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 사람들 릴레이인터뷰 ④> 김옥두 전 의원

“다음 세상에서도 DJ 모시겠다”



민주화운동 함께한 동교동계, 인동초 삶도 함께 견뎌
모진 고문·수감생활…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몰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동교동계 인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오랜 시간 김 전 대통령의 곁에 머물면서 그의 삶을 생생히 목도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세간에 알려진 ‘김대중’보다 더 따뜻했던, 눈물 많고 정 많은 김 전 대통령을 보았고 민주화를 위해 끝없이 투쟁한 인동초 삶의 곁에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의 유훈도 이들에게는 평소 들어오던 말일 뿐이다. 동교동계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의 숨겨진 일면들과 그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되새겨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머물렀다. 그러나 동교동 사람들 중에서도 ‘동교동계’라 불리는 이들은 좀 더 특별하다.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이름도 쓰지 못하고 ‘동교동 재야인사’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소통할 때 그와 함께하며 민주화 운동을 했던 ‘동지’들이기 때문이다.
그중 한 명이 김옥두 전 의원이다. 수십 년 세월 동안 모진 고문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김 전 대통령과 같은 곳을 봤고, 죽어서도 김 전 대통령을 모시고 싶다고 말하는 이. 그에게는 김 전 대통령이 인동초 꽃을 피우기까지 살아왔던 모진 겨울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완연한 가을 날씨를 보이던 지난 14일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김 전 의원과의 일문일답.

- 국장 후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 종종 김 전 대통령의 묘지를 찾고는 한다. 오늘도 다녀왔다. 이희호 여사와 권노갑 고문 등 김 전 대통령을 그리는 이들과 함께 참배를 하고 바로 오는 길이다. 49재는 치르지 않기로 했지만 애도기간으로 여기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 아직도 DJ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나나.
▲ 일본에서 납치를 당하셨다가 가까스로 돌아오신 후 매년 8월13일은 ‘제2의 생일’로 기념해왔다. 올해도 도쿄 피랍 생환 36주년을 기념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던 중 입원을 하셨다. 이전에도 입원을 하셨지만 건강을 회복하셨기 때문에 당연히 강건하게 돌아와 행사에 참석하실 것으로 생각했는데….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
국장을 치르면서 자녀의 손을 잡고 가족끼리 빈소를 찾은 이들을 많이 보았다. 진심으로 슬프게 울더라. 나도 굉장히 많이 울었지만 지금도 눈물이 난다. 김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전히 살아계신 것만 같다. 동교동 자택 거실에 있으면 김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곧 들어오셔서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주옥같은 말씀을 해주실 것만 같다.
 
- 동교동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것인가.
▲ 나는 오랜 기간 김 전 대통령의 비서로 있었지만 처음부터 동교동 자택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다. 1965년 초 김 전 대통령이 자비를 털어 운영하던 정책연구실인 한국내외문제연구회에 비서로 들어갔다. 거기서 성실성을 인정받아 1966년 말 동교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김 동지! 내 그동안 자네를 유심히 지켜봤는데 성실성이 참 마음에 드네. 내일부터는 동교동으로 출근해 일을 하도록 하소. 도와주기 바라네”라고 하셨다.

- DJ가 걸어온 길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 김 전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탄압의 역사였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모진 탄압을 받았다. 암울한 시대에는 희망이 없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행동하는 양심으로 국민과 민족,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평생을 살아오셨다.
정의가 아닌 것은 행하지 않으셨다. 말뿐 아니라 실천하셨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며 인동초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셨다. 나는 그 역사의 증인 중 한 사람일 뿐이다.
 
- DJ에 대한 탄압은 1971년 대선에서 DJ가 박정희 정권을 위협하는 결과를 보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 1971년 대선에서 우리는 수많은 표를 잃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대권을 두고 승부를 벌였을 때 동교동의 표는 다 무효가 됐다. 부정선거라는 이유로 김 전 대통령과 그 가족, 동교동 사람들 1600명의 표가 전부 효력을 잃었다. 게다가 영남지역에는 공명선거 감시단 참관인들이 아예 발을 붙일 수도 없었다. 협박해서 쫓아버리거나 술과 밥과 돈으로 매수했다.

