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본 2014 국감 총정리

의미 없는 질문에 성의 없는 대답 '속빈 강정'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2014년 국감이 마무리됐다. 분리국감 등 우여곡절을 겪은 터라 여운이 깊게 남은 국감이었다. 피감기관은 672곳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지만 짧은 준비 기간 탓에 올해 역시 정책과 민생, 대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요시사>가 '맥' 없이 끝난 국감을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이번 국감을 달군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카카오톡 검열이다. 여야 의원들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에서 수사기관이 개인의 사적인 대화 메시지를 엿보고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 설전을 벌였다. 안전행정위원회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등에서도 SNS 감시 문제가 화두가 됐다.

[카톡] 카톡 검열 논란은 지난 9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국무회의 중 "대통령 모독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는 말이 단초가 됐다. 이에 검찰은 '사이버 유언비어 엄단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열고 "인터넷을 실시간 모니터링 해 허위사실 유포자를 상시 적발하겠다"며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발족했다.

혹시나 했는데
막말·딴짓 여전

국민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카카오톡마저 감시당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퍼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는 검찰의 감청영장 제시에 불응하겠다고 밝혔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협조는 당연하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기도 했다.

이번 국감을 통해 얻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적어도 수사기관이 국민들의 대화 내용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황 장관은 "사적 공간을 수사기관이 살펴보는 일은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이 대표도 "실시간 감청은 불가능 하다, 이를 위해서는 실시간 감청장비가 필요한 데 설비도 없을뿐더러 갖출 생각도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불안은 해소되지 않았다. 국내 수사기관의 접근이 쉽지 않은 해외 메신저로의 사이버 망명은 줄을 이었다. 가장 인기 있는 '사이버 망명지'인 텔레그램 이용자 수는 사이버 검열 논란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9월 셋째 주 42만명을 찍었다. 9월 둘째 주 이용자수는 4만명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텔레그램은 매주 40만명 이상의 이용자를 끌어 모으고 있다. 반면 카카오톡, 네이트온, 마이피플 등 등 국내 메신저의 사용자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안전불감증] 국가적인 이슈인 세월호 참사는 대부분의 상임위원회에서 다뤄졌다. 여야는 질타를 쏟아냈고 특히 사고 전 관리 부실이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참사 이후 발생한 홍도 유람선 사고도 지적됐다. 이 과정에서 '해피아'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 관심이 집중됐던 이준석 전 세월호 선장의 증인 출석은 이뤄지지 못했다. 대신 세월호 선원들과 해양경찰청 관계자 등이 증인으로 나왔고 미숙한 대응과 이기적인 행동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 17일 판교테크노벨리 환풍구 추락사고가 발생하면서 '안전불감증'은 국감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안전행정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를 중심으로 환풍구를 포함한 생활 주변 위험시설에 대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긴급 진단을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실제로 후속 대책 마련에 나서는 성과를 거뒀다.

여당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인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야당은 새누리당 소속인 남경필 경기지사에게 책임을 묻고 성남시와 이데일리,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은 행사 주최와 주관을 놓고 책임을 떠 넘기는 등 책임소재를 둘러싼 파행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연기 또 연기…시작부터 불안
우여곡절 끝에 맥없이 마무리

[○피아] 올해 국감에서는 해당 조직 이름과 마피아 단어를 조합한 각종 '피아'가 유독 많았다. 그나마 익숙한 모피아, 해피아 외에도 정피아(정치), 군피아(군대), 경피아(경찰), 전피아(전력), 농피아(농촌진흥청), 산피아(산업부), 문피아(문화부), 환피아(환경부), 오다피아(ODA), 법피아(법조계), 세피아(세무공무원), 소피아(소방관료), 핵피아(한국수력원자력) 등이다. 통피아(통신), 선피아(선거), 교피아(교수), 특피아(특허청), 도피아(도로공사) 등도 등장했다.

