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째" 악질 체납자 백태

얼굴에 철판 깔고 ‘맘대로 해’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아궁이에서 무려 6억원의 돈뭉치가 쏟아져 나오는가 하면 호화주택에서는 고급 와인만 1200여 개가 방에 가득 쌓여 있다. 누구 것이었을까. 세금 내지 않고 버텨오던 체납자들이 숨긴 돈이다. 상습·고액 체납자들의 재산은닉 백태를 공개한다. 

국세청은 고액·상습 체납자 2226명(개인 1526명과 법인 700곳)의 명단을 인터넷 홈페이지(www.nts.go.kr)에 새로 공개했다고 지난달 25일 밝혔다. 국세청은 5억원 이상의 국세를 체납 이후 1년 넘게 내지 않고 버티고 있는 개인이나 법인의 명단을 매년 공개하고 있다.

국세정보공개심의위원회는 지난 4월 명단공개 예정자에 대해 사전 안내 후 6개월 이상 소명기회를 부여했다. 명단공개 예정자 중 납부 등을 통해 체납된 국세가 5억원 미만이거나 체납액의 30% 이상을 납부한 경우, 불복청구 중인 경우 등 요건에 해당하는 자는 공개대상에서 제외했다. 고액·상습체납자 2226명의 명단공개 대상을 확정했다.

3조7000억 미납
개인최고 276억

고액·상습체납자 명단공개제도는 2004년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직접징수 효과뿐만 아니라 체납자의 정보 공개를 통해 체납발생을 억제하는 등 조세정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에 추가된 체납자들이 내지 않은 세금은 총 3조7832억원이다. 1명 또는 법인 1곳 당 평균 17억원의 세금을 체납한 셈이다. 개인 최고액은 276억원, 법인 최고액은 490억원으로 드러났다. 


고액·상습체납자의 연령은 주로 40∼50대이며, 지역은 수도권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명단공개자 1526명 가운데 40∼50대가 62.6%, 체납액의 64.0%를 차지했다. 명단공개자(개인)의 주소지 분포는 수도권(서울·인천·경기)이 공개인원의 62.6%, 체납액의 61.5%에 달했다.

또 명단공개자(개인)의 체납국세 규모는 5억∼30억원 구간이 공개인원의 91.5%를, 체납액의 66.5%로 집계됐다. 법인 명단공개자 700개 업체의 경우 소재지별 분포는 개인과 마찬가지로 수도권 지역이 전체의 65.6%, 체납액의 67.2%로 비중이 높았다. 

명단공개자(법인)의 체납 국세 규모는 5억∼30억원 구간이 공개인원의 88.5%, 체납액의 55.6%를 차지했다. 업종별 분포는 도소매·건설 업종이 공개인원의 53.6%, 체납액의 56.2%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새로 공개된 고액·상습 체납자 1위는 전투기 정비업체 ㈜블루니어의 박기성 전 대표(54)로 276억원의 세금을 안 냈다. 공군 부사관 출신인 박씨는 구입하지도 않은 부품으로 공군 전투기를 정비한 것처럼 서류를 가짜로 만들어 243억원의 정부 예산을 가로챈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된 바 있다. 

고액·상습 체납자 2226명 명단 공개
‘죽어도 세금 못내’ 체납액 3조 육박

박씨는 지난 7월 1심에서 징역 6년에 벌금 30억원을 선고받았으며 조세포탈 혐의로 다시 기소돼 이달 초 징역 2년 6개월에 벌금 47억원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박씨의 개인체납 세금과 별도로 블루니어는 법인명의 세금 179억원도 내지 않아 법인 고액·상습 체납자 순위 7위에 올랐다. 

이어 오메가게임랜드의 신성엽 씨(225억원), 대동인삼영농조합의 김용태 전 대표(219억원)가 개인 체납순위 2, 3위에 이름을 올렸다. 2008년 1월 회삿돈 157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종민 퓨쳐비전㈜ 전 대표(49)는 149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아 10위에 올랐다. 


법인 중에서는 CNH케미칼(대표 박수목)이 490억원을 체납해 1위에 올랐고, SSCP(대표 오정현)가 체납액 403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연 매출액이 1730억원이던 SSCP는 2012년 9월 12억원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부도 처리된 뒤 코스닥에서 상장 폐지된 회사다. 

일각에서 부도 이후 오 대표가 조세피난처 국가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830억원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를 통해 오 대표에게 수백억원의 세금을 추징하고 조세포탈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사실이 지난해 국정감사를 통해 알려졌다.

