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는 대기업 골프장 전쟁 막전막후

경기회복 온기 도니…그린 유혹에 빠진 재벌들

[일요시사=경제1팀] 2013년 골프 시장은 사상 최악이었다. 분양대금을 놓고 소송전이 이어졌고 골프장은 꾸준히 매물로 나왔다. 올해 역시 골프장업계는 술렁이고 있다. 하지만 이유가 다르다.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가장 장사가 잘 되는 수도권 골프장'인 레이크사이드CC를 삼성이 인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다른 대기업들도 다시 골프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국내 골프장업계가 불황에 몸살을 앓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시장에 핵폭풍을 몰고 왔던 리먼사태 이후 회원권 가격은 연일 바닥을 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법원에 골프클럽 Q안성의 '17% 변제' 판결을 내리면서 하락세에 기름을 끼얹었다.

수원지방법원은 지난해 9월 Q안성의 모기업인 태양시티건설의 회생계획안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기존 회원들에게 입회금의 17%만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렸다. 회원 자격 승계의무를 명시한 '체육시설 및 이용에 관한 법률'과 정면충돌하는 판결이었다. 이를 계기로 계약 만기가 돌아온 골프장 입회금을 돌려받으려는 회원과 입회금 반환을 거부하는 골프장 운영업체의 법적분쟁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입회금 반환요구
법적분쟁 급증

에이스회원권거래소가 발표하는 ACEPI(골프회원권) 지수는 지난해 1월 748.9포인트에서 12월 714.2포인트로 4.6% 하락했다. 회원권 평균가는 1억1172만원에서 1억174만원으로 998만원 하락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174개 골프장 가운데 84개가 자본잠식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골프장의 적자규모는 2009년 1453억원에서 2011년 2677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골프장업계가 빠져나오기 힘든 '벙커'에 빠진 셈이다.

하지만 불황에도 눈 여겨 볼 골프장은 있다. 거대 자본의 뒷받침으로 입회금 반환에서 자유롭고 설사 적자가 나더라고 개의치 않는 대기업 계열 골프장이다. 그 중심에 삼성그룹이 있다.

지난 14일 침체된 골프계를 뒤흔드는 '빅뉴스'가 나왔다. '국내에서 가장 장사가 잘 되는 수도권 골프장'으로 알려진 레이크사이드CC를 삼성이 인수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날 삼성물산과 삼성에버랜드는 레이크사이드CC 운영사인 서울레이크사이드의 지분 100%를 35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하고 매각주관사인 우리투자증권과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삼성물산과 에버랜드의 지분 비율은 8대 2이다.


레이크사이드CC는 총 400만m²가 넘는 부지에 홀만 54개, 연매출 약 500억원, 매년 140억원 내외의 흑자라는 메리트를 가지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57억원이다. 이번 인수로 삼성은 총 6개 골프장(안성베네스트·가평베네스트·안양CC·동래베네스트·글렌로스·레이크사이드CC) 등에서 총 162홀을 보유하게 되면서 '골프왕국'으로 거듭났다.

삼성, 레이크사이드CC 인수…판도 변화 전망
불황에 앞다퉈 팔던 다른 기업들도 다시 눈독

'골프왕국'의 정점을 찍고 있는 골프장은 얀양CC로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남다른 문화·예술 사랑이 더해져 한국의 대표적 명품골프장으로 자리 잡았다. 구성수, 이기봉 등 한국을 대표하는 유명작가 작품이 클럽하우스 내에 전시되어 있고 로비에는 수억원대를 호가하는 일본계 미국 아티스트 조지 나카시마의 원목 테이블과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골프장 내에 심어진 나무 값만 1조원대에 이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1968년 설립되어 96년 코스 리노베이션을 거쳐 안양베네스트로 변신했으며 2년 전에는 아예 문을 닫고 리노베이션을 실시, 안양CC라는 옛 이름을 되 찾았다. 99년까지 국내 1위 골프장을 유지했으며 최근에는골프전문지 <골프다이제스트>가 선정한 '세계 100대 코스'에서 당당히 40위에 자리했다.

