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울대학 발전기금 강요 의혹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10.28 11:28:39
  • 호수 12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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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값 학교에 기부하라고?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대학교 입학정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에 비수도권 지방대학들은 각기 다른 생존전략을 펼치고 있다. 남서울대학교는 ‘만원의 행복’ 캠페인을 진행했다. 학교 측은 재학생들에게 해당 캠페인 참여를 독려하는 메일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메일을 받은 재학생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남서울대학교 전경

최근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구조 조정’이라는 칼바람을 맞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수년 내 대학 입학생은 12만명 이상 급감하기 때문에 각 대학교에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이 추세라면 조만간 비수도권 대학의 40%가 향후 5년 이후 문을 닫거나 아니면 40%에 이르는 학생정원 감축을 감수해야 한다. 

대학발전기금 
강제후원 논란

지난 18일 민주노총 전국대학노조는 “2019년 현재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을 포함한 대학 입학정원은 49만명이지만, 교육부가 8월6일 대학혁신지원방안 발표서 언급한 바와 같이 5년 뒤인 2024년에는 지금보다 입학정원이 12만4000명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2019년 기준으로 수도권 입학정원이 19만명(서울 8만8000명 포함)이고 비수도권 입학정원은 30만명”이라며 “우리나라 대학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중심으로 입학 지원을 수직적으로 서열화하고 있어 비수도권 대학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조는 “2024년 입학생 12만4000명 감소가 주로 비수도권에 일어난다고 가정했을 때 이는 비수도권 대학 전체 정원의 41%에 해당한다”며 “지금도 재정이 어려운 상황서 학생 수가 급감하면, 주로 등록금에 재정을 의존하는 사립대학 중에 견딜 수 있는 대학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단순히 표현하면 최소한 지방대학 40%가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다. 지방대학과 지역 고등교육 기반, 더 나아가 해당 지역이 붕괴할 수밖에 없는 재앙 수준의 위기가 수년 뒤에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총체적인 대학과 고등교육의 위기상황이지만 정부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전국 고등교육의 13%를 담당하고 있는 부산과 경남지역 대학의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 상황을 타파하고자 충남 천안에 위치한 남서울대학교(이하 남서울대)는 캠페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달 18일 남서울대 도약을 위한 학교발전 자문위원회 출범식을 개최, 모교사랑 ‘만원의 행복’ 캠페인을 진행했다.

수도권 입학정원 떨어져 지방대 직격탄
학생·교직원 등에 ‘만원 캠페인’ 메일

만원의 행복 캠페인이란 모교를 사랑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최소 1만원 이상 해당 계좌로 입금하면 매달 학교 발전기금이라는 명목 하에 후원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날 윤승용 남서울대 총장은 “재학생·동문·교수로 이루어진 대학구성원의 지혜를 모아 수개월 동안 산고 끝에 새로운 도약을 위한 학교발전 자문위원회 출범식을 갖게 됐다”며 “모두 힘을 모아 대학 발전이라는 비전을 앞당겨 실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 달 뒤 남서울대학은 공격적으로 기부금 후원 모집에 나섰다. 10월17일부터 재학생을 비롯해 교직원 등을 대상으로 메일로 만원의 행복 캠페인 참여를 독려하는 메일을 전송한 것이다.

메일은 ‘NSU 만원의 행복에 동참해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전송됐다.


해당 메일에는 ‘남서울대학은 이러한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남서울 가족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상생발전 할 수 있는 남서울인 만원의 행복 동생 프로그램을 시행하고자 한다. 지금까지도 많은 분께서 학교발전기금 출연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주시고 있으나, 지난달 남서울대 발전자문위원회 출범식을 계기로 온라인뱅킹을 활용해 1만원 이상을 자동이체 방식으로 모금하는 방안을 추진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 윤승용 남서울대 총장

이어 ‘휴대폰이나 컴퓨터서 해당 주소를 입력하면 후원금 자동이체를 할 수 있는 사이트가 열리며 여기에 인적사항과 계좌번호만 입력하면 1분여 만에 절차가 완료된다. 여러분의 정성은 남서울대 발전을 위해 소중하게 사용될 것이다. 또 연말정산 시 소득공제혜택도 받게 된다’고 덧붙였다. 

느닷없이
캠페인 카드

말미에는 ‘1만원은 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는 정도의 비용이다. 남서울대 발전을 매월 커피  한 잔을 후배들에게 사준다는 마음으로 적극 참가해주시기 바란다. 학교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애써주시는 동문회, 교직원, 학생, 학부모님들에게 두 손 모아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늘 하나님의 은혜가 각 가정에 충만하길 기원한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남서울대는 해당 메일을 재학생 전체에게 전송한 것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재학생에게는 메일이 전송되지도 않았으며, 다른 재학생에게는 하루 걸러서 똑같은 메일이 2번 이상 전송된 것으로 드러났다.