- 이후 어떤 고초를 겪은 것인가.
▲ 1972년 박 전 대통령이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을 선포했다. 그 이튿날쯤이다. 나는 동교동 자택으로 막 들어가다 중앙정보부 기관원들에게 끌려가야 했다. 광화문 분실에서 갖은 고문을 당했다.
동교동 사람들 대부분이 4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로지 한길을 걸어왔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형무소에 가고 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나도 여러 번 겪었는데 1980년 5·18때가 가장 심했다. 두 달간 내란음모죄로 고문을 당했다.
‘김대중은 사상적으로 나쁘다’ ‘김대중과 가까운 군인, 경제인, 학생, 교수, 언론인은 누구냐’ 몰아치듯 질문이 이어졌다. 김 전 대통령의 사상이 이상하다는 글만 써 주면 원하는 대로 돈도 주고, 국회의원도 시켜주고,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겠다고 회유하기도 했다.

- DJ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 없나.
▲ 오히려 정반대였다. 고문이 극심해지자 “너희들이 내 몸을 찢어발긴다 해도 내 정신을 뺏을 수는 없다. 차라리 죽여라”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을 모셨던 동지, 가족, 친지들이 탄압을 받는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자기가 싫어서 나간 사람은 있어도 김 전 대통령을 배신한 이는 없다. 김 전 대통령의 인간성, 정, 행동하는 양심을 그분을 모시며 모두 봐왔기 때문이다.
정권이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온갖 비방을 했지만 모시고 있는 사람이 봤을 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장기집권을 위해 김 전 대통령을 탄압한 것에 불과했다.
당시에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분이 대통령이 될 거라고는 꿈도 못 꿨다. 한길을 걷다 보니 나도 국회의원이 됐다. 김 전 대통령 밑에서 공부했던 비서들은 의원회관에서 날을 새가며 공부를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국감스타가 됐고 ‘과연 훌륭한 이에게 배워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 DJ의 감옥생활은 어떠했나.
▲ 1980년 내가 서울구치소에 수감됐을 때 김 전 대통령도 다른 곳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이중 감옥생활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 전 대통령이 머무는 감방 양 옆을 비워서 누구도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면회를 갈 때도 그분만 다니는 길이 따로 있었다.
면회를 하기 위해 어두운 길을 걸어오는데 가족들이 항의해서 겨우 불을 켤 수 있도록 했다. 인터폰으로만 이야기하고 볼펜도 주지 않았다. 하루는 운동을 하다가 못을 하나 구해서 책을 읽다가 중요한 부분이 있으면 점자식으로 찍어서 표시했다. 그런 책들이 한두 권이 아니다. 한 달에 한 번 밖으로 엽서를 보낼 때는 엽서 한 장에 깨알같이 글자를 써서 수만 자를 적어 보냈다.
 
-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DJ는 사형을 선고받게 되지 않나.
▲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최후진술에서 “나는 아마도 사형판결을 받고 또 틀림없이 처형당하겠지만 내가 처형당한다는 것도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이 기회를 빌어 유언을 남기고 싶다. 내 판단으로는 머지않아 1980년대에는 반드시 민주주의가 회복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확실히 믿고 있다. 그때가 되거든 먼저 죽어간 나를 위해서든, 또 다른 누구를 위해서든 정치적인 보복이 이 땅에서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부탁하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내 마지막 남은 소망이기도 하고 또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는 내 마지막 유언이다”라고 했다.
재판부는 “김대중 사형!”을 선고했다. 짜여진 각본에 따라 일사천리로, 속전속결로 진행된 재판이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일본과 미국 등 전 세계의 여론이 들끓었고 대대적인 석방시위가 벌어졌다. 카터 행정부로부터 김 전 대통령의 제를 정식으로 인계받았던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국 방문의사를 매개로 사형이 확정된 김 전 대통령을 구명하고자 애썼다.

