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익은 기업인 가석방론 막전막후

기업이 살아야 경제도 나라도 산다?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재계에 '가석방'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번 법무부장관과 경제부총리가 슬쩍 운을 뗀 것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정재계를 막론하고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것. 주로 거론되는 재벌총수로는 연일 역대 최장기간 수감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이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재벌 봐주기'라는 것. 가열되는 '가석방 논란'을 조명해 봤다.

가석방은 징역 또는 금고형을 받고 수형 중에 있는 사람이 그 행장(복역 태도에 대한 성적)이 양호하고 개전의 정이 뚜렷해 나머지 형벌의 집행이 불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일정한 조건하에 임시로 석방하는 제도다.

개전의 정을 제외한 조건으로는 무기는 20년, 유기는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해야 한다. 가석방 후에는 남은 형기를 경과하면 형의 집행을 종료한 것으로 본다. 다만 기간 중에 금고 이상 형의 선고를 받아 그 판결이 확정되거나 보호관찰의 준수사항을 위반한 때에는 가석방 처분이 취소된다.

누가 되고
누가 안 되나

절차는 교정시설의 장이 수형자에 대한 가석방 적격심사를 신청하면 법무부 장관 소속 가석방심사위원회에서 심사를 진행하고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거친다. 사면과는 달리 가석방은 법무부장관의 고유 권한이다. 가석방심사위원회는 위원장인 법무부 차관을 포함해 판사, 검사, 변호사, 법무부 공무원, 교정 관계자 등 법무부 장관이 임명 또는 위촉한 5~9명으로 구성된다. 

가석방 요건을 충족한 대기업 오너는 현재 3명 정도다.


재벌 총수 중에는 최태원 SK 회장이 유일하다. 최 회장은 역대 재벌 총수 가운데 최장 기간 수감 중이다.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 1일(2015년 1월1일 기준·이하 기준 동일)까지 701일을 기록했다. 최 회장은 계열사 자금 46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2012년 1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형기는 2017년 1월 말까지. 확정 형기 중 3분의 1(486일)을 215일 초과해 가석방 요건을 충족했다.

최 회장은 이외에도 병보석 신청도 없이 수감생활을 하고 옥중에서 사회적 기업 전문서인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을 펴내는 등 모범적인 수감생활을 해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한 지난 2012년 받은 보수 중 세금을 제외한 187억원 전액을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사회적기업 활동에 기부하기도 했다.

최 회장과 함께 기소된 동생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도 가석방 대상에 포함된다. 그의 수감 기간은 618일. 최 부회장은 지난 2011년 12월 검찰에 구속된 후 다음해 6월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이듬해 9월 2심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도 가석방 대상이다. 구 부회장은 2012년 기업어음(CP) 사기 발행 혐의로 구속돼 징역 4년을 확정받고 2년 넘게 수감 중이다. 함께 재판을 받은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의 경우, 징역 3년 확정 후 315일 동안 수감생활을 해 50일 이후인 오는 2월20일 가석방 요건이 충족된다.

장관·부총리 이어 여당 대표 가세해 군불
다가오는 설날 또는 3·1절 특사 가능성↑

수감 중이지만 가석방 요건을 채우지 못한 대기업 오너도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2012년 7월1일 구속됐지만 신장 이식 등 건강상의 문제를 이유로 수차례 구속집행이 중단되면서 총 수감기간을 114일 채우는 데 그쳤다. 지난해 9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이 회장이 계속 수감생활을 이어 왔다면 가석방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이 회장 사건은 아직 대법원 선고 전이다. 이 회장은 아직까지도 구속집행정지 상태에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질병을 이유로 각각 보석과 형집행정지를 받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도 수감기간이 가석방 요건에 미치지 못한다. 불구속 기소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을 비롯, 회계분식 혐의로 270일 가까이 수감된 상태에서 고등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도 가석방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도 가석방 요건이 안 된다. 4만명에 이르는 CP 사기 피해자들도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기업인 '가석방 바람'은 지난해 9월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발언에서 불기 시작했다. 당시 황 장관은 "기업인이라고 가석방 대상에서 배제하는 불이익을 줘선 안 된다. 기업인도 요건만 갖춘다면 가석방될 수 있다"고 말했으며 이에 최 경제부총리는 "기업인들이 죄를 저질렀으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업인이라고 지나치게 원칙에 어긋나서 엄하게 법 집행을 하는 것은 경제살리기 관점에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힘을 실었다.
 

