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발 정계개편 시나리오

기존판 뒤흔들 새로운 카드는?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새누리당이 계파갈등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야권발 정계개편 움직임이 포착됐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제1당의 자리에 오르고 국민의당이 정계개편에 성공해 원내 제3당의 지위를 차지했기 때문에 정계개편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은 상황. 야권에 기존 판을 뒤흔들 새로운 카드가 등장할지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은 “지난 4·13 총선에서 분출된 국민의 분노와 좌절을 담아낼 그릇에 금이 갔다”며 “새 그릇을 만들기 위한 정치권의 각성과 헌신, 또 진정한 노력을 담아내는 새판이 짜여져야 한다”고 밝혔다.

국정 주도할
새판을 짠다

앞서 지난 18일에는 광주 5·18묘역서 열린 ‘제36주년 5·18 민주화운동 정부 기념식’에 참석해 “5·18의 뜻은 각성의 시작이자, 분노와 심판의 시작, 또 용서와 화해의 시작”이라며 “지금 국민들이 모든 것을 녹여내는 ‘새판짜기’를 시작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5월 들어 새 그릇, 새판 등을 언급하면서 독자세력화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손 전 고문이 당적을 두고 있는 더민주는 일단 그의 당 복귀를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손 전 고문의 정계복귀를 환영한다는 입장를 밝혔고, 능력 있고 소중한 인재라고 평가했다.

그와 함께 5·18묘역을 참배했던 더민주 이개호 의원도 손 전 고문의 복귀에 대해 “그분께서 정치를 한다면 당연히 우리 당에서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이고 또 우리 당에서 그 분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확보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손 전 고문에 힘을 실어줬다.


더민주 일각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라는 강력한 대선주자 곁에 손 전 고문과 같은 건전한 경쟁자가 많아야 정권교체를 이루는 데 힘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당 안팎에서 손 전 고문의 정계복귀에 대해 비판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손 전 고문이 총선 전 더민주의 지원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에 정계복귀 자체에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또 더민주가 원내 제1당을 차지한 상황에서 뒤늦게 숟가락을 올리려 한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아울러 지난 2014년 7월30일 경기 수원병 보궐선거에서 패한 뒤 정계은퇴를 했고, 총선이 일단락 됐기 때문에 정계개편의 동력으로 작용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슬슬 움직이는 손학규
흐름 주도하는 박지원

타당에서도 손 전 고문 행보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손 전 고문의 복귀 타이밍이 늦었다고 본다”며 “복귀할 생각이 있었다면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기 전에 정계복귀해서 정리를 했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학규-문재인-천정배가 당내에서 존재감을 보였다면 안 대표는 혼자서 탈당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손 전 고문의 독자세력화에는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손 전 고문은 독자 세력화에 나설 만한 결단력을 보여주지 못할 것 같다. 성품이 훌륭하기는 한데 그래서 자기 계파를 요란하게 챙기지 못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손 전 고문이 세력화에 나설 경우 더민주나 국민의당을 탈당해 따라나설 인사가 별로 없을 것”이라며 평가절하했다. 다만 박 원내대표는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김 대표가 8월 말∼9월 초 임기가 끝나는 점과 그가 문 전 대표와 함께 갈 생각이 없는 점에 비춰볼 때 손 전 상임고문을 끌어들여 당내에서 2012년 대선 경선의 리턴매치 국면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당시 손 전 상임고문은 문 전 대표에 뒤진 2위를 기록한 바 있다.


박 원내대표는 그러나 “친노(친 노무현)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에 당내 손 전 고문의 측근을 비롯한 비노(비 노무현) 의원들이 똘똘 뭉친다 해도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손 전 고문은 국민의당에 와서 안 대표와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그래도 안 대표는 친노와 달리 열린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민의당 내부에서는 손 전 고문의 정계개편 움직임과 관련해 ‘손학규 영입론’이 제기되고 있다.

“함께 하자”
손에 러브콜

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의장은 “(손 전 고문)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정치에 기여할 바가 있을지 모색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새판짜기에 대해서도 “정치 변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게 어떤 결론을 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하겠다”며 선을 그었다.

