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검찰공약 중간점검

개혁 약속해놓고 ‘길들이기’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검찰 개혁이 시급하다”고 말했었다. 검찰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검사 파견관행 개선’ ‘중앙수사부 폐지’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현 정부 출범 3년을 앞두고 있지만 이 공약들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검찰 개혁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이 가장 기대했던 정책분야였다. 무소불위의 ‘정치 검찰’ ‘비리 검사’라는 오명과 함께 국민의 지탄을 받아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호언장담했지만 현재까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믿었는데…
말짱 도루묵

지난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박 대통령 집권 3년차를 맞아 대선에서 공약한 20대 분야 674개 세부 공약에 대한 이행 수준을 평가했다. 이중 검찰 개혁 공약 이행률은 16%에 불과했는데, 박 대통령이 공약했던 정책 중 가장 저조하다.

최근 ‘미니 중수부’로 불리는 부패범죄수사단이 출범하면서 검찰 개혁의 성과로 폐지 됐던 중수부가 사실상 부활했다. 오히려 올해 검찰 개혁이 지난해보다 더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검찰개혁이 이토록 저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정권에서는 집권 초기 이들 사정기관과 정보기관부터 장악하려 했다. 검찰 지휘부의 성향과 사정수사 방향에 따라 정권의 향배와 안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검찰 주요 요직에 포함되는 인사들이 정권과 결탁해 폐해가 일어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1997년 대선을 한달 앞두고 터진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은 대선 이후를 기약하며 수사를 공개적으로 접었다. 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그는 총장을 거쳐 법무부 장관까지 올랐다. DJ정부 시절 김 대통령과 동향(전남)이었던 신승남 전 검찰총장은 전임자인 박순용 총장의 총장 임기 2년 동안에도 ‘실세 대검차장’으로 불리며 사실상 총장 역할을 해 논란의 대상이 됐다.

대선 때 호언장담 ‘얼만큼 지켰나’
독립성 강조했는데…결국 흐지부지

박 대통령은 검찰의 이런 태생적 배경 때문에 검찰 개혁을 부르짖었다. 그 핵심은 검찰 권력 축소와 독립성이다. 검찰 개혁의 세부 공약을 보면 ‘검찰 인사제도 개선’ ‘비리 검사 퇴출’ ‘검찰 권한의 축소 및 통제’ ‘검경 수사권 조정’이 있다.

검찰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히는 ‘검사의 법무부 및 외부기관 파견 관행’은 개선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우선 현직 검사의 외부기관 파견을 제한하겠다는 공약은 빈말이 됐다. 참여연대가 법무부에서 받은 외부기관 파견검사 현황 자료 등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월 현재 정부기구나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국제기구 등에 파견돼 있는 현직 검사의 수는 총 69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2013년 62명, 2014년 63명에 비해 늘어난 것이다. 이명박정부 마지막 3년(2010∼2012년) 동안 해당 인원수가 68∼72명이었음을 고려할 때 사실상 ‘원상회복’된 셈이다.

검사가 파견되는 외부 기관의 수도 오히려 늘어났다. 2013년 32곳, 2014년 34곳에서 올해 42곳으로 늘어나 2010∼2012년 39∼46곳과 엇비슷한 수준이 됐다. 국민안전처와 미래창조과학부, 문화체육관광부, 광주광역시, 국제개발은행, 주네덜란드대사관 등 6곳에 새로 검사가 파견됐다. 감사원(1명→4명)과 금융위원회(5명→7명), 국무총리실(1명→2명), 헌법재판소(3명→4명) 등은 인원이 증원됐다.
 


2012년 12월2일 박 대통령은 “검사의 법무부 및 외부기관 파견을 제한해 파견기관을 통한 정치권의 외압을 차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대선공약집에도 그대로 담겼다. 취임 직후인 2013년 5월 발표한 국정과제에서도 ‘법무부 및 외부기관 파견검사에 대한 인력 및 조직 진단을 통한 단계적 감축’을 공언한 바 있다. 결국 취임 1, 2년째에만 파견검사 수를 줄이는 시늉을 하다 도로 제자리로 간 것이다.