국감 첫날인 지난 7일 산업통상자원위원회 특허청 국감에서 특허청 퇴직 공무원이 산하기관 혹은 유관단체에 재취업한 것을 의미하는 특피아가 도마에 올랐다. 같은 날 문화체육관광부 국감에서는 야당이 문화부가 추진하는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 호텔 설치 허용 정책 추진을 놓고 문피아라고 비판했다.


국감 둘째날인 8일에는 농촌진흥청 국정감사에서 해외농업기술센터 역대 소장 46명 중 16명이 농진청이나 지자체 고위공무원 출신 퇴직자라며 농피아라는 지적이 있었으며 도로공사 국정감사에서는 전국 335개 영업소 가운데 265개 영업소를 전직 도로공사 직원이 운영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도피아가 논란이 됐다.

 

새정치민주연합 백재현 의원은 한전KPS의 최근 10년간 퇴직 임직원 재취업 현황을 분석해 39명의 한전KPS 임직원이 15개 협력업체에 재취업했다고 밝히면서 전피아 문제가 불거졌다.

국방위원회 국감에서는 군피아 납품비리가 부각됐다. 군은 시중 가격이 1만원 정도밖에 안 되는 4G USB 메모리를 95만원에 구입하고 시중에서 2억원에 구할 수 있는 통영함 음파탐지기를 41억원을 주고 샀다. K-9자주포의 부품 납품 과정에서도 공인시험성적서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총체적 부실이 발각됐다.

[혈세 낭비] 올해 국감은 시작 전부터 10억의 혈세를 날렸다. 감사 효율도 안 오를 뿐더러 내년도 예산 심의에 적잖은 지장을 초래한다는 기존 국감의 문제가 불거지자 당초 국회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분리국감을 시행하기로 했다. 1차 국감을 8월26일부터 9월4일까지 진행하고, 2차 국감을 10월1일부터 10월10일까지 하자는 내용이었다.

올해도 공기업
여야 집중 타깃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 문제로 본회의가 무산되면서 분리국감은 시작도 하기 전 파행을 맞았고, 국감장 설치, 자료 준비 등 분리국감을 위해 들어간 약 10억원의 혈세가 공중분해됐다.

'해외자원개발 실패'로 인한 혈세 낭비도 집중 포화를 맞았다. 한국석유공사는 캐나다 에너지업체 '하베스트'를 1조원에 사들였다가 900억원에 팔았다. 특히 하베스트 인수 당시 자문을 한 회사가 이명박 정부 핵심 실세의 아들이 근무하던 곳으로 드러나면서 권력형 게이트 의혹도 제기됐다.

한국광물자원공사는 이미 부도가 난 멕시코 볼레오 동광개발사업을 2조원에 인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글로벌 호구'로 등극했다. 이밖에도 농식품부는 유명 연예인 홍보대사 위촉에 최근 5년간 8억2100만원의 혈세를 낭비했고 경기도는 민자사업으로 추진한 일산대교와 제3경인고속화도로의 통행량을 과다 예측하면서 수백억원의 혈세를 지원해 왔으며 질병관리본부는 결핵예방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지난 8년간 약 89억원을 투자했지만 현재까지 백신 생산을 위한 균주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막말] 막말은 국감하면 빠질 수 없는 키워드 중 하나다.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국감장에서 윽박지르기나 막말, 저속어 사용 등은 여전했다.

실제 사례를 보면 새정치민주연합 설훈 의원은 윤종승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에게 "인간은 연세가 많으면 판단력이 떨어진다. 79세면 쉬어야 한다"고 말해 '노인 폄하' 논란을 불렀다.

