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의 전쟁'으로 얼룩진 '인혁당 잔혹사' 전모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7.24 13:05:21
  • 댓글 0개

과다 지급한 나랏돈 다시 돌리도!

[일요시사=정치팀] 유신정권의 '사법살인'으로 불리는 '인혁당사건'. 그 역사적 비극으로 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올해로 38년이 지났다. 의문사진상규명위는 이들의 혐의가 모두 조작됐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그제서야 이 사건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족들과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악연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다. 이번엔 수백억에 달하는 '쩐의 전쟁'이다.



'인혁당'이라는 이름으로 집행된 사형은 1964년과 1974년 총 두 차례에 걸쳐 있었다.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박 전 대통령의 한일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가 일어났을 때 제1차 인혁당 사건이 일어났다. 제2차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정권의 유신체제에 대한 반대운동이 본격화되던 1973년에 있었다. 체제에 반대한 이들은 모두 '빨갱이'로 몰리며 국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반발하면 '지하세력'

1972년 12월 박정희정권의 유신체제 발족으로 국민적 저항이 일어났다. 1973년 10월부터 시위 등을 통한 박정희정권의 유신체제에 대한 반대운동이 본격화됐다. 이때 박 전 대통령은 2차 인혁당 사건을 계획한다.

박 전 대통령은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이라는 지하조직이 불순세력의 배후조종 아래 사회 각계각층에 침투해 인민혁명을 기도한다'는 요지의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민청학련과 관련된 일체의 활동을 금지하는 긴급조치 제4호를 공포했다.

중앙정보부가 유신반대 투쟁을 벌였던 민청학련을 수사하면서 배후·조종세력으로 '인혁당재건위'를 지목해 이를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한 내 지하조직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당시 재야단체, 학원가의 반체제 데모가 잇따르고 일부 언론인, 교수, 종교인, 재야인사들이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개헌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반발이 거세지고 있던 시기였다. 이와 관련해 1024명이 영장 없이 체포됐으며, 그 중 253명이 군법회의 검찰부에 구속 송치됐다.

1975년 4월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상고가 기각되어 사건 관련자 23명 중 서도원 등 8명에게는 사형, 김한덕 등 7명에게는 무기징역, 나머지 피고인에게는 징역 15~20년의 중형이 확정되었다. 1975년 4월9일 새벽, 판결이 확정된 후 불과 18시간 만에 8명에 대한 사형이 전격적으로 집행됐다.

25년이 흐른 2000년 군사정권 시대에 국가의 폭력으로 발생한 의문사 사건들을 밝히기 위해 대통령 직속기구로 구성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한 재조사에 착수해 인혁당 사건이 고문에 의해 과장·조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1·2심 인혁당사건 관련자 사형된 1975년 4월9일부터 손해배상
대법원은 손배소송 종결 시부터 인정…국정원 "251억 돌려 달라"

그리고 그해 12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은 2005년 12월에 시작되었고, 2007년 1월23일 서울중앙지법은 사건에 연루돼 사형이 집행된 8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2008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되면서 인혁당 사건 유족들의 국정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도 진행됐다. 인혁당 사건은 다 끝날 것처럼 보였지만 문제는 여기서 다시 발생했다. 손해배상액의 산정기준인 기산일에 대해 하급심과 대법원이 각각 다른 판결을 내놓은 것. 당혹스러운 건 유족이었다.

1심은 국가가 위자료와 인혁당 재건위 유죄 판결이 확정된 시점부터 5%의 지연이자를 지불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1심에 따르면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1975년 4월9일부터 이자를 산정해야 한다. 이에 따르면 전씨 등 유족 68명은 위자료 235억원에 지연이자 402억원을 더한 637억원을, 이씨 등 10명은 위자료 44억원과 지연이자 78억원을 더한 122억원을 받게 된다.


유족들은 가집행을 신청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법무부는 2009년에 배상액의 3분의 2 정도인 490억원을 우선 지급했다. 2심 판결도 1심과 같았다.

그러나 2011년 1월27일 대법원은 하급심의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통상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이자는 불법행위 시점부터 발생하지만 불법행위 이후 장시간이 흘러 통화가치 변동으로 과잉배상의 문제가 생길 경우 사실심(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변론종결 시점부터 발생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손해를 배상하라는 2심 판결이 있었던 때부터 지연이자가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2심 변론이 종결되기 전에 이미 위자료를 받았기 때문에 지연이자는 발생하지 않아 실제 유족들이 받을 배상액은 위자료 279억원이다.

서울고검은 2011년 8월31일까지 과다 지급된 211억원을 돌려달라고 요청했으나 가족들은 거절했다. 결국 국정원은 이달 3일 항고하는 동시에 "211억원과 이미 받은 지연이자에 대한 이자 40억원 등 총 251억원을 돌려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리에 문제없어"

한 법조 관계자는 국정원의 부당이득반환소송에 대해 "대법원에서 지연이자 소멸시효가 10년인 것을 감안해 2년 전부터 발생한 지연이자만 인정해주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국가가 소송을 막았다거나 소송을 제기할 수 없었던 특별한 이유를 유족들이 입증하지 않는 한, 이후 지연이자를 모두 보상받기가 쉽지 않다. 대법원의 판결도 법리상으로는 문제 될 것이 없다"라고 답했다.

유족들이 과다 지급된 손해배상금을 반환하지 않을 경우에 대해서는 "그럴 경우 강제집행이 진행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대법원의 판결을 둘러싸고 국정원과 유족이 다시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사법살인'이라는 오명을 남긴 역사적 비극이 언제쯤 끝이 날 것인지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