이러한 '안양CC 효과'는 삼성의 다른 골프장인 안성·동래·가평베네스트와 글렌로스에 막대한 후광으로 작용해 삼성이 '골프왕국'으로 거듭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골프장업계는 삼성이 레이크사이드CC를 인수함에 따라 국내 대기업들이 골프장 인수합병(M&A) 또는 추가 오픈에 눈독을 들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상당수 골프장이 회원권 분양에 실패하고 입회금 반환 소송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하지만 자금력이 탄탄한 기업들이 운영하는 골프장은 상대적으로 불황에서 자유롭다. 실제로 골프장 인수 제의가 잇따르고 오픈을 앞두고 있는 신생 골프장도 많다"고 말했다.

삼성 못지않게 골프장 늘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곳은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은 36홀 규모의 해비치제주와 18홀 규모의 해비치서울을 운영하고 있다. 해비치서울은 군인공제회가 짓고 있던 록인 골프장을 2005년 11월 인수해 문을 연 골프장이다. 특히 해비치서울은 50만평의 자연숲속에 위치해 있으며 서울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태안 현대기업도시 내에 현대더링스CC를 조성 중이다. 현대더링스CC는 고 정주영 회장이 바다를 막아 농경지를 만든 지 30여년만에 서산간척지 천수만 B지역을 새롭게 도시로 변모시키기 위한 첫 번째 사업으로 한투라티에라PFV가 556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조성한 36홀의 골프장이다.

오는 4월 정식 오픈을 앞두고 있으며 막바지 단장에 한창이다. 태안팔경 중 하나인 백화산을 배경으로 간척지의 특성인 습지를 활용하여 레이크가 어우러진 코스가 특징이다. 현대차그룹은 태안에 추가로 72홀 골프장을인허가 받은 상태다. 모두 완공되면 총 보유홀수가 삼성과 같아진다.

잇따르는 인수 제의
오픈 앞둔 골프장

신안그룹도 골프장업계 영역확대에 한창이다. 박순석 신안그룹 회장은 80년 세운 신안종합건설을 모태로 M&A를 통해 건설·레저·철강·금융업 등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특히 90년대 말부터 골프장을 잇달아 건설하거나 인수하면서 '골프재벌'로 급부상했다.

[현대차] 4월 중 현대더링스CC 오픈
[신안] 골프장 포함 테마파크 조성

신안그룹은 현재 리베라CC(36홀·경기 화성), 신안CC(27홀·경기 안성), 그린힐CC(18홀·경기 광주), 에버리스CC(27홀·제주), 웰리힐리CC(45홀·강원 횡성) 등을 운영 중이다. 총 홀수는 153홀, 삼성이 레이크사이드CC를 인수하기 전까지 업계 1위를 유지했다. 신안그룹은 800억원 안팎을 투자해 성우리조트 유휴부지에 골프텔 160실과 27홀 규모의 골프장이 포함된 테마파크를 조성하고 있다. 신안그룹은 지난 2011년 현대시멘트로부터 신안종합리조트(옛 현대성우리조트)를 인수했다.

계양산에 발목잡힌
롯데그룹 숙원사업

롯데그룹은 '계양산 골프장'을 놓지 못하고 있다. 롯데건설은 지난 2월 말 인천시의 계양산 골프장 도시관리계획 폐지 결정이 부당하다며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다. 계양산 골프장 사업은 1100억원을 들여 12홀 규모의 골프장과 어린이놀이터, X-게임장, 문화마당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가 골프장 도시관리계획 폐지안을 심의·의결하면서 중단됐다. 롯데건설과 롯데상사, 신격호 회장은 지난해 2월 인천시가 체육시설로 지정된 계양산 골프장을 다시 공원시설로 지정한 것은 불합리하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인천지법은 인천시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롯데건설이 1심 재판부에서 본인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항소를 제기한 것이다.

롯데는 스카이힐제주(36홀·제주), 스카이힐김해(18홀·경남 김해), 스카이힐성주(18홀·경북 성주), 스카이힐부여(18홀 충남 부여)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중 스카이힐제주는 2009년부터 5년 연속 국내 각종 상을 휩쓸고 있으며 2012년 회원제에서 대중제로 전환한 스카이힐성주는 전환 첫해에 '국내 10대 퍼블릭 코스'에 선정됐다.