- 워낙 생명의 위협을 많이 받았던 DJ였으니 경호도 철저했을 것 같다.
▲ 김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경호를 책임졌었다. 김 전 대통령은 여러 번 생명의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에 경호에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2층에서 계단으로 내려올 때 누가 뒤에서 밀지 않을까, 식사를 하면 누가 독극물을 넣은 것은 아닌가, 자동차를 타면 타이어에 구멍이 나서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경호원 한 사람 한 사람이 24시간 경호체제로 김 전 대통령을 철통경호했다.
일화도 많다. 오후 7~8시쯤 날이 저물 무렵 김 전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으면 창살이 날아왔다. 옷에 스치면 옷이 찢어질 정도였고 그 창살을 맞고 다친 이도 있다. 식사를 할 때마다 항상 옆에서 은수저를 준비해 독이 들었는지 확인했다.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전방에 간 일이 있다. 청와대 경호실 책임자가 당선자에게 방탄조끼를 줬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내가 우리 군인을 믿지 않으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며 끝내 그 방탄조끼를 입지 않았다.
 
- 대선기간 동안 경호문제뿐 아니라 건강문제에도 크게 신경 써야 했을 것 같은데.
▲ 워낙에 건강하셨다. 대선기간 동안 하루에 19군데에서 유세를 펼쳐 연설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했다. 유세를 하고 곧장 다른 장소로 이동하다 보니 제대로 식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차에 군것질거리를 뒀는데 많은 사람들과 악수한 손 그대로 집어 드셨다.
5분간의 토막잠도 그분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줬을 것이다.
대선기간 중 ‘DJ가 쓰러졌다’ ‘유세를 못 한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당시 대선주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토론회를 했는데 매주 TV토론회에 건강한 모습이 나왔다. 상대후보 측에서 퍼뜨린 유언비어는 그 TV토론회 때문에 거짓으로 탄로 났다.


- 곁에서 지켜본 DJ는 어떤 사람이었나.
▲ 온화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비서에게도 반말하는 일이 없이 항상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손이 따뜻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참 따뜻한 분이셨다. TV에서 슬픈 장면이 나오면 눈물을 흘리곤 하셨다. 이희호 여사와 산책을 하거나 드라이브를 다니셨는데 꽃을 좋아해 꽃이 많이 핀 곳으로 드라이브를 가시고는 했다.
새도 좋아했지만 키우지는 못했다. 새를 키우려면 가둬야 하는데 그게 철창 아니냐. 김 전 대통령 본인이 철창에 갇혀봤기 때문에 가두는 것을 싫어했다. 자택에 참새들이 모이면 모이를 주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 DJ 하면 깊은 학식이 생각난다. 그 학식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나.
▲ 워낙 명석하신 분이셨다. 어느날 신문에 기사가 났는데 한 달여 전에 난 기사를 보지 않고서는 이해가 어려운 기사였다. 김 전 대통령은 “한 달 전 모일에 무슨 신문 몇 면에 이런 기사가 났는데 찾아오라”고 하셨는데 해당 신문을 찾으면 찾으시는 기사가 분명 있었다. 사람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것은 놀라울 정도였다.
책을 정말로 많이 읽으셨다. 책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보니 주무실 때도 책을 보다 잠드는 경우가 많았다. 종종 글귀를 인용하시고는 했는데 그 말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말씀하셨다.
또한 선거 때 수행을 하다 보면 시간 날 때마다 영어 단어를 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생 공부를 하신 것이다.
예전에 권노갑 고문의 지인 중 한국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진 이가 있었다. 몇 년 동안 공부를 해왔는데 김 전 대통령을 만나 두 시간여를 이야기하더니 “몇 년간 배운 것을 두 시간 동안 다 알게 됐다. 존경스럽다”고 하더라. 그 정도로 학식이 깊으셨다.
 
