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공백기’ 재계는 지금…

‘옥중’ 회장님 빈자리 황태자들이 땜빵

[일요시사=경제1팀] 대기업 총수들이 잇따라 사법당국의 심판을 받고 경영전반에서 물러나면서 재계가 오너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오너의 공백이 길어질 것으로 보이는 기업은 후계자 양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본의 아니게 시험대에 오르게 된 3·4세 경영인들은 후계자 자질을 입증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형 확정에 따라 지난달 18일 ㈜한화 등 7개 계열사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김 회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달 11일 파기환송심 끝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억원, 사회봉사 300시간을 선고받았다.

김 회장은 또 지난달 말에는 법무부 보호관찰소에 사회봉사연기 신청을 냈다. 법무부에 따르면 김 회장 측은 "구속 기간 중 당뇨, 만성 폐질환, 우울증 등으로 서울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며 "현재 건강상태도 좋지 않아 사회봉사명령 연기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철창행 장기화
"대책을 세워라"

대표이사직을 모두 내려놓고 건강까지 악화된 상황에서 김 회장의 경영복귀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김 회장의 차남 동원씨가 경영일선에 한 발짝 다가섰다.

한화그룹에 따르면 동원씨는 한화L&C의 평직원 신분으로 입사해 한화그룹 경영기획실에 파견돼 근무를 시작한다. 동원씨가 주로 맡게 되는 업무는 디지털마케팅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원씨는 평소 IT와 인터넷 방면에 관심이 많이 필요한 경우 실무회의에도 참석해왔다.


동원씨는 미국 세인트폴고와 예일대 동아시아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에 돌아와 공연기획사를 운영하면서 해외 대중음악 가수들의 공연을 취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동원씨의 한화 입사를 두고 재계는 장남에 이어 차남까지 경영에 참여시키면서 오너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 회장의 장남 동관씨는 앞서 2010년 1월 한화그룹에 차장 직급으로 입사, 2011년 12월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으로, 현재는 그룹 핵심사업인 태양광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동관씨는 태양광 사업 실무를 직접 담당하면서 지난해 매출액을 그가 부임한 해 매출액보다 3배 넘게 끌어 올렸다.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은 2012년보다 무려 17배나 증가한 979억원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원재료인 폴리실리콘 가격이 지난 연말부터 상승세로 전환하면서 동관씨는 영국에서 태양광 발전소를 수주하고 중국,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도 모듈과 셀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보폭을 넓히고 있다.

한화 김승연 회장 장남 이어 차남도 입성
웅진가 장남 형덕씨 홀딩스 최대주주 등극

승마 국가대표 출신인 3남 동선씨는 미국 유학 중으로 2006년 도하, 2010년에는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잇따라 금메달을 따내 올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선전이 예상된다. ㈜한화 지분 보유율은 김 회장이 22.65%, 장남이 4.44%, 차남과 삼남이 1.67% 등이다.

웅진그룹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영에서 물러나야 했던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최근 16개월간의 법정관리를 마치고 복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웅진홀딩스는 지난달 11일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기업회생절차 조기종결 결정을 받았다. 웅진홀딩스는 그간 웅진코웨이, 웅진케미칼, 웅진식품 등 계열사 매각과 윤 회장 일가의 사재 출연을 통해 1조5002억원의 부채 가운데 1조1769억원(78.5%)을 상환했다. 나머지 3233억원 중 1767억원도 상반기 중 추가로 갚겠다는 계획이다. 이후에는 전체 채무의 9.8%인 1466억원만 남게 된다.
 

웅진그룹은 법정관리 기간 동안 외형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웅진코웨이, 웅진식품, 웅진케미칼 등 주력 계열사를 매각하면서 반토막이 난 것. 그러나 2012년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던 재무구조는 자본잠식에서 벗어났고 부채비율도 174%로 줄어들었다. 


윤석금 회장
다시 꾸는 꿈

윤 회장은 웅진홀딩스 법정관리 졸업 후 "주어진 책임과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는 '방판 사업'으로 성공한 윤 회장이 이번에도 역시 방판사업을 발판으로 재기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화장품이나 건강식품 분야를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사업구조는 교육, 출판, 태양광, IT컨설칭, 레저산업으로 재편할 예정이다.

