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대담>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 안철수 의원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8.18 10:05:39
  • 호수 15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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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국민의 신망을 받는 외부 전문가들이 객관적으로 작성한 백서가 국민의힘 혁신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송언석 비대위원장은 혁신위원장 시절 제시한 인적 쇄신안을 굉장히 곤란해했다”며 “직접 혁신안을 만들어 실행하는 당 대표가 되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과 혁신위원장 포기 등 인적 쇄신 관련 갈등을 겪은 후 전당대회에 출마했다. 안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국민의힘 지지율은 16%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계속 강조하면서 “대선 패배 후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 배경에 대해 진단했다.

다음은 안 의원과의 일문일답.

-국민의힘 주류는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의 혁신안을 좌절시켰다. 안철수 의원이 의결권이 없는 혁신위원장직을 수락했던 이유는?

▲국민의힘은 대선 직후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크게 실망했다. 반드시 혁신해야 한다. 혁신위원회는 실행안을 만들 뿐, 실행하는 기구가 아니다. 비대위에서 승인해야 실행할 수 있다. 당시 저는 ‘혁신은 필요하니, 나라도 혁신위원장을 맡자’고 생각했다.

비대위엔 혁신안을 발표하겠다고 미리 알려줬다. 송언석 비대위원장이 미리 알아야 발표 후 자연스럽게 비대위가 통과시켜서 혁신위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제가 준비한 첫 혁신안은 가장 실행하기 어려운 인적 쇄신안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관심을 가질 때 인적 쇄신안을 발표하면 그들이 깜짝 놀라서, 그 다음부터는 굉장히 수월하게 혁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 비대위원장은 굉장히 곤란해했고, 협상도 실패했다. 결국 실패한 혁신위가 될 수밖에 없었고, 제가 맡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혁신안을 만들기만 할 뿐, 처분만 바라는 수동적인 혁신위원장을 맡을 게 아니라, 전당대회에 출마해서 직접 혁신안을 만들어 실행하는 당 대표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선 패배 이후 백서 작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토대로 인적 쇄신안을 만들고, 공천 심사 기초 자료로 삼겠다고 했다. 지난해 총선 백서는 꽤 신랄했지만, 사실상 실천된 건 없었다. 백서 작성이 중요한 이유는?

▲사람의 기억은 휘발성이 있기도 하고,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왜 패배했는지 다 아는데, 백서를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씀하신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분들도 1~2년이 지나면 다 잊는다.

지난해 총선 백서는 내부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계파 논쟁 등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저는 당 밖에서 국민의 신망을 받는 전문가들에게 백서 작성을 맡기려고 했다. 사실을 토대로 객관적인 백서를 만든 후, 사과할 분은 사과하고, 징계가 필요한 분들은 인사위원회에 조치를 맡기는 과정을 거치는 게 맞단 생각을 했다.

-모든 선거는 조직을 기반으로 진행된다. 안 의원은 당내 기반이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승리를 위한 공식은?

▲혁신 반대 진영의 주장은 곧 전한길씨 중심의 계엄 옹호론이다. 계엄 옹호는 헌법에 맞지 않는다. 보수 정당의 핵심 가치는 법치주의인데 이를 거부하면서 위헌을 옹호하면 우리와 함께하기 힘들다.


“지지율 16%…바꾸려 나왔다”
“합리적 보수 세력 중심 재건”

어떤 분들은 “전씨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통합해야 숫자가 많아서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착각이다. 당 안에서 법치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과 거부하는 사람들의 갈등이 계속 이어지면, 힘이 분산된다. 또 합리적 보수 세력이 떨어져 나가서 당이 쪼그라든다.

계엄에 반대하는 분들은 각종 여론조사서 약 70%로 확인된다. 남은 30%를 기반으로 지방선거를 치르면 필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민심을 따라야 하고, 혁신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야 한다.

최근엔 국민의힘 지지율이 16%에 불과하단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다. 우리 당원조차도 우리 당을 지지하지 않는단 의미다. 등 돌린 사람들이 다시 우리를 바라보게 하고, 신뢰를 얻으려면 우리가 변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가 원래 갖고 있던 유능함·품격·헌신을 토대로 다시 이미지를 구축하면, 합리적인 보수 성향의 우리 당원들이 다시 우리를 바라보고, 세력도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그래서 백서 작성에 따른 인적 쇄신·새로운 인재 영입·원외 당협위원장 연석회의 등 혁신안을 발표한 것이다.