국세청은 올해 9월 ‘현장수색 집중기간’으로 정해 재산을 빼돌려 호화생활을 하는 고액 체납자들을 추적했다. 상습 체납자들이 재산을 은닉하는 방법은 가지각색이었다. 국세청이 현장 수색을 하자 은닉한 재산을 아궁이에 숨겨 놓기도 했다. 양도소득세 9억여원을 내지 않은 서모씨의 재산을 찾기 위해서 국세청이 현장 수색에 나섰다.

서씨는 부동산 경매로 배당받은 수억원의 자금을 세탁해 집안 어딘가에 현금으로 숨겨놓은 상태였다. 최근 부동산 매매로 거액의 양도차익을 챙긴 서씨가 국세청 감시망에 포착됐다. 양도소득세를 내야 했지만, 서씨는 돈이 없다며 세금을 체납한 뒤 행방마저 감췄다. 국세청은 탐문 끝에 그가 부인 명의로 마련한 경기도의 호화 전원주택에 은거하고 있다는 정보를 확보했다.

가마솥 아궁이에
숨긴 현금 6억원

지난달 초 국세청 조사반원이 그가 숨어 지내던 전원주택으로 들이닥쳤다. 서씨는 국세청 직원들에게 “세금을 낼 돈이 없다”고 버텼다. 완강하게 서씨는 문을 걸어 잠그며 수색을 거부했다. 그러자 국세청 직원은 경찰의 협조를 받아 개문 후 주택 내·외부를 수색했다.

당황한 서씨는 빼돌려놨던 현금을 가마솥 아궁이에 급하게 숨겼다. 국세청 조사반원은 경찰과 함께 집 안 곳곳을 수색했지만 현금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한 직원이 우연히 가마솥 아궁이 속에 놓인 검은색 가방을 발견했다. 잿더미 속에서 끄집어낸 검은 가죽가방 속에서 5만원권 등 한화 5억원, 100달러짜리 등 외화 1억원어치의 지폐뭉치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전체 액수가 자그마치 6억원에 달했다.

중개업체 대표 이모씨는 소득세 등 수백억원을 체납한 채 서울 성북동의 대저택에서 호화생활을 즐겼다. 국세청은 이씨가 미국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를 이용, 회사에서 빼돌린 돈으로 주택을 구입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외국법인 페이퍼 컴퍼니는 재산은닉을 목적으로 설립한 체납자 가족 명의의 유령회사였다.

유령 외국법인
호화주택 취득

국세청은 이런 사실을 확인한 뒤 주택처분금지가처분 및 소송을 제기해 놓고 즉시 현장을 찾았다.시가 80억원에 달하는 이 저택에서는 와인 저장고에 놓인 고급 와인 1200여병, 명품 가방 30개, 그림 2점, 골프채 2세트, 거북선 모양으로 된 금장식 등이 발견돼 압류·봉인조치됐다.

고미술품 감정·판매업자인 김모씨는 양도소득세를 줄여서 신고하는 수법을 써 93억원이 넘는 세금을 체납했다. 김씨는 고액체납이 발생하자 폐업 후 미술품들을 비밀장소에 은닉한 후, 차명으로 사업을 영위하며 타인명의로 임차한 고급 오피스텔에서 호화생활을 즐겼다.
 

미행과 탐문을 통해 김씨의 거주지, 미등록 사업장(미술품 은닉장소)의 위치 등을 확인한 후, 현장수색을 했다. 국세청은 김씨가 숨겨뒀던 고미술품 500여점을 압류했으며, 이중 값비싼 것들을 중심으로 1차 공매를 준비하고 있다.

수도권 경부고속도로 인근 한 골프장은 그린피를 현금 위주로 받아 매출을 속이는 방법으로 체납 처분을 회피해오다 국세청에 덜미를 잡혔다.

주주간의 이권 다툼으로 인해 경영이 어려움을 겪고 있던 골프장은 고액체납이 발생하자 카드매출 압류를 피하기 위해 현금 결제를 유도해 왔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국세청은 이렇게 받은 현금을 은행에 입금하지 않고 클럽하우스 내 사무실 금고에 보관, 운영비로 지출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기상천외 재산은닉 수법
국세청 잠입해 끝장추적

국세청은 골프장 이용객이 몰리는 토·일요일 후에 현금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월요일 업무시작 시간에 맞춰 사무실을 급습, 현장수색을 실시했다. 사무실에는 4개의 금고가 발견됐으며 캐디 사물함, 책상서랍 등에도 분산 보관 중이던 현금 2억원이 발견돼 체납 세금을 현금으로 거둬들였다.