70세의 고령인 윤 회장은 지난해 말 지분 대부분을 2세 형제들에게 넘겼다. 웅진홀딩스는 지난해 12월26일 기존 최대주주인 윤 회장이 특수관계인인 형덕(장남)씨, 새봄(차남)씨를 대상으로 장내 시간외 대량매매를 통해 보유 주식 전량을 처분, 최대주주가 형덕씨로 변경됐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라 형덕씨는 148만5197주가 늘어난 156만8595주(3.67%), 새봄씨는 148만5196주가 늘어난 155만2083주(3.63%)를 추가로 보유하게 됐다. 이로써 형덕씨는 웅진홀딩스의 최대주주(12.52%)가 됐다. 새봄씨는 12.48%를 보유, 웅진홀딩스 지분은 두 형제가 모두 25%를 갖고 있다. 웅진홀딩스 채권단은 웅진홀딩스 회생을 위해 오너 일가가 400억원대의 사재를 출연하고 대신 25%의 지분과 경영권을 보장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지난달 28일에는 웅진씽크빅이 형덕씨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오는 21일 주주총회에 상정한다고 금융감독원에 신고했다. 형덕씨는 웅진씽크빅 신사업추진실장으로 근무 중이다. 신사업추진실은 화장품이나 건강식품 분야의 방판사업 진출 등을 주도한다.

주총에서 안건이 통과되면 형덕씨는 웅진씽크빅 등기이사에 오르면서 사실상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된다. 경영기획실장으로 근무 중인 새봄씨도 웅진홀딩스 사내이사로 신규선임 예정이다. 윤 회장은 지난 1월부터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과 배임 혐의로 공판을 받고 있다. 결심판결은 4월이 돼야 날 것으로 예상된다. 윤 회장이 혐의를 받고 있음에 따라 당장 경영 전면으로 나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형덕씨가 경영을 이어 받는 것도 무리가 있다. 아직 경영 경험이 적고 37세라는 젊은 나이도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재계는 당분간은 윤 회장이 두 아들을 앞세워 경영공백을 최소화 하면서 차근차근 경영권을 넘기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아버지 아들
나란히 재판

총수의 재판이 예정된 효성그룹의 경우 장남과 삼남에게 경영권 전반이 옮겨지고 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지난 1월9일 5000억원 상당의 분식회계와 1500억원 상당의 조세포탈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뒤 지난달 5일부터 공판이 진행 중이다. 검찰은 효성이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해외사업에서 대규모 부실이 발생하자 10여년 동안 1조원대의 분식회계를 통해 법인세 수천억원을 탈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효성 일가는 1990년대부터 보유주식을 그룹 임직원 등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관리하는 수법으로 1000억원이 넘는 차명재산을 마련해 양도세를 내지 않은 의혹도 받고 있다. 홍콩에 세운 페이퍼컴퍼니 등을 통한 주식 위장 거래 의혹과 함께 차명계좌를 통한 주식거래와 양도차익에 대한 조세포탈 의혹도 제기됐다.
 

효성그룹의 후계구도는 장남 조현준 사장과 삼남 조현상 부사장의 대결로 압축된 상황이다. 차남인 조현문 변호사는 지난해 경영에서 물러난 상태. 효성은 지난달 19일 이사회에서 조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을 확정하고 오는 21일로 예정된 정기주주총회에 상정키로했다. 안건이 통과되면 조 부사장은 조 회장과 조 사장, 이상운 부회장과 함께 등기이사직을 2년간 수행하게 된다. 효성은 조 부사장의 등기임원 선임에 대해 "탄소섬유 등 신사업을 육성해낸 성과 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세 아들은 현재까지 치열한 지분 경쟁을 벌여왔다. 지난 2010년 본격화되기 시작한 형제들의 지분 매입은 지난해 3월 조 변호사가 경영에서 손을 떼고 효성 주식 240만주(6.83%)를 매각하면서 조 사장과 조 부사장의 집중적 매입이 시작됐다. 지난해 말까지 9.85%의 지분율을 보였던 조 사장은 지난 2월6일과 7일 각각 3만500주와 3039주 등 총 3만3539주를 장내 매수해 9.95%로 끌어올렸고 9.06%였던 조 부사장의 지분율도 같은 날 3만9500주를 장내 매수하면서 9.18%를 기록하고 있다. 두 형제 모두 조 회장의 지분(10.37%)에 필적한다.