재계는 기업인 가석방이 자칫 국민의 반감을 불러올 수 있을 가능성을 염려하면서도 반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가 경제가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서 투자와 고용 창출 여력이 있는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시점에 실질적 결정권자인 오너들의 경영일선 복귀가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이유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제민주화라는 명목으로 기업인들이 지나치게 엄정한 법 집행으로 역차별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정부가 경제살리기 정책을 펼치고 있고 경제민주화 기조가 바뀌어 가고 있는 가운데 기업인 가석방은 선행되어야 할 정책"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오너가 부재 중인 주요 대기업들은 투자가 줄줄이 중단되고 신년 경영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등 아픔을 겪고 있다. SK그룹의 경우, 2011년 6조606억원이던 그룹 투자 규모가 2012년 4조9283억원으로 쪼그라 들었으며 계열사인 SK E&S와 SK텔레콤이 추진했던 STX에너지와 ADT캡스 인수·합병 건이 중단됐고, 태양전지 사업과 연료전지 개발 사업도 도착상태다.

오너 부재 기업
투자 줄줄이 중단

CJ그룹 역시 총수 부재로 시련을 겪고 있다. CJ대한통운의 물류터미널 거점 마련을 위한 충청 지역 2000억원 투자 계획은 전면 보류됐고, CJ CGV의 해외 극장 사업 투자와 CJ오쇼핑의 해외 인수합병도 중단됐다. CJ제일제당이 추진하던 베트남·중국 업체와의 생물자원 사업과 관련한 인수합병도 최종 단계에서 고배를 들었다.

태광그룹도 마찬가지다.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의 매출은 2011년 3조5000억원에서, 2012년 2조8100억원, 2013년 2조5196억원으로 하락세를 타고 있으며 신사업 개발과 신규시장 개척 등도 답보상태다.

이런 가운데 김승연 회장이 복귀한 한화그룹은 요즘 한 마디로 활기가 넘치고 있다. 집행유예 기간 중인 김 회장은 계열사 등기임원이나 대표이사로 취임하는 데 제약은 있지만 이미 경영에 복귀했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다. 매일 출근하지는 않지만 일주일에 한두번 본사에 나와 사업개편을 이끌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의 방산·화학 계열사를 인수하고 태양광 계열사인 한화솔라원과 한화큐셀이 합병하는 등 굵직한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
 

김 회장의 복귀 전까지 한화그룹은 '비상경영위원회'를 가동하며 공백 메꾸기에 나섰지만 투자와 경영전략 등 현안에 대한 결정이 미뤄지면서 주력 계열사를 중심으로 이상 신호가 감지되어 왔다. 김 회장이 복귀하자마자 달라진 한화그룹의 모습에 재계에 부는 기업인 가석방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그러나 지난 12월 초 발생한 '땅콩 회항 사태'는 여론을 급반전시켰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12월5일 대한항공 항공기 일등석에 앉아 있던 자신에게 기내식 서비스로 땅콩을 봉지째 내온 승무원에게 화가 나 램프리턴(항공기를 탑승 게이트로 되돌리는 일)을 지시하고 사무장을 내리게 한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반기업·반재벌 정서가 확산된 것.

복귀한 김승연
활기 띄는 한화

여론을 반영한 듯 연말 시행된 성탄절 기념 가석방 명단에는 기업 총수가 빠졌다. 지난달 25일 오전 10시를 기해 전국 교도소에서 가석방된 수형자는 614명. 형기의 80~95%를 채운 모범수 중간처우자(26명), 외국인 수형자(24명), 중증질환 환자(21명), 10년 이상 장기수(8명), 고령자(8명), 소년수(1명) 등이 포함됐다. 법무부는 이날 "통상 절차대로 실시한 것"이라며 "대상은 행형 성적이 좋은 사람들이고 경제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나 특이 신분자는 제외했다"고 밝혔다.