수사권 조정
큰 변화 없어

특히 ‘법무부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변호사 또는 일반직 공무원이 근무토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른바 ‘법무부의 비(非)검찰화’인데, 참여정부 시절 잠깐 시도됐을 뿐, 이후엔 여전히 법무부의 주요 국·실장과 과장 등을 거의 대부분 검사들이 맡고 있다. 법무부에서 근무하는 현직 검사들은 80∼90명으로, 전체 인원의 7분의 1 정도에 달한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저해하는 대표적 요인으로 ‘청와대 편법 파견’ 관행도 여전했다. 현직 검사의 청와대 파견을 금지하는 검찰청법에 따라 민정수석실 등에서 근무하는 검사들은 ‘사표 제출→청와대 근무→검찰 재임용’이라는 절차를 거친다. 이런 편법으로 청와대를 거친 검사들이 검찰 요직에 중용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법무부가 지난달 13일자로 단행한 560명의 고검검사급 인사에 따르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밑에서 근무한 권정훈(47·사법연수원 24기) 민정비서관이 법무부 인권국장에 임명됐다. 법무부 인권국장은 검사장 승진 1순위인 요직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한 이영상(43·29기) 검사는 범죄첩보를 수집하는 대검 범죄정보1담당관으로 임명됐다. 범정1담당관의 경우 각종 수사·범죄정보를 다루기 때문에 청와대 민정수석 밑에서 일하던 검사가 곧바로 이 자리를 맡을 경우 청와대의 검찰 수사 통제와 정권 하명수사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청와대에서 근무한 박태호(43·32기), 박승환(39·32기) 검사도 각각 대검 검찰 연구관, 서울서부지검 검사로 보임됐다. 대검과 서울 일대 지검 역시 일선 검사들이 선호하는 근무지다.

이전에는 청와대에 파견됐다 복귀하는 검사들은 최소한 복귀 첫 인사에서는 한직으로 발령 나는 경우가 많았다. 2013년 초 검찰에 사표를 내고 청와대로 간 이중희(49·23기) 전 민정비서관도 2014년 5월 복귀하기는 했지만 서울고검으로 요직은 아니었다. 즉 이번 인사에서는 ‘청와대 파견 우대’가 더욱 노골화 된 셈이다.

법무부 파견 감축은 검사가 법무부의 주요 고위직 등을 장악토록 한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것이 핵심인데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이에 대한 개정 노력은 전혀 없었다. 여전히 법무부 장·차관을 비롯한 검찰국장, 법무실장, 기획조정실장, 감찰관 등 법무부 핵심직책을 비롯한 대부분의 직책을 검찰이 장악하고 있다.

‘검찰 권한의 축소·통제’ 분야의 가장 상징적인 공약이었던 대검 중수부 폐지는 잠시나마 실현되긴 했다.

1981년 설치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대검찰청의 공직자 비리수사처로 공안부와 함께 검찰의 양대 중핵을 이루어온 핵심 부서다. 검찰총장의 직할 수사조직으로, 청와대나 검찰총장의 하명 사건 수사를 담당해 오면서 이철희·장영자씨 부부 어음사기사건, 명성사건, 5공 비리사건, 수서사건, 율곡비리,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과 한보사건, 김현철씨 비리사건, 이용호게이트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획을 긋는 굵직한 사건들을 맡아왔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중 서거로 정권마다 편향 수사 논란이 일면서 존폐위기에 몰렸다. 2012년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은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중수부 폐지를 내세웠고, 2013년 4월 중수부를 폐지했다.


검공약 이행률
고작 16% 불과

그러나 올해 1월 ‘미니 중수부’라 할 수 있는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출범하면서 도루묵이 됐다. 전국 단위의 대형 사건 수사에 한계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물론 대선 공약에도 “예외적으로 관할이 전국에 걸쳐 있거나 일선 지검에서 수사하기 부적당한 사건은 고검에 TF 성격의 한시적인 수사팀을 만든다”는 단서가 있었던 만큼 공약 파기라고 몰아세우기는 무리지만, 과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특정 사건을 염두에 두고 꾸려진 한시적 조직으로 볼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중요사건의 구속영장 청구나 기소 여부 등을 시민들이 직접 심의하는 검찰 시민위원회의 강화를 위해 관련 법령을 개정하겠다는 약속도 감감무소식이다.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이 2013년 6월 관련 법안을 제출하기만 했을 뿐, 실질적인 법제화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수년째 논란이 되고 있는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가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한 채 답보 상태다. 임기 내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독립하겠다던 강신명 경찰청장의 공언은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수사 지휘권을 놓지 않겠다는 검찰의 의지가 강한데다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 분점을 공약하고도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 청와대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다.