효성그룹은 장자승계 원칙을 표방해왔다. 조 회장 역시 장남으로 고 조홍제 창업주에게 그룹을 물려받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조 사장이 차기 후계 구도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얘기가 된다. 반론도 있다. 조 사장이 조 회장과 함께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조 부사장에게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조 사장에게 불리한 판결이 날 경우 조 부사장이 치고 들어올 수 있다는 얘기다.

조 회장의 건강상태도 변수다. 조 회장은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건강이 급격이 악화됐다. 조 회장은 정밀 진단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권유를 받아들여 지난 1월21일 암 진단을 위해 미국 LA로 출국했다가 지난달 4일 귀국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과거 담당 종양으로 수술을 받은 바 있다. 일각에서는 전립선암까지 추가로 발견됐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최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이재현 CJ 회장은 일부 계열사의 등기이사직에서 사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올해로 임기가 만료되는 일부 계열사의 등기이사에 재선임하지 않는 방식으로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효성 경영승계 조석래 회장 건강이 변수
CJ 1남1녀 주력사에 입사해 경영수업 중

이 회장은 현재 CJ·CJ제일제당·CJCGV·CJ대한통운·CJE&M·CJ오쇼핑·CJ시스템즈 등 7개 계열사의 등기이사를 맡고 있다. 이중 이달 말 임기가 만료되는 계열사는 CJE&M, CJCGV, CJ오쇼핑 등 3곳. 이 회장의 후계자들이 주목을 받는 이유다.

신입사원들 사이에서 '프린스' 찾기 열풍을 몰고 왔던 장남 선호씨는 지난해 6월 CJ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직무교육 차원에서 지주사 내 여러 부서를 거쳐 지금은 CJ제일제당에서 일하고 있다.
 

선호씨가 직무교육을 받을 당시 신입사원들 사이에 '우리들 중 프린스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그를 찾으려는 소동이 벌어진 일화는 유명하다. 입사동기들은 수더분한 선호씨가 '왕자님'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후문이다.

장녀 경후씨는 최근 CJ에듀케이션즈에서 CJ오쇼핑 상품개발본부 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후씨는 지난 2011년 7월 대리로 CJ 기획팀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시작했으며 그해 12월 CJ에듀케이션즈로 자리를 옮겨 지난해 3월 과장으로 승진했다. 업계는 경후씨가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일을 배워온 만큼 주력계열사인 CJ제일제당에 입성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 이운형 회장의 세아그룹에서는 장남 이태성 세아홀딩스 상무가 떠오르고 있다. 이 회장이 세상을 등진 후 세아그룹은 지분 상속과 차기 그룹 회장직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계열분리, 상속 분쟁 등 갖가지 의혹도 난무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 회장의 지분 대부분은 이태성 상무가 승계했고 이후 이태성 상무는 지분율을 늘리기 시작했다. 이 회장 작고 당시만 해도 세아홀딩스 17.95%, 세아제강 10.74%였던 지분율은 세아홀딩스 32.05%, 세아제강 19.12%까지 늘어났다. 이태성 상무와 그의 모친 지분을 합치면 세아홀딩스 지분은 39%대에 이른다.

세아그룹 이태성
새롭게 떠오른 별

비슷한 시기 이 회장의 동생 이순형 회장의 아들 이주성 세아제강 상무도 지분을 늘리기 시작했다. 현재 이순형 회장의 부인과 이주성 상무, 이순형 회장의 세아홀딩스 지분율은 37.16%다.

비어있는 회장직은 이 회장의 미망인 박의숙 세아네트웍스 사장이 채웠다. 이태성 상무는 지난해 12월 세아베스틸 기획본부장으로 겸직 발령됐다. 이로써 이태성 상무는 그룹 경영과 함께 핵심사업까지 맡게 됐다. 그리고 지난달 19일 세아그룹은 이사회를 열고 오는 21일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서 이 상무의 등기이사 신규 선임 안건을 상정키로 했다고 공시했다. 이태성 상무는 미국 미시건대 심리학·언론학을 전공하고 중국 칭와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쳤다.

 

한종해 기자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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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