박 원대대표는 정계개편 정국에서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난 25일 정의화 국회의장, 손학규 전 고문, 합리적인 새누리당 비박(비 박근혜)계 인사들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 박 원내대표는 “우리는 안 대표가 이미 말한대로 열린 정당이기 때문에 우리의 정체성에 부합되는 분들 같으면 함께 해서 판을 키워보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호남에 지지기반을 두고 있는 국민의당이 단독집권을 위해서 본격적 세 불리기에 나선 셈이다. 또한 정의화 전 의장이 창당 가능성을 시사한 상황이고 손 전 고문도 새판짜기를 언급했기 때문에 이 둘의 세력을 국민의당이 흡수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계개편 정국에서 국민의당 안 대표도 박 원내대표와 같은 생각이다. 이미 정계개편을 통해 원내 제3당에 오른 안 대표 입장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정계개편이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안 대표는 5·18 기념식에 앞서 가진 지역언론사 대표들과 조찬간담회서 “새누리당과의 연정은 없다”고 못박았다. 내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나설 수 있다는 정치권 일각의 관측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안 대표는 다만 새누리당에서 합리적인 성향의 인사가 온다면 영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안 대표는 광주에 이어 전남 고흥의 국립소록도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선 때 편가르고 정치공학적으로 뭔가를 더 얻겠다고 하면 안 된다"며 "정당을 만들 때부터 개혁적 보수, 합리적 진보와 함께 합리적 개혁을 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전날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뽑는 전국위원회가 무산되는 등 친박(친 박근혜)계와 비박(비 박근혜)계간 내홍이 확산된 상황에서 박지원 원내대표와 마찬가지로 외연확장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손 전 고문의 정계개편 논의가 수면에 떠오르면서 야권내 차기 대권 후보자들도 대권에 대한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20일 국회에서 열린 충남지역 20대 총선 당선인 초청 정책설명회에서 차기 대권 도전 의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대의 요구가 있을 때 준비가 안 된 건 군대조직으로 치면 장수의 문제이고, 부름에 응답하지 못하는 건 가장 큰 죄”라며 대권 도전의지를 내비쳤다.

안 지사는 또 “지난번 도지사 선거 때도 열심히 준비하고 실력을 쌓아 기회가 되면 대한민국을 이끄는 정치 지도자로 성장하겠다고 약속 드렸었다”며 지금도 같은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안 지사가 확정적으로 대권 도전을 하겠다는 의사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발언 중 ‘부름에 응답’ ‘정치 지도자’ ‘슛을 쏘겠다’ 등을 해석하면 대권 도전에 대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안 지사는 손 전고문이 “새 판을 짜겠다”며 최근 잇달아 정계 복귀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며 굳게 입을 닫았다. 정계개편 구도와 관련한 기자들의 잇단 질문에도 “지금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정계에서는 안 지사가 충청권을 중심으로 한 인적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차기 대선의 돌풍의 핵이 될 수도있다는 평가다. 다음 대통령은 충청권에서 나와야 한다는 이른바 ‘충청대망론’이 힘을 받고 있기 때문에 안 지사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대선 앞두고
잠룡들 시동

일각에서는 안 지사가 친노계인 만큼 문 전 대표의 대선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그것은 잘못된 분석 같다”며 “문재인은 문재인, 안희정은 안희정”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두분이 같은 가문은 맞지만 한 가문에서 한 명만 나오라는 법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4·13 총선 이후 더민주 내 대권 잠룡인 박원순 시장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은데 이런 박 시장이 본격적인 ‘호남 챙기기’에 나선 모습도 대권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난 12일 광주에서 “광주는 늘 내 생각의 뿌리이자 가치관이었다”며 “역사의 부름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더 행동하겠다. 나도 뒤로 숨지 않겠다”라고 말해 호남 챙기기와 더불어 대권에 대한 욕심도 드러냈다.

