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친일재산 환수' 이우영 돈 228억 향방은?

나라 팔아먹고 아직도 ‘떵떵’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과거의 범죄를 반성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범죄를 용인하는 것이다.”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토 카뮈가 말했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미특위) 강제 해산 이후 제대로 매듭짓지 못했던 친일재산 국고 귀속 작업이 올해 완료될 전망이다. 현재 관련 소송은 단 2건만 남았다. 2건의 주인은 친일파 이해승의 손자인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이 낸 소송이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이 회장의 228억의 향방이 결정된다.  



이해승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는 친일파이다. 그는 사도세자의 후손으로 고종과 인척 관계로 조선 왕족이다. 한일강제병합 직후 일본에 협력한 대가로 매국공채 16만2000원(현재가치 20억원)을 받았다. 태평양 전쟁 기간 총독부 외곽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과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조선귀족회 회장으로 이해승은 일제 육·해군에 각각 1만원씩 국방헌금을 전달했다. 해방 후 반미특위는 이해승을 체포했지만, 반미특위가 해체 돼서 풀려났다. 이해승은 6·25 전쟁 중 납북돼 행방불명됐고, 1957년 실종 선고가 내려졌다. 

땅 받아 호텔사업

이해승의 장남은 1943년 사망한 상태여서 손자인 이우영 회장이 재산을 상속받았다. 이 회장은 1957년부터 옛 황실재산총국에 소송을 제기해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신탁돼 있던 재산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까지 신탁재산의 75%인 땅 890만㎡를 되 찾았다. 이 중 절반가량인 435만㎡를 매각했다. 
 
1988년 이 회장은 반환받은 토지 중 전계대원군의 처 용성부대부인의 묘가 있었던 서울 홍은동 땅에 스위스그랜드호텔을 지었다. 이후 이 호텔은 그랜드힐튼호텔로 바뀐다. 특1급인 이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곳은 동원아이엔씨로 이 회장의 아들이 대표로 있다.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재산조사위)가 발족하면서 친일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 회장의 그랜드힐튼호텔부지와 성북동 자택 등이 그 대상으로 결정 돼 몰수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재산조사위는 2007년 11월 이 회장이 소유한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 임야 118만㎡를 비롯해 경기도 평택시, 충북, 서울 은평구 땅 192만여㎡를 친일재산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시가로 320억원에 달하는 땅이었다. 재산조사위는 포천시 설운동 임야와 서울 은평구 토지 등 185만㎡(시가 228억원에 상당)에 대해서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재산조사위는 140만8000㎡의 땅은 이해승이 1910년~1932년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얻은 땅이므로 국가에 귀속돼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 회장은 ‘할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이 친일행각으로 얻은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2008년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들을 고용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전이 시작됐다.
 
이 회장은 조부의 친일 행위를 인정하지만, “이해승은 대한제국 황실의 종친이라는 이유로 후작 작위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제는 식민 지배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조선왕실 종친들을 회유하고 포섭했다. 이 회장은 왕족인 이해승도 포섭 대상이었으며, 작위를 거부하지 못했을 뿐 친일 행위를 하지는 않았다는 논리다. 또 이해승이 일제에게 받은 땅은 협력한 대가가 아니라 ‘선대로부터 상속받은 땅’이라고 주장했다. 
 
이 회장이 제기한 첫 소송에서 재판부는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항소한 이 회장에 대해 서울고등법원 2심 재판부는 “국가귀속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1심을 뒤집는다. 재판부는 이해승이 한일합병에 가담했다는 증거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해승이 일제의 한일합병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고, 한일합병 이후에는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일제의 식민 통치에 협력했다는 데 대한 역사적·도덕적 비난은 별개의 문제”라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같은 소송의 다른 하급심 소송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왔다. 판결은 5개월 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 회장은 첫 소송에서 320억원 상당의 땅을 지켜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은 한일병합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자를 재산 귀속 대상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 회장 측은 이를 이용해 ‘한일병합의 공으로’작위를 받은 것은 아니므로 재산 귀속 대상자가 아니라고 주장해 승소했다.

