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을을 위한 정치’ 중간점검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6.20 11: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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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슈퍼갑 과연 막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정치팀] ‘남양유업’ 사태로 갑을관계의 맨얼굴이 드러나자 민주당이 ‘을지로위원회’를 만들며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재수 끝에 수장자리에 오른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슬로건도 ‘을을 위한 정치’다. 구호는 그럴싸하다. 그렇다면 그동안 이른바 ‘슈퍼갑’으로 중소기업 위에 군림했던 대기업의 낡은 관행은 얼마나 개선됐을까? 아직 뚜렷한 변화는 찾아볼 수 없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칠 것이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을지로’란 ‘을(乙)을 지원하는 로(law)’를 의미한다. 민주당은 갑을 관계의 사슬을 끊는 ‘을지로’를 마련한다고 공언했다. 국회에선 연일 을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현장 방문도 이어졌다. 하지만 정작 기업들의 횡포는 여전하다.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을 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갑은 언제나 ‘오리발’

민주당은 ‘을 지키기’ 파수꾼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결의했다. 민주당은 결의문을 통해 “지금 대한민국은 비정상적이고 약탈적인 갑을관계가 만연해 있다. 왜곡된 경제 질서와 불평등한 갑을관계로 인해 수많은 을들이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재벌과 권력자들이 탈세와 재산은닉을 위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고 있다”라며 “이래서는 통합도 상생도 불가능하다. 2013년 을의 처지에 몰린 국민을 지키는 것은 민주당에게 부여된 시대적 과제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을지로위원회’를 구성하고 현장에 달려가 부당한 계약의 시정과 피해보상 등의 성과를 도출해냈다고 알렸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일찍부터 ‘을을 위한 정치’를 강조해왔다. 김 대표는 6월 국회를 ‘을의 눈물을 닦아주는 국회로 명명했다’면서 이른바 남양유업 방지법 등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법안 35개를 이미 발표했다고 말했다.

또한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만들자며 대통령과 여야 지도자, 경제주체들이 참여하는 갑을관계 정상화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위원회의 구성을 제안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이미 매체를 통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갖고 있는 불공정거래에 대한 조사권·조정권을 지방자치단체에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유통법 개정안 등을 이르면 이번 주 내로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 의원은 또한 “갑의 횡포가 극심한 하도급거래, 가맹사업거래, 대규모 유통업거래 분야에서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공정위의 인력부족 문제로 실효성 있는 규제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민주당의 ‘을 지키기 경제민주화 추진위원회’도 을지로 입법을 적극 지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민 의원은 “그동안 불공정거래에 대한 조사권이 공정위에만 있어 피해사례가 발생해도 신고하는 데 접근성이 떨어져 쉬쉬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또 공정위의 인력부족 탓에 갑의 횡포에 대한 실태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공정거래위원회는 민 의원의 의견에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자체 공무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져 개정안의 입법 취지를 살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공정거래법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여서 관련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지방공무원들이 각종 분쟁상황을 조정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현장을 방문해 직접 을의 고충을 들었다. 우원식 위원장 등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관계자들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유통업체 대리점을 방문해 점주의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을지로’란? ‘을(乙)을 지원하는 로(law)’를 의미, 민주당 의원 주축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실천모임’ 경쟁적으로 공정거래 법안 내놔

현장조사를 실시한 을지로위원회는 그동안 소문으로만 존재했던 농심의 횡포가 사실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을지로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농심 특약점주 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농심상품을 공급받아 수익을 올리는 업체는 6개에 불과했다.   


을지로위원회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히면서 “나머지 27개 업체는 마진율이 마이너스이거나 0%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또한 부당한 매출목표 부과에 대해서는 33개 업체 모두가 인정하고 있고, 이 중 21개 업체는 매출목표가 ‘매우 과다’하다는 답변을 해 농심에 의한 특약점들의 압박 수위가 상당히 높았다고 지적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특정상품 밀어내기, 판매대상별로 거래조건을 달리하는 이중가격정책, 판매부진시 일방적 계약해지 등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농심의 반박도 이어졌다. 농심 측 관계자는 “농심은 일방적으로 목표를 강제하지 않으며 모든 물품을 사전 협의 없이 발주할 수 없고 대리점도 이를 인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농심은 모든 유통채널에 동일한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일축했고, ‘노예계약서’에 대해서도 “일방적 계약해지 사례는 현재까지 단 1건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같이 업계는 불공정거래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지만, 국회가 갑의 횡포에 대해 경쟁적으로 입법 발의를 하면서 업계는 더욱 촉각을 세우고 있다.

실제로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6월 갑을관계 관련 개선법을 계속 제출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지난달 대기업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대리점 및 영업점에 제품을 강매하는 등 손해를 끼치면 대기업에 손해액의 3배를 청구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등 야당에서는 가맹사업법, 하도급법, 대규모유통업 거래공정화법 등의 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또한 제품 밀어내기 등 불공정거래로 말미암은 손해에 3배 이내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고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매출액의 3%의 이내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제정안도 국회에 제출됐다. 

업계 관계자는 “남양유업 사건 이후 유통업계로 관심이 집중되면서 새 사업은 물론이고, 트집 잡힐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전반적으로 조심하는 추세다. 때문에 유통업계 침체도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주체 존중해야

공정위 전속 고발권 등에 대한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문제가 자체적으로 해결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새누리당과의 의견 조율이 필요한 부분으로, 법안 통과에 작용할 재계의 입김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법안 통과 후 지속적인 감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각각의 경제주체들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인식변화가 이루어 지지 않으면 갑의 횡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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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