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 몰린 홈플러스 막전막후

고객 호구 취급 “잘 되나 보자”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대형마트 홈플러스의 비리가 점입가경이다. 고객정보를 보험사에 팔아넘긴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착한 기업’간판을 달고 있는 홈플러스. 고객들은 철저히 속았다.

 
지난 1일 개인정보범죄 정부합동수사단(단장 이정수 부장검사)은 회원정보를 불법 수집하고 보험사에 판매한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로 도성환(60) 사장과 김모 전 부사장 등 전·현직 홈플러스 임직원 6명 및 홈플러스 법인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회원정보를 받은 보험사 2곳의 관계자 2명도 함께 기소됐다. 
 
30억에 팔아먹어
임원 불구속 기소
 
합수단 조사에 따르면 도 사장 등 홈플러스 임직원들은 2011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11차례 경품행사에 응모한 총 712만 건을 보험사 7곳에 팔아 고객정보 건당 1980원으로 148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홈플러스 쪽은 다른 방식으로도 확보한 고객 개인정보 1694만건도 보험사 2곳에 팔아 83억원을 챙긴 정황을 포착했다. 홈플러스는 보험서비스팀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개인정보 장사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합수단이 밝힌 홈플러스의 개인정보 불법 수집·유출 사건 수사 결과를 보면 ‘홈플러스 보험서비스팀’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서비스팀은 홈플러스가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만든 부서다. 7명으로 구성됐으며 최근에는 9명까지 인원이 늘었다. 외형상 보험 업무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매출의 80∼90%는 고객들로부터 불법적으로 얻은 신상정보를 보험회사에 판매해서 얻는 수익이었다. 보험서비스팀은 매년 수익목표를 100억∼200억원씩 세웠다. 7∼9명이 이 같은 수익을 거두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합동수사단의 수사도 이 부분에 주목해 진행됐다.
 

조사결과 경품행사는 외견상 고객 사은행사였지만 사실상 응모 고객의 개인정보를 빼내려는 목적이 깔렸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통상 경품행사에는 응모권에 성명과 연락처만 쓰면 되지만 홈플러스는 생년월일과 자녀 수, 부모 동거 여부까지 적어내도록 했고 이를 기입하지 않은 고객은 경품추첨에서 배제했다. 응모권 뒷면에 고객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보험사를 기재했지만, 1㎜ 글씨로 적어놔 고객 대부분이 이를 알지 못했다. 개인정보가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정보제공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고객들의 분노가 터지는 대목이다.
 
고객 개인정보 712만건 불법매매
경품 미끼로 수집해 건당 1980원
 
지난해 경품사기 사건이 드러나면서 직원들을 경품사기에 동원했다는 홈플러스 노조의 증언도 나오기도 했다. 당시 홈플러스 노조가 공개한 자료에는 홈플러스가 본사 차원에서 응모권 실적을 올리기 위해 지침을 내리고 관리, 응모권 실적 올리기를 직원들에게 강요하는 방식으로 경품 행사를 진행해왔다는 정황이 담겨있다. 말하자면 부당이익을 챙기기 위해 직원까지 사기에 가담하게 만들었다는 말이 된다.
 
합수단은 홈플러스가 개인정보를 팔아 얻은 수익을 추징하고, 대형 유통업체 등의 개인정보 장사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라이나생명과 신한생명이 홈플러스가 개인정보를 판매한 보험사로 조사됐다.
 
이번 사건에 대해 홈플러스는 두루뭉술한 사과문과 진정성 없는 조치로 또 한번 고객들의 공분을 샀다. 일단 합수단은 국민의 절반에 해당하는 2400만건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팔아넘긴 조직적인 범죄 행위라고 판단하고 있다. 
 
합수단의 발표가 있고 하루 뒤 홈플러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사과문은 첫 화면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홈페이지 맨 하단 왼쪽 아래에 공지사항 게시판을 클릭하고 들어가야만, ‘경품행사 건과 관련하여 고객님께 깊이 사과드립니다’라는 문구의 두루뭉술한 사과문을 볼 수 있게 꼼수까지 썼다. 더 나아가 홈플러스는 뻔뻔한 태도까지 보였다. 합수단의 발표가 있고 난 뒤 “이번 검찰의 수사결과를 통해 밝혀진 사항에 대해 철저히 개선토록 하겠다”며 표면적으로는 사과 태도를 보였다.
 

