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흔드는 안철수 기막힌 ‘타이밍정치’ 풀스토리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2.12.11 10: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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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밀당의 귀재’…약발은 ‘장외’에서만 통한다?

[일요시사=정치팀]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자청했다. 안 전 후보는 지난 6일 “오늘이 대선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라면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했다. 문 후보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의 대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시기였다. 안 전 후보의 ‘기가 막힌’ 타이밍은 여전했다. <일요시사>가 ‘명불허전’ 안철수의 ‘타이밍정치’ 풀스토리를 엮어보았다.

2009년 6월17일.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의 ‘우연한’ 대선 사전작업이 이루어졌다. 2012년 제18대 대선을 3년여 앞둔 시기. 당시 교수의 직함을 달고 있었던 안 전 후보는 <무릎팍도사>라는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안 전 후보는 단번에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궜다. 시청률도 껑충 뛰었다. 출연 전후, 안 전 후보에 대한 기사는 눈에 띄게 늘었다. 이때 “안철수 교수를 차기 대선후보로 추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안철수 대권론’ 탄력
‘박근혜 대세론’ 휘청

예능프로그램은 안 전 후보를 일거에 ‘대통령감’ 반열에 올렸다. <무릎팍도사> 출연 이후 안 전 후보의 당시 발언이 어록으로 엮여 회자될 정도였다.

당시 <무릎팍도사>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안 전 후보를 “세계 IT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님” “외국산 소프트웨어의 공급에서 나라를 구한 이 시대의 독립투사”라는 칭찬이 쏟아져 나왔다.

안 전 후보의 <무릎팍도사> 출연은 그의 정치인생에 ‘복선’ 같았다. 제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지금 그때를 뒤돌아보면 그렇다. 3년여의 세월은 안 전 후보를 향한 ‘막연한 열망’을 ‘새 정치 희망’으로 현실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안 전 후보의 <무릎팍도사> 출연이 조금이라도 늦었거나, 혹은 조금이라도 더 빨랐다면 어땠을까. 지금까지 이 정도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2009년 <무릎팍도사>, ‘우연한’ 정치인생 사전작업
서울시장후보 ‘통큰 양보’로 유력 대선주자 등업 

과연 안 전 후보에 대한 열기는 식지 않았다. 2년4개월여가 지난 2011년 10월 ‘안철수 대권론’은 탄력이 붙었다. 반면 4년여 동안 줄곧 이어져왔던 ‘박근혜 대세론’은 흔들렸다.

서울시장선거를 둘러싸고, 교수였던 안 전 후보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한편의 ‘아름다운 드라마’를 선보였다. 서울시장 당선이 유력했던 안 전 후보는 여론조사 한 자리 지지율을 기록하는 박 후보에게 후보직을 기꺼이 양보했다.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장면에 시민들은 환호했다.

여당은 비난 일색이었다.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는 “안철수 원장의 지원이 치졸하다”며 정치하려면 국립대 교수직부터 사퇴하라고 몰아붙였다. 그럴수록 안 전 후보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더욱 단단해졌다.

안 전 후보의 ‘굳히기’는 탁월했다. 일부 여론에서는 이것이 ‘대선 전초전’과 다름없다며, 올해 있을 대선에 안 전 후보가 미칠 영향력을 점치기도 했다. 본격적인 ‘안철수 정치’가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안철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지난 2011년 11월14일 안 전 후보는 1500억원 상당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다고 선언했다.


안철수의 탁월한 ‘굳히기’
말만 하면 ‘대선 전초전’

안 전 후보는 “늘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작은 결심 하나를 실천에 옮기려고 합니다. 그것은 나눔에 관한 것입니다”라는 메일을 보내 기부의사를 밝혔다. 여론은 ‘이것이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극찬했다.

당시 안 전 후보는 이미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고 있었다. 정치권은 안 전 후보가 “이미 정치입문 신호탄을 쐈다”며 그의 기부를 대선을 앞둔 포석이란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안 전 후보는 “평소 생각한 것을 실천한 것뿐”이라면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확대해석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안 전 후보의 기부 약속은 2012년 2월6일 이루어졌다. 그는 ‘안철수재단 설립계획 발표’ 기자간담회를 갖고 향후 재단의 성격과 운용계획, 자신의 역할 등에 대한 의견 등을 밝혔다.