남서울대 관계자는 “학교에 등록된 메일이 정확하지 않아 전송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다. 그 점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메일을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메일은 페이스북 전국 대학생 대나무숲 페이지에 공유되어 남서울대 재학생들에게 퍼졌다. 제보자도 “남서울대는 얼마나 비리를 저질렀길래 총장이 메일로 기부해달라고 난리를 치나요? 만원 정도면 커피값이니 내달라는데”라며 해당 메일을 공유했다. 

남서울대 재학생 A씨는 “해당 메일을 읽어보니 커피 한 잔 하는 돈이니 학교에 기부 좀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학교 비리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그렇게 빼돌린 학교 돈 채워서 누구의 배를 불리려나 싶어서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총 76건 적발…대전·충남 사립대 중 최다 건수
아무렇지 않은 듯 “커피값 표현은 비유에 불과”

이어 “비리도 없고 쓸모없는 돈을 쓰지 않았으면 이런 메일을 보낼 일이나 있었을까, 이런 이런 생각도 든다. 많은 학생의 등록금을 받아 가고 학생들은 나라에 빚을 내 공부하고 아르바이트해서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 와중에 커피 한 잔 할 돈을 학교에 기부하면 소득공제도 된다고 말하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학 임직원)본인들 월급서 차감해서 기부했으면 좋겠다”며 “이메일을 받고 기부할 생각도 들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현재 자금 상황이나 해결방안은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대뜸 돈을 달라고 하니 강도 같다는 느낌도 든다”고 분노했다. 

재학생 B씨는 “학교 감사 내용을 보면 비정상적인 곳에 자금을 사용한 것으로 나온다. 이런 상황서 저희에게 돈을 내라고 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 국가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에게 월 1만원씩 내라고 하는 건 고통을 주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또 1만원을 고작 커피 한 잔 값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불쾌했다. 친구들 사이서도 이 표현으로 말이 많았다”고 말했다.
 

▲ 최근 커피 한 잔 값 논란에 휩싸인 남서울대학교

재학생들은 감사결과 비리가 적발됐음에도 불구하고 기부를 요구하는 것 같아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또 1만원을 커피 한 잔 값이라고 표현하는 데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공개한 2008∼2019년 현재까지 사립대학 감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339개 사립대학에 회계부정 등으로 적발된 건수가 4528건이고 비위 금액은 4177억원에 달했다. 

충남에서는 남서울대학가 76건이나 적발돼 대전·충남 사립대 중 최다 건수를 기록했다. 남서울대는 지난해 2월 종합감사서 ▲수익용 기본재산 관리 부적정 ▲장기 미등기 부동산 과징금 등 교비회계 집행 ▲교수협의회 창립식 방해 등 34건이 적발돼 이 중 14건, 3억400만원의 재정조치를 받았다. 

‘만원의 행복에
동참해주세요!’

대표적으로 남서울대는 지난 2015년 8월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천안시청으로부터 학교법인 성암학원에 부과된 ‘충남 **시 **읍 **리 65-2’ 등 33필지 부동산 장기 미등기에 따른 과징금 합계 13억2200여만원을 교비회계(등록금회계)서 집행하는 등 2015년 8월17일부터 2017년 10월17일까지 법인 귀책 사유가 있고 학교 교육에 직접 필요한 경비가 아닌 부동산 장기 미등기에 따른 과징금 및 관련 행정 소송 수행경비 등 13억4500여만원을 교비회계서 집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서울대 재학생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해당 메일과 게시글에 관해 재학생들의 불만이 커지기 시작하자, 하루 뒤인 18일 페이스북 남서울대학교 총학생회 페이지에 추종호 대외 국제교류처 교수가 글을 올렸다. 

이 글은 “10월17일 전송된 총장님의 레터로 인해 학우분들의 많은 당황스러움을 느꼈을 거라 생각한다. 이에 대해 학우분들이 문의를 하셨고, 학생회 측에서 이글과 관련해 담당부서 및 담당자분께 이 상황에 대해 설명드렸다”고 게시했다. 이어 “저는 본교 대외국제교류처부처장 스포츠비즈니스학과 추종효 교수이다. 본교에 재직중이며, 스포츠비즈니스학과 95학번 동문이기도 하다.
 


