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호원재개발조합 비리 의혹 1탄> 사문서위조 사건 전말

너그러운 경찰…증거·증인 있어도 무혐의?

[일요시사 경제2팀] 이창근 기자 =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 아닙니까!” 안양시 호원지구재개발조합에서 벌어진 사문서 위조 사건에 대한 동안경찰서의 수사결과를 지켜본 지역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조합장선거에 사용될 투표용지 조작 사전모의와 준비과정이 담긴 녹취파일이 존재하고, 행사된 투표용지가 위조되었음을 확인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서는 물론 위조행위에 가담한 일원의 양심선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양시 동안경찰서는 ‘피고소인의 범죄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면서 불기소(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호계1동 주변 5만6000평의 호원지구는 2006년부터 최근까지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지역이다. 조합원만 1800명이 넘고, 재개발 후 입주세대가 4000세대에 육박할 정도로 대규모의 재개발 사업지다. 전체 사업비가 최소 7000억 규모다. 조합설립 인가는 2012년에 났고 현재는 사업시행 인가를 앞둔 상태다. 
 
선관위 간사 
양심선언에 들통
 
문제가 된 사건의 발단은 2012년 4월28일로 예정된 조합원 총회 즈음에 발생했다. 총회의 핵심이슈는 조합장, 감사, 이사를 뽑기 위한 임원 선출에 관한 건. 조합장 후보로는 장금덕씨를 포함한 3명이 나섰다. 세 후보는 나름 치열한 득표전을 돌입했다. 총회 당일 직접 투표하겠다는 조합원과 총회에는 참석할 수 없지만 선관위에서 발행한 투표용지에 기표하는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하겠다는 조합원을 상대로 유세를 펼친 것이다.
 
세 후보 중 그래도 당선이 유력해 보였던 후보는 1번 김 모 후보와 2번 장금덕 후보. 임대업을 하고 있던 김 후보는 지역 토박이라는 장점이 있고, 장 후보는 재개발 동의서 작업 당시부터 조합원들과 접촉이 많았던 점, 지역에서 오랜 시간 봉사활동을 해온 것을 바탕으로 한 두터운 지지층이 강점이었다.
 

호계동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했던 또 다른 김모 후보는 정비업체 M사가 밀고 있다는 것이 강점인 반면 여성 후보라는 부분이 약점으로 꼽혔다. 1800명에 이르는 각양각색의 조합원들과 소주 잔을 기울이며 이해관계를 조율하려면 아무래도 남자 조합장이 나을 것이라는 기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1835명의 조합원 중 1023명의 의사가 표현된 투표결과 가장 약세로 평가됐던 여성인 3번 후보가 최다득표자로 나온 것이다. 2위는 장금덕 후보, 3위는 남성 김 후보 순이다.
 
1, 2위 간 득표 차는 불과 16표. 일부 조합원들 입에서 “뭔가 잘못되지 않고서는 절대 이런 (투표)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명백한 증거가 없는 한 투표결과를 뒤집을 수 없었다. 결국 새 조합장으로 여성인 김씨가 취임을 했고, 투표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던 장씨는 본업인 환경관련 사업으로 복귀를 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지 3개월이 지난 2012년 6월 경 선관위 간사를 맡았던 김모씨가 장씨를 찾아왔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 놓았다. 총회 전날인 4월27일부터 총회 당일 새벽까지 특정 후보를 조합장으로 만들기 위한 사문서 위조 즉, 투표용지에 대한 조작이 있었고 그 자신도 이에 가담했다는 내용이었다. 단순한 양심고백만이 아니었다. 사건 당일 문서위조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녹취파일을 장금덕 후보에게 주고 간 것이다. 
 
조합장선거 사용될 투표용지 조작
모의 담긴 녹취파일 있어도 불기소
 
“그 때 당선되었어야 할 조합장은 당신이었네. 미안해. 이 문제로 나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감수할게.”

선관위 간사가 남기고 간 파일을 들어 본 장씨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충격을 받았다. “2012년 4월27일 녹취 시작합니다”로 시작된 파일에는 “투표용지 꺼내서 100개를 만들고….” “컬러 출력하면 티가 난다” “별로 안 난다” 등등 투표 위조과정이 실감나게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00 것을(으로) 속여야 할 것이 40개, 23개, 17개….”라는 대목에선  기가 막혔다. 
 
