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시도는 많았지만 실행까지 간 경우는 없었다.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는 둘째치고 덩어리가 너무 컸다. 반으로 뚝 잘라 이제부터 서로 다른 지역이라고 하기엔 장애물이 많았다. 이번에는 어떨까? 일단 이름까지는 나왔다.
최근 경기도 분도 이슈가 화두에 올랐다. 경기도는 지난 1일, 경기북부특별자치도(이하 경기북부특자도)의 새로운 이름으로 ‘평화누리특별자치도’가 결정됐다고 밝혔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경기북부특자도는 한반도 평화의 상징이자 경기북부 발전의 게임체인저다. 그동안 정치적 의도에 가려 경기북부특자도 추진이 지지부진했으나 오늘 새 이름을 얻고 그 기운으로 더욱 힘 있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꺾이고도…
앞서 경기도는 경기북부가 가진 성장 잠재력에 걸맞은 상징적 이름이 필요하다고 보고 경기북부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상징하며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담은 새로운 이름을 짓기 위해 지난 1월18일부터 2월19일까지 한달여 동안 대국민 공모전을 진행했다. 대국민 공모전에는 총 5만2435건의 이름이 모였다.
경기도는 우리나라서 가장 큰 광역자치단체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1364만명이 경기도에 살고 있다. 인구 100만명이 넘는 지자체만 수원시, 용인시, 고양시 등 3개에 이른다. 3개 시는 2022년 1월 시행된 지방자치법에 따라 특례시로 지정됐다. 화성시, 성남시 등이 인구 100만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4 이상이 서울을 비롯해 인천과 경기, 수도권에 모여 있다. 수도권 과밀화 현상은 이제 더 이상 이슈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고질적인 문제가 됐다. 이 과정서 면적이 가장 큰 경기도가 분할의 타깃으로 떠올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경기도 면적은 1만200㎢로 전체 국토의 10.1%에 이르는 크기다.
경기도를 나누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분도의 가장 큰 이유로는 남부와 북부의 지역 격차가 꼽힌다. 경기도는 31개 시군구로 구성돼있는데 인구가 많고 경제가 활성화된 지역은 대체적으로 남부에 몰려 있다. 실제 상대적으로 낙후된 경기도 북부지역을 발전시키자는 공약이 선거철마다 나왔다.
2022년 경기연구원이 내놓은 <퀀텀점프를 위한 경기북부지역 발전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도 남부와 북부의 지역내총생산(GRDP) 차이는 4.8배에 달한다. 근로자 월평균 급여액도 31만원가량 차이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 북부지역의 GRDP는 경기도 전체의 17.3%로 인구 비중(26%)을 밑돌고 있다.
당시 경기연구원은 북부의 저발전·침체는 산업혁신, 인프라, 규제 요소가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인천·경기 남부보다 특화산업·기술, 기업·대학·R&D 등 산업혁신 거점이 발달하지 못했고 광역교통 인프라와 대중교통 접근성이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또 수도권과 팔당상수원, 군사시설 등의 규제를 성장의 장애요인으로 꼽았다.
4·10 총선에서도 경기도는 ‘뜨거운 감자’였다. 불을 지핀 것은 국민의힘이었다. 국민의힘은 경기도 지역 일부를 서울로 편입하는 ‘메가시티’와 경기도를 나누는 ‘경기 분도’ 이슈를 띄웠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3일, 총선을 1주일 앞두고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경기 분도 원샷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언급
이름 발표, 부정적 반응 커
한 전 위원장은 “경기북부는 수도 서울의 안보나 방위 등을 이유로 여러 가지 군사 규제 등 불합리한 규제와 희생을 감내해왔다”며 “군사 사정거리나 군사 기준이 많이 바뀌어서 여기나 서울이나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한 억제력으로 적극 방어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며 “경기북부가 모든 희생을 감당할 필요가 없다. 우린 그 시대를 끝내겠다고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총선서 크게 패하면서 한 전 위원장의 발언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메가시티 이슈를 끌고 나온 지역서 대부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후보가 당선돼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동력 자체를 상실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여기에 민주당은 총선 당시 경기 분도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이슈 자체가 사장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총선 이후 다 꺼져 가는 불씨를 되살린 것은 김동연 경기도지사다. 김 지사는 한강을 기준으로 경기도를 남북으로 나누는 분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4·10 총선을 3개월 앞두고 김포시 등의 서울 편입 이슈가 불거졌을 당시에도 김 지사는 경기북부특자도 설치를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경기북부특자도 설치를 위한 주민투표가 무산된 뒤에도 그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는 지난 1월 기자회견서 “경기북부특자도 설치가 총선용 정치쇼에 불과한 서울 편입 논란으로 심각하게 오염됐다”며 “만에 하나라도 정부의 주민투표 요청 묵살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면 반드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국가 균형발전’과 ‘대한민국 성장 잠재력 개발’을 경기북부특자도 추진의 대의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교통 인프라 개선, 일자리 창출, 교육·의료 등 삶의 질 향상, 생태관광 자원개발 등 북부 대개발 비전을 지난해 발표했다”며 “그 성과가 대한민국 전체로 파급되도록 키우고 지역 상황에 맞게 다듬겠다”고 했다.
경기북도특자도 명칭 공모전도 그 연장선상으로 진행됐다.
일각에서는 김 지사의 경기북도특자도 추진을 정치적 행보라고 분석하고 있다. 경기 분도 이슈는 이미 수십여년 동안 많은 정치인의 공약으로 언급됐지만 현재에 이르기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은 물론 입법 절차가 필요하다. 그만큼 정치력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역으로 말하면 끝까지 밀어붙여 정책을 완수하면 그만큼 정치적 입지가 넓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특히 민주당의 총선 승리로 야권서 김 지사의 입지가 애매해진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 나온다. 김 지사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함께 야권 잠룡으로 꼽힌다.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는 이 대표가 낙마할 경우 김 지사는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생긴다. 이미 경기도지사가 되면서 체급은 커진 상태다.
재추진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게 중론이다. 일단 경기북도특자도 이름 발표 이후 강한 반발에 부딪힌 모양새다. 경기도민 청원 홈페이지에 경기 분도를 반대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 1일 게시된 ‘평화누리자치도를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은 하루 만에 청원 답변 요건인 1만명의 동의가 모였다. ‘동네 이름 가지고 장난한다’는 반응이 나오는 등 부정적인 여론이 상당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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