최근에는 박근혜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24일 국회서 “11년째 국민소득은 2만 달러대로 정체되고 창조경제를 내걸었던 박근혜정부에서조차 성장 동력은 식어버린 상황”이라며 “일자리 문제도 중앙집권적인 성장고용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박 시장의 최근 일련의 광폭행보가 야권 내 잠룡들의 급부상과 연관됐다고 분석한다. 총선 결과 친노계로 분류되는 ‘안희정계’의 상당수가 국회에 입성해 안 지사는 물론 문 전 대표의 입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반면에 박 시장은 지자체장이라는 핸디캡으로 총선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하기 어려웠고 ‘박원순계’가 대거 낙선하면서 대권행보에 타격을 입은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시큰둥한 안희정
광폭행보 시작한 박원순

최근 박 시장의 행보에 대해 박 시장 측 관계자는 “바로 대권 행보로 이어진다는 해석은 무리가 있다. 박 시장의 행보가 궁극적으로 서울시민의 안녕과 생활에 더 보탬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면서 “국회의원 선거 때는 직책 때문에 역할이 제한됐지만 원래 서울시장은 행정가이면서 정치가”라고 밝혔다.
 

박 시장은 반기문 UN사무총장에게도 견제구를 날리면서 여야 가리지 않고 대권주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박 시장은 25일 <YTN라디오>에 출연해 유엔 결의문을 언급했다. ‘유엔 사무총장 지명에 관한 약정서’에 따르면 사무총장은 여러 나라의 기밀을 공유할 수 있다는 이유로 ‘회원국은 사무총장에게 어떠한 정부 직위도 제안해서는 안 되며 사무총장도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결의문 대로한다면 반 총장이 대선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박 시장은 “(반 총장이) 유엔사무총장 및 간부로서 여러 국가의 비밀 정보를 많이 알게 되지 않았나”라며 “그런데 특정 국가의 공직자가 되면 이를 활용하거나 악용할 가능성이 있어 직책의 공정성 담보하고자 (이러한 결의안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박 시장은 야권 잠룡들에 대해서도 각을 세웠다. 최근 국민의당 박 원내대표가 “더민주는 이미 문재인 대표로 다 정해져있다”라고 발언한 데 대해 “그런 절차가 있었나”라며 “정치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최종의 심판자 국민이 보고 알고 계신다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5월 이후 정계개편 화두를 던지면서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는 손 전 고문에 대해서는 “총선이 지금 얼마 전에 끝났는데 갑자기 정계개편이 될 리 없다”라며 “모든 일은 국민이 결정하는 바”라고 말했다.

불안한 중진들
여기저기 견제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총선 이후 정당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정치인들이 보이지 않는 정계개편 예선전이 펼치고 있다"며 "내년 대선을 앞두고서야 정계개편이 실현되겠지만 어느 정당이든 민생경제 문제 등 현안을 해결할 때야 비로소 유리한 고지에 올라설 것"이라고 말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또 거론되는 개헌론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정가에서 개헌론이 떠오르고 있다. 개헌론은 1987년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개헌론의 핵심 주장은 87년 때 제정된 헌법이 오늘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개헌론은 대통령의 임기, 선출 방식, 내각제, 양원제 등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판 자체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나라 정치사에 개헌론은 1997년 ‘DJP연합’이 내각제 카드로 뭉쳤지만 대선이후 각종 논란 속에 무산됐다.

김대중 정부 4년 임기 대통령 중임제를 공론화 했었고 노무현 정부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 주기가 맞지 않다는 점을 들어 개헌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로 개헌카드를 꺼내들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분권형 개헌론’을 제기했지만 박 대통령이 강하게 반발하자 철회했다.

최근에는 결선투표제를 둘러싸고 야권 곳곳에서 개헌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지난 25일 퇴임한 정의화 전 의장도 대표적인 개헌론자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개헌논의부터 해야한다”며 “낡은 정치를 바꾸려면 정치의 틀 역시 바꿔야 한다. 지금은 87년 체제를 극복해야 할 구조적 전환기”라고 주장했다. 개헌론은 매번 정치권에 주요 쟁점 사항으로 떠오르지만 정치권의 이해관계 속에 국면전환용에 머물렀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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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