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대로’ 통일부 남북교류협력법 악용 논란

감시 기관 전락…통일 배제부 오명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김성민 기자 = 통일부의 역할이 180도 바뀌었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보다는 외면으로 일관 중이다. 특히 남북교류협력법을 국가보안법처럼 악용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실제 통일부는 지난해부터 조선학교 학생들과 접촉한 시민단체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정권이 바뀐 이후 남북교류협력법이 만들어진 취지와는 다르게 ‘제재’에만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조선학교의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 외교부와 통일부의 극단적 안보 스탠스가 무조건 좋다고만 할 수 없다.” 지난달 17일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조총련) 간부 출신 관계자의 말이다. 위의 주장은 재일동포 사회서도 종종 언급된다. 과거 조총련과 현재 조총련을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위기의
조선학교

통일부는 지난해 말 남북교류 관련 제재 강화를 위한 법·제도를 개정했다.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으면 북한 주민 접촉 신고 수리를 제한한다는 게 골자다. ▲법 위반에 따른 형 집행 종료·면제 이후 1년 ▲과태료를 납부한 이후 6개월 동안 수리 제한 ▲방북, 물자 반출입, 협력 사업, 수송장비 운행 등에서 승인 조건 위반 시 과태료 부과 등 내용이 포함됐다.

이 같은 법 개정은 김영호 장관 체제서부터 시작됐다. 남북교류보다는 제재에 몰두한 것이다. 김 장관 체제의 통일부는 먼저 일본서 영화를 제작한 문화예술인의 수년 전 조총련 접촉 경위를 파악했다.

통일부 남북관계관리단은 지난해 다큐멘터리 영화 <차별>의 김지운 감독과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의 조은성 PD에게 “영화 제작 과정서 조총련 관계자와 접촉했다면 접촉 경위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낸 바 있다. 두 영화는 각각 일본 내 조선학교 차별 문제와 재일조선인들의 역사를 다뤘다.


지난해 개봉한 <차별>은 2017~2019년 촬영됐고, 2021년 개봉한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2016~2017년에 주로 촬영됐다. 한 시민단체의 2019년 교류 활동도 문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접촉 신고 위반에 따른 과태료 부과 시효는 5년이다.

이는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조총련 주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던 걸 문제 삼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상 제재의 연장선으로 평가된다.

통일부가 수년 전 접촉 여부까지 광범위하게 들여다보겠다고 한 상황을 두고 문화예술계에서는 과도한 조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문화예술계 관계자는 “이명박·박근혜정부서도 이 정도의 조치는 없었다. ‘접촉하지 않았냐’고 떠보는 식의 조사도 진행됐다”며 “조선학교를 방문하지 않고 학생들을 만난 것까지 문제 삼으려 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에 따라 우리 국민이 북한 주민과 접촉 시 미리 통일부에 계획을 신고해야 한다. 미리 하지 못한 경우 사후에도 신고할 수 있다. 조총련이나 소속 기관, 개인의 경우는 북한 주민으로 간주해 사전 접촉 신고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 통일부는 ‘남북교류·협력을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신고 수리를 거부할 수 있다’고 제한적으로만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총련 접촉했나 안 했나…사정기관 뺨치는 조사
사전 신고해도 수리 안 하면 끝 ‘사실상 허가제’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자의적인 법 해석에 따라 민간인 간의 교류는 끝났다고 보는 게 맞다. 지난해 말부터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김영호 장관이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시 과태료 부과가 아닌 무조건적 수사 의뢰로 법 개정을 추진하려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토로했다.

통일부는 같은 해 말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분야를 담당하는 조직을 ‘종이호랑이’로 만들기도 했다. 통일부서 남북교류협력을 담당하는 부서에는 교류협력국, 남북회담본부,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 남북출입사무소 등이 있다.

전직 통일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조직 개편안이라고 발표하고 인원은 100명 가까이 줄여버렸다. 통일부 공무원 수의 6분의 1 수준이다. 대통령실 주도로 이뤄졌는데 당시 감축되는 인력에는 통일부 본부 및 산하조직에 적을 두고 있는 공무원만 포함됐다”고 말했다.

