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 몰린 홈플러스 막전막후

고객 호구 취급 “잘 되나 보자”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대형마트 홈플러스의 비리가 점입가경이다. 고객정보를 보험사에 팔아넘긴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착한 기업’간판을 달고 있는 홈플러스. 고객들은 철저히 속았다.

 
지난 1일 개인정보범죄 정부합동수사단(단장 이정수 부장검사)은 회원정보를 불법 수집하고 보험사에 판매한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로 도성환(60) 사장과 김모 전 부사장 등 전·현직 홈플러스 임직원 6명 및 홈플러스 법인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회원정보를 받은 보험사 2곳의 관계자 2명도 함께 기소됐다. 
 
30억에 팔아먹어
임원 불구속 기소
 
합수단 조사에 따르면 도 사장 등 홈플러스 임직원들은 2011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11차례 경품행사에 응모한 총 712만 건을 보험사 7곳에 팔아 고객정보 건당 1980원으로 148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홈플러스 쪽은 다른 방식으로도 확보한 고객 개인정보 1694만건도 보험사 2곳에 팔아 83억원을 챙긴 정황을 포착했다. 홈플러스는 보험서비스팀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개인정보 장사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합수단이 밝힌 홈플러스의 개인정보 불법 수집·유출 사건 수사 결과를 보면 ‘홈플러스 보험서비스팀’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서비스팀은 홈플러스가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만든 부서다. 7명으로 구성됐으며 최근에는 9명까지 인원이 늘었다. 외형상 보험 업무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매출의 80∼90%는 고객들로부터 불법적으로 얻은 신상정보를 보험회사에 판매해서 얻는 수익이었다. 보험서비스팀은 매년 수익목표를 100억∼200억원씩 세웠다. 7∼9명이 이 같은 수익을 거두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합동수사단의 수사도 이 부분에 주목해 진행됐다.
 

조사결과 경품행사는 외견상 고객 사은행사였지만 사실상 응모 고객의 개인정보를 빼내려는 목적이 깔렸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통상 경품행사에는 응모권에 성명과 연락처만 쓰면 되지만 홈플러스는 생년월일과 자녀 수, 부모 동거 여부까지 적어내도록 했고 이를 기입하지 않은 고객은 경품추첨에서 배제했다. 응모권 뒷면에 고객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보험사를 기재했지만, 1㎜ 글씨로 적어놔 고객 대부분이 이를 알지 못했다. 개인정보가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정보제공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고객들의 분노가 터지는 대목이다.
 
고객 개인정보 712만건 불법매매
경품 미끼로 수집해 건당 1980원
 
지난해 경품사기 사건이 드러나면서 직원들을 경품사기에 동원했다는 홈플러스 노조의 증언도 나오기도 했다. 당시 홈플러스 노조가 공개한 자료에는 홈플러스가 본사 차원에서 응모권 실적을 올리기 위해 지침을 내리고 관리, 응모권 실적 올리기를 직원들에게 강요하는 방식으로 경품 행사를 진행해왔다는 정황이 담겨있다. 말하자면 부당이익을 챙기기 위해 직원까지 사기에 가담하게 만들었다는 말이 된다.
 
합수단은 홈플러스가 개인정보를 팔아 얻은 수익을 추징하고, 대형 유통업체 등의 개인정보 장사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라이나생명과 신한생명이 홈플러스가 개인정보를 판매한 보험사로 조사됐다.
 
이번 사건에 대해 홈플러스는 두루뭉술한 사과문과 진정성 없는 조치로 또 한번 고객들의 공분을 샀다. 일단 합수단은 국민의 절반에 해당하는 2400만건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팔아넘긴 조직적인 범죄 행위라고 판단하고 있다. 
 
합수단의 발표가 있고 하루 뒤 홈플러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사과문은 첫 화면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홈페이지 맨 하단 왼쪽 아래에 공지사항 게시판을 클릭하고 들어가야만, ‘경품행사 건과 관련하여 고객님께 깊이 사과드립니다’라는 문구의 두루뭉술한 사과문을 볼 수 있게 꼼수까지 썼다. 더 나아가 홈플러스는 뻔뻔한 태도까지 보였다. 합수단의 발표가 있고 난 뒤 “이번 검찰의 수사결과를 통해 밝혀진 사항에 대해 철저히 개선토록 하겠다”며 표면적으로는 사과 태도를 보였다.
 