- DJ의 공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임기동안 IMF를 극복하면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은 다 하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일 내에 IMF를 극복해냈을 뿐 아니라 외환보유고를 최고로 만들었다. 전 세계에 경제위기가 몰아쳤을 때 이를 넘길 수 있었던 것도 그것이 기반이 된 때문 아니겠냐.
정치, 경제 문제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토대도 닦았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해 애썼다. 남북 화해협력시대를 열자고 하셨고 서거 후에는 북한에서 특사가 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에 일조했다.
입원하시기 전에 9~10월경이면 북미간 대화가 이뤄질 거라고 하셨는데 지금 그렇게 되지 않았나. 김 전 대통령이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장관에게 대북관련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안다. 이 중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함으로써 북미간 대화의 장을 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내보다는 외국에서 김 전 대통령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 내가 봤을 때 전 세계를 통틀어 김 전 대통령처럼 고통 받고,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람이 없다. 감옥에 가고 사형선고를 당하고 57회의 연금까지.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한번도 굽히지 않았다.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라 부르며 진지한 경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이 장기집권을 위해 유포한 퍼트린 유언비어와 그로 인해 김 전 대통령을 비판하게 된 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이제 와서는 그들이 김 전 대통령이 어떤 이였는지 알게 되고 있는 것 같다.
 
- 시간이 더 흐르면 DJ에 대한 평가가 더 나아질 것으로 보는가.
▲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은 높이 평가될 것이다. 어떤 직책에 있었느냐가 아니라 과연 ‘행동하는 양심’으로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대한 부분이 평가받을 것이다.
 
- 정치권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 정치는 노장의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과 시민단체가 잘 뭉치길 바란다. 또한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당이 됐으면 좋겠다. 민주당은 정통 있는 정당인 만큼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해 잘해나갈 것으로 믿는다.
민주주의가 튼튼하고 국민들이 잘사는 세상이 되도록 정치가 잘해야 할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김 전 대통령을 모신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이었다. 항상 그분의 비서였으며 죽어서도 김 전 대통령을 모실 것이다. 그분의 유업인 국민화합에 만분지일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김옥두는 누구?

▲1938년 8월 18일 전남 장흥 출생
▲1985년~1992년 김대중 총재 비서실차장
▲1987년 평화민주당 김대중 대통령후보 경호실장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비서실장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2000년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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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내부 대혼란 막전막후