아울러 청년 공천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려고 한다. 청년에게 제대로 일하고, 교육 받을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제대로 실행하려면 당헌·당규를 고쳐야 한다.

-국민의힘은 2016년부터 총선서 3연속 패배했고, 수도권서 많은 후보가 낙선했다. 이 때문에 일명 ‘언더 찐윤’으로 알려진 주류를 견제할 세력이 없어졌단 분석도 있다. 수도권을 지역구로 둔 의원(경기 성남 분당갑)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도권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려면,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우리 당 의원 중 약 100명은 영남의 목소리를 내고, 10명 정도만 수도권의 목소리를 낸다. 그래서 수도권의 상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의원총회서도 수도권의 목소리가 거의 안 나온다. 대체로 수도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지난 2023년 서울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 당시, 저는 수도권 위기론을 얘기했다. 그러자 저에게 “그런 얘기할 거면 배에서 내려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영남 출신 의원들은 지금 수도권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 전혀 모르는데, 저는 어떻게 해야 수도권의 민심을 많은 의원에게 전파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고 있다.

-“국민의힘의 내년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이 작다”는 분석이 많다. 패배 시 당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의힘 안철수 대표’의 전세 역전 비법은?

▲국민의힘은 대선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지지율도 떨어졌다. 새 대표는 실제로 개혁해야 한다. 개혁하면 조금씩 국민의 믿음을 얻을 것이다. 좋은 메시지를 내더라도 메신저가 신뢰를 못 얻으면 의미가 없다. 메신저가 관심과 믿음을 얻는 개혁부터 하겠다.

어느 정도 믿음을 얻으면, 현 정부의 잘못을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지적해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우리는 국민밖에 믿을 게 없다. 국회서도 소수고,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도 없다.


-당 대표로 당선되더라도, 언더 찐윤이 또 혁신을 방해할 수도 있다.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1명씩 만나서 “내년 지방선거는 이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할 것이다. 모든 국회의원은 지방 의원을 1명이라도 더 당선시키기 위해 목을 건다. 그 공감대는 있다.

-국민의힘에선 계파 갈등이 모든 의사결정의 정점에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는 건강한 것 같다. 이념적으로 같은 비전·가치관을 가지고 모이는 것은 구태여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활발하게 대화·토론하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 문제는 특정인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인데 그런 계파는 바람직하지 않다.

-현실적으로 인적 쇄신은 총선 공천권을 통해 실현된다. 총선까진 약 3년여가 남았다. 새 당 대표는 어떻게 인적 쇄신을 할 수 있겠는가?

▲제가 주장하는 인적 쇄신은 사과 및 윤리위 제소 후 징계 처분 정도의 선을 말한다. 더 많은 사람을 영입해 그 공백을 메우고, 당의 규모를 키우겠다.


-일명 ‘쌍권’으로 알려진 국민의힘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만 정리하면, 인적 쇄신이 완료되는 건가?

▲혁신위원장 시절 상징적으로 쇄신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두 분을 지목했다. 당 대표가 되면, 시간이 좀 더 있을 것이다. 급하게 혁신안을 발표할 필요는 없다. 외부에 백서 제작팀을 따로 만들고, 가능하면 빨리 백서 내용에 따라서 순서대로 처리하려고 한다.

“수도권 위기론 얘기하니
‘그럴 거면 나가라’ 비난”

-특검 3개(내란·김건희·채 상병)가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당 대표가 되면, 어떻게 대응할 건가?

▲특검은 수사 기간 연장을 하면 안 된다. 내년 지방선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고, 이는 곧 선거 개입이 된다. 국민의힘은 범죄 성립 가능성이 큰 수사에 대해선 협조하고,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의힘이 그것까지 다 막으면, 결국 빌미가 돼서 수사 기간을 연장할 핑계로 삼을 것이다. 다만 범죄 혐의가 없는데도 정치 탄압 목적으로 수사하면, 거기엔 절대로 협조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란 특검은 저부터 소환했는데 ‘우리 당을 내란 정당으로 만드는 밑바닥을 깔기 위해 저를 불렀다’고 생각했다. 저만큼 깨끗한 사람이 없으니까, 오히려 저를 불러내서 수사 범위를 넓히고, ‘정치 탄압’ 방향으로 가려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협조를 거부했다.