꺼져가던 불씨를 다시 살린 것은 최 부총리와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다. 최 부총리는 최근 한 언론에 "일반인들도 일정 형기가 지나면 가석방 등을 검토하는 것이 관행인데, 기업인이라고 일반인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역차별이란 생각에 변함이 없다"며 "박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기업인들의 가석방이 필요하다는 점을 건의 드렸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최근 "경제가 이렇게 안 좋은 상황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일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으며 당초 기업인 가석방에 부정적인 입장이던 이완구 원내대표도 입장을 바궈 "경제살리기 측면과 함께 국민대통합 명제에 부합할 수 있도록 (가석방 문제에 관해) 야당과 협의를 해 보겠다"고 말했다. 서청원 최고위원과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도 가석방을 제안하고 나섰다.

동아줄 기다리는 간절한 범털들
모범 수감생활 최태원 회장 유력

재계는 다시 기대를 걸고 있다. 2월 설 연휴 또는 3·1절 등 가석방 시기까지 거론되기 시작했다.

반대 입장도 만만치 않다.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 정치혁신실천위원장은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대기업 등에 대한 사면권 행사를 더욱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나마 지키는 몇 안 되는 공약 중의 하나가 이것"이라며 "경제살리기를 위해 정부가 할 일은 경제민주화를 실천하는 것이고, 비리 기업인에는 더 엄격히 죄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완주 원내대변인도 "재벌총수가 형기를 마치기 전에 나오면 경제가 활성화가 된다는 말인지 김무성 위원에게 묻고 싶다"며 "기업인의 가석방이 경제활성화를 가져온다는 구체적인 근거나 통계가 있는지 최경환 부총리께 묻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의 의견은 갈리고 있다. 박지원 의원은 "고위공직자나 기업인을 우대 하는 것도 나쁘지만 불이익을 주는 것도 나쁘다"며 기업인 가석방을 찬성했고 이석현 비상대책위원도 "법에 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라면 기업인이라고 해서 가석방에서 배제하는 건 옳지 않다"고 밝혔다.

민생사범+재벌
'물타기 작전?'

기업인 가석방이 법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나오자 새누리당은 생계형 민생사범까지 포함해 박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서청원 의원은 "기업인 가석방 문제를 제기하려면 민생사범도 같은 법의 잣대에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이 원내대표도 "경제도 살려가며 국민대통합이라는 명제에 부합할 수 있도록 야당과 협의를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

야당은 '물타기 작전'이라는 비판을 내놨다. 박 원내대변인은 "민생사범과 재벌을 묶어 같이 풀자고 물타기 하는 수법은 비겁하다"며 "재벌만을 대표하는 정당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것이 오히려 신사다운 행동일 것입니다"고 비난했다.

불거지는 가석방 논란과 관련, 청와대는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의 고유권한"이라며 선을 그은 상태다.

 

<han10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가석방·사면' 기대조차 못하는 총수들
"해주고 싶어도 해 줄 수가 없다"

법무부 장관의 고유권한인 가석방과는 달리 사면은 대통령의 특권으로 형을 전부 또는 일부 소멸시키는 일을 말한다.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으로 나뉘며 일반사면은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며 재판을 받고 있는 범죄자들을 포함해 특정범죄를 저지른 모든 사람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된다. 특별사면은 대통령 고유 권한으로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며 형이 확정돼 집행에 들어간 경우를 전제로 한다.

가석방 외에 기업인 사면이 실시되면 대기업 총수 중에는 가석방 요건을 충족시켰거나 앞두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과 최재원 SK그룹 수석 부회장,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 등을 제외하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유일하다. 김 회장은 지난해 2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51억원,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을 선고받아 현재 집행유예 중이다.

김 회장은 사회봉사명령을 완수하고 지난 11월부터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로 출근하고 있지만 집행유예 기간 중이기 때문에 ㈜한화 대표이사직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집행유예 판결이 확정된 사람이 임원을 하면 화약류 제조업 허가가 취소되며, 사업허가를 다시 받기 위해서는 집행유예 기간을 모두 마친 후 최소 1년이 지나야 한다는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 규정 때문이다.

탈세, 횡령, 배임 혐의로 법정을 오가며 재판을 받고 있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지난 4월 배임과 횡령 혐의로 1심 판결에서 징역 6년형을 받고 법정 구속된 뒤, 항소심을 진행 중인 강덕수 전 STX 회장은 사면이나 가석방을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천문학적인 금액의 사기성 회사채(CP) 발행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도 마찬가지다. 현 전 회장은 1심에서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항소, 공판이 진행 중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상고심에서 재판이 계류 중인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도 형이 확정되지 않아 사면의 대상이 아니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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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