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발 세금대란 막전막후

‘양치기 정권’ 국민들은 또 속았다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증세 없는 복지증대.' 박근혜 정부의 세금·복지 정책의 대원칙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징수된 세금은 3조1200억원, 당초 목표치보다 3800억원을 초과했다. 그런데도 세수는 부족하기만 하다. 그래서 꺼내 든 카드가 세금 인상. 담뱃값 인상을 시작으로 주민세 및 지방세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세금 인상은 없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호언장담은 공염불이 됐다.

지난해 국민 한 사람당 평균 세금 부담은 509만1000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재정부와 안전행정부, 국세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세와 지방세를 합쳐 계산한 국민 1인당 평균 세금 부담은 509만1000원으로 2012년 513만9000원에 비해 4만8000원가량 줄었다. 하지만 3년 전인 2010년 459만2000원보다 3년새 50만원가량 늘었다.

1인당 평균 세금
3년새 50만원↑

국민 1인당 세금 부담은 1년간 걷힌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등 국세와 취득세·주민세·지방소비세 등 지방세를 합한 금액을 해당연도 인구 수로 나눠서 계산한다. 지난해에는 201조9065억원의 국세와, 53조7789억원의 지방세(잠정치) 등 총 255조6854만원의 세금이 걷혔다. 2013년도 추계인구는 5021만9669명으로 1인당 509만1000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다만 실제 국민 1명이 낸 세액과는 차이가 난다. 수치에는 기업이 부담하는 세수인 법인세가 포함돼 있고 국민 중에는 면세자나 소득세 등을 내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도 있기 때문이다.

2013년 세 부담액은 경기부진에 따른 세수 감소의 여파로 2012년보다 4만8000원 정도 줄었다. 1인당 평균 세금부담이 직전 해보다 감소한 것은 2009년 434만7000원에서 2009년 426만3000원으로 줄어든 이후 4년 만에 처음이다.
 


작년 국세 세수를 세목별로 보면 2012년에 비해 소득세는 2조원, 부가가치세는 3000억원 가량 증가했으나 법인세는 2조원, 교통·에너지·환경세는 6000억원가량 줄었다. 지방세의 경우 지방소비세는 1000억원, 재산세는 2000억원, 지방소득세는 500억원가량 늘었으나 지방교육세는 600억원, 취득세는 5000억원가량 감소했다. 다시 말해 평균 세금부담이 줄어든 것은 서민들의 세금 납부가 줄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경기침체로 기업 매출이 줄고 그에 따라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부동산 등 재산세가 줄었다는 게 주된 이유인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자 시절 복지공약 실천을 위한 재원마련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증세 없는 복지공약 실천'을 약속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공약집을 통해 "소득보장과 사회서비스를 균형 있게 제공해 평생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일자리를 통해 소득을 창출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일과 함께하는 복지를 확대하겠다"며 "더불어 기초생활보장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맞춤형 빈곤정책과 급여체계를 통해 필요한 급여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빈곤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담뱃값 2000원 인상안 "사재기 확산"
지방세 개편안 발표…국회 진통 예고

취지는 좋지만 문제는 예산, 즉 돈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직후 복지확대 등 각종 대선공약 실천을 위해 향후 5년간 50조7000억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27조2000억원을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확보하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박 대통령은 "증세 없이 세제개편을 통해 나락된 세금을 철저히 걷는 것으로 재원마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은 일회성에 그쳤고 각종 세금 인상안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정부는 현금연수증 발급 의무 강화를 비롯한 각종 제도개편, 금융정보분석원(FIU) 정보활용의 증가와 세무조사를 강화하면서 3조1000억원을 거둬들였다. 2조7000억원을 걷겠다던 본래 계획을 16% 초과 달성한 수치다. 이에 따른 부작용도 함께 증가했다.