두루뭉술 사과
집단소송 추진 
 
그러면서도 “다만 법령 및 업계 보편적 기준에 부합하는 문구로 고객 동의를 받은 부분과 업계에서 유사하게 진행하는 마케팅 활동을 범죄 행위로 보는 부분에 대해 재판과정을 통해 성실히 소명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요약하면 ‘일단 사과는 하겠지만, 잘잘못은 법정에서 가리겠다’는 뜻이다.
 
홈플러스의 이런 파렴치한 사과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경품 사기와 정보 유출 사건이 처음 터질 당시에도 ‘직원들의 개인 비리’라고 선을 그었다. ‘회사 차원에서 관여한 바 없고 회사 임원들도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고객들에게 경품 상품을 미지급한 것에 대해서도  "3주 동안 지속적 개별연락을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경품을 지급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한 경품행사 관련자는 (홈플러스가) 행사비용을 줄이기 위해 당첨자에게 적극적인 연락을 취하지 않는다며 궁색한 변명을 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로 소비자단체들은 고객 개인정보를 불법 매매한 홈플러스를 상대로 불매 운동에 나선다. 4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 10개 소비자단체는 성명을 통해 “비도덕적인 사태를 일으킨 홈플러스에 대해 불매운동으로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며 “소비자의 권리 침해 및 개인정보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진행을 검토 중이며 향후 공동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홈플러스의 개인정보 불법 매매에 대해 정부 당국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며, 홈플러스는 즉각적으로 불법 매매한 피해자 및 판매 정보내역, 유출 시점, 판매 보험사 등에 대한 공개와 함께 대국민 사과와 조속한 피해배상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불매 운동이 확산될 전망이다. 
 
지난해도 홈플러스는 8∼10월 3개월 매출이 이전 3개월(5∼7월) 대비 2∼3% 정도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온라인 회원 가입률은 6% 정도 하락하고, 회원 탈퇴율은 12% 정도 늘었다. 소비자가 불만을 토로하는 ‘고객의 소리’ 등록 건수는 올 8월 한 달 동안 전달보다 65% 증가했다. 이런 타격의 원인은 끊이질 않는 사건 사고로 인한 이미지 악화를 꼽을 수 있다. 
 
나아가 홈플러스 퇴출을 주장하는 여론도 적지 않다. 경실련(경제정의실천연합)은 3일 홈플러스가 소비자를 기만해 불법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해 판매했다고 질타하면서 홈플러스 같은 기업을 퇴출시킬 수 있는 ‘집단소송제’ 도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대표 김성훈)는 이날 논평을 통해 “홈플러스 사태는 <경품이벤트를 가장하여 ‘고의로’ 개인정보를 불법 취득했다는 점><해킹에 의한 유출이 아니라 ‘부당이득을 위한 판매목적’으로 유출했다는 점><개인정보를 거래한 시기가 지난해 카드사 및 KT의 개인정보유출 사태로 온 국민이 개인정보유출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고 있던 시기와 일부 동일하다는 점> 등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다”면서 “따라서 소비자를 기만해 불법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해 판매한 홈플러스뿐만 아니라 이를 불법적으로 구매한 보험회사까지 일벌백계해야 할 필요성이 높다”고 엄중처벌을 촉구했다.
 
지난해부터 펑펑
날개없는 추락
 
정치권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일 대형 유통사인 홈플러스가 경품행사 등을 통해 입수한 고객 개인정보를 여러 보험사에 불법적으로 팔아넘겨 막대한 수익을 챙긴 사실이 드러난 것과 관련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책 마련을 촉구했다.
 
새정치연합 박완주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서면 브리핑에서 “골목상권 죽이기, 갑질횡포가 만연하다는 지적을 받는 대형마트에서 고객의 개인정보까지 팔아치웠다는 수사결과가 발표됐다”며 “홈플러스가 경품행사 하겠다며 응모한 고객정보를 고스란히 보험사에 넘기고 1건당 1980원씩 받아 챙겼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내 정보가 1980원에 보험회사에 팔려가고 그 돈은 대형마트가 챙기는 줄 알았다면 경품에 응모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런 행위를 한 홈플러스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면서 “홈플러스는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박근혜정부는 이와 같은 범죄행위 재발을 위한 제도개선책 또한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사법당국은 이 같은 범죄행위를 명명백백 밝혀야 할 것이고, 타사에서도 이런 불법행위가 없었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새정치연합 김진욱 부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홈플러스의 보험서비스팀이 하는 주된 일이 경품행사에 응모한 일반인과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판매하는 것이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고객정보를 편법으로 모으고, 이를 불법으로 팔아넘겨 온 것이 업계의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용납될 수는 없고, 용서되어서도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홈플러스가 고객을 속이고 불법으로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판매사업을 한 것은 고객을 속인 행위이고, 개인정보 보호에 앞장서야 할 기업이 고객정보를 팔아넘기는 데 앞장선 대표적인 정보보호불감증의 예”라며 “검찰의 이런 봐주기 혹은 솜방망이 처벌은 고객의 피해에 대한 소극적 대처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범죄에 대한 일벌백계는 고사하고, 또 다른 범죄를 방조한다는 비판을 자초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검찰은 파렴치하고 비도덕적인 홈플러스 대표 등을 구속하지 않고 봐주기식 솜방망이 처벌을 한 명확한 이유를 밝혀야 할 것”이라며 구속 수사를 촉구했다.
 
