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언제나 우리 상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 인공지능을 배척하거나 배제할 여지는 점점 좁아질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이끄는 대로 무작정 따라갈 수도, 어떤 존재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냥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저자는 인공지능을 도구가 아닌 관계의 주체로 바라보자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금 여기서 우리는 읽고 쓰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새로운 존재와 함께 읽고 쓰는 행위는 어떤 가치와 한계를 지닐까? 리터러시 생태계의 근본적 변화 속에서 우리는 읽고 쓰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어떻게 더 잘 돌볼 수 있을까?
챗GPT가 이전의 인공지능에 비해 더 빠르게 확산되고 화제가 된 이유는 온전히 사람의 몫이라 여겨졌던 읽고 쓰는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라는 점 때문이다. 읽고 쓰는 일에서 예외인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잘하기는 쉽지 않다.
더군다나 텍스트의 영역이 영상으로 채워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긴 글 읽기-쓰기를 이전보다 더 어려워하고, 사회에는 문해력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웬만해서는 수월히 할 수 없는 읽기-쓰기를 대신해 주는 인공지능이 개발됐다니, 이 기술이야말로 모두의 삶을 편리하게 할 거라고들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생성형 인공지능이 과연 모두를 돕고 있을까? 인간처럼 읽고 쓰는 AI의 행위는 인간의 읽기-쓰기를 대체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을 둘러싼 이런 논의들이 문해력의 개념과 우리 사회의 리터러시 담론에 변화의 물결을 만들고 있다. 인간의 읽기-쓰기와 인공지능의 읽기-쓰기는 어떤 면이 비슷하고 어떤 면이 다를까?
인간은 어떤 과정을 거쳐 글을 읽고 쓰며, 인공지능은 어떤 방식으로 읽고 쓸까? 저자는 최근까지 지속된 국내외 연구들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텍스트를 생성하는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며, 인공지능은 텍스트를 생성할 수는 있으나 읽기라는 행위가 창출하는 다양한 가치까지 만들어낼 수는 없음을 지적한다.
읽는 기쁨과 읽는 동안 활성화되는 뇌, 읽으면서 경험하는 깨달음의 순간, 이유 없이 생기는 여운과 감상, 쓰면서 비로소 정리되는 생각, 쓰고 나서야 분명해지는 자신의 감정 등을 인공지능의 읽기-쓰기는 구현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읽기-쓰기를 ‘대신’할 수 있다는 건 환상이며, 인간의 읽기-쓰기에는 기술로 대체불가능한 면이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 준다.
그럼으로 인공지능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리터러시 생태계를 바꾸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 새로운 기술이 우리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꾸고 있으며 우리는 그 변화를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지를 논의하자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다.
사실 리터러시의 개념은 이제까지도 꾸준히 변화해 왔다. 사회 변화에 따라 미디어 리터러시·디지털 리터러시 같은 개념이 생겨나고 그 의미 또한 변화·확장되고 있으니까. 그러니 리터러시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고, 그 기술과 평화롭게 ‘공존’하려면 활용법 학습을 넘어 제대로 된 관점과 태도 정립을 돕는 공부가 필요하다. 이 책이 바로 그 시작을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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