제가 당 대표가 되면, 그 사실만으로도 국민께선 ‘당이 바뀌고, 개혁이 시작될 것’이란 기대를 많이 하실 것이다. 저는 당 대표를 4번(새정치민주연합·국민의당 2번·바른미래당)이나 경험했다. 그 경험을 잘 살려서 당을 제대로 운영하겠다.

-국민의힘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옮긴 김상욱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이 일본 자유민주당 의원들처럼 지역구를 세습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가능한 일인가?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다. 민주당에선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아들 문석균 숭문당 대표가 지역구 경기 의정부갑을 세습하려다가 실패했다. 이 문제는 ‘전문 경영인과 세습 경영인 중 누가 괜찮냐’는 것과 같다. 실력으로 겨뤄서, 더 실력 있는 사람이 답이 된다.

-전 세계적으로 극우 정당이 선전하고 있고, 국민의힘도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는가?

▲극우 세력과 따로 가는 게 좋다고 본다. 옛 통합진보당이 진보당으로 부활하는 등 진보 정당이 여러 개 있다. 이들이 극좌를 맡으면서 민주당은 자유롭게 중도로 뻗어 나간다. 우리도 극우 정당이 따로 있는 게 낫다. 그러면 우리는 자유롭게 중도로 뻗어 나갈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중도 보수 정당”이라고 선언했다. 어떻게 대응하려고 하는가?

▲이 대통령은 말로만 ‘중도 보수’라고 하고, 실제 정책은 ‘돈 나눠주기’부터 시작했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 그저 정치적 수사일 뿐, 실제와 다르다. 아울러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민주당에도 큰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민주당은 30번이 넘는 탄핵소추를 하면서 국정 발목 잡기만 했다. 이 대통령도 정권을 잡은 후엔 범죄 혐의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재판을 다 미루더니 사법부를 장악하고 있다. 이게 어떻게 ‘중도 보수’인가.

-강선우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등 일부 국회의원의 갑질 문제가 세간에 알려졌다. 당 대표 후보 겸 국회의원으로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

▲저로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졌다. 우선 갑질 피해를 본 보좌진에게 격려와 응원의 뜻을 전하고 싶다. 당 대표가 된다면 의원들을 제대로 교육하고, 새 지침을 만들 것이다. 만약 지침을 어긴 의원이 나온다면, 윤리위 등을 통한 적합한 조치가 진행되도록 상세한 기준을 만들 예정이다.

-이재명정부 2개월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정부 출범 후 3개월 정도는 아무 지적도 안 하려고 했는데 각종 인사 실패 논란 등 문제가 너무 많다. 이재명정부 인사는 성남파(이 대통령의 성남시장 재임 시절 인맥)가 주도했다. 그래서 인재풀이 너무 적다. 제가 경기도 성남시에 살고, 지역구이기 때문에 잘 안다. 또 경제 성장 정책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돈 나눠주기’부터 했으며 그 다음이 제시되지 않았다.

최근 민주당은 “기업이 배당금을 줄이고, 사내 유보금을 쌓는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사내 유보금을 배당금으로 다 주면, 그때만 반짝 주가가 오를 뿐, 금방 떨어져서 똑같은 위기를 겪는다. 기업의 사내 유보금을 새로운 산업에 투자하도록 유도해야 주식시장이 활기를 되찾는데, 이정부와 민주당은 ‘돈 나눠주기’만 한다. 그건 단기 투자자의 시각밖에 안 된다.

이런 경제 정책부터 잘못됐다고 본다.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로서 국민·당원·<일요시사>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야당이 제대로 역할을 해야 여당도 제 역할을 잘하고, 대한민국이 번창하면서 국민도 잘 산다. 저희가 내부 정리가 덜 끝나 아무 역할도 못해서 많은 분께서 실망하셨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16%에 불과하단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다.

저는 이걸 바꾸려고 전당대회에 출마했다. 제가 대표가 되면, 약속드린 대로 제대로 혁신해서, 제 역할을 다하는 야당을 만들겠다. 여당의 잘못은 비판하고, 잘한 점은 인정하는 야당을 만들어 국민 생활 향상에 기여하고, 제대로 된 정치를 해보겠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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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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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