 
대법원의 판결은 국회에서 논란이 됐다. 이해승의 한일합병 이후 친일 행각이 인정되는데도 후손이 상속받은 친일 재산을 환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특별법의 문구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국회는 2011년 5월 새누리당 김을동 의원의 대표발의로 서둘러 특별법을 개정했다. ‘한일합병의 공으로’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한일합병 가담 여부와 상관없이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계승한 자’라면 모두 친일 재산 국가 귀속 대상이 됐다. 국회는 당시 ‘한일합병의 공’ 이라는 범위가 분명하지 않고 추상적인 문구이며, 친일 공적이 없는 사람에게 작위를 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미 확정된 소송은 어쩔 수 없더라도 나머지 소송을 의식한 법 개정이었다. 
 
이 회장은 개정된 특별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겠다고 나섰다. 그는 2011년 12월 진행 중이던 관련 소송 담당 재판부에 위헌법률 심판 제청을 했다. 이 회장은 “친일행위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기만 해도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된다”며 개정 특별법의 처분이 과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정인을 겨냥한 법 개정이 평등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재산환수법 10년 만에 마무리 눈앞
친일파 왕족 이해승 유산판결 주목
 
하지만 헌재는 특별법 개정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계승한 자’는 일제의 반민족적 정책의 결정과 집행에 깊이 관여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봤다. 또 일제의 귀족이 됐다는 의미를 짚었다. 헌재는 “일제의 귀족은 일제 강점기 초기에 형성된 친일 세력의 최정점에 있는 상징적 존재”라고 평가했다.
 
지위 자체만으로 친일 세력의 형성과 확대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일제 강점 체제의 유지·강화에 협력해 조선사회에 심대한 영향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일제의 작위를 반납하거나 거부한 사람들은 예외로 인정하는 조항이 있다는 점도 참작됐다. 
 
정부는 헌재의 합헌 결정으로 이 회장과 관련된 모든 소송에 승소했다. 2013년 정부는 국가 귀속 절차까지 마친 경기도 포천시 설운동 땅 4만여㎡에 대해 이 회장이 제기한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 항소심 소송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승소했다. 이해승을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지정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재판과 서울 은평구 토지 12필지에 대한 소송에서도 정부가 이겼다. 
 
오히려 정부는 이 회장을 상대로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팔아 번 돈 228억원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2월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재판부는 “개정 특별법에 따라 이해승은 친일반민족 행위자에 해당한다”며 “해당 토지도 일제의 식민지 토지정비 정책에 편승해 받은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 회장 측은 소송에 불복, 패소한 모든 사건을 상급법원에 상소했다.

최종 2건만 남아

지난 1일 법무부는 “2006년 친일재산조사위원회의 결정으로 국고 귀속이 결정된 토지에 대한 소송 96건 중 94건이 상고심까지 확정됐고 2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라고 밝혔다. 이 2건은 모두 이 회장이 제기한 소송이다. 이 회장은 정부가 환수한 친일재산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낸 행정소송 1건과 국가가 이 회장을 상대로 친일재산 처분으로 인한 부당이득을 반환하라며 낸 국가소송 1건이다.
 
이들 사건은 모두 연내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선고될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현재 계류 중인 2건도 1·2심에서 정부 측 손을 들어줘 국고에 환수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친일재산 환수 현황

친일세력이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해 후손 등에게 넘긴 재산을 국가로 귀속시키는 사업이 착수 10년 만인 올해 모두 마무리될 전망이다. 이 사업의 법적 근거가 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 환수에 관한 특별법’이 2005년 시행된 이후 정부 차원의 조사 활동을 거쳐 친일 재산을 되찾기 위한 소송까지 대부분 완료됐다.  
 
소송은 3가지 종류다. 친일파의 재산을 후손이 처분해 얻은 부당한 이득을 되돌려받기 위해 정부가 소송 원고로 참여하는 국가소송이 96건 중 16건을 차지한다.
 
정부가 친일 재산을 국고로 돌려놓은 데 대해 후손 등이 불복해 낸 행정소송이 71건, 국고 환수 작업의 위헌성을 따지려고 제기한 헌법소송이 9건이다. 확정된 소송 94건 중 정부는 91건에서 이겨 전체 승소율 97%를 기록했다.
 
사건 유형별 승소율은 국가소송 100%(15건), 행정소송 96%(70건 중 67건), 헌법소송 100%(9건) 등이다. 정부가 패소한 것은 행정소송 3건에 불과했다. 문제의 재산이 친일행위의 대가였는지가 불분명하거나 친일행위자로 지목한 인물이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수여받은 사람인지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경우로 판단된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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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