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쥐락펴락 ‘국정원 조작사’ 대추적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2.14 13: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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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절대반지’ “대권 잡으려면 이것부터 쥐어라!”

?[일요시사=정치팀] 정권이 위기에 닥치면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정국 한 가운데 있다. 뜨뜻미지근한 경찰의 수사 태도 때문에 국정원 댓글조작사건이 대선을 한 달이나 넘기고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지만, 쉽게 잠잠해질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사실이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약 한반도에서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기관의 ‘조작’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역사가 쓰여졌을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가 ‘공작’에 기생해 권력을 휘두르는 ‘정보기관과 권력의 유착관계’를 되짚어 보았다. 

 


조작은 조작인데, 이번엔 다르다. 조작도 진화하는 모양이다. 멀쩡한 사람이 빨갱이로 둔갑해 옥고를 치르고 고문을 당하던 그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정보화시대에 맞게 그래도 ‘인터넷 댓글 조작’이다. 국정원 직원이 십 수개의 아이디를 이용해 야권 대선 후보를 향한 여론을 조작했다. 대선 직전 ‘조작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중간 수사를 발표해 국민으로부터 공범 혐의를 받고 있는 경찰이 첫 등장인물이라는 점이 새롭다. 모습은 바꿔도 습관은 바뀌지 않나 보다.

개헌여론 안 좋아
돌파용 ‘북풍조작’

불리한 판세를 뒤집기 위한 ‘북풍조작’은 국정원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1961년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탄생하기도 전이다.

1958년 이승만 전 대통령은 총선의 판세를 뒤엎기 위해 엄청난 사건을 계획했다.

하필이면 이게 성공했다. 국가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 조작이 이미 반세기 전에 태동한 것이다. 북풍조작의 역사적 뿌리나 다름없는 그 유명한 ‘진보당 사건’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시대의 풍운아’ 조봉암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며, 북풍조작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됐다. 이 전 대통령이 3선을 하기 위해 제출한 개헌안이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에서 1표가 부족해 부결이 선포되자, 자유당 의원만이 참석한 가운데 ‘4사5입’ 원칙을 주장하며 부결선포를 취소하고 가결을 선포한 사건이 발생했다. 4사5입 개헌 파동을 계기로 여당인 자유당이 국민의 신망을 잃게 됐다.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내고 진보당을 창당한 조봉암은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이 전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도전했던 인물이다. 선거과정을 보더라도 조봉암은 이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서면서 위협적인 인물로 급부상했다. 이후 이 전 대통령은 조봉암을 숙청하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중앙정보부 태어나기 전 1958년 이승만 ‘북풍조작’으로 총선압승
시대의 풍운아 조봉암, ‘동백림 사건’ 관련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이 전 대통령은 위헌적인 개헌으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총선을 앞두고 있었다. 조봉암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대책을 수립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조봉암은 북한 간첩과 접선하였고, 공산 집단이 주장하는 통일방안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진보당 사건에 연관된 몇몇 관계자들은 대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어 석방되었으나, 조봉암은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1959년 11월 사형이 전격적으로 집행됐다. 총선은 이 전 대통령의 압승이었다.

이후 조봉암에 대한 사면복권신청서가 국회에 제출되는 등 각고의 노력이 이어졌다. 그리고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조봉암이 연루된 진보당 사건이 이승만 정권의 반인권적 정치탄압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판결에 대한 재심 등을 권고했다. 

2011년 1월20일 대법원은 국가변란과 간첩 혐의에 대해 전원 일치로 무죄를 선고했으며, 조봉암의 신원은 복권됐다. 조봉암이 북풍조작으로 목숨을 잃은 지 52년 만의 일이었다.


이후 선거 때만 되면 정보기관에 의해 이 같은 일들이 자행되기 시작했다. 1967년 박정희 정권하에서 일어난 ‘동백림 조작 사건’이 국가 정보기관에 의해 벌어진 첫 대규모 공안사건이다.

박정희의 공작단
관련자만 203명

당시 6월8일에는 국회의원 총선이 있었다. 총선의 부정 의혹에 대한 비판 분위기가 확대되자 박정희 정권은 중앙정보부를 동원해 혐의가 미미한 사람들에게 이를 확대해 뒤집어씌웠다.