먼저 조세 불복 소송 인용률(국가 패소)은 지난해 32.9%로 처음으로 30%대를 넘어섰고 5만원권 회수율은 올해 1~5월 기준 27.7%로 전년 동기보다 24.6% 급감했다. 지난해 2조1000억원의 세수를 거두기 위해 국세청은 4조7000억원(징수율 45%)을 부과한 점을 감안하면 올해 목표 3조6000억원을 위해서는 8조원을 부과해야 하는 등 현실적으로 목표달성이 불과하다는 회의론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9월부터 지하경제 양성화에 대한 언급자체를 꺼리고 있다. 

돈이 부족해진 정부는 공공요금 인상을 시작했다. 한전은 지난해 11월 산업용 6.4%, 주택용 2.7%, 일반용 5.8% 등 전기요금을 평균 5.4% 인상했다. 도시가스는 지난 7월 경남 1.7%~2.31%, 대구 0.55% 등 인상을 시작으로 서울은 8월부터 도시가스공급비용을 7.7%, 주택용 기본요금을 7.1% 각각 인상했다. 같은 달 대전도 소비자요금을 0.42% 올렸다.

공공요금 인상
또 증세안 추진

이밖에 지하철 신분당선 요금이 2년 만에 12.5% 올랐으며 청주시와 공주시는 공영주차장 요금을, 파주시는 종량제봉투값과 음식물쓰레기 처리비용을, 강원도는 시내버스 운임요율을 인상하는 등 지역별로 공공요금 인상 쓰나미가 몰려왔다.

추석연휴가 끝난 뒤에는 담뱃값 2000원 인상 카드가 전격 발표됐다.

정부는 지난 11일 오전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복지부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들이 '종합 금연대책'을 논의한 뒤 담뱃값 인상 추진을 포함한 대책을 발표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은 '담뱃값 인상 등 금연 종합대책'과 관련해 "담뱃값을 내년 1월부터 평균 2000원 인상한다"며 "늘어난 건강증진지원금은 금연지원사업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담배에 새로 부과되는 개별소비세는 인상된 가격인 4500원 중 594원이다. 과세 방식은 개별소비세를 종가세(2500원 담배 기준 600원 상당)로 부과한다. 종가세는 물품 가격을 세율 책정의 기초로 하는 조세를 말한다.

종가세 부과에 따라 고가 담배일수록 세금이 높아 세부담 역진성이 완화된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담배에 붙는 국세는 40%가량이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이전된다.

담뱃값이 4500원으로 인상됨에 따라 제세 및 부담금 비율은 담배소비세 1007원, 지방교육세 443원, 건강증진부담금 841원, 개별소비세 594원, 기타 433원이 된다.

비가격 정책으로는 담배갑에 경고그림이 부착되고 소매점 내 담배 광고가 금지된다. 또 금연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한다.

부자감세 유탄
힘없는 서민에게

정부는 담뱃값 인상에 이어 주민세 인상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2일 주민세 인상과 지방세 감면혜택 중단 등을 담은 지방세 개편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현재 4000원 정도인 주민세는 2년에 걸쳐 1만원 이상으로 오르게 되고 카지노에도 레저세가 부과되며 부동산펀드·호텔 등에 적용됐던 지방세 감면 규정은 올해 시효가 만료된 후 더 이상 적용되지 않게 된다.


주민세는 1년에 한번 거주지 지방자치단체에 내는 '지방세'다. 현재 전국 평균 주민세는 4600원 수준. 전북 무주군 주민들의 경우 2000원을 내는 반면, 충북 보은군 주민들은 5배인 1만원을 내는 등 징수액은 지자체마다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 1999년 정부가 1만원 이하에서 지자체가 알아서 조례를 제정해 부과하도록 주민세 기준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간 재정자립도가 어려운 지자체에 한해 주민세 인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선거 등을 의식해 선뜻 나서는 지자체가 없었고 아예 법을 재정할 계획인 것이다. 일선 지자체들은 정부의 지방세 개편안을 반기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기준으로 3175억원인 주민세 징수액은 최소 두 배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카지노 레저세는 기존 경마, 경륜, 경정, 소싸움에 부과하는 세금을 카지노에도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매출의 10%가 레저세로 부과되는데 대표적 카지노시설인 강원랜드의 지난해 매출은 1조2773억원으로 1277억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안정행정부는 앞서 지난달 21일 이런 내용을 담은 지방세 기본법·지방세법·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할 예정이었지만, 입법예고 예정일 이틀 전 당·정·청 협의 실패로 일정을 연기한 바 있다.