두루뭉술 사과
집단소송 추진 
 
그러면서도 “다만 법령 및 업계 보편적 기준에 부합하는 문구로 고객 동의를 받은 부분과 업계에서 유사하게 진행하는 마케팅 활동을 범죄 행위로 보는 부분에 대해 재판과정을 통해 성실히 소명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요약하면 ‘일단 사과는 하겠지만, 잘잘못은 법정에서 가리겠다’는 뜻이다.
 
홈플러스의 이런 파렴치한 사과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경품 사기와 정보 유출 사건이 처음 터질 당시에도 ‘직원들의 개인 비리’라고 선을 그었다. ‘회사 차원에서 관여한 바 없고 회사 임원들도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고객들에게 경품 상품을 미지급한 것에 대해서도  "3주 동안 지속적 개별연락을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경품을 지급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한 경품행사 관련자는 (홈플러스가) 행사비용을 줄이기 위해 당첨자에게 적극적인 연락을 취하지 않는다며 궁색한 변명을 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로 소비자단체들은 고객 개인정보를 불법 매매한 홈플러스를 상대로 불매 운동에 나선다. 4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 10개 소비자단체는 성명을 통해 “비도덕적인 사태를 일으킨 홈플러스에 대해 불매운동으로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며 “소비자의 권리 침해 및 개인정보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진행을 검토 중이며 향후 공동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홈플러스의 개인정보 불법 매매에 대해 정부 당국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며, 홈플러스는 즉각적으로 불법 매매한 피해자 및 판매 정보내역, 유출 시점, 판매 보험사 등에 대한 공개와 함께 대국민 사과와 조속한 피해배상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불매 운동이 확산될 전망이다. 
 
지난해도 홈플러스는 8∼10월 3개월 매출이 이전 3개월(5∼7월) 대비 2∼3% 정도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온라인 회원 가입률은 6% 정도 하락하고, 회원 탈퇴율은 12% 정도 늘었다. 소비자가 불만을 토로하는 ‘고객의 소리’ 등록 건수는 올 8월 한 달 동안 전달보다 65% 증가했다. 이런 타격의 원인은 끊이질 않는 사건 사고로 인한 이미지 악화를 꼽을 수 있다. 
 
나아가 홈플러스 퇴출을 주장하는 여론도 적지 않다. 경실련(경제정의실천연합)은 3일 홈플러스가 소비자를 기만해 불법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해 판매했다고 질타하면서 홈플러스 같은 기업을 퇴출시킬 수 있는 ‘집단소송제’ 도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대표 김성훈)는 이날 논평을 통해 “홈플러스 사태는 <경품이벤트를 가장하여 ‘고의로’ 개인정보를 불법 취득했다는 점><해킹에 의한 유출이 아니라 ‘부당이득을 위한 판매목적’으로 유출했다는 점><개인정보를 거래한 시기가 지난해 카드사 및 KT의 개인정보유출 사태로 온 국민이 개인정보유출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고 있던 시기와 일부 동일하다는 점> 등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다”면서 “따라서 소비자를 기만해 불법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해 판매한 홈플러스뿐만 아니라 이를 불법적으로 구매한 보험회사까지 일벌백계해야 할 필요성이 높다”고 엄중처벌을 촉구했다.
 
지난해부터 펑펑
날개없는 추락
 
정치권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일 대형 유통사인 홈플러스가 경품행사 등을 통해 입수한 고객 개인정보를 여러 보험사에 불법적으로 팔아넘겨 막대한 수익을 챙긴 사실이 드러난 것과 관련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책 마련을 촉구했다.
 
새정치연합 박완주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서면 브리핑에서 “골목상권 죽이기, 갑질횡포가 만연하다는 지적을 받는 대형마트에서 고객의 개인정보까지 팔아치웠다는 수사결과가 발표됐다”며 “홈플러스가 경품행사 하겠다며 응모한 고객정보를 고스란히 보험사에 넘기고 1건당 1980원씩 받아 챙겼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내 정보가 1980원에 보험회사에 팔려가고 그 돈은 대형마트가 챙기는 줄 알았다면 경품에 응모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런 행위를 한 홈플러스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면서 “홈플러스는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박근혜정부는 이와 같은 범죄행위 재발을 위한 제도개선책 또한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사법당국은 이 같은 범죄행위를 명명백백 밝혀야 할 것이고, 타사에서도 이런 불법행위가 없었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새정치연합 김진욱 부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홈플러스의 보험서비스팀이 하는 주된 일이 경품행사에 응모한 일반인과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판매하는 것이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고객정보를 편법으로 모으고, 이를 불법으로 팔아넘겨 온 것이 업계의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용납될 수는 없고, 용서되어서도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홈플러스가 고객을 속이고 불법으로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판매사업을 한 것은 고객을 속인 행위이고, 개인정보 보호에 앞장서야 할 기업이 고객정보를 팔아넘기는 데 앞장선 대표적인 정보보호불감증의 예”라며 “검찰의 이런 봐주기 혹은 솜방망이 처벌은 고객의 피해에 대한 소극적 대처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범죄에 대한 일벌백계는 고사하고, 또 다른 범죄를 방조한다는 비판을 자초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검찰은 파렴치하고 비도덕적인 홈플러스 대표 등을 구속하지 않고 봐주기식 솜방망이 처벌을 한 명확한 이유를 밝혀야 할 것”이라며 구속 수사를 촉구했다.
 