고객개인정보 유출 문제는 끊임없이 기업에 의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개인정보보호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각종 컴퓨터 범죄와 개인의 사생활 침해 등 정보화 사회의 역기능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로서 원래의 명칭은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이다. 
 

정치권 안팎 비난 봇물
소비자 불매운동 확산
 
국가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 등 공공기관은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를 본래의 목적 외로 이용하거나 제공할 수 없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또한, 부당하게 개인정보를 제공받아 사용한 자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형 처벌을 받는다.
 
우선 개인정보보호는 근본적으로 정보주체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철저히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은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어떻게, 어느 범위까지 타인에게 전달되며 이용될 수 있는지를 그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때문에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행정청의 위법 혹은 부당한 처분이나 부작위로 인해 권리 또는 이익의 침해를 받았다면 행정심판을 청구하거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권리침해가 다수 정보주체에게 같다거나 비슷한 유형으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분쟁조정위원회에 집단분쟁조정을 의뢰하거나 신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정보유출로 인한 집단소송은 손해배상 보상금액이 상대적으로 적고, 소송절차 등이 복잡해 피해자들이 직접 소송에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2012년 KT 고객 피해자 2만8000명은 개인정보유출에 대한 책임으로 KT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냈다. 이들 피해자 2만8000명은 각각 소송단을 구성해 KT를 상대로 6건의 소송을 냈는데, 2012년 8월 피해자 대부분이 해당된 5건 병합 사건에서 1인당 10만원씩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이진화 판사는 피해자 100명이 KT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한 사람당 10만원씩 모두 1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이 판사는 “KT가 피해자들의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면서 “당사자들이 스팸 메시지 등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어 정신적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KT는 고의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 고객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홈플러스 사태는 의도적으로 고객정보를 불법 매매했기 때문에 보상 및 관계자들은 형사 처벌까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실련은 정부와 국회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구제가 이루어지고, 사업자들에게는 부당행위에 대한 대규모 피해배상으로 기업이 존폐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도 조속히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은 그 보상금액이 상대적으로 적고, 소송절차 등이 복잡해 피해자들이 직접 소송에 나서기 어렵다”면서 “이렇듯 기업에 형사적 책임 외에 민사적 책임 등 관련 책임을 온전히 묻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기업들의 안이한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집단소송제 도입의 시급성을 거듭 강조했다. 
 
“당장 수갑 채워”
구속 수사 촉구
 
취임 1년반 만에 4번의 국정감사 증인출석이라는 전례를 남겼던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이 이번에는 현역 유통업계 사장으로서 재판장에 나서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홈플러스가 경품을 미끼로 고객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보험사에 팔아 막대한 수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나면서 기업의 도덕성은 물론 도 사장의 경영능력 또한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다. 또한 홈플러스는 모기업 테스코의 분식회계, 매각설, 짝퉁 운동화 판매 등에 이어 경품추첨 비리, 고객정보 불법판매까지 사실로 드러나며 ‘도성환 체제’는 끝 모를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홈플러스 기막힌 돌려먹기
 
홈플러스는 당첨을 자체적으로 조작해, 당첨 고객들에게는 문자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지난 2011∼2013년 진행한 3차례의 경품 행사에서 시가 6200만원 상당의 1㎏짜리 순금막대(골드바), 아우디 A4(4470만원), BMW320d(4370만원), 뉴SM7(3100만원), K7(2935만원) 등의 경품 당첨자를 선배와 친구 등으로 조작한 뒤 수령한 경품을 팔아 약 2억1000만원을 나눠 가졌다. 
 
자신이 원하는 추첨 결과를 조작해 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당첨자가 당첨 사실을 알고 연락해 와도 다이아몬드 등 애초 내건 경품 대신 홈플러스 상품권 등을 주고 넘어간 경우도 잦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법 조작한 직원 2명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정모 과장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같은 팀 최모 대리에게는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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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