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칼럼> 인공지능과 전문자격사의 미래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2.03 09:36:33
  • 호수 11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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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두뇌를 대체한다는 것은 흥밋거리로 받아들여졌다. 인공지능은 인간형 로봇(humanoid)으로 형상화되어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사용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머신러닝 인공지능 기술이 출현하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정신활동을 대체하는 것은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됐다.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여겨졌던 전문직 업무까지도 인공지능이 영향을 미치기에 이르렀다.  

전문직의 업무는 일반적으로 고도화된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세세히 살펴보면 정형화돼있거나 반복적인 업무도 많다. 미국의 경우 전자적으로 저장된 정보 중 어떤 것을 재판에 증거로 제시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데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다. 이 과정은 과거에는 신입 변호사들이 주로 맡았던 업무다. 

인공지능 변호사 로스(ROSS)가 미국의 대형 로펌에 ‘채용’된 것은 이미 2년 전의 일이다. 국내서도 올해 초 인공지능 변호사가 대형로펌에 채용되며 화재를 불러 일으켰다. 변호사와 법률비서가 장기간에 걸쳐 수행하던 법률 검토와 판례 분석을 수십초 만에 할 수 있다고 한다.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변호사나 법률사무원 등이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한편, 일부 세무사들이 인공지능 세무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회사의 업무를 중지하라고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세무사 자격 없이 세무대리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세무대리 업무를 수행한 것은 인공지능이지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논란이 될 수 있다. 공인노무사가 주로 수행하는 근로계약서 작성, 4대 보험 신고납부나 법무사의 부동산 등기 관련 서류 작성 업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공지능이 발전한다고 해도 창의성이나 협상이 필요한 영역서 인간의 역할은 남아 있을 것이다. 전문자격사들도 기술혁신에 발맞춰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있는 업무서 완전히 벗어나 각자의 직무를 고도화 시켜야 한다. 또, 국가에선 입법과 행정을 통해 관련 규정을 마련하되 과거의 기득권을 지나치게 보호하는 규제를 하는 것보다는 시대적 흐름에 맞는 열린 제도를 창설해줘야 한다.

예를 들면, 로스쿨에 1년 가량의 법률 교육과정을 개설해 이를 이수한 경우 관련 자격증이 없더라도 전문자격사 업무 중 일부를 정보기술을 통해 수행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전문자격사는 인공지능 지식이 부족하고, 인공지능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전문자격사 업무에 대한 지식이 적고 업무를 수행할 권한이 없다. 이 같은 어려움을 완화시키고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으로 로스쿨 교육과정 이수를 제안하는 것이다. 


또, 전문자격사 간 장벽도 낮춰야 한다. 우리나라의 전문자격사는 다른 나라에 비해 그 종류가 많고 영역이 엄격히 구분돼있다. 전문자격사들이 업무를 다각화하거나 고도화하고자 해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각 전문직 법인의 설립 요건 변경, 전문직 간 동업 허용, 일정한 요건 하의 소송대리권 인정이나 전문자격사 통폐합 등이 논의돼야 한다.

지금처럼 각자의 틀을 가지고 있어서는 사회 변화에 맞춘 혁신을 도모하기 어려워 사회적인 비효율이 발생할 것이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줄곧 사람의 일자리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쳐왔고 마침내 인간 고유영역이라 믿어왔던 전문직 업무까지도 상당부분 기계가 대신할 수 있게 됐다. 인공지능이 전문자격사에게 미칠 영향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지만 현재로서는 국회 및 소관부처, 각 전문자격사 단체 및 전문자격사 개인이 뜻을 모아 인공지능과 전문자격사가 협업해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최선이라 하겠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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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