고객개인정보 유출 문제는 끊임없이 기업에 의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개인정보보호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각종 컴퓨터 범죄와 개인의 사생활 침해 등 정보화 사회의 역기능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로서 원래의 명칭은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이다. 
 

정치권 안팎 비난 봇물
소비자 불매운동 확산
 
국가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 등 공공기관은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를 본래의 목적 외로 이용하거나 제공할 수 없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또한, 부당하게 개인정보를 제공받아 사용한 자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형 처벌을 받는다.
 
우선 개인정보보호는 근본적으로 정보주체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철저히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은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어떻게, 어느 범위까지 타인에게 전달되며 이용될 수 있는지를 그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때문에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행정청의 위법 혹은 부당한 처분이나 부작위로 인해 권리 또는 이익의 침해를 받았다면 행정심판을 청구하거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권리침해가 다수 정보주체에게 같다거나 비슷한 유형으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분쟁조정위원회에 집단분쟁조정을 의뢰하거나 신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정보유출로 인한 집단소송은 손해배상 보상금액이 상대적으로 적고, 소송절차 등이 복잡해 피해자들이 직접 소송에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2012년 KT 고객 피해자 2만8000명은 개인정보유출에 대한 책임으로 KT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냈다. 이들 피해자 2만8000명은 각각 소송단을 구성해 KT를 상대로 6건의 소송을 냈는데, 2012년 8월 피해자 대부분이 해당된 5건 병합 사건에서 1인당 10만원씩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이진화 판사는 피해자 100명이 KT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한 사람당 10만원씩 모두 1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이 판사는 “KT가 피해자들의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면서 “당사자들이 스팸 메시지 등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어 정신적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KT는 고의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 고객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홈플러스 사태는 의도적으로 고객정보를 불법 매매했기 때문에 보상 및 관계자들은 형사 처벌까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실련은 정부와 국회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구제가 이루어지고, 사업자들에게는 부당행위에 대한 대규모 피해배상으로 기업이 존폐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도 조속히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은 그 보상금액이 상대적으로 적고, 소송절차 등이 복잡해 피해자들이 직접 소송에 나서기 어렵다”면서 “이렇듯 기업에 형사적 책임 외에 민사적 책임 등 관련 책임을 온전히 묻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기업들의 안이한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집단소송제 도입의 시급성을 거듭 강조했다. 
 
“당장 수갑 채워”
구속 수사 촉구
 
취임 1년반 만에 4번의 국정감사 증인출석이라는 전례를 남겼던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이 이번에는 현역 유통업계 사장으로서 재판장에 나서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홈플러스가 경품을 미끼로 고객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보험사에 팔아 막대한 수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나면서 기업의 도덕성은 물론 도 사장의 경영능력 또한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다. 또한 홈플러스는 모기업 테스코의 분식회계, 매각설, 짝퉁 운동화 판매 등에 이어 경품추첨 비리, 고객정보 불법판매까지 사실로 드러나며 ‘도성환 체제’는 끝 모를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홈플러스 기막힌 돌려먹기
 
홈플러스는 당첨을 자체적으로 조작해, 당첨 고객들에게는 문자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지난 2011∼2013년 진행한 3차례의 경품 행사에서 시가 6200만원 상당의 1㎏짜리 순금막대(골드바), 아우디 A4(4470만원), BMW320d(4370만원), 뉴SM7(3100만원), K7(2935만원) 등의 경품 당첨자를 선배와 친구 등으로 조작한 뒤 수령한 경품을 팔아 약 2억1000만원을 나눠 가졌다. 
 
자신이 원하는 추첨 결과를 조작해 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당첨자가 당첨 사실을 알고 연락해 와도 다이아몬드 등 애초 내건 경품 대신 홈플러스 상품권 등을 주고 넘어간 경우도 잦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법 조작한 직원 2명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정모 과장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같은 팀 최모 대리에게는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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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