목소리만으로도 누군지 알 수 있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정비업체인 M사의 윤모 상무와 협력업체의 안모 이사, M사의 직원, 총회대행업체 D사의 임모 대표, 우모 이사가 등장했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녹취한 선관위 간사 김씨가 포함되어 있었다. 
 
 
4월26일 새벽 1시부터 4월27일 오후 6시까지 위조를 모의하고 준비한 6명의 동선이 고스란히 드러난 녹취파일을 통해 16표 차 패배의 원인을 알게 된 장씨는 곧바로 지인들과 상의를 했다. 그리고 증거를 모았다. 녹취파일에 나온 조작과정을 염두에 두고 총회 당시 사용된 투표용지를 검수한 것이다. 그리고 검수과정에서 위조된 것으로 보이는 투표용지 130장을 추려냈다. 
 
투표조작으로 
당선된 것 무효 
 
위조에 참여한 간사의 증언, 위조과정이 담긴 녹취파일, 위조된 증거물(투표용지) 등을 챙겨서 조합원 김삼수 외 4명이 1차 고발하고, 이어 장금덕씨가 2차로 고소했다. 그러나 고소장을 접수한 안양 동안경찰서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2013년 10월에 접수한 고소사건을 별다른 이유 없이 해를 넘기더니 2014년 2월에는 담당형사마저 교체했다.
 
다행히 후임 수사관은 나름 열의가 있었다. 고소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주택조합이 보관한 투표용지를 일일이 조사한 다음 위조가 의심되는 투표용지 130장 중 82장을 추려냈다. 그리고 그것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감정을 의뢰했다. 
 
4개월 정도 지난 뒤, 국과수의 감정결과가 나왔다. 82건 중 43건이 위조됐다는 것. 1, 2위의 표차가 16표 차이였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위조된 43건의 득표를 힘입은 현 조합장의 당선은 무효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했다. 국과수의 결과는 조합장을 다시 뽑아야 한다는 지역여론 형성의 배경이 됐다. 
 
일부 위조는 
범죄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발생했다. 경기안양 동안경찰서가 대표 고소인에게 보낸 사건처리결과 통지문에서 ‘불기소(혐의 없음)’ 의견을 밝혀온 것이다. 그 통지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문서 82건의 위조여부에 대하여, 일부 43건은 위조(넘버링 숫자 형태, 인쇄물 색재류, 선관위 간사의 인장과 다름)된 것으로 감정결과를 회신 받았고, 나머지 39건은 위조사실이 없는 것으로 회신 받았음.’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 후 경찰 측 의견 부분이 문제가 됐다.
 
‘피의자들(고소된 6명)이 전체 82건을 위조했다는 범죄혐의를 인정하기 부족하므로 피의자들에 대하여 각 불기소(혐의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기록을 인계하였음.’말인즉, 고소인들은 82건이 위조됐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43건만 위조됐고, 위조되지 않은 것도 39건이나 있으므로 ‘82건이 위조됐다’는 범죄혐의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폭력배에게 82대 얻어맞았다고 주장하지만 멍 자국이 43개 밖에 없으니 고소인은 폭행당한 것이 아니다는 궤변과 똑같았다. 통지서를 읽어 본 장씨 일행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초 고소의 이유가 ‘82건이 위조됐다’는 것이 포인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전에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문서위조가 모의됐고, 실제로 행해졌으며, 조작과정이 담긴 녹취파일과 조작행위에 가담했던 사람의 양심선언이 있는 만큼 사문서를 위조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한 사람들을 처벌해 달라고 고소한 것이다. 82건 중 몇 퍼센트가 조작됐는지를 따져달라는 게 아닌 것이다. 
 
원래 사문서 위조는 한 건만 확인되어도 큰 문제가 되는 사안이다. 법정형은 5년 이하 징역에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는 중범죄다. 게다가 위조된 문서를 실제로 활용했다면 가중 처벌을 받는다. 따라서 위조가 43건이나 행해졌다면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동안경찰서 수사과가 ‘82건이 전부 다 위조로 판명된 것이 아니다’는 핑계로 ‘혐의 없다’고 판단한 것은 문서를 위조한 일당의 손에 면죄부를 쥐어 준 것과 다름없었다.
 
