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일감 몰빵' 기업 내부거래 실태 (79)녹십자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3.04.12 10: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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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 밀어주고 야금야금 빼먹기

[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의 자회사 퍼주기. 오너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반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민단체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적해 왔지만 변칙적인 '오너 곳간 채우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관행을 손 볼 태세다. 어디 어디가 문제일까.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정부의 타깃이 될 만한 '얌체사'들을 짚어봤다.

 

'백신 명가' 녹십자는 지난달 기준 총 15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중 오너일가 지분이 있으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회사는 '녹십자엠에스'와 '녹십자이엠'이다. 두 회사는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줘 적지 않은 실적이 '안방'에서 나왔다.

2003년 설립된 녹십자엠에스는 체외진단용시약, 의료기기, 혈액백 등 의약 관련 제품 제조 및 판매 업체다. 지난해 녹십자로부터 인계한 일부 영업부문도 영위 중이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본점을, 충청북도 음성군에 제조시설을 두고 있다.

2007년부터 급증

문제는 자생력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분석 결과 매출의 상당 부분을 내부거래로 채운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통해 수백억원의 고정 매출을 올렸다.

녹십자엠에스는 지난해 매출 550억원 가운데 125억원을 계열사들과의 거래로 올렸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매출 대비 내부거래율은 23%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전의 상황은 완전 다르다. 계열사가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사실상 지속이 어려울 정도였다. 녹십자엠에스는 2010년 매출 293억원을 모두 녹십자에서 채웠다. 내부거래율이 100%인 것이다. 상품 납품, 용역 계약 등을 통해서다.


녹십자엠에스의 계열사 의존도가 처음부터 높았던 것은 아니다. 2006년까지 내부거래율이 50%를 밑돌다 이듬해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 거래 금액도 수십억대에서 수백억대로 늘었다. 녹십자엠에스가 계열사와 거래한 매출 비중은 2006년 44%(총매출 108억원-내부거래 47억원)였다. 이후 2007년 91%(140억원-127억원)로 오르더니 2008년 100%(213억원-213억원), 2009년 99%(277억원-276억원)까지 치솟았다. 녹십자가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녹십자엠에스는 녹십자 등 계열사들을 등에 업고 거둔 안정된 매출을 기반으로 꾸준히 몸집을 키워왔다. 설립 이후 줄곧 적자를 내다 2007년 흑자로 전환, 이듬해부터 매년 10억∼50억원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거뒀다. 총자산의 경우 2004년 58억원에서 지난해 267억원으로 7년 만에 4배 이상 불었다. 같은 기간 24억원이던 총자본은 115억원으로 5배 가까이 늘었다.

녹십자엠에스는 이를 토대로 최근 3년간 해마다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했다. 2009년 4억5000만원, 2010년 5억4000만원, 지난해 5억6000만원을 배당했다. 이중 일부를 대주주인 오너가 챙겼다.

매출 100% 녹십자에 의존 "매년 수백억 거래"
허일섭 회장 지분 소유…짭짤한 배당금도 챙겨

2001년 설립된 녹십자이엠은 병원, 연구실험실, 제약공장, 클린룸 등 특수건물 공사업체다. 제약·의료시설의 기계설비 시공 및 유지보수 용역 사업도 한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녹십자 사옥에 본사가 있다.

녹십자이엠도 매출의 절반 이상을 내부거래로 채우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계열사 매출 비중이 50%에 달했다. 총매출 261억원에서 내부거래액이 131억원이나 됐다. 일거리를 준 '식구'들은 녹십자(84억원)와 녹십자이씨(36억원), 녹십자엠에스(9억원), 지씨제이비피(1억원) 등으로 공장신축, 리모델링, 생산시설, 기계설비 등의 공사를 맡겼다.

녹십자(53억원), 녹십자이씨(90억원), 녹십자엠에스(4억원), 지씨제이비피(1억원) 등 계열사들은 2010년에도 녹십자이엠의 매출 258억원 중 149억원(58%)에 이르는 일감을 퍼줬다. 녹십자이엠의 내부거래율은 ▲2005년 63%(220억원-138억원) ▲2006년 51%(331억원-169억원) ▲2007년 85%(426억원-360억원) ▲2008년 91%(436억원-398억원) ▲2009년 54%(200억원-107억원)로 나타났다.


녹십자엠에스와 녹십자이엠의 내부거래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너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녹십자엠에스 최대주주는 50.91%(381만8040주)의 지분을 보유한 녹십자다. 이어 허일섭 녹십자 회장이 21.91%(164만3520주)로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다. 나머지 27.18%(203만8440주)는 기타 주주들이 소유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일부 특수관계인 지분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녹십자이엠은 녹십자홀딩스(94%·18만8000주) 자회사다. 녹십자홀딩스는 녹십자 지주회사로, 허 회장 10.88%(511만7770주) 등 24명의 오너일가가 각각 0.1∼3.3%씩 친인척 지분이 총 40%에 이른다. ‘허씨 가족’들이 녹십자홀딩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녹십자이엠을 지배하는 셈이다. 고 허영섭 전 회장의 지분(13.18%·619만6740주)도 아직 남아있다.

허 회장은 허 전 회장의 동생으로 형과 함께 지금의 녹십자를 일군 장본인이다. 고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의 5남(장남 허정섭 한일시멘트 명예회장, 3남 허동섭 한일시멘트 회장, 4남 허남섭 서울랜드 회장) 중 차·5남인 허 전 회장과 허 회장은 녹십자·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를 같이 맡는 등 모범적인 '형제경영'으로 녹십자를 이끌었다. 형제는 B형 간염백신, 유행성출혈열 백신, 수두 백신, 신종플루 백신 등을 개발해 녹십자를 백신분야에서 세계 10위권 제약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꾸준히 몸집 키워

허 전 회장은 1970년 녹십자 전신인 극동제약에 공무부장으로 입사한 뒤 1980년 대표이사 사장, 1992년부터 회장직을 역임했다. 부인 정인애씨와 사이에 장남 허성수 전 녹십자 부사장과 차남 허은철 녹십자 부사장, 3남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상무를 뒀다. 2009년 세상을 떠난 허 전 회장의 '지휘봉'을 이어받은 허 회장은 1979년 녹십자에 입사한 후 1988년 한일시멘트 이사를 거쳐 1991년 다시 녹십자로 자리를 옮겼다. 부인 최영아씨와 사이에 진성·진영·진훈씨 3형제를 뒀다.

녹십자 일가는 허 전 회장의 타계 이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장남 허성수 전 부사장과 그의 모친 정인애씨가 유산을 두고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 최근엔 물밑에서 허영섭·허일섭 두 집안 간 지분확보 신경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

 

<녹십자엠에스·녹십자이엠 기부는?>

받을 땐 '왕창' 나눌 땐 '찔끔'

녹십자 계열사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녹십자엠에스와 녹십자이엠은 기부를 얼마나 할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녹십자엠에스는 지난해 600만원을 기부금으로 냈다. 이는 당시 매출(550억원)의 0.01%에 불과한 금액이다. 2010년엔 매출(293억원) 대비 0.03%에 해당하는 1000만원을 기부했다.

녹십자이엠은 지난해 1300만원을 기부했다. 매출(261억원) 대비 0.05%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매출 258억원을 올린 2010년엔 1700만원(0.07%)만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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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