공수처 내부 대혼란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내부가 혼란스럽다. 소속 수사관들이 디지털 포렌식 장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비위를 저지른 정황이 포착됐다. 공수처의 자체적인 감찰을 통해 확인된 사안이다. 수사관 4명 중 3명은 인사혁신처에 중징계 의결을 요구한 상태다. 이들 중 일부는 보복성 징계라는 입장을 내놨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내부 감찰을 통해 수사관 4명의 비위 정황을 확인해 발표한 건 지난 6일이다. 3명은 수사기관에 고발 조치됐고 1명은 경징계 대상이다. 징계 대상자였던 한 수사관은 채 해병 특별검사팀에 오동운 공수처장에 관해 참고인 신분으로 진술했다. 공수처는 별개의 건으로 이번 징계와는 무관하다고 밝힌 상태다. 출장 중 비위 정황? 징계를 받은 수사관들은 공수처가 발주한 디지털 포렌식 관련 사업 담당자들이었다. 이 사업을 수주한 업체와 수사관들 사이에 사적인 친분이나 유착이 있었는지가 핵심 감찰 대상이었다. 지난 6일 공수처는 언론 공지를 통해 “최근 내부 감찰 과정에서 일부 직원의 비위 정황을 확인했다”며 “수사관 4명 중 3명에 대해서는 금일 인사처 중앙징계위원회에 중징계 의결 요구를, 1명에 대해서는 경징계 의결 요구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징계 요구를 한 3명에 대해선 뇌물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 조치를 했다고도 부연했다. 해당 수사관 3명은 최근 직위해제돼 업무에서 배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법조계에선 기관이 내부 직원들 징계를 이처럼 선제적으로 공지한 건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공수처는 “공직자 범죄를 수사하는 기관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한 점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감찰과 복무 점검을 강화해 공직기강을 확립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중징계 대상자 중 1명은 지난해 채 해병 특검팀에 오 처장 등 지휘부 관련 진술을 했던 인물이다. 이 수사관은 오 처장 등의 재판에 특검 측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공수처는 해당 수사관을 비롯한 징계 대상자 4명의 ‘비위 정황’이 확인됐다는 사유를 이유로 댔으나, 대상자들은 특검 조사와 증인 채택 등을 근거로 ‘보복성 징계’라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과장급 A씨는 다음 달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오세용) 심리로 열리는 오 공수처장과 이재승 공수처 차장 등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직무유기 등 혐의 사건 첫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채택됐다. 특검팀 관계자는 “피고인 측이 공판준비기일에 공소 사실 일체를 부인해 A씨 등 4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특검팀은 재판부에 재판 중계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특검법은 중계 신청이 있을 경우 법원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중계를 진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디지털 포렌식 담당 수사관 사업체와 유착? 공수처, 자체 감찰 통해 확인한 4명 징계 처리 재판부는 신청서를 검토한 후 재판 중계 허가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오 처장과 이 차장 등은 2024년 8월 송창진 전 공수처 부장검사의 위증 혐의 고발 사건을 접수하고도 사건을 대검찰청에 통보하거나 이첩하지 않고, 수사도 하지 않는 등 방치한 혐의로 기소됐다. 송 전 부장검사는 공수처가 수사외압 의혹을 들여다보던 시기에 각각 공수처 처장·차장직을 대행하며 2024년 2∼4월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관련 소환조사를 하지 말라고 지시하거나, 2024년 6월 윤석열씨,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청구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채 해병 특검팀이 지난해 이 사건을 수사할 당시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면서 오 처장 등의 혐의 관련 내용을 진술한 인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징계 대상자인 공수처 수사관 B씨는 <세계일보>와의 연락에서 “(새로 도입하기로 한 포렌식 기기 판매업체에서) 장비 운용교육을 해서 해외 출장을 갔는데, 공수처가 그쪽(업체)에서 부담한 식사 비용 등이 ‘뇌물’ 아니냐며 징계하려는 것”이라며 “새로운 장비를 도입하면 교육은 당연히 받아야 해서 그 비용은 사실상 도입 비용에 포함된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특정 업체와 수의계약을 한 것 아니냔 의혹에 대해선 “조달계약으로 한 것이고, 단독입찰을 했기 때문에 그 업체를 선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징계 대상자 중 한 명(A씨)이 (채 해병) 특검팀 (참고인) 조사에서 오 처장 관련 진술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일 때문에 보복성으로 지금 이렇게 (징계를) 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B씨는 지난해 말 공수처에 사표를 냈으나, 감찰과 징계 등을 이유로 수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전한 인력난 공수처는 최근 현직 부장판사와 변호사 간 재판 거래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해 두 사람에 대한 신병 확보에 나섰다. 지난 19일 공수처에 따르면 수사2부(부장검사 김수환)는 전날(18일) 수도권 소재 지방법원 소속 김모 부장판사에게 뇌물수수 혐의, 정 모 변호사(48)에게는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부장판사는 고교 동문인 정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을 맡아 가벼운 형을 선고해 준 대가로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고 정 변호사의 건물을 무상으로 이용한 혐의를 받는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김 부장판사가 2023년 지방 소재 법원에 부임하면서 해당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정 변호사와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결과 김 부장판사는 이후 1~2년간 정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 20여건을 맡아 1심에서 실형이나 집행유예 등이 선고된 형을 항소심에서 감형해 준 것으로 파악됐다. 