 비율은 39.6%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공론화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22학년 입시서 각 대학 정시 비율을 30% 이상으로 할 것을 권고했다. 이후 조 전 장관의 딸 조민씨의 입시비리 의혹이 불거졌지만 교육부는 더 이상의 정시 확대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학종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정시 확대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자 결국 문 대통령이 여론 달래기에 나섰다.
 

▲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2007년 노무현정부서 입학사정관제라는 이름으로 처음 도입됐을 당시만 해도 학종은 많은 기대를 받았다. 시험이 아니라 창의성과 잠재력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의 진로가 결정됐기에 학부모는 물론 대학과 교사도 이 제도를 반겼다. 이전 정부의 정책은 다음 정부서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학종은 계승됐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현재, 학종은 도입 초기 받았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이다. 입시제도가 거듭 바뀌는 동안 학종은 매번 손질의 대상이 됐다. 학종의 역사를 가리켜 금지의 역사라고 할 만큼 칼질을 당한 것. 노무현정부부터 문재인정부에 이르기까지 학종은 살아 남았지만 이제는 폐지와 개선의 기로에 섰다.

폐지를 주장하는 쪽이나 개선을 주장하는 쪽 모두 학종의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하면서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종배 대표는 취지만 따지면 학종은 좋은 제도다. 이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전제로 놓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자기 적성을 찾아가는 방식인데 그보다 좋은 입시제도가 어디 있겠나라고 전했다.

여론은 수능
교육계 반발

박경식 미래정책연구원 원장은 고등학교 성적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인재를 두루 뽑아 입학 후 학업수행과 미래의 인재를 선발·양성하고자 하는 학종의 목적은 좋다. 또 바람직한 인재를 선발하고자 하는 학종의 원래 취지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박 원장은 목적은 좋지만 현실이 이를 순수하게 따르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3 자녀를 둔 대치동의 한 학부모 A씨는 학종을 없애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A씨는 학종은 엄마가 관리해줄 수 없는 학생은 도전조차 해볼 수 없는 제도다. 학종으로 대학을, 그것도 명문대를 꿈꾸는 학생이라면 엄마가 입학 첫날부터 생활기록부 마감날까지 함께 학생처럼 생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학종은 입학 당시 원대한 꿈을 가졌던 학생들이 하나씩 삐끗할 때마다 그 꿈을 버려야 하는 정책이다. 의사를 꿈꿨던 학생은 중간고사를 망치면 의대에 못 간다. 공대에 가려던 학생은 수행평가서 한 번 실수하면 그걸로 끝이다. 학생들은 마지막에 남은 기록에 맞춰 대학을 선택한다고 지적했다.

조국 논란이 과연 조국만의 일일까. 돈을 쓸 수 있는 엄마들은 돈을 쓰고, 시간이 있는 엄마들은 대신 봉사활동을 해준다. 그게 무슨 차이인가. 학부모종합전형이라는 말이 딱”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종은 개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기득권을 위한 제도는 계속 득세할 것이다. 아마 다음 정부가 들어오면 이름만 바꿔 운영하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 국회 시정연설 중인 문재인 대통령 ⓒ국회사진취재단

강충인 회장 역시 학종은 입시제도의 궁극적인 길이 될 것이다. 앞으로는 수시 100%로 학생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제도 자체는 잘 만들었는데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이 부각되면서 제도 전체가 매도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조 전 장관의 논란에 대해 수시 시스템을 뒤틀어버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학종 또 다시 도마에 올라
“정작 학생 위한 정책 없다”

이들이 입을 모아 학종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부분은 공교롭게도 교사였다. 일부 교사의 갑질이나 부족한 역량이 학종을 천덕꾸러기신세로 전락시켰다는 주장이다. A씨는 학종으로 인해 교권이 살아났다고 하는데, 정말 지도가 필요한 아이들에 대한 교권이 아니라 평범한 학생을 상대로 한 갑질만 늘어났다고 강조했다. 학교, 공교육은 이미 붕괴 수준에 이르렀다고도 덧붙였다.


실제 한국교육개발원이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불신은 상당한 수준이다. ··고 학부모의 학교에 대한 평가는 51.6%가 보통, 부정이 39% 수준이었다. 반면 긍정적인 답변은 9.5%에 그쳤다. 부정평가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늘어났다.

교사에 대한 신뢰도도 낮았다. 학부모 응답자 중 신뢰한다는 답변은 19.7%에 머물렀다. 보통은 49.8%였고 신뢰하지 못한다는 답변은 30.5%. 평균점수로 환산하면 5점 만점에 2.85점 수준이다. 교사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신뢰도는 20123점을 넘겼지만 2013년 입학사정관제가 학종으로 전환된 이후 2.64점으로 떨어졌다.

강충인 회장은 교사의 질, 학생을 선발하는 입학사정관의 질을 높여야 한다. 이 과정서 생활기록부에 대한 교사의 권한을 지금보다 더 많이 부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정부가 학종을 좌지우지할 게 아니라 교사들의 양심에 따라 학생들을 평가할 수 있도록 의무와 책임을 동시에 부과하는 게 필요하다. 사회적 인식과 교사에 대한 신뢰감 역시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이어 학종은 기득권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그보다 정보에 대한 학부모와 교사의 무관심과 무책임이 현 상황을 만들었다고 보는 게 맞다. 하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학종에 대한 믿음은 사라진 상태다. 궁극적으로는 국민이 믿어줘야 한다. 대학은 학종이 도입된 후 10여년 동안 학생들에 대한 많은 데이터를 쌓았다.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도입 10년
어디로 가나

학종에 대해 각기 어떤 입장을 보였든 입시제도에 학생들이 소외돼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이종배 대표는 교육에 애들이 없다. 교사와 대학, 정부의 입장은 많은데 정작 학생을 생각하는 목소리는 없다고 비판했다. 강충인 원장 역시 “80년 교육사에서 학생을 위한 정책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학부모 A씨는 정부에서는 소외계층을 위한다고 사회배려자 전형등을 만든다. 하지만 이 방법은 대학으로 가는 쪽문을 열어주는 것뿐이다. 사회배려자 전형 등으로 대학에 입학한 아이들은 취업 시장, 결국 마지막 링에서 무너진다. 경제적 차이에 상관없이 같은 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는 공정한 잣대가 필요하다. 학종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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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