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분단 80년을 향해 가는 지금, 우리는 통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통일은 여전히 지향해야 할 민족의 이상일까, 아니면 이제는 현실에 맞춘 평화적 공존이 더 시급한 과제일까?
최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제기한 ‘평화적 두 국가론’은 이 같은 질문에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들었다. 일부에서는 “통일을 포기한 선언”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반대로 현실적인 평화 통일 전략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특히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이런 인식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2025년 통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절반 이상이 ‘북한도 하나의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고 답했다. 현실을 인정하고 통일로 가는 가장 실용적인 길은 무엇일까? “두 국가로 못 가기에 통일로 못 간다”는 이 한 문장이야말로 오늘날 남북관계를 꿰뚫는 통찰일지도 모른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평화적 두 국가론’은 단순한 외교 구호가 아니라, 70년 넘게 이어져 온 냉전적 사고를 깨는 현실적 제안이다. 이재명정부가 추진 중인 대북 정책의 핵심은 ‘평화공존의 제도화’다. 그 출발점에 바로 ‘두 국가의 상호 인정’이라는 현실 인식이 있다.
정 장관의 발언이 왜 단순한 논쟁거리가 아닌지, 그리고 왜 ‘두 국가론’이야말로 실질적 통일로 가는 가장 현실적인 접근인지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두 국가론 주장은 자주 오해된다. 일각에서는 이를 “분단을 인정하고 통일을 포기하는 것”으로 비판하지만, 그 본질은 그 반대다. 그는 “현실을 인정해야 진짜 통일이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한국과 북한은 이미 정치, 경제, 제도, 체제 모든 면에서 ‘사실상의 두 국가’다. 그러나 이 분단 현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하나의 민족, 하나의 조국”이라는 구호만 반복한다면 통일은 영원히 추상적 이상에 머물 수밖에 없다.
정 장관이 말하는 ‘평화적 두 국가론’은 이 현실 위에서 평화와 상생의 제도적 토대를 먼저 구축하자는 실용적 제안이다. 즉, ‘두 국가로 인정하자’라는 말은 “통일을 포기하자”가 아니라 “서로를 정상 국가로 인정해야 통일의 대화가 가능하다”라는 뜻이다.
이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평화공존의 제도화는 단순한 대북 유화정책이 아니다. 그 근간에는 남북기본협정 체결이라는 구상이 있다. 이 협정은 과거 동독과 서독이 체결한 ‘기본조약(1972)’을 모델로 삼는다. 당시 동·서독은 서로를 국가로 인정했고, 그 후 18년 만에 통일을 이뤄냈다.
이 논리대로라면, 남북한이 상호 국가로 인정하는 것은 ‘분단 고착화’가 아니라 ‘통일로 가는 전제 조건’이다. 지금처럼 상대를 주적으로 규정한 상태에서는 대화도, 신뢰도, 협력도 불가능하다.
정 장관이 말한 “두 국가로 가야 통일로 간다”라는 말은 이런 구조적 교착을 풀기 위한 현실적 해법이다. 그의 구상은 단순히 철학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실행 전략으로 개성공단 재가동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통일부는 평화협력지구추진단을 신설하고,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복원을 공식화했다.
개성공단은 2016년 가동이 중단되기 전까지 남북 경제 협력의 상징이었다. 당시 북한 근로자 약 5만명이 일하며 연간 약 5억달러의 경제 효과를 냈고, 남측 중소기업 120여개가 생산 기지를 운영했다. 단순히 공단이 아니라, “전쟁 대신 협력으로 공존할 수 있다”라는 한반도 평화 경제의 첫 번째 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멈춰졌을 뿐이다. 정 장관은 이제 다시 이 엔진을 돌리려 한다. “개성공단 재가동은 남북 모두의 이익이다. 일자리가 생기고, 신뢰가 쌓이며, 평화가 구조화된다”는 이 구상이 실현된다면, 남북은 단순한 정치적 교류를 넘어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은 곧, 무력 대신 협력으로 갈등을 관리하는 경제적 평화 구조의 시작이다.
물론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야권은 “헌법 위반” “북핵 용인” “정통성 훼손”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하지만 이 논리는 현실을 외면한 이상론에 가깝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규정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북한 지역을 통치하지 않는다.
즉, 헌법상 ‘단일 국가’지만 실질은 ‘분단 국가’다. 정 장관의 두 국가론은 헌법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라, “통치 현실을 인정하고 제도적으로 관리하자”라는 의미에 가깝다.
정 장관은 또 “북한은 사실상 핵 보유국”이라고 말했다. 이는 핵을 용인하자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현실을 인정해야 협상 전략도 세울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적’을 부정해선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평화는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이라는 정 장관의 발언을 가장 현실적으로 해석하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적대적 구도를 유지한 채 통일을 논하는 것은 모순이다. 먼저 공존의 시스템, 즉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남북기본협정 체결, 개성공단 재가동, 교류 확대 등 이 모든것은 감성적 통일담론이 아니라 ‘시스템 기반 평화 전략’이다.
이제 통일은 구호가 아니라, 설계와 운영의 문제다. 그렇다. 이제는 한반도의 미래는 감정이 아니라 제도 위에 세워야 한다.
결국 정 장관의 평화적 두 국가론은 분단을 ‘관리 가능한 구조’로 바꿔서 통일을 ‘실현 가능한 목표’로 전환하는 시도다.
그는 말한다. “북한은 주적이 아니라 협력 대상이다. 이재명 정부의 철학은 평화와 실용의 결합”이라고. 이 철학은 과거 ‘햇볕정책’의 단순 복제가 아니라, 국제질서와 경제적 현실을 고려한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작금의 한반도는 냉전시대의 틀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미중 패권 경쟁, 북·중·러 연대, 한·미·일 협력 체계 속에서 한국은 중간의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그 다리는 바로 남북 상생이며, 두 국가론은 그 다리를 놓는 첫 번째 설계도다.
정 장관의 주장은 꿈꾸는 통일이 아니라 운영 가능한 통일을 말한다. 그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 위에서 통일을 설계한다. 이제 통일은 민족 감정이 아니라 정책, 제도, 경제, 시스템의 문제로 봐야 한다.
남북이 서로를 인정하는 순간, 통일은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다. 평화공존은 통일의 반대가 아니라 그 출발점이다. 이제는 이념을 버리고, 실용의 길로 가야 한다. 정 장관의 ‘두 국가론’은 그 길의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한민족이 하나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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