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유플러스-중소기업 ‘10년 특허전쟁’ 막후

갑은 말로만 상생 을은 외로운 투쟁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LG유플러스가 요즘 들어 부쩍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외치고 있다. 그 이면에서 목 놓아 울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이 있다. 서오텔레콤 사장 김성수씨다. 그는 10년 동안 LG유플러스와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집도 절도 다 잃은 다윗과 끄떡없는 골리앗의 악연을 들여다봤다.

서울시 석촌동 동양빌딩 2층, 김성수 서오텔레콤 사장의 사무실이다. 김 사장의 하루 일과는 정신없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소송 서류를 검토한다. 10년을 이어온 특허 분쟁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다. 상대는 LG유플러스(이하 LG유플)다. 그는 LG유플의 숨겨진 얼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나홀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거대한 기업 앞에서 김 사장의 절규는 희미해지고 눈물은 말라간다.

특허 심판청구
기각·각하 반복

김 사장은 한마디로 잘 나가는 중소기업인이었다. 성폭력 피해가족의 한 사람으로써 2000년 8월 서오텔레콤을 설립하고 또 다른 피해자를 막고자 휴대전화 비상호출 시스템을 개발, 특허등록을 마쳤다. 2002년 10월에는 중국 보천그룹과 조명램프를 가지는 휴대용 무선전화기 공급을 체결했고, 기술라이센스 및 모듈 공급계약도 이끌어 냈다.

2003년에는 KAIST 전자정부 연구센터와 건강보험 시스템 IC카드 사업 컨소시엄 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해 7월에는 이동통신망을 이용한 위치제공과 그 방법에 대한 기술을 15개국에서 특허 출원했다.

김 사장과 그의 직원들은 정말 미친 듯 일했다. 중소기업이 갖는 한계를 다양한 국내외 협력 활동으로 극복해 냈다. 한 장의 카드 속에 150종의 각기 다른 카드 기능을 탑재한 화상데이터 칩 카드를 개발했고 국민건강보험증 전산카드(스마트카드) 개발에도 성공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김 사장은 제4회 산업협력대회에서 산업포장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행복한 순간도 잠시, 2004년 1월 LG유플(당시 LG텔레콤)이 긴급호출 버튼 기능을 갖춘 '알라딘'휴대폰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사실상 끝났다. 알라딘 서비스는 위급·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휴대폰 측면의 긴급 버튼을 누르면 현재 상황이 연속 촬영되고 곧바로 저장된 보호자 등 3명의 휴대전화로 자동으로 위치가 전송되는 것과 동시에 통화가 이뤄지는 '보디가드' 역할을 수행한다.

알라딘은 서오텔레콤이 개발한 비상호출시스템과 매우 유사했다. ▲측면에 설치된 단일의 비상 키 버튼 ▲비상정보가 저장되어 있는 메모리 수단 ▲비상모드 실행단계 ▲1단계 호접속 유지 상태 ▲도청모드 실행 단계 등이다.

알라딘 서비스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언론기사를 살펴보면 LG유플 관계자는 "알라딘폰이 상대적으로 고가인데도 최근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일부 지역에서는 예약해야 살 수 있을 만큼 인기가 대단하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서오텔레콤의 사세는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3년 동안 수억의 개발비를 투자해 연구한 기술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다.

LG유플 측은 "이미 개발됐던 그룹콜 기술을 적용한 것으로 서오텔레콤 기술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일축했다. 이때부터 김 사장은 외로운 투쟁의 길로 들어섰다.

"극히 상식적이고 초보적인 기술마저 힘의 논리로 짓밟아 버리더군요. 이대로라면 그동안 밤을 세워가며 개발해 놓은 173건의 특허와 31개 국가에 출원 등록 및 공개중인 18건의 원천 기술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 뜬 사람 코 베어간 대기업의 횡포와 부도덕성을 세상에 알리기로 했습니다."

휴대폰 비상호출 시스템 두고 소유권 소송
"믿었는데…" 공동사업 협의 중 다시 돌변


서오텔레콤은 2004년 4월 LG유플을 상대로 특허침해 고소를 검찰에 제출했다. 그러자 LG유플은 서오텔레콤을 상대로 특허 무효소송에 돌입했다. 무효소송에 대해 대법원은 서오텔레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서오텔레콤이 제기한 권리범위확인 심판청구와 특허법위반 고소사건, 손해배상청구소송은 지난 10년간 번번이 기각되거나 불기소 결정됐다.