담뱃세에 이어 지방세 개편안은 박 대통령의 '증세 불가' 방침을 깨는 것이다. 따라서 입법예고 후 여론수렴과 국회 논의 과정에서 만만찮은 진통이 예상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인 흡연율을 낮춰서 국민건강을 지키겠다는 게 정부가 내건 표면적 이유지만 사실상 세수증대를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정부는 조세재정연구원 연구결과를 인용, 담뱃값을 2000원 인상했을 때 담배소비량이 34.0% 감소하지만 2조8000억원의 세수증대가 기재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증세 없다"던 청와대 말바꾸기
"흡연율 감소" VS "꼼수 증세"

청와대는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 참여정부의 담뱃값과 소주가격 인상 대책에 대해 "소주와 담배는 서민이 애용하는 것"이라며 "국민이 절망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담뱃값 인상의) 명목상 이유는 국민 건강을 위한 것이라지만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애꿎은 서민 호주머니만 털겠다는 꼼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며 "힘없는 서민만 부자 감세의 유탄을 맞게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최재성 의원은 "정부가 공약이행이나 경기침체로 부족한 세수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취지에서 담뱃세 인상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진정 국민의 건강을 염려한다면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등 부자증세와 함께 담뱃세 인상을 검토하는 등 종합적이고 균형 있는 세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의당 김종민 대변인은 "담뱃값을 4500원으로 올리면 흡연율이 2.9%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칠 수 있고 단계적으로 올리는 담뱃값은 고스란히 저소득층 부담으로만 전해질 수 있다"면서 "금연 효과가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적정 수준으로 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단체도 정부 정책에 반발하고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복지부 설문 조사에서도 담배를 끊게 된 가장 큰 이유로 본인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가 69.9%이고 경제적 이유가 6.2%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또한 "정부가 겉으로는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는 명백한 증세"라며 "재정 확충을 위해 증세를 하겠다면 과세 공평성 확보와 함께 고소득자·재벌 및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누진체계를 강화하는 등의 노력이 선행 또는 병행돼야 한다"고 전했다.

소설가 이외수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국민건강을 위해 담뱃값 올린다는 주장은, 용왕님 토끼 간 씹다 어금니 부러지는 소리입니다. 한마디로 믿기 어렵다는 얘기지요"라며 "진실로 정부가 국민건강을 그토록 염려하신다면 깔끔한 정치로 국민 스트레스나 좀 줄여주시지요"라고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하듯 소매점과 소비자의 담배 사재기 조짐이 관측되는 등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편의점에 따르면 지난 11일 하루 동안 담배 판매량은 2배 증가했다. 인기 있는 상표는 정오를 못 넘기고 매진이 됐고, 한번에 5보루, 6보루씩 사가는 흡연자들도 등장했다.

담배 사재기
부작용 속출

유통업계는 내년 인상시기가 다가올수록 사재기 움직임을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는 담배 판매점에 사재기를 막기 위해 평균 매출과 공급량을 관리하고 사재기 적발시 2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는 방침이지만 흡연가들 사이에서는 "편의점 여러 곳을 돌며 조금씩 사 모으면 된다" "미리 사둔 담배를 인상 가격보다 조금 싸게 팔아 제태크를 해야겠다" 등 정부 정책을 비웃는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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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