통일부의 강도 높은 규제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개인·단체의 북한 주민 사전 접촉 신고가 39건 제출됐으나 단 6건만 수리됐다. 상반기에 69건이 제출돼 57건이 수리된 것과 비교하면 통일부의 접촉계획 승인 비율이 급락한 것이다.

특히 조총련 대상 접촉 신고의 경우 하반기에 7건이 제출됐으나 전부 수리 거부돼 수리율은 0%로 나타났다. 상반기에는 14건이 제출되고 9건이 수리됐다.

통일부의 강경 태세는 재일동포 사회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분위기다. 재일동포의 한국 입국이나 일본 내 사업 운영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한 재일동포 사업가는 “코리아타운에서는 조총련이든 민단이든 가리지 않고 서로 교류한다. 한국 정부가 변화하면 재일동포를 바라보는 일본 정부의 시선도 달라진다”며 “일본 정부의 정책 변화로 피해를 입거나 혐오 문제가터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업가는 “재일동포의 국적은 2차 대전 패전 후 일본이 일본 국적을 빼앗고 부여한 조선적, 1965년 한일 수교 후 취득할 수 있게 된 한국 국적, 일본 귀화자 등 다양하다. 이들이 만날 때마다 서로 국적을 확인하고 신고해야 한다면 비즈니스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과거까지
파헤치기

위기에 놓이게 된 건 조선학교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일본 사회서 혐오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간다. 대부분 민족 역사와 한국말을 배우려는 의지가 강하기에 조선학교를 다니는 것이지, 북한 정권에 충성하거나 주체사상을 피부로 느끼려는 학생은 거의 없다.

조선학교는 1945년 해방 후 한국에 돌아가지 못한 재일동포들이 아이들에게 한민족의 정체성과 한국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 벌인 민족교육 운동의 결과다. 북한은 1950년대부터 조선학교에 장학금과 교과서 등을 보내며 지원한 반면 한국 정부는 외면했다. 이 과정서 조선학교는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교육도 하게 됐다.

현재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일본 내 한국 학교의 수는 도쿄 1곳 등 겨우 4곳으로, 조선학교(60여곳)와 격차가 크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조선학교 출신 인사는 “일본 학교에서는 한국말을 배울 수도 없고 역사가 왜곡된 일본 교과서로 공부해야 한다. 가난한 가정이 많아서 지방 곳곳에 사는데 도쿄나 오사카까지 가지 못하는 청년도 많다”고 말했다.

조선학교와 조총련은 재정난에 시달릴 만큼 과거와는 다르게 위상이 하락했다. 영향력도 줄어들어 조선학교는 물론 조총련 구성원조차도 70% 정도는 한국 국적자다. 지난 1965년 한·일 국교 수립 이후 일본에 거주하는 교포들의 생활환경은 분열됐다.

먼저, 일본 당국은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이들을 1947년 미군정 당시 편의상 만든 임시 국적인 조선적으로 분류했다. 현재 재일교포 중 대한민국 국적자는 41만여명이다. 조선적은 국제법상 무국적자로, 본인 의지만 있다면 한국이나 일본 등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우리 외교당국도 이들에게 한국 국적 취득을 권하고 있다. 지난 2018년 12월 기준 조선적은 2만9559명이었으나 현재는 약 2만2000명 정도다.

이념 따라
갈팡질팡

조총련의 위기는 조선학교 교육 수준의 질 저하로 이어졌다. 조선학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시민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가난을 극복하려 시도했다. 올해 초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교류 자체가 씨가 말라 조선학교 학생의 수도 줄게 됐다. 재일동포 청년들이 올바른 역사관과 우리말을 배울 기회가 적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조선학교 교원 출신 재일동포는 “14년 전 고교무상화법이 시행되면서부터 조선학교는 어려움을 겪었다. 일본 정부에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데 이어 통일부의 제재가 지속되면서 민간 교류가 끊겨 희망의 끈을 놔버린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고교무상화법은 지난 2010년 4월1일 ‘공립고등학교에 관한 수업료 불징수 및 고등학교 등 취학 지원금 지급에 관한 법률’의 약칭이다. 이 제도는 외국인학교를 포함한 모든 고교의 수업료를 무상화한 조치였으나 유일하게 조선고급학교만 무상화 적용 보류 대상이 된 후 심사에 회부됐다.