중앙정보부는 당시 동독의 수도인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북괴 대남 적화 공작단에 대한 수사 결과를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관련자만 무려 203명이었다. 발표에 따르면 이들이 동백림 소재 북한대사관을 왕래하면서 이적(利敵)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입북 또는 노동당에 입당해 국내에 잠입, 간첩활동을 해왔다는 혐의였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간첩행위를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들이 간첩행위를 했다는 재판결과는 고문에 의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해외 유학생과 교민들의 강제연행까지 이루어져 외교적 마찰까지 불러왔다. 박정희 정권은 결국 서독 및 프랑스의 의견을 수용해 사건 관계자에 대해 잔여 형기 집행을 면제, 사형수까지 모두 석방했다. 하지만 이미 사형을 당한 이들의 목숨을 다시 살릴 방법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동백림 사건에 의해 부정선거 규탄 시위는 냉각됐다. 진보당 사건에 이어 북풍조작이 또다시 성공해 정권에 힘을 실어준 격이었다.

1987년 전두환 군사정권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위와 같은 조작을 기획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수지김 사건’으로 정권 유지를 위해 저질러진 가장 유명한 공안사건이다. 당시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한열 치사 사건’ 등 전두환 정권의 최악의 위기상황이었다.

홍콩에서 남편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수지김은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에 의해 북한 공작원으로 둔갑했다. 한순간에 빨갱이의 핏줄이 된 수지김의 가족 중 3명이 정신병과 화병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유족들의 진상규명에도 국정원의 압력에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다가 2003년 8월14일 42억원의 배상판결이 내려졌다. 국정원은 같은해 8월21일 사건조작을 인정하고 공식으로 사과했다. 평범한 한 여성을 간첩으로 몰아 정치적으로 이용한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데는 무려 1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진실 밝히려면
오랜 세월 기다려야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안기부는 맹활약했다. 이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간첩사건과 연루시키려는 ‘중부지역당 사건’과 김영삼 전 대통령을 겨냥한 ‘초원복집 사건’이 대선을 앞두고 연이어 일어났다.

10월6일 안기부는 “남로당 이후 최대의 간첩단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남한 조선노동당’ 가담자 95명을 적발해 이 가운데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62명을 적발, 300여 명을 추적 중이라고 발표했다.


안기부는 당시 평민당 후보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가 이 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시켰다. 이 때문에 안기부는 당시 여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거 후 이 사건은 조용히 덮였다.

초원복집 사건은 선거 직전에 일어났다. 정부 기관장들이 부산의 초원복집이라는 음식점에 모여 제14대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것이 도청에 의해 드러난 사건이다. 이 자리에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이 함께했다.

이날 비밀회동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대화가 오갔다. 이같은 발언은 정주영 국민당 후보 측이 민자당의 치부를 폭로하기 위해 전직 안기부 직원들과 공모하여 도청장치를 몰래 숨겨서 녹음한 것이었다.

‘수지김 사건’으로 가정파탄, 역풍 맞은 ‘초원복집’ 안기부직원 연루
“권력자의 정보기관 사유화” 전문가들 경고…인권유린 실태 심각

결과는 ‘역풍’이었다. 김영삼 후보 측은 이 사건을 음모라고 규정했다. 주류 언론은 관권선거의 부도덕성보다 주거침입에 의한 도청의 비열함을 더 부각시켰다. 영남세력은 더욱 결집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권을 잡았다.

그리고 5년 후 북풍은 다시 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을 막기 위해 안기부는 또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북한에서 월북한 오익제라는 인물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편지가 안기부에 의해 공개됐다. 그리고 김정일이 보낸 선거자금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는 내용의 ‘공작’이었다. 하지만 북풍은 미미했다. 안기부의 조작이 선거의 판세를 뒤집지 못했다. 국민은 더 이상 ‘레드컴플렉스’에 빠져있지 않았다. 


이번 국정원 댓글조작사건을 보더라도 국정원의 선거 개입 논란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문제다. 전문가들은 국정원이 조작을 통해 억지로 여론을 형성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권력자의 정보기관 사유화’를 꼽고 있다. 실제로 정권이 바뀌면 국정원은 수뇌부뿐 아니라 실·국장급, 과장·계장 등 대부분의 고위 계급들이 대통령의 측근 비선라인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국민도 직원도
조작의 희생양

이 때문에 국정원은 매번 중요한 대북정보는 놓치고,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오히려 특정세력을 위해 정보를 사용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인권을 짓밟는다는 우려다. 거기엔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조작의 도구로 쓰인 국정원 직원의 인권도 마찬가지라는 경고의 목소리다.

제18대 대선의 중심에 있는 국정원 댓글조작사건은 앞으로 얼마나 세월이 흘러야 진실이 밝혀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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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