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방 13세 손녀 10억 쥔 내막

할아버지 덕에 하루 180만원 버는 ‘초딩’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경방 오너일가의 주식 매매가 화제다. 주식을 내다 팔며 수십억원의 현금을 만들었다. 경방 회장의 손녀 13살 '초딩'은 한 달 만에 10억을 손에 쥐었다. 오너일가가 주식 상승기에 주식을 파는 걸 나쁘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악재로 평가된다. 해당 종목의 상승동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경방은 1919년 인촌 김성수 선생이 '우리 옷감은 우리 손으로'라는 창립이념 아래 세운 경성방직회사에서 출발했다. 국내 최초 국민주 모집으로 출범, 올해로 95년이라는 긴 역사를 자랑한다. 고 김각중 경방 명예회장은 75년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뒤 33년 동안 경방을 이끌며 한국 섬유산업의 중흥을 이뤄냈다. 80년대까지 경기 용인, 반월, 광주에 잇따라 공장을 준공해 87년 수출 1억 달러 돌파를 달성했다.

면방직 회사의
유통업 사랑

지금은 이름뿐이다. 면방직회사라는 타이틀은 빛이 바랜지 오래다. 90년대 방직업이 하향세로 접어든 뒤 경방은 유통업 등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94년 경방필백화점과 한강케이블TV를 설립하고 2001년에는 우리홈쇼핑을 설립했다.

90년대 말 외환위기를 맞아 2001년 경방기계 소유 주식 전량 매각에 이어 2002년 한강케이블TV 보유 주식 전량을 매각했고 2006년에는 우리홈쇼핑 주식을 롯데쇼핑에 전량 매각했다. 2007년 7월에는 신세계와 업무 협약을 맺고 경방필백화점 운영을 향후 20년간 위탁하기로 했다. 이후 2009년에는 옛 경성방직 자리(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4가)가에 국내 최대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를 열었다.

김 명예회장은 지난 2012년 3월 타계했고 현재 경방은 매제 이중홍 경방 회장과 아들인 김준 대표와 김담 부회장이 경영을 이끌고 있다. 최근 경방의 매출 비중은 면방직 사업이 경기부진과 소비감소에 따라 매출이 줄어들면서 약 80%가 유통업에서 나온다.


최근 경방 오너가의 주식 매매를 통한 현금 마련도 잘 나가는 유통업이 있었기에 이뤄질 수 있었다.

경방은 지난달 1일 비상장 자회사인 경방유통을 흡수합병키로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17일 경방은 이사회를 열고 경방유통과 합병안건을 의결했다고 공시했다.

회사 측은 "경영효율성 증대를 통하여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시장에서 경쟁력 강화 및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본 합병에 대한 반대의사 표시 주주가 경방 발생주식 총수의 100분의 20 이상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합병에 대한 주주총회 승인을 이사회 승인으로 갈음함"이라고 덧붙였다. 양사의 합병비율은 1대0(경방:경방유통)이며 내달 31일이 합병기일이다.

오너일가 한달만에 21억 시세차익
어디다 쓰려고?…노골적 차익실현

경방유통은 92년 1월 설립되어 백화점 영업을 주요 영업으로 하는 회사로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용지인 경방필백화점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다. 흡수합병 전 모회사는 경방으로, 경방은 경방유통의 지분 100%를 보유, 경방유통이 운영 중인 타임스퀘어와 메리어트호텔에서 나오는 수익을 가져간다.

경방유통 흡수합병 발표 뒤 경방의 주가는 급등했다. 여기에 베트남 공장 증설 소식이 더해져 주가는 날개를 달았다. 경방은 지난해 3월 베트남 빈증성에 정방기 2만6000추 규모의 방직공장을 완공하고 코마사(연사를 한번 재가공해 놓은 실) 생산을 시작했다. 경방은 앞서 진출한 하노이 지역 공장과 더불어 약 7만추 규모의 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향후 베트남 공장 진출을 확대할 방침이다.
 

8월1일 12만4000원(종가 기준)이던 경방 주가는 8월5일 14만7000원, 8월13일 16만6500원, 8월25일 17만7000원, 8월28일 18만2000원, 지난 15일 18만8000원까지 올랐으며 15일 최고치는 19만1000원이었다. 지난 6월25일 11만2000원이던 주가가 불과 3개월여 만에 60%가량 오른 것이다.


주가 급등에 따라 경방 오너일가의 주식 매매가 이어졌다. 지난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경방 오너일가는 지난 8월 한 달 주식 장내 매도를 통해 20억9000여만원의 현금을 벌어들였다.