2년 동안 중단됐던 심사는, 2012년 12월26일 재집권한 자민당 아베 신조 정권에 의해 아예 배제로 바뀌었다.

고교무상화 문제가 떠오르자 학생들이 평등한 교육 기회를 달라며 일본 여론에 호소했고, 기회를 완전히 박탈당한 뒤에는 부모, 학교와 함께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다. 오사카·아이치·히로시마·규슈·도쿄 등 5곳에서 조선고급학교 ‘고교무상화’ 재판이 시작됐다.

모든 재판이 원고 패소로 끝났지만, 지난 2017년 7월28일 오사카 지법만은 ‘상식적’ 판단을 했다.

그러나 오사카부와 오사카시가 독자적으로 조선학원(초중고)에 대한 보조금 교부를 중단했다. 이런 지자체의 ‘차별’을 문부과학성이 나서서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2016년 3월 문부과학성은 조선학교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28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지사에게 사실상 지급 중단을 요청하는 통지를 보냈다.

대한민국 국적 70% 불구 ‘북한 주민’ 취급
사상 따라 법리해석 조선학교 학생이 간첩?

2019년 10월 시행된 유아교육·보육 무상화에서는 모든 외국인학교의 유치원이 제외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모든 어린이가 건강하게 크도록 지원한다’는 이념이 시설에 따라 달라졌고, 조선학교 차별은 외국인학교로 확대됐다.

남북교류협력법 제30조(국외단체 중 북한 주민 간주 조항)에 따르면 조총련 간부와 관계자는 북한 주민으로 취급된다. 조선학교 교장을 포함해 조총련 산하기관에 근무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들 중 절반 이상이 대한민국 국적자다. 현행법상 북한 주민으로 취급되는데 대한민국 국적자라는 모순적인 상황이 생긴다.

통일부 신고 절차를 밟지 않고 북한 주민으로 취급되는 대한민국 국적자를 만나면 남북교류협력법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혐의까지 받을 수 있다. 특히 조선학교가 모두 조총련의 지령을 받는 것도 아니다. 설사 몇몇 시민단체 지원이 있다고 해도 재정난을 겪는 상황서 이행 가능성은 매우 적다.

한편 총련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통일 관련 활동을 모두 중단하고 한국 인사와의 관계도 완전히 차단하라는 내용의 지시를 받았다. 총련은 북한 당국의 지시를 13개 활동 방침으로 정리해 자신들이 운영하는 동포 교육기관인 조선학교 등 하부 조직에 이른바 ‘13항목 지시서’로 전달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의 교전국으로 규정한 이후 북한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대남 적개심이 극에 달한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총련계 동포 일부는 갑작스러운 통일 관련 활동 금지 등에 대해 반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조총련은 북한 노선에 따라 활동하는 국외단체로 구성원과 접촉하려면 사전에 접촉 및 신고 수리가 필요하다”며 “현행법에 따라 이들은 북한 주민으로 규정하고 있고, 국적 여부에 관해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모순적
상황들

조총련 집행부는 북한 당국의 지시를 그대로 하부 조직에 전달했지만, 총련계 동포들의 반발은 예상보다 큰 상황이다.

조총련 출신 한 관계자는 “조총련을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 같다”며 “수십년간 통일에 대한 믿음과 의지와 관련된 교육과 지시가 이뤄졌었는데 한순간에 뒤바뀌면서 조총련 간부 및 재일동포 사회에도 큰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며 “표면적으로 김정은을 비판하는 사람은 없으나 불만을 가진 사람이 10명 중 7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