하루하루를 절망 속에 보내던 김 사장에게 한 줄기 빛이 찾아온 것은 지난해 3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기술검토의견서가 도착하면서다. 연구원의 선임연구원은 김 사장이 보낸 '기술검증 요청 민원'관련에 대한 회신을 통해 LG유플이 서오텔레콤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보내왔다.

의견서를 토대로 김 사장은 지난해 5월 특허법원에 특허권리 범위 확인 재심을 청구했고 6월 서울중앙지검에 LG유플을 득허법위반으로 재고소했다. 2011년 4월 나온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의 특허침해검토보고서도 의견서 내용을 뒷받침했다. 당시 언론과 업계는 권위 있는 ETRI 의견서가 향후 재판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했다.

기대는 오래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났다. 특허권리 범위 확인 재심은 각하됐고 특허법위반에 대한 재고소는 불기소로 결정이 났다. 선임연구원의 기술검토의견만으로 LG유플이 서오텔레콤 특허기술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불기소 이유다.

김 사장은 즉각 항고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검의 불기소 결정에 대한 항고를 고등검찰청에 냈다. 하지만 지난 5월22일 고등검찰청은 "선임연구원의 기술검토의견에 대한 수사검사의 불인정과 특허법원의 재심사유가 없다는 각하판결을 뒤집어 LG가 서오 특허기술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항고를 기각했다. 

김 사장이 LG유플과의 법적분쟁에서 잇따라 패소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잘나가던 중소기업
하루 아침에 '쫄딱'

먼저 서오텔레콤이 항고장에 첨부한 LG유플 직원 진술서에는 당시 LG텔레콤과 휴대폰 제조사인 팬택엔큐리텔이 서오텔레콤의 특허기술 침해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진술서를 보면 LG텔레콤 직원 유모씨는 "LG텔레콤이 팬택엔큐리텔에 보낸 이메일을 보고 해당 기술이 서오텔레콤 특허라는 것을 알게 됐다" "특허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말기 구성을 변경하는 안을 제안" 등의 내용이 실려 있다.
 

김 사장이 공개한 '2004년 11월17일 LG 법무팀과 1차 미팅내용'에서는 특허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양사의 협의 과정이 나타나 있다. 내용을 보면 LG에 협조 요청을 하기 위해 찾아간 김 사장에게 당시 LG텔레콤 법무팀 노모 부장은 "이제 와서 협력하자고 하면 되겠냐" "협상을 하려면 서오에서 먼저 검찰 고소를 취하해라" "LG에서 (서오의 기술을) 채택할 경우 우리한테는 프리로 해줄 수 있나" 등의 말을 했다.

LG 법무팀 김모 대리는 "우리가 패소하더라도 다른 기업에서 문제 제기를 할 것으로 알고 있다" "싸워서 이긴들 LG나 서오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신규제품부터 로열티를 받을 생각인가" 등 협의를 이끌어 내려는 모습이 보였다. 서오텔레콤이 낸 형사고소를 모두 취하하라는 LG유플 측 권유도 등장한다.

석연찮은 재판과정
"말장난 하고 있다"


재판부의 잇따른 기각 판결도 석연치 않다. 특허법원은 지난 5월22일 재심 각하 이유를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특허법원에서 판단이 '잘못'됐다는 주장은 있었으나 판단이 '누락'됐다는 주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의 단서조항에 따르면 '당사자가 상소에 의해 그 사유를 주장했거나 이를 알고도 주장하지 아니한 때에는 재심사유로 삼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김 사장은 이와 같은 재심 각하 이유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특허법원이 말장난을 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누락'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오인' '판단유탈' '심리미진' 등 위법이 명백하다는 것을 분명 적시했습니다. 만약 특허법원이 우리가 첨부한 ETRI 의견서 등을 충분히 검토하고도 LG가 특허침해를 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렸다면 결과에 수긍했을 겁니다. 지금까지 십여차례 재판이 진행되면서 기각·각하가 반복됐을 뿐 우리 의견이 반영될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서울고등검찰청이 2009년 4월1일 김 사장에게 보낸 불기소 이유 고지서에서도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고지서에서 검찰은 "본건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하는 친고죄이다. 친고죄는 범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6월이 경과할 경우 고소를 할 수가 없다"고 밝힌 뒤 "기록을 살펴보면 고소인은 본건과 동일한 내용으로 이미 2004년 4월9일자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고, 위 사건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이 내려지자 피고소인만을 추가해 2008년 9월12일 자로 당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적었다.