당연히 경찰조직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동기와 정황만이 아니라 증인과 증거까지 다 갖다 준 사건까지도 불기소를 내리는 경찰이라면 다른 사건은 말할 것도 없다는 비난이 잇따른 것이다. 사건의 향방을 주목해 온 조합원들 입에서 “엄정한 수사? 지나가던 소가 웃겠다”는 비아냥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조합원들은 “일개 담당형사가 혼자 그런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면서 결재선상에 있는 수사과장과 경찰서장의 압력행사를 의심하고 있다. 고소를 당한 M사와 D사 경영진들이 막후에서 경찰 고위급들에게 로비를 벌인 것이 확실하다는 시각이다. 
 

국과수 감정서 무용지물
경찰 중립성 훼손 자충수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을 찾아가 만났지만 그는 “수사과장에게 이야기하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대신 사건과 관련된 수사과 한 간부가 “사문서가 위조됐다는 (국과수)결과가 나왔으면 누가 위조했는지를 수사해야지, 그것을 (모두 위조된 것이 아니므로)혐의 없다고 해서는 안 됐다”면서 수사의 미진함을 인정했다. 
 
문제의 소지가 있음을 인정한 경찰과는 달리 문서위조를 진두지휘한 정비업체 M사의 입장은 달랐다. M사의 윤모 대표는 “이미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 받은 사건”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취재를 회피한 것이다. 서류조작이 드러날 경우 호원지구 정비용역계약의 자동 파기는 물론이고 정비업체 면허 자체가 박탈될 수 있기 때문에 파장의 확산을 경계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무능한 거야?
부패한 거야?
 
그러나 정비업체 대표의 바람과는 달리 이 사건의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외려 더 커지는 모양새다. ‘경찰 조직은 믿을 게 못 된다’고 판단한 조합원들이 검찰 측에 전면 재수사를 탄원했고, 이를 검찰이 수용했기 때문이다. 
 
승리를 빼앗긴 무관의 조합장과 조합원, 재수사를 회피하고 싶은 정비업체, 민중의 지팡이에서 견찰(犬察)로 추락한 경찰조직. 똑같은 밤을 보내도 맞이할 여명은 다를 것이 분명해 보인다.  
 
<manchoice@ilyosisa.co.kr>
 

<미니인터뷰> 경찰수사 지적한 장금덕씨
“조합장은 조합원 위해 일해야”
 
“새 조합장이 취임하자마자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정비업체 간에 생긴 법적분쟁비용 30억원을 조합에서 보존해 준 일입니다. 그게 어떻게 조합 일입니까. 그런 일에 조합 돈을 사용한 것 자체가 배임이요, 횡령행위 아닌가요?”
 
안양호원지구 주택조합에서 벌어진 사문서 위조 사건에 대한 경찰의 황당 수사를 지적한 장금덕(54)씨의 일갈은 조합 집행부가 조합원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누가 조합장이 되든 모든 판단과 집행이 조합원의 이해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정비업체 M사와 D사의 분쟁비용 30억원을 시공사로부터 차입한 조합의 돈으로 지출해서는 안 됐다는 지적이다. 
 
“후원사 위해 조합 이익 훼손하면 현 조합장도 공범”
 
“시공사로부터 받은 돈은 차입금입니다. 나중에 조합원들이 다 분담해야 할 돈이죠. 그래서 책임감 있게 집행해야 합니다. 조합장은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 일하라고 뽑는 것이지 자기 좋은 사람 밀어주라고 만든 자리가 아니잖습니까?”
 
더구나 집행절차에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조합원의 경제적 부담을 주는 사안은 총회를 거쳐서 결정하도록 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이를 위반해서 자금을 집행했다는 것. 그러면서 조합이 시공사로부터 차입한 120억의 사용처에 대한 조합원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불과 1년 만에 120억 차입금 중 110억이 사용되고 지금은 불과 10억 남짓 남았다고 합니다. 조합 돈을 그렇게 운용하면 안 되죠. 사업 후 정산할 수 있는 항목까지 집행해서야 되겠습니까. 자기 돈 같으면 그렇게 쓸까요?”
 
현 집행부의 반성과 태도 개선을 요구하지 않으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조합원이라는 것이다. 사문서를 위조해서라도 원하는 조합장을 뽑으려 했던 업체들 장단에 놀아난다면 현 조합장도 공범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제대로 된 집행부를 구축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재개발 사업을 재대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1800여 조합원 모두가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저도 제 역할을 할 것이고요.”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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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