이날 안 전 후보는 주목할 만한 발언을 한다. 그동안 관심을 모았던 정치참여에 대해 “우리 사회의 발전적인 변화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계속 생각 중이다. 정치도 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말하며 정치참여 쪽으로 한 발 나아갔다.

안 전 후보는 이후 정치현안에서 한 발 떨어진 채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지난 7월19일 그는 <안철수의 생각>이란 저서를 출간했다. 그의 저서는 엄청난 판매 부수를 기록했고, 이는 사실상 대선 출마 선언으로 여겨졌다.

여세를 몰아 안 전 후보는 7월23일 예능프로그램인 <힐링캠프>에 출연한다. 이 역시 ‘흥행대박’이었다. 뿐만 아니라 트위터에서는 안 전 후보의 <힐링캠프> 어록이 1000여 회 가까이 리트윗되는 등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저서 출판, 예능 출연 동시
검증 피하고 올림픽 덕 보고

안 전 후보는 당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혹독한 검증 세례를 앞두고 있었다. 그의 저서 출간과 예능 출연은 이한 검증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는 평이다.

게다가 안 전 후보는 7월28일 개최된 런던올림픽의 열기에 힙 입어 저서 출판과 예능프로그램 출연으로 인한 상향세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이후 안 전 후보는 국민의 반응을 살피며 호흡조절에 들어갔다. 자신이 표현한 대로 ‘지지하는 사람들의 뜻을 정확히 파악해야 진로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일 것으로 풀이됐다.

충분히 숨을 고른 그는 대선 출사표를 던지기 위해 본격적인 잠행에 돌입했다. 민주통합당 경선이 끝난 지난 9월16일. 대선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후보는 양자·다자 모두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안 전 후보의 지지율은 휘청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안 전 후보는 9월19일 본격적으로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전세를 완전히 뒤집었다. 문 후보의 고공행진은 ‘하루천하’로 막을 내렸고, 안 전 후보는 고지를 탈환했다. 

민주당 경선 승리한 문재인 압박하며 본격 대선출마 
추락하는 문재인에 날개 달아줘, 정국 최대이슈 장악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던 안 전 후보의 타이밍은 대선 출마 이후 어쩐 일인지 전 같지 않았다. 그의 타이밍 영향력은 마치 ‘장외’에서만 먹히는 것처럼 보였다.

출마선언 이후 안 전 후보는 민주당에 의해 끊임없는 ‘단일화 압박’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안 전 후보는 매번 새 정치를 요구하며 단일화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피로감도 극에 달했다.

여론조사 지지가 하락하자 안 전 후보는 지난 11월5일 문 후보에게 회동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단일화 논의는 진전되지 않았다. 안 전 후보는 문 후보에게 번번이 주도권을 내줬다. 정국의 이슈가 ‘새 정치’를 벗어나 ‘단일화룰’에 초점이 맞춰졌다. 안 전 후보에게는 최대의 정치적 위기였다.

결국 안 전 후보는 지난 11월14일 단일화를 중지하고 나섰다.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여론은 안 전 후보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결국 그는 11월23일 사퇴를 선언했다. 대선 후보 등록 이틀 전, 금요일 밤이었다.


주말의 모든 이슈는 안 전 후보의 사퇴에 집중됐다. 악화일로로 치닫던 그에 대한 여론이 회복될 조짐을 보였다. 안 전 후보의 타이밍이 다시 위력을 발휘했다.

12월3일. 안 전 후보는 캠프 해단식을 가졌다. 장외로 돌아간 그는 다시 대선의 최대 화두가 됐다. 정치권은 그의 발언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웠다.

주말 앞두고 사퇴선언
문, 떨어지자 지지선언   

그리고 지난 6일 안 전 후보는 추락하는 문 후보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안 전 후보는 문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오차범위를 넘어 추월당하던 문 후보는 안 전 후보의 지지로 지난 7일 KBS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43.5%를 기록한 박 후보를 43.3%로 바짝 추격했다.

안 전 후보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정치권은 이처럼 요동쳤다. 그는 숨을 죽이고 때를 기다려 ‘일거다득’했다. 10여 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판을 다시 초박빙의 살얼음판으로 몰아가고 있는 안 전 후보의 행보에 19일의 승부도 귀결될 전망이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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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