이어 "또한 피고소인들은 2008년 1월7일자로 애초 고소인이 특허가 침해됐다고 주장하는 휴대전화 서비스 내용을 변경했으므로 가사 특허권을 침해 했다고 하여도 위 일자를 기해 침해상태가 종국적으로 종료됐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적어도 2008년 7월6일 이전에 고소를 했어야 했다"며 공소권이 없다고 불기소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서오텔레콤 측이 LG유플이 2008년 1월27일자로 침해 특허서비스를 변경했다고 반박하자 검찰은 "그렇다고 하더라고 고소장은 적어도 2008년 7월27일 이전에 접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본건 고소장은 2008년 9월12일 서울서부지검에 접수됐으므로 실체 판단을 하기 앞서 고소기간이 지난 이후에 접수된 고소사건이므로 공소권없음 의견으로 송치하라는 지위에 따라 불기소(공소권없음) 의견임"이라고 밝혔다.


쟁점은 고소장이 제출된 날짜다. 검찰은 고소장이 2008년 9월12일에 서울서부지검에 접수됐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김 사장은 서울중앙지검에 2008년 7월21일 고소장을 제출했다. 사건이 서울서부지검으로 이첩되면서 날짜가 뒤바뀐 것이다.

ETRI 의견 거부 등 재판 과정에 의혹
10년 넘는 공방에 손실만 약 100억원

"서부지검 박모 검사가 LG측에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고소날짜를 허위로 조작해놓고 고소기간이 지났다면 불기소처분을 했습니다. 저는 이에 불복 항고했고 고등검찰 조사결과 박 검사의 고소날짜 조작이 사실로 밝혀진 바 있습니다. 재수사명령까지 내려졌으나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식 수사로 결국 혐의 없음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중소기업진흥원도 특해침해 사건 검토보고서에서 "형사고소사건에서 감사가 고소날짜를 허위 기재하여 실질적인 수사가 이뤄지지 못하게 된 부분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음으로써 대·중소 불공정 거래 관행이 개선되고 더 나아가 중소기업들이 기술개발에 전념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적었다.

LG유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미 결론난 사안"이라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수차례 민형사상 소송을 거치면서 LG유플러스가 특허 침해 혐의가 없다는 결론이 난 상태다"며 "ETRI의 의견은 서오텔레콤의 질의에 대한 선임연구원의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알라딘 서비스는 이미 개발되어 공개된 그룹콜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SK, KT 등 경쟁사에서도 생각하던 서비스였다"며 "LG 기술은 휴대전화의 비상버튼을 누르면 비상연락망에 저장된 번호로 전화연결이 바로 되고 서오 기술은 비상연락망에 저장된 번호로 전화가 걸리면 그 전화를 끊고 상대방이 다시 걸어야 연결이 되는 기술로 실질적으로 다른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서오텔레콤이 주장하는 측허기술 사용에 대한 협의는 진행된 적도 없고 LG유플 직원의 진술서도 진위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것"이라며 "서오텔레콤의 주장은 모두 지어낸 얘기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끝까지 갈 생각이다. 10년이 넘는 공방을 벌이는 사이 김 사장의 회사와 가정은 폭삭 주저앉았다. 만만치 않은 소송 비용과 직원들 월급을 충당하기 위해 서오텔레콤 소유의 빌딩을 팔았다. '서오'빌딩은 주인이 바뀌어 '동양'빌딩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서오텔레콤은 세입자 신세가 됐다. 힘겹게 마련한 가족의 보금자리도 팔았다. 서오텔레콤이 지난 10년간 입은 손실은 100억원가량이다.

하지만 김 사장은 LG유플에 '큰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성폭력 피해가족의 한사람으로 하루 속히 분쟁이 마무리되고 제품이 상용화되길 바랄 뿐이다.

재정신청 접수
"끝까지 간다"

"제가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믿지 않았다면 금쪽같은 사옥과 집을 팔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계란으로 바위치기의 무모한 투쟁을 하느냐고 반문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제 대기업들의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탈취의 고리를 끊어내야 우리나라가 IT기술 강국으로 발전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LG유플은 지난해 1월부터 진행한 ▲국산화상생 ▲자금상생 ▲기술상생 ▲수평상생 ▲소통상생 등 '동반성장 5生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중소협력사와 함께 성장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동반성장 2014'를 발표했다.

LG유플은 협력사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기술과 자금을 지원하고 협력사는 LG유플과의 협력을 통해 기술과 서비스 역량을 제고함으로써 매출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han1028@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