골프장 레저 시설 개발 및 건설·운영 전문기업인 에머슨퍼시픽그룹의 경우 최근 이산가족 상봉과 북한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사업 확대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에머슨퍼시픽그룹은 전국에 5개 골프장(총 117홀)을 보유하고 있다. 에머슨(27홀·충북 진천), 아난티클럽서울(27홀·경기 가평), 세종에머슨(27홀·세종), 힐튼남해(18홀·경남 남해), 아난티클럽금강산(18홀·북한 금강산) 등이다. 힐튼남해는 2005년 힐튼과 운영 계약을 맺으면서 국내에 고급 리조트 개념을 최초로 소개했고 2007년에 문을 연 아난티클럽금강산은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아난티클럽서울은 골프장 안에 수영장과 테니스장, 캠핑장을 조성해 가족과 함께 즐기는 골프장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에머슨퍼시픽그룹은 부산에 '아난티 펜트하우스 해운대'를 2015년 말 완공 목표로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CJ그룹은 인천 굴업도에 골프장과 리조트 건립을 추진하다가 시와 시민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굴업도는 십자 모양의 지형에 해안가와 절벽, 염분과 파도에 녹아내린 해식 등으로 유명한 섬으로 인천지역에서 이를 천연기념물로 보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굴업도를 포함해 인천 백령도 인근 도서지역 일대를 지질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CJ그룹의 굴업도 골프장 건립사업은 CJ 측이 제출한 사전환경성검토서가 인천시에서 보완 결정이 나면서 사업진행이 중단된 상태다.

[롯데·CJ] 프로젝트 추진 가속
[한화·GS·SK] 기존 사업 확대

CJ그룹은 나인브릿지라는 세계적 골프장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나인브릿지제주와 경기도 여주에 해슬리나인브릿지가 있다. 나인브릿지제주와 해슬리나인브릿지는 <골프다이제스트>가 선정한 '세계 100대 코스'에 각각 59위와 72위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골프장 운영회사인 골프존카운티와 트룬골프는 국내에서 프랜차이즈 골프장 그룹을 추진하고 있다. 전북 고창의 선운산CC를 인수해 골프장 사업에 뛰어든 골프존은 금융투자회사와 함께 법정관리에 들어간 골프장을 인수하고 있다. 골프존은 지난해 말 Q햄튼에 이어 Q안성 인수에 성공했다.
 

강원도 알펜시아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는 트룬골프는 골프장 설계회사인 로버트트렌드존스, 삼일회계법인, 법무법인 태평양과 1조원대의 펀드를 조성해 '더 골프그룹'을 출범했다. 더 골프그룹은 부실 골프장 50곳을 잇따라 인수해 프랜차이즈 골프장 그룹으로 태어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지만 이들 기업 외에도 골프장 사업 확대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은 많다. 한화그룹은 계열사인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전국에 5개의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다. 플라자용인(36홀·경기 용인), 골든베이(27홀·충남 태안), 플라자설악(18홀·강원 속초), 제이드팰리스(18홀·강원 춘천), 플라자제주(9홀·제주) 등이다. 한화그룹은 일본에 18홀 규모의 오션팰리스도 보유하고 있다.


레이크힐스그룹은 레이크힐스순천(26홀·전남 순천), 레이크힐스용인(27홀·경기 용인), 레이크힐스제주(27홀·제주), 레이크힐스경남(18홀·경남 함안), 레이크힐스안성(9홀·경기 안성)을 보유하고 있다.

쌓여 있는 매물
3년 새 40여개

GS그룹은 엘리시안강촌(36홀·강원 춘천), 엘리시안제주(36홀·제주), 샌드파인(18홀·강원 강릉)을, 코리아 골프 아트빌리지는 경기 용인에 골드(36홀), 코리아(18홀), 코리아퍼블릭(9홀)을 운영하고 있다. SK그룹은 2010년 제주 핀크스골프장을 부채를 떠안는 조건으로 700억원에 사들였고 한국야쿠르트는 2009년 경기 동두천 다이너스티(18홀)을 인수해 티클라우드라는 이름으로 바꿔 운영하고 있다.

국내 M&A시장에는 골프장 매물이 쌓여 있다. 먼저 공기업이 소유한 골프장 매물을 보면 국가보훈처가 소유한 경기 용인의 88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뉴서울, 한국광해관리공단의 블랙밸리, 한국관광공사의 제주중문 등 4곳이다. 

지난해 전남 레이크힐스순천과 경기 양평TPC가 경매로 나왔고 지난 2월 제주도 1호 골프장인 제주CC도 매물로 나왔다. 제주 라헨느와 경기 포천 가산노블리제도 지난해 법원에서 경매가 진행됐다. 2012년에도 9개가 올려지는 등 최근 3년 새 40여개 골프장이 법원 경매 신세가 됐다.

 

한종해 기자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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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