모녀 지분매각
"20억 챙겼다"

이중훈 경방 회장의 손녀 유진양은 지난 8월7일부터 8월27일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보유주식 5500주를 장내매도로 팔아 9억원 가량을 현금화했다. 8월7일 1055주를 시작으로 8일(295주), 11일(150주), 12일(750주), 14일(250주), 18일(750주), 20일(250주), 21일(250주), 26일(250주), 28일(1250주), 29일(250주) 등으로 주식 매수가 불가능한 휴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날에 주식을 팔아 치웠다. 유진양의 남은 주식은 2000주다.

2014년 한해로 시각을 넓히면 유진양은 총 16차례 장내매도로 10억원이 넘는 돈을 벌었다. 같은 기간 장내매수는 단 2차례. 3월10일과 6월10일 주가가 하락세(종가 기준)를 보일 때만 총 509주를 매수했다. 1년 새 유진양의 주식은 7920주(1월1일 무상신주취득 720주 포함)에서 2000주로 75%가량 줄었다.

유진양의 어머니이자 김준 대표의 여동생인 지영씨도 지난 8월12일부터 9월1일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보유 주식 5620주를 팔아 9억7000여만원을 챙겼다. 8월12일 620주를 시작으로 13일(750주), 14일(250주), 18일(250주), 19일(133주), 20일(117주), 21일(250주), 27일(1250주), 28일(1000주), 29일(250주), 9월1일(750주) 등이다. 지영씨 역시 주식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주말과 광복절을 제외한 평일 대부분을 주식 매매로 보냈다. 지영씨의 남은 주식은 2만4500주다.

친인척인 한만청·김봉애씨 등도 소량이지만 주식을 내다팔았다. 김씨는 김 명예회장의 셋째 여동생이며 한씨의 김씨의 남편으로 국민경제과학만화운동본부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서울대병원장과 아시아·태평양 심혈관 및 중재적방사선 학회장을 역임했다.

한씨는 지난 8월25일 609주를 팔아 1억1000만원가량을 현금화했고 그의 보유 주식수는 '0주'가 됐다. 김씨는 8월18일 690주를 현금화해 1억1000만원가량을 벌어들였고 1만9846던 그의 주식수는 1만9156주로 낮아졌다.

해외 진출 호재에 주가 급등
미성년 딸도 주식거래로 대박

김담 부회장의 특수관계인인 케이블앤텔레콤도 지난 4월부터 지난달까지 총 5차례에 걸쳐 보유주식 2296주 중 1213주를 장내매도로 시장에서 팔아치우면서 1억6000여만원을 마련했다.

경방 오너일가가 주식 상승기에 주식을 장내매도 해 시세 차익을 챙기는 걸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김담 부회장의 회사 지배구조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도 볼 수 없다. 주식을 매도한 유진양, 지영씨, 한씨, 김씨의 기존 지분에 김준 대표의 지분을 합하더라도 최대주주인 김담 부회장이 보유한 57만5284주(20.98%)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2대 주주는 36만8517주(13.44%)를 보유한 김준 대표다. 그 뒤를 9.28%(25만4449주)를 보유한 삼양홀딩스와 7.70%(21만1120주)를 보유한 동아일보사가 잇고 있다.
 

하지만 오너일가의 차익실현은 일반 투자자들에게 해당 종목의 주가 상승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악재로 분류된다. 

가수 싸이가 6월 컴백하면서 테마주로 분류됐던 이스타코도 최대주주 김승제 대표의 지분 처분으로 주가가 힘을 일었다. 이스타코는 부동산 분양을 주요 사업으로 한다. 김 대표는 지난 5월30일과 6월2일 2차례에 걸쳐 보유 지분 5.37%(1529만922주)를 처분해 80억가량을 챙겼지만 이스타코 주가는 지분 매각 이후 4000원선으로 떨어지더니 지난 2일 최저치인 2550원까지 급락했다.


아모레 주가급락
교훈 삼야야…

카카오와 다음의 합병 소식 덕에 주가가 급등했던 인터넷 인프라 서비스업체 가비아도 2대주주와 경영진이 지분을 처분함에 따라 주가는 한 동안 하락세를 탔다. 가비아는 카카오에 인터넷 데이터센터를 제공하는 케이아이엔엑스의 대주주다.

가비아의 2대주주 서은경씨는 지난 5월29일 지분 0.74%(10만주)를 1주 당 평균 7749원에 팔았다. 이호복 가비아 부사장도 같은 날 4만주(0.29%)를 1주 당 평균 7206원에 매도했다. 이후 가비아 주가는 4840원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회복세로 돌아섰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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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