정 변호사는 김 부장판사에게 현금, 고급 향수 등 금품과 자신이 소유한 건물 일부 공간을 1년간 무상으로 김 부장판사 아내의 바이올린 교습소로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부장판사는 친분으로 받은 단순 선물일 뿐 대가성은 없다는 입장이다. 정 변호사 측은 김 부장판사 가족이 건물을 무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외에도 공수처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 과정에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의혹과 관련해 대검찰청을 다시 강제수사 중이다. 이 수사는 공수처 수사3부(부장검사 이대환)가 지휘한다. 지난 18일 오후 공수처는 직원 5명을 서울 서초구 대검 청사에 파견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법률상 요건 긴박한 상황 다만 공수처가 요청한 자료를 대검이 임의제출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앞서 검찰은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이 법무부 출입국본부장 시절 불법적으로 김 전 차관을 출국금지했다며 직권남용 등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법원은 출국금지가 법률상 요건을 갖추지 못해 위법하다면서도 당시 긴박한 상황 등을 고려해 직권남용죄로 처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차 의원은 당시 자신에 대한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들을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차정현)는 지난 8일 김건희 특검팀에서 통일교 수사를 지휘한 채희만 수원지검 평택지청장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렀다. 채 지청장은 민중기 특검과 박상진 특검보가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의 진술은 수사 대상이 아닌 것 같다’는 취지로 말한 정황을 당시 조사에서 진술했다. 공수처는 지난해 8월 특검팀이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2018~2020년 더불어민주당 소속을 포함한 5명의 정치인이 교단으로부터 금품을 제공받았다는 진술을 듣고도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만 조사했다는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당시 특검팀은 수사보고서만 작성한 뒤 지난해 11월 내사 사건번호를 부여해 뒀지만 수사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경찰에 사건을 이첩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특검팀이 편파 수사를 했다며 민 특검과 해당 수사팀을 직무유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로부터 의혹을 넘겨받은 공수처는 함께 고발된 파견검사의 공범으로 민 특검을 수사하는 게 가능하다고 판단, 사건을 배당하는 등 수사에 나섰다. 공수처가 과거보다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특히 지난달 법원이 잇달아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 적법성을 인정한 것도 공수처의 위상이 올라가고 있다는 증명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전날 윤씨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무기징역 선고에서 “공수처는 내란죄에 관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일부서 “특검에 오 처장 진술에 대한 보복” 특검, 오 재판 중계 신청 공수처엔 부담될 듯 지난 1월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재판장 백대현)도 공수처가 직권남용 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내란 우두머리 혐의까지 함께 수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바 있다. 다만 수사력 논란은 여전히 물음표다. 올해 출범 5년을 맞은 공수처가 기소한 사건은 6건, 유죄가 확정된 사건은 선고유예 1건뿐이다. 인력도 출범 이후 매년 결원 상태가 유지되다 지난해 말에야 검사 정원(20명)을 겨우 채웠다. 공수처의 한 관계자는 “검사의 경우 3년 단위 임기제다 보니 우수한 인적 자원을 모으기 힘들다는 것이 큰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바뀌게 될 수사기관의 지형도 공수처에게는 부담이다. 공수처는 지난달 “공수처 수사 대상 범죄에 관해 중수청에 우선적 지위를 갖는다”며 중수청 법안 58조 2·3항에 ‘(공수처는 제외한다)’를 추가할 것을 주장했다. 공수처와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텅) 간 수사 범위에 대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공수처와 다른 수사기관의 관계를 못 박은 공수처법 24조 1·2항과 유사해 보이는 대목이다. 공수처는 “접수되는 사건 대부분이 공직자 범죄인 공수처는 민원성 고발을 포함한 모든 사건을 중수청에 인지 통보해야 하는 결과가 된다”며 “이는 인지 통보 제도 취지에도 반한다”고 우려했다. 단, 공수처는 중수청 법안 58조 3항 중 ‘공수처법이 적용되는 범죄수사에 대해 공수처에 이첩을 요청한 경우엔 공수처장이 이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단서를 ‘삭제’하자면서 “공수처와 중수청 간 사건 이첩 처리는 중수청장의 일반적인 수사 협조 요청과 공수처장의 사건 이첩 규정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공수처법 24조 3항엔 ‘공수처장은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 범죄를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될 때 해당 기관에 사건을 이첩할 수 있다’고 돼있다. 공수처는 중수청법 제정과 맞물려 관련 법령들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지 통보제 취지에 반해” 공수처는 “검사의 수사 권한을 전제로 한 현행 ‘형사소송법’ 관련 규정의 검토 및 정비도 추진될 필요가 있다”며 “수사기관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게 해 수사권 남용을 방지하고, 각 기관 수사 범위에 관한 기준을 명확히 제시해 불필요한 경쟁이나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사 대상 범위에 관한 규정 등 통일적·체계적 정비가 동시에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3급 이상 중수청 공무원의 범죄는 공수처법상 공수처 수사 범위에, 4급 이하 중수청 공무원의 범죄는 경찰법상 국가수사본부 수사 범위로 명시하는 방안이 제시된 바 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