이번 NSU만원의 행복 동행과 관련해 우리 학생들의 우려 목소리가 많아 글을 남긴다. 이 행사는 남서울대학교 총동문회와 대외 국제교류처서 학교 발전과 학생들의 복지증진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소액 기부 행사”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달 18일 ‘남서울대학교 발전을 위한 자문위원회 출범식’에 이사장님, 총장님, 이하 지역사회 인사들께서도 함께 참여해 첫 출발을 했다. 행사 당일 총동문회장님께 1000만원이라는 거금을 학교 발전기금으로 기탁해주셨으며, 총동문회서도 500만원, 그 이외에 많은 분이 남서울대 발전을 위해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현재 타대학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소액기부 발전기금 모금을 우리 남서울대가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재학생 여러분께서 걱정하고 있는 우려하는 부분들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모금  된 발전기금들은 우리 남서울대 진일보 발전을 위한 디딤돌로의 역할 수행과 더불어 온전히 학생들의 복지와 장학기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NSU 만원의 행복 동행은 어디까지나 당사자 자율 의사에 진행되는 것이며 학생들에게 부담을 느끼게 한 점이 있다면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우리 남서울대학교와 총동문회에서는 학교의 발전을 위해 일만 학우들과 동반성장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남서울대 관계자는 “요즘 국내뿐 아니라 외국대학교들이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달 발전기금을 모으기 시작했지만 큰 기대만큼 많이 모이지는 않았다. 물론 후원해주신 분도 있었지만 모든 사람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캠페인을 지속했고 메일로도 전송했다”고 말했다.

“강요 아니다”
학교 측 일축

이어 “절대 강요로 하는 게 아니라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분들이라면 재학생, 교직원, 졸업생 등 다양하게 후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액수는 아직 초기단계기 때문에 후원금이 많이 모이지는 않았다. 또 재학생들이 ‘커피 한 잔’이라는 표현에 대해 굉장히 불편해한 걸로 아는데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서민적인 음식으로 ‘짜장면 가격’이라는 표현을 쓴 것처럼 지금은 시대가 바뀐 만큼 커피 한 잔이라고 비유를 한 것이다. 사전적 의미가 아닌 이류적 표현으로 뜻을 전한 것이라고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동양대 발전기금 의혹
교직원에 강제징수? 제출된 내역도 허위

학교발전기금을 교직원들에게 강제징수했다는 의혹을 받은 동양대학교가 ‘발전기금 내역을 제출하라’는 국정감사 위원의 요청에 허위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는 “기금 내역에 허위사실이 확인되면 현장조사 등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4∼2018년 동양대 학교발전기금 모금 현황’ 자료를 보면 2017년의 경우 교직원들이 낸 기금은 1139만2000원으로 명시됐다.

박 위원의 요청을 받은 교육부가 동양대에 공문을 보내 제출받은 뒤 재차 의원실에 전달한 것이다. 자료에 적힌 연도별 기금 규모와 내역 등은 동양대가 직접 작성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발전기금의 경우 사립학교가 교육부에 내역 등을 보고할 의무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양대가 제출한 자료는 허위였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동양대의 2013∼2017년 사이 발전기금 내역을 살펴볼 때, 2017년의 경우 2월에만 190건이 넘는 발전기금으로 들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발전기금 납부자 명단 중 A 교수(1000만원), B 교수(2000만원), C 교수(1000만원) 등이 낸 금액만 4000만원이 넘는다. 표창장 위조 의혹을 받는 정경심 교수도 당시 1000만원을 납부한 것으로 돼있으며 최성해 총장도 2억8000만원을 낸 것으로 나와 있다. 

교수들이 낸 금액이 무려…
회계처리 달리 했을 가능성

전직 동양대 직원 증언에 따르면 학교 측은 2016년 말∼2017년 초 사이 “교수는 1000만원, 일반 교직원은 500만원의 발전기금을 내라”고 종용했다. 2017년 기준 동양대 교수 및 정규직 숫자는 200명이 훌쩍 넘었다. 전직 동양대 일부 교수 등은 “기금을 내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 등을 당하는게 두려워 모든 교직원이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살펴보면 2017년 2월 1000만원의 기부금을 낸 납부자는 총 126명으로, 금액만 합산해도 10억이 훌쩍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동양대가 기금 규모를 많이 축소해 허위 제출한 배경으로는 당시 회계처리 문제 탓으로 추측된다.

학교발전기금은 엄연히 ‘기부금’에 속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회계 절차를 통해 납부됐다면 납부자들이 세액공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동양대의 경우 기금을 걷을 때 세액공제가 안  되는 것으로 확인돼 내부적으로도 논란이 일었다.

동양대가 2017년에 명목상으로는 발전기금을 걷으면서 실제로는 회계처리를 다른 항목으로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박찬대 의원은 “최성해 총장의 가짜학위 행사 의혹과 재정운영 문제, 허위 기부금 자료 제출 등 대학의 총체적 문제점이 드러났다”며 “교육부는 학교운영 전반에 대해 종합감사 등을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동양대가 허위 자료를 제출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겠다”며 “실제 걷은 기금 규모와 학교 공시정보에 기재된 기금 내역이 맞지 않는 등 문제가 보인다면 현장조사 등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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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