국세청은 서울 강남의 여관건물을 매각한 뒤 양도소득세를 신고해 놓고 20억원을 체납한 조모씨가 지인 명의를 빌려 주택을 매수한 사실을 확인했다. 여관 양도대금 사용처를 조사한 결과 아들의 채무를 상환했다. 남은 대금으로 체납자가 거주하는 주택을 매수한 매수인에게 지급된 것을 확인됐다.

체납자와 주택매수인의 자금흐름 조사를 통하여 체납자가 지인(매수인)의 명의를 빌려 주택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매수자금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인에게 지급한 주택취득자금에 대해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하여 체납액 수억원을 징수했다.
 

허위근저당을 설정해 재산을 은닉한 체납자도 있다. 윤모씨는 제2차 납세의무자로 자신이 과점주주로 있던 법인에 대한 세무조사가 있을 것을 사전에 눈치 채고, 본인 소유의 부동산(3건)을 친인척 3인(형, 누나, 형수)의 명의로 각각 허위근저당을 설정했다. 친인척 3인에게 소유권을 이전하는 방법으로 체납처분을 회피했던 것.

타인 명의 빌려
숨긴 고가 물품

국세청은 윤씨에 대한 금융추적조사를 실시해 허위근저당임을 확인하고 곧바로 친인척 등 관련인들에 대한 범칙조사에 착수했다. 결국 윤씨는 허위근저당임을 시인하고 회피하려 했던 체납액 수십억원 전액을 납부할 수밖에 없었다.

심달훈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은 “앞으로도 고액·상습체납자의 은닉재산을 끝까지 추적하고, 악의적인 체납자는 형사고발하는 등 엄정하게 대처할 것”이라며 “성실 납세자가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체납자 공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또다시 고액·상습지방세 체납자 공개명단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19일 서울시의회 서윤기(새정치민주연합·관악2)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지방세 양도소득세분 4억1000만원(가산금 포함)을 아직 납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2월 검찰 추징금 환수팀이 3남 재남씨 명의의 한남동 빌딩이 전 전 대통령의 명의신탁 재산으로 보고 공매처분한 데 따라 발생한 3억8200만원의 지방소득세(양도소득세분)에 가산금을 더한 금액이다.

앞서 전 전 대통령은 2003년 자택인근의 경호동 건물 공매 처분 이후 발생된 지방세 양도소득세분 4400만원을 체납했다가 2013년 1만4500명의 지방세 고액·상습 체납자 명단에 포함된 바 있다.

지난해의 경우 검찰 추징금 환수팀이 고가 미술품을 압류해 공매처분하면서 체납자 명단에 이름이 빠졌다.

서 의원은 “자녀들의 재산은 어마어마한데 본인 재산이 29만원이라 징수를 못하는 실정이라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라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 강력한 징수활동을 전개해 달라”고 말했다. <창>


<기사 속 기사> 조세포탈범 27명 명단 공개
풀살롱 업주가 136억 탈세

국세청은 26일 조세포탈범 27명과 해외금융계좌 신고의무 위반자 1명의 인적사항 등을 국세청 홈페이지(www.nts.go.kr)를 통해 공개했다. 이번에 신원이 공개된 조세포탈범은 거짓 세금계산서를 수취하거나 장부를 파기하는 등 부정한 행위로 연간 5억원 이상 조세를 포탈한 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강인태(51)씨와 전종철(41)씨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유흥주점 ‘아프리카’를 운영하며 매출장부를 파기하는 등 수법으로 총 136억원에 이르는 세금을 포탈했다. 이들은 유흥주점 건물을 통째로 빌려 모텔까지 운영하는 ‘풀살롱’성매매 영업까지 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122억여원에 달하는 해외금융계좌를 신고하지 않은 박종호(43·기업 대표)씨의 이름도 이번에 함께 공개됐다. 국세청은 또 50억원이 넘는 해외금융계좌 금액을 신고하지 않다가 적발될 경우 과태료 부과 및 탈루세금 추징뿐만 아니라 형사고발하기로 했다.

다만 국세청은 내년 3월 말까지 최대한 관용을 베풀기로 했다. 미신고 역외소득 등을 재산 자진신고 기간 안에 신고해올 경우 명단공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법령에 따라 조세포탈범 및 해외계좌 신고의무 위반자의 명단을 공개해 세법의 실효성을 높이고 국민의 건전한 납세의식을 확립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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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