새누리당 송영근, 정미경 의원은 동료 의원을 비하하는 쪽지를 주고 받다 발각됐다. 두 의원은 국방위원회 국감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진성준 의원을 겨냥해 "쟤는 뭐든지 삐딱! 이상하게 저기 애들은 다 그래요!"라는 쪽지를 주고 받았다. 이 일로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취임 후 가진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와의 첫 회동에서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은 박원순 서울 시장의 부적절한 시립대 교수 채용, 구룡마을 사업 무산, 시민운동가 시절 협찬 내용 등을 거론하며 "박원순 시장을 무책임, 무결정, 무도덕, 무소신 등 '4무 시장'이라 부르고 싶다"는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


피감기관 672곳 '역대 최다'
올해도 역시 정책·민생 실종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은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에 대해 '노동환경에 문외한'이라고 공세를 폈다. 권 의원이 인격모독이라며 사과를 요구했지만 은 의원은 "그건 폄하가 아니다. 너무 솔직하게 말한 것은 사과한다"고 받아쳤다.

이외에도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청와대 직원들을 '청와대 얼라들'이라고 지칭했으며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은 정해방 금융통화위원에게 "한글도 모르냐"는 발언을 날려 파문을 일으켰다. 새정치민주연합 강기정 의원은 증인 채택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던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에게 "하기 싫으면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외교통상위원회 국감에 참여한 새정치연합 김현 의원은 "주재관들이 인사를 안 한다"며 권위적인 태도를 보여 논란이 됐다.

[딴짓]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몇몇 국회의원들의 적절치 못한 행동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8일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감 중 휴대전화로 비키니를 입은 여성사진을 보는 모습이 포착돼 된통 혼이 났다. 권 의원 측은 "휴대폰으로 환경노동위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 잘못 눌러서 비키니 여성 사진이 뜬 것이다. 의도적인 게 아니다"고 해명했으나 주요 포털사이트와 SNS를 통해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면서 질타를 받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여성위원회는 다음 날 보도자료를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과 언론이 지켜보는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실추시키고 정치 불신을 야기한 권성동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민 의원은 13일 법제위 법무부 국감 도중 손톱을 손질하고 있는 모습이 <서울신문>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두 여인] 국감 마지막 날이던 지난 27일에는 '두 여인'이 키워드로 떠올랐다. '국감 뺑소니'로 질타를 받은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난방열사'로 불리는 배우 김부선씨였다. 두 사람의 명암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이날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장에 출석한 김 총재는 잔뜩 몸을 낮췄다. 김 총재는 지난 23일 예정됐던 국감을 앞두고 중국 출장을 떠나면서 국감에 불참해 '국감 뺑소니'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김 총재는 이날 쏟아지는 의원들의 사과 요구에 "정중히 사과드린다. 양해해 주시면 일어나서 국민과 의원분들께 인사 드리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또 기관소개에 앞서서도 "4년 만에 열리는 아태 적십자사 총재회의에 참석하느라 그랬다"며 "제 불찰로 생긴 일에 대한 의원들의 질책을 겸허히 수용하겠다. 반성하고 사과드린다"며 재차 사과했다. 특정국가 비하 발언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시위에 대한 비하 발언에 대해서도 "어릴 때였고 기업인으로서 책임이 없었다. 오해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낙하산·보은 인사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김 총재는 "밖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보은이었으면 절대로 받지 않았을 것"이라며 보은인사설을 부인했다. 자신은 국내외에서 NGO 활동을 하면서 봉사를 해 왔고 글로벌 기업을 경영하면서 효율성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십자사를 운영하는데는 문제가 없다는 게 김 총재의 설명이다.

"모른다"
"아니다"

반면 김부선씨는 당당했다. 김씨는 27일 국토교통위원회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 아파트 관리비 실태를 폭로했다. 김씨는 "난방열사 말고 투사로 불러 달라. 40년 동안 묵은 문제인데 여야가 어디 있고, 사상과 이념이 어디 있느냐"며 "국회의원들에게도 그렇게 문제 제기를 했는데 손을 놓은 국회의원들도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앞서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 모 아파트 난방 비리를 폭로하면서 해당 아파트 입주민들과 몸싸움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김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실태를 고발, '난방열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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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