최근 검·경의 조희팔 사건 수사와 경찰의 김진태 전 검찰총장 내사 의혹, 문재인 야당 대표의 환기 발언 등으로 수사권 조정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 차원의 의지부족으로 수사권 조정의 본질은 건드리지 못한 채 국정과제를 추진한다는 형식적인 구색만 맞추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검사 파견 제한? 도로 원상복귀
중수부 폐지? 이름만 바꿔 부활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잇따라 발의된 각종 법안들도 길게는 수년째 잠자고 있다. 총선이 2개월 앞으로 다가온 점 등을 고려하면 이번 국회에서의 처리는 요원해 보인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검찰청법 개정안(의원 발의)은 모두 9건이고 이 가운데 검찰 개혁과 직결되는 법안은 내용이 겹치는 것을 포함해 모두 8건이다.

앞에서 언급한 검사가 청와대 보직을 겸직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인 '검사 편법파견 금지법'이 대표적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임내현 의원, 정청래 의원 등이 2012∼2013년에 발의한 이 법안은 편법파견을 억제하기 위해 청와대에 몸담았던 검사의 재임용을 1∼3년간 금지하는 내용이다.

상급자에 대한 검사의 이의제기 권한을 현실화하고 이에 따른 불이익이 없도록 제도화하는 법안 또한 2013년 새정치연합 이춘석·이종걸 의원 등이 발의했으나 여전히 계류중이다. 이밖에 ▲피의사실 공표 등의 폐해를 없애기 위한 검찰 공보담당 검사 지정법 ▲검찰 정치중립을 위한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 제한법 ▲내부감찰 기능 정상화를 위한 감찰인력 배치절차 개선법 등이 여전히 상임위에 묶여 있다.

비리검사 퇴출
사실상 무용지물

현재까지 어느 정도 실적을 보이는 개정안은 ‘비리검사 퇴출’ 항목이 유일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검사적격심사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검사적격심사제는 평생검사제 도입으로 검사의 신분을 보장하는 대신 업무 실적이 좋지 않고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검사를 중간에 퇴출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제도다. ‘검사 징계 사유 명확화(향응, 금품수수 등) 및 처벌 수위 강화’는 2014년 5월 개정된 검사징계법에 반영됐다.

검사적격심사 제도는 ‘자격 미달’ 검사를 가려내기 위해 지난 2004년 도입됐지만, 도입 10년이 지나도록 심사위원회를 통해 검사가 면직된 사례가 없는 등 중간 평가 제도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검찰 강압수사 증가?

 

최근 5년간 검찰 조사를 받던 도중 자살한 피의자나 참고인 등이 8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민 위원장(대전 유성구)이 제공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검찰 조사 도중 자살자는 ▲2010년 8명 ▲2011년 14명 ▲2012년 10명 ▲2013년 11명 ▲2014년 21명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6월까지 15명이 검찰 수사 중 목숨을 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를 받다 자살한 피의자는 전체 79명 중 19명(24%)으로 가장 많았다. 충청권에서는 ▲대전지검 4명 ▲대전고검 1명 ▲천안지청 2명 ▲홍성지청 2명 ▲청주지검 2명 ▲충주지청 1명 등 12명이었다.

이와 관련해 인권위원회가 제출한 최근 3년간 검찰 관련 인권침해 진정사건 접수 및 처리 현황을 보면 검찰 관련 인권 침해가 2012년 147건에서 2014년 190건으로 30%가량 늘어났다. 법무부와 검찰 관련 차별 진정사건도